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1/21)


    로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녜스 성녀는 어린 시절부터 신심이 깊었다. 성녀는 박해가 심해지면서 혹독한 심문을 받았지만 끝내 배교를 거부하고, 3세기 후반(또는 4세기 초반)에 순교하였다. 훗날 많은 기적이 일어난 성녀의 무덤은 유명한 순례지가 되었다. 오늘날 아녜스 성녀는 동정녀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말씀의 초대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는다고 시비를 건다. 스승의 답변은 단순하였다.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지 않느냐? 때가 되면 제자들도 단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너무 갑치지 말라는 말씀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내도다. ◎ 알렐루야.
    복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8-22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일찍이 박해와 싸워 이긴 복된 아녜스의 생명의 제물을 기꺼이 받아들이셨듯이, 그의 축일을 맞이하여 저희가 드리는 이 예물도 어여삐 받아 주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께서 사람들을 생명의 샘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성인들 가운데 복된 아녜스에게 동정의 월계관과 순교의 월계관을 함께 씌워 주셨으니,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모든 악을 용감히 이겨 내고 마침내 천상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경주용 말은 옆에서 말리지 않으면 자꾸만 먹는다고 합니다. 배가 터질 정도까지 먹는다고 합니다. 일등을 하라고 채찍을 맞으면서 뛰고 또 뛰어야 하는 것이 경주용 말입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먹는 시간만큼은 맘껏 즐기고 싶은 겁니다. 화려한 경주용 말에는 이러한 마음고생이 있습니다. 엄청난 값의 경주용 말에 이런 비참한 구석이 있는 겁니다. 절제는 힘입니다. 그러기에 옛부터 무엇인가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먹는 것부터 멀리했습니다. 이것이 단식입니다. 따라서 동기가 중요합니다. 왜 단식하는지에 대한 이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그분의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는다고 따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식은 절제의 한 수단일 뿐이라고 답변하십니다. 당신이 오셨으니까 이제는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단식한다 해도, 사랑 없이 억지로 한다면, 어찌 주님의 영을 만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단식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은총을 얻는 방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신을 괴롭히고 남에게 불안감을 주는 단식이라면 피해야 합니다. 사랑을 하려고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지, 고통을 체험하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경주용 말이 아닙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Veni, Creator Spiritus - Downside Abbey Ch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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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을 하지 않습니까?

    1. 말씀읽기: 마르코 2,18-22

    단식 논쟁-새것과 헌것 (마태 9,14-17 ; 루카 5,33-39)

    2. 말씀연구

    “나는 하는데, 왜 당신은 하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은 두가지 죄를 범하게 됩니다. 첫째 자신이 하고 있다는 교만과, 둘째 상대방이 하고 있지 않다는 비난의 죄입니다.

    어느 가족의 저녁 기도 시간. 초등학교 3학년인 요셉은 기도를 하다가 그만 꾸벅 꾸벅 졸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동생 마리아가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아빠! 오빠가 졸고 있어요. 난 안 졸았어.” 그러자 아빠가 말했습니다. “나는 너도 졸았으면 좋겠구나.” 마리아도 졸았다면 오빠 요셉을 판단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하는데 당신은 왜 이것을 하지 않습니까?”그렇게 판단하면서 살아갑니다. 내 틀에 상대방을 가두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그러면 안되는데…,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의 모범을 따라 엄격한 참회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낙타털옷을 입고 들 꿀과 메뚜기를 먹고 살았던 세례자 요한을 생각해보면 그 제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일반적인 규정을 넘어서서 스스로에게 특별한 계율을 부여한 점에 있어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오해했을 것입니다. 군중들에게는 높은 완덕을 가르치시면서도 그분과 그 제자들은 단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말씀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분으로 오해했을지도 모릅니다.


     유다인들은 일 년에 한 번 속죄의 날, 곧 10월 1일에 의무적으로 단식을 했습니다. 또 기근, 전쟁, 가뭄 같은 특별한 재난을 겪을 때, 슬픔과 고난의 표현으로써 특히 단식일을 정하고 지켰습니다. 또 모범적인 신앙인을 자처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한 주일에 두 번 단식을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단식은 단순한 고행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하느님께서 반기시는 신심행위의 하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도 그것과 비슷한 관습을 지키고 있었는데, 아마 스승의 엄격한 생활을 본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40주야를 단식하셨습니다. 하지만 단식하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식을 반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대중 앞에 드러내 놓고 하지는 말라고 하셨습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단식의 내적인 의미는 슬픔이지만 지금은 기쁨의 때입니다. 신랑의 친구들이 결혼 잔치에 초대받아 올 때 그들은 장례식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신랑은 이미 와 있으며 자기와 함께 기쁨을 나누도록 주위에 손님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러기에 단식이란 여기서 전혀 무의미한 것입니다. 지금은 기쁨과 환희의 때이기에 단식은 이 독특한 시간과 모순되는 것입니다.


