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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밀밭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배가 출출하던 제자들 몇몇이 밀 이삭을 뜯어 비벼 먹었습니다.
예전에 우리 역시 그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그 행동을 추수 행위로 간주합니다.
추수는 안식일에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밀 이삭 몇을 뜯어 먹은 것이 과연 추수 행위에 해당될까요?
법조문을 따지는 사람에게는 해당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억지 주장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을 꾸짖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하느님이 아니시면 이러한 말씀을 하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부분에서 잣대가 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율법 학자들은 안식일 법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희생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안식일보다 사람이 더 귀하다고 하십니다.
오늘날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백번 옳지만,
당시 지도자들에게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위험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신앙은 도약입니다. 건너뛰는 행동입니다.
때로는 과감한 생략이고, 때로는 과감한 투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범을 보이신 겁니다. 장애물이 없는 길은 없습니다.
고통이 없는 인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통과 장애물이라 느껴진다면
뛰어넘을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청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 이 믿음 더욱 굳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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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단어가 있어 올릴수가 없다고 하네요,, 가끔 이 창이 뜨면 독서와 화답송을 안 올렸는데 오늘은 복음에서 그 창이 뜨네요.. 그체적으로 어느 단어가 그런지도 모르고요…. jpg로 만든것을 올려놓고 갑니다~
ㅎㅎ 모르겠네요…잘 지내시죠? 한번 찾아 보겠습니당…ㅎㅎ 수고하세용..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1. 말씀읽기: 마르2,23-28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다 (마태 12,1-8 ; 루카 6,1-5)
2. 말씀연구
어떤 공소가 있습니다. 그보다 더 먼 공소는 미사에 잘 나오는데, 그 공소는 미사에 잘 나오지 않습니다. 공소예절을 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소예절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공소가 어떤 공소인데….”하면서 공소예절을 합니다. 그리고 공소예절하고 일터로 나갑니다. 과연 이분들이 주일을 지키는 사람들일까요?
공소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데, 한 할머니가 “우리 그냥 공소예절 하게 해 주세요. 너무 멀어요!”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할머니! 죽으시려면 혼자나 죽으세요. ^*^ ”
주일 미사에 나오지 않았던 사람이 영성체를 합니다. “주일 빠지면 성사를 보셔야지요!” 하지만 그는 말합니다. “공소예절 했어요!”참 어렵습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으니…,
또 본당에서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주일에 어디를 가지 않습니다. 내가 책임을 맡고 있는 한, 자기 역할을 다 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분들도 가야 할 곳이 참 많은 것입니다. 해야 할 일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일만큼은 주님을 위해서 봉사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한주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하루 쉬는 주일. 그 날을 어떻게 하면 쉬면서, 재충전 하면서, 거룩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주일은 나를 위한 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위해서 준비해 주신 날. 나는 예수님께서 준비해 주신 주일을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23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 때 함께 가던 제자들이 밀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자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안식일에 걸어도 괜찮은 거리는 1392미터)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밀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밀 이삭을 그 자리에서 잘라 먹는 것은 율법이 분명하게 허용하는 일이었으며 예부터 관습으로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이웃집 밭에 서 있는 곡식 이삭을 손으로 잘라 먹는 것은 괜찮지만 이웃집 밭에서 있는 곡식 이삭에 낫을 대면 안 된다”(신명기 23,25). 문제는 평상시 같으면 전혀 문제가 없지만 그 날이 바로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24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보십시오, 왜 저 사람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막지 않고 내버려 두셨기 때문에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엄격한 그들의 해석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극히 사소한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일정한 거리밖에 걸을 수가 없었고 생활에 필요한 손일만 할 수 있었습니다. 곡식을 따서 비비는 것조차도 금지된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에 해서 안 될 일로서 39 조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금지 조항은 파종, 경작, 수확, 밀단을 묶는 것, 밀을 타작하는 것, 한 마리의 짐승이라도 잡아 서는 안 될 것, 또 그것을 죽이는 것, 그 껍질을 벗기는 일, 소금에 저리는 일, 그 가죽을 보존하기 위해 약을 발라 두는 것 등등이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 안 되는 밀 이삭을 자른 것을 수확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면서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25 예수께서는 이렇게 반문하셨다. “너희는 다윗의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이야기와 성전에서 일하는 사제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제자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이야기 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26 에비아달 대사제 때에 다윗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을 먹고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도 주었다. 그 빵은 사제들밖에는 아무도 먹을 수 없는 빵이 아니었더냐?”
사울로부터 도망을 치고 있을 때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놉에 있는 성막 속에 보관되어 있는 거룩한 빵을 자기와 자기 동료들에게 주게 하였습니다(1사무엘 21,1-7). 이 빵은 사제들만 먹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전례적인 규정이 생명을 유지시켜야 하는 의무만큼 중요하다고는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을 무시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에게 있어서 안식일에 대한 규정은 제단에 안치되어 있는 빵에 대한 규정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경우에는 그러한 규정을 어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특별한 상황에 처해 계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니 더욱 당연한 것입니다.
