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루카12,34)
안다는 것과 실천한다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것을 실천할 때야 비로소 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의 경우는 분명 그렇습니다. 내가 얼마만큼 하느님을 사랑하는가? 이것은 나의 실천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내가 얼마만큼 가족을 사랑하느냐? 이거 또한 실천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에 대해서 질문을 한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이렇게 감탄하였습니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루카12,32)
이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마음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루카12,33)
율법학자는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바치는 의식보다도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른 율법학자들은 매일 하느님께 두 마리의 양을 희생으로 바치는 계명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하지만 이 율법학자는 다른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따랐고(예레미야7,21-23;호세아6,6), 예수님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생각을 칭찬 하십니다. 이렇게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루카12,34)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있었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였기에 예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게 됩니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상대방의 말이 옳다면 옳다고 인정할 수 있는 그런 모습, 내 모습이 옳지 않다면 인정하고 변화되려고 노력하는 모습. 이런 모습을 율법학자를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예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는 것입니다. 나 또한 하느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은 사람,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고자 합니다. 날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며 하느님 나라에서 멀어지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가는 삶을 실천해 봅시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아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