     보통 이렛 동안 계속되는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손님들은 그 잔치의 즐거움에 참여하여 한껏 신랑과 즐겨야 합니다. 그 때문에 초청을 받았고, 또 그것이 신랑의 소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초대에 응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떠 보기 위해서 초대한 바리사이의 초대에도 응하셨고, 세리들의 초대에도 응하셨고, 나병환자의 초대도 응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삶은 흥청망청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삶이 아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밀 이삭을 비벼 먹을 때도 있었고, 가진 것이라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인 적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무절제한 삶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참새도 집이 있고, 제비도 새끼 두는 둥지가 있어도 예수님께서는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늘 당신 백성과 함께 하셨습니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그러나 항상 기뻐할 수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곧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빼앗긴다는 말은 폭력에 의한 이별을 뜻하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최후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유다 문학에서도 <메시아의 날>을 혼인잔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쁨의 때임을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그 기쁨의 때가 앞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1세기 초대 교회에서는 단식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3,2;14,23;27,9; 1고린7,5;2고린6,5에 그 증언들이 있습니다. 아마 그 단식일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금요일이었을 것입니다. 또 1세기 말에는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2세기 말엽에는 부활축일 전에 단식을 했습니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맞습니다. 복음의 정신 한 부분을 가져다 그것을 유다교 정신에 맞추려 하는 노력은 당치 않은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복음의 정신도 그 핵심을 잃고, 유다이즘도 그것을 견디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물에 담근 일이 없는 새 천이 한 번 물에 들어가면 줄어들어서 낡은 천을 잡아 등겨 찢어지거나 구멍을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어리석은 사람임이 증명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꾸짖으시는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바리사이적 유다이즘입니다. 그들이 율법에 덧붙여 놓은 번잡스럽고 다루기 어려운 규정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의 때는 새로운 탄생을 포함하고 있으며, 인간의 회개와 완전한 마음의 변화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단지 옛것에 새로운 규정이나 의식을 덧붙이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를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마스커를 향하다가 예수님을 만난 바오로 사도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10여년의 시간을 준비하게 됩니다. 회심 이후에 즉시 복음을 전했다면, 그래서 비록 성공을 거두었을지라도 낡은 옷에 새 천조각을 대는 행위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가죽부대는 나귀나 낙타 등을 이용하여 실어 날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찰로 인하여 표피가 엷어지고 약해졌습니다. 더구나 새 포도주는 발효하여 그 부대를 터뜨리고 포도주가 쓸모없게 됩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담았던 것입니다.


     율법의 노예가 되고 그릇된 전통을 고집하고 있는 바리사이파 사람은 헌 가죽부대입니다. 그 헌 부대에는 새 술인 복음을 넣을 수가 없습니다. 새 술은 편견을 버린 마음, 그것을 이해하고 맛볼 수 있는 순진한 새 마음이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복음은 유다이즘에 없는 이 새로운 정신을 인생에 가져다주었던 것입니다.


     본당 신자들과 성지순례를 가서 그룹 작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60명의 형제 자매들이 빙 둘러 앉아서 “말 전하기”를 하였습니다. 제가 “신앙인들은 남의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60명을 돌아서 저에게 온 말은 “나를 위해서 본당 신부님에게 잘 해야 한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모두들 웃었습니다. 신앙인들이 참 말이 많습니다. 그래서 모두 남을 말을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했는데 잘 지켜지지가 않았습니다.

    신앙인이지만 신앙이 없기에 남의 말을 하고, 말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로 인해서 상처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그저 한치 앞만을 내다보면서 남을 판단하는 나. 나를 좀더 성숙시키고, 나를 좀더 말 못하게 하고, 나를 좀더 못 보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신앙은 기쁨을 담는 자루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례를 통해서 자루를 만들었지만 기도하지 않아서 그만 터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포도주를 담아도 흘러내립니다. 발효되어서 맛을 내지 못합니다. 튼튼한 자루에 담긴 포도주(신앙)는 시간이 지날수록 숙성되어 맛을 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신앙인과 함께 하려고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의로운 삶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단식하는 날은 기도하는 날이었고, 또 자선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선과 기도와 단식의 의미를 완성하십니다. 보이는 단식, 보여주려는 기도, 내세우려는 자선은 아무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받을 상 다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식할 때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라고 하셨고, 기도할 때는 남들이 보이는 데서 할 것이 아니라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또한 자선을 베풀 때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방법입니다.


    과거의 생각에 집착하여 공소예절을 하려는 사람들.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열매 맺는 신앙생활, 존경받는 신앙생활, 성령 안에서 충만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모두 새로운 부대를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3. 나누 및 묵상

    1.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 것을 고집하고, 내 틀에 상대방을 맞추려 하는 것이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장애물이요 걸림돌일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나는 또 어떤 바리사이가 되어 내 곁에 계신 예수님을 박해하고 있습니까?