27 예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 시대의 율법학자들은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에 한해서 안식일 법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안식일의 규정이 폐지되었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지만, 안식일 규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십니다. 안식일 규정보다 더 중요한 의무들이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의무들을 더 촉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으니 성전이나 성전 예배보다는 예수님께 더 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붙들고서 사랑을 고백하지 말고, 눈앞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비싼 카메라를 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카메라가 걱정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외출을 해도, 잠을 자도, 밥을 먹을 때도…, 카메라가 그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카메라를 위해서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 카메라를 빌려 달라면 절대로 빌려 주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찍어 주지도 않고, 그저 가지고 있는 것 그 자체로만 즐겼습니다. 어느 날 그는 굳은 결심을 하고 그것을 남을 주어 버립니다….그날 이후로 그는 평온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정말 중요한 것처럼 생각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조금만 나 자신을 소홀히 하면 그렇게 바뀌게 됩니다.
28 따라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메시아의 혼인 잔치가 있을 때는 단식할 아무런 이유가 없듯이 안식일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안식일 율법에 대한 해석과 안식일을 지내는 방법은 모두 주님이신 예수님께 예속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에 의존하여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대담하게 안식일을 지냈으며 결국은 주간의 첫째 날로(주일) 안식일을 대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에게 물려주신 예수님의 권한에 근거한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주일에 해야 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2. 주일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
며칠 전부터 머리가 아프고 한축이 나더니 어제저녁부터...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더니 비몽사몽...
정신이 없었습니다 약에 취해서
머릿 속에는 복음묵상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눈이 떠지지 않았습니다
목도 아프고 머리는 띵하고 정신이 없고...
마음은 산란하고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말에 가슴이 뜨끔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입으로는 당신이 주인이시라고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참 입에 발른 말을 많이 했습니다
신앙인은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하는데
언제나 입만 풍년이었습니다
행동은 언제나 뒷전이고 남들의 행동을 비판하고
자신은 언제나 도덕군자처럼 ...
복음을 묵상하면서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자신이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바로 제가 그랬습니다 주님!
자신의 행동은 언제나 올바른 것처럼 설사 자신이 잘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핑계를 대고 그랬습니다 주님!
율법학자들처럼 복음묵상 또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힘들면 하루쯤 쉴 수도 있는데 대충 대충 수박 겉 핣기로
성의 없는 복음묵상을 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인지...
복음을 묵상하면서 오늘만큼 묵상하는 자세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대충이나마 저의 마음을 당신께
말씀을 드리는 것도 저에게는 위로가 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복음묵상이 누가 얼마나 잘하는지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가끔 씩 묵상하는 형제자매들이 저 보다 묵상을
잘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없어질 때가 있었지요
하지만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곰곰 자신을 성찰해보니
사람들마다 삶이 다르고 신앙생활 또한 모두 다르니
묵상 또한 같을 수가 없는데 의기소침해서 자신의 존재마저
무능하게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은 당신께 자신의 모습을 진실되게 보여드리는 것을
깨달았다면 좋을텐데...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안식일의 주인이 당신임을 깨달아 제 멋대로
제 마음대로 당신을 판단하며 신앙생활을 했던
자신의 경솔했던 행동을 반성하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는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찾게 하여 주소서.
아멘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1. 말씀읽기: 마르2,23-28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다 (마태 12,1-8 ; 루카 6,1-5)
2. 말씀연구
어떤 공소가 있습니다. 그보다 더 먼 공소는 미사에 잘 나오는데, 그 공소는 미사에 잘 나오지 않습니다. 공소예절을 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소예절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공소가 어떤 공소인데….”하면서 공소예절을 합니다. 그리고 공소예절하고 일터로 나갑니다. 과연 이분들이 주일을 지키는 사람들일까요?
공소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데, 한 할머니가 “우리 그냥 공소예절 하게 해 주세요. 너무 멀어요!”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할머니! 죽으시려면 혼자나 죽으세요. ^*^ ”
주일 미사에 나오지 않았던 사람이 영성체를 합니다. “주일 빠지면 성사를 보셔야지요!” 하지만 그는 말합니다. “공소예절 했어요!”참 어렵습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으니…,
또 본당에서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주일에 어디를 가지 않습니다. 내가 책임을 맡고 있는 한, 자기 역할을 다 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분들도 가야 할 곳이 참 많은 것입니다. 해야 할 일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일만큼은 주님을 위해서 봉사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한주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하루 쉬는 주일. 그 날을 어떻게 하면 쉬면서, 재충전 하면서, 거룩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주일은 나를 위한 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위해서 준비해 주신 날. 나는 예수님께서 준비해 주신 주일을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23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 때 함께 가던 제자들이 밀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자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안식일에 걸어도 괜찮은 거리는 1392미터)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밀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밀 이삭을 그 자리에서 잘라 먹는 것은 율법이 분명하게 허용하는 일이었으며 예부터 관습으로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이웃집 밭에 서 있는 곡식 이삭을 손으로 잘라 먹는 것은 괜찮지만 이웃집 밭에서 있는 곡식 이삭에 낫을 대면 안 된다”(신명기 23,25). 문제는 평상시 같으면 전혀 문제가 없지만 그 날이 바로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24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보십시오, 왜 저 사람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막지 않고 내버려 두셨기 때문에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엄격한 그들의 해석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극히 사소한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일정한 거리밖에 걸을 수가 없었고 생활에 필요한 손일만 할 수 있었습니다. 곡식을 따서 비비는 것조차도 금지된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에 해서 안 될 일로서 39 조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금지 조항은 파종, 경작, 수확, 밀단을 묶는 것, 밀을 타작하는 것, 한 마리의 짐승이라도 잡아 서는 안 될 것, 또 그것을 죽이는 것, 그 껍질을 벗기는 일, 소금에 저리는 일, 그 가죽을 보존하기 위해 약을 발라 두는 것 등등이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 안 되는 밀 이삭을 자른 것을 수확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면서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25 예수께서는 이렇게 반문하셨다. “너희는 다윗의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이야기와 성전에서 일하는 사제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제자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이야기 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26 에비아달 대사제 때에 다윗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을 먹고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도 주었다. 그 빵은 사제들밖에는 아무도 먹을 수 없는 빵이 아니었더냐?”