    2.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된다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느낀 점을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2. user#0 님의 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

    분주했던 오늘하루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려
    컴 앞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산란해서인지 묵상이 되지 않습니다
    며칠 전 사제서품식과 신부님들의 인사이동발표가 난 후
     떠나시는 신부님과 새로 오실 신부들을 생각하니
    제가 떠나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짜~안하지요
    떠나시는 신부님들께 사랑을 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도 들고 집안의 우환으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한 아쉬움 등...
    이런저런 생각들로 마음이 산란합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마음으로....
    새로 오시는 신부님들께  사랑으로...
    떠나시는 신부님들께 사랑으로...
    당신의 종 사제들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당신의 말씀을 전하고 당신 닮아 사랑이 많은 사제가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는 사제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간절히....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내도다.”

    아멘

     


    ♬ Fratello sole,sorella luna-Claudio Baglioni

  3. user#0 님의 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

    올 한해동안 …
    그동안의 찌들고 묵은 때를 깨끗이 씻어 버리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는 말씀처럼 새 부대에 담아 기쁘고 즐겁게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아니!
    꼭 그리 되리라 믿고 싶습니다
    사랑이신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으로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실천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사랑이신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경인년 새해에는 웃음과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해주소서

    신앙생활도 가정생활도 가족 모두 건강도 모두 다…
    기쁘게 생활하게 하소서
    아멘


    ♬ 아름다운 사랑을 나눠요

  4. user#0 님의 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오늘은 이 말씀이 마음에 많이 와 닿아 잠시 묵상해 보았습니다.

    희망의 신묘년이 밝아 왔는데도 아직 작년에 하던 생활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삶이란 어제의 연속이고 그냥 살아오던 습성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예수님께서 주신 새로운 해에는 예전에 갖고 있던 나쁜 습관들은 과감히 버리고

    새롭게 좋은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지만, 여전히 과거를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도 “아무도 헌 가죽부대에 새 술을 담지 않는다. 그러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하셨는데

    저는 아무래도 헌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고 있는가 봅니다.

    제가 갖고 있는 나쁜 습관 중 꼭 버리고 싶은게 몇 가지 있습니다.

    게으름과 과거지향주의, 그리고 정리정돈의 부족함, 그리고 무계획적인 소비생활 등등..

    하나 둘 엉크러진 솜타레처럼 줄줄이 앞다투어 나오는 나쁜 습관들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대책이 안섭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손 놓고 있을수 만은 없다 싶어 그 대책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그 병의 원인을 알아야 치료법도 알 수 있다 하였듯이, 이제부터는 하나 둘 버릇을

    고쳐보도록 해야겠습니다.

    우선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면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해야 할것 같습니다.

    아니 이미 시작한 신약성경 필사를 올 한 해동안 꼭 마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시작하려고 할때는 감히 엄두가 나질 않았었지만, 이제는 제법 좋은 습관으로

    자리매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기도 하지만, 짜투리 시간이 생기면 제일먼저 성경쓰기 노트를 찾아

    단 몇 줄씩이라도 필사하고 나면 여간 기쁜게 아니더라구요,

    그전 같았으면 엉뚱한 상상을 한다거나 바보상자를 쳐다보고 있었을 시간에 금쪽같은

    성경을 필사 했다는 자부심이 어깨가 절로 으쓱해 진답니다.

    이렇게 공포를 해 놓아야지 자칫 게을러지고 쓰기 싫어지려는 유혹을 물리치고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을것 같아서 저의 작은 다짐과 같은 계획을 주절주절 적고 있습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저 루실라가 새로 시작한 신약성경필사를 기쁘고 즐겁게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고 또한 인내와 끈기를 주소서. 아멘.

    ♬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5. user#0 님의 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하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말씀을 올 한해 모토로 삼아 실천을 하려 노력합니다
    새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마음이 변치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복음묵상도 열심히 신앙생활도 열심히 ^*^
    언제 또 변할지 모르지만 저의 특기인 “변덕과 이기심 게으름”등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이 고쳐지기를 소망합니다
    당신의 사랑을 믿으며 당신께서 고쳐주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가이루어지리라 굳게 믿습니다
    아멘

    ” 새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묵상하며

  6. user#0 님의 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
    임진년 새해가 시작됐나 했더니 벌써 15일이 지났습니다
    새해에는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기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우울한 일이 더 많은 것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다행히 복음묵상을 하면서 당신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게되니
    우울했던 모든 일들이 기쁨으로 오게 되리라는 믿음으로^*^
    복음묵상이라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말씀에 저의 생각부터 그동안의 안일한 생각 고정관념 등등….
    바뀌어야한다는 생각이 드니 희망이 생깁니다
    우울햇던 마음부터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하고
    자신이 아니면 안된다는 아집과 고집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신앙인의 덕목을 갖추고….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변화되어야한다고…..
    복음을 묵상하면서 많은 생각들로 가치관에 혼란이 오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바꾸어야 한다고 굳게 다짐합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실천을 하게 된다고^*^
    “예수 내 기쁨“
    성가를 음미하며 당신을 생각하면 기쁨으로 바뀐다는 생각으로
    즐겁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아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묵상하며


    ♬ 예수 내 작은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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