사울로부터 도망을 치고 있을 때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놉에 있는 성막 속에 보관되어 있는 거룩한 빵을 자기와 자기 동료들에게 주게 하였습니다(1사무엘 21,1-7). 이 빵은 사제들만 먹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전례적인 규정이 생명을 유지시켜야 하는 의무만큼 중요하다고는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을 무시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에게 있어서 안식일에 대한 규정은 제단에 안치되어 있는 빵에 대한 규정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경우에는 그러한 규정을 어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특별한 상황에 처해 계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니 더욱 당연한 것입니다.
27 예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 시대의 율법학자들은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에 한해서 안식일 법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안식일의 규정이 폐지되었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지만, 안식일 규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십니다. 안식일 규정보다 더 중요한 의무들이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의무들을 더 촉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으니 성전이나 성전 예배보다는 예수님께 더 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붙들고서 사랑을 고백하지 말고, 눈앞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비싼 카메라를 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카메라가 걱정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외출을 해도, 잠을 자도, 밥을 먹을 때도…, 카메라가 그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카메라를 위해서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 카메라를 빌려 달라면 절대로 빌려 주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찍어 주지도 않고, 그저 가지고 있는 것 그 자체로만 즐겼습니다. 어느 날 그는 굳은 결심을 하고 그것을 남을 주어 버립니다….그날 이후로 그는 평온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정말 중요한 것처럼 생각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조금만 나 자신을 소홀히 하면 그렇게 바뀌게 됩니다.
28 따라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메시아의 혼인 잔치가 있을 때는 단식할 아무런 이유가 없듯이 안식일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안식일 율법에 대한 해석과 안식일을 지내는 방법은 모두 주님이신 예수님께 예속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에 의존하여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대담하게 안식일을 지냈으며 결국은 주간의 첫째 날로(주일) 안식일을 대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에게 물려주신 예수님의 권한에 근거한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주일에 해야 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② 주일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며칠동안...
마음이 산란하여 숙제(복음묵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그날 복음말씀을 읽고 또 읽었지만...
묵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무겁고 머릿 속은 복잡하고
그러면서도 집중이 되지는 않아 묵상하는 것을 포기했지요
오늘도 하루종일 복음말씀을 읽고 또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았지요 제가 할 일은 해야한다고
그리고 반성이 되었습니다
하루 이틀 마음이 산란한 것도 아닌데 그것도 살아가면서
가정 일로 마음이 편치 않았을 때가 한 두 번도 아닌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신앙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복음묵상만큼이라도 신앙인이라면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한다고
새해 다짐했던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정말 실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정말 정말 꼭 지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유는 요? 주님!
미워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인지 잘 알기 때문이지요
사람을 미워 한다는 것 그것도 가족(시댁식구)을 미워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아마 지옥이 있다면 이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게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겠지요? 주님!
사람을 미워 한다는 것 그것도 가족을 미워 한다는 것이
저에게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저에게 사랑이 부족하고 신앙이 부족하기에 미워하고 괴로워하나 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안식일의 주인이 당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주인이신 당신의 말씀을 알아 듣고 깨달으며
당신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그리하여 안식일의 주인이신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 헬레나로 거듭나게 하소서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 Blott en dag(Only Day)`-날마다 숨쉬는 그 순간마다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고 말씀을 읽고 또 읽어봤지만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분심만 들고….
온갖 잡 생각들로 복음묵상을 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 자신이 미웠지만 머릿 속만 복잡할 뿐 묵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몆 시간째…..
말씀을 읽고 또 읽고 그런데도 묵상은 되지 않고 분심만 ㅠㅠㅠ
머릿 속이 복잡하여 인터넷에 연예인들의 근항을 보고 읽고…
복음묵상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데도 졸면서까지….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복음묵상이 힘들어 머리가 아픈데도 포기하지 못하고 잠도 안자고
자꾸만 컴퓨터에 손이 갑니다
이 핑계 저 핑계라도 대면서 대충(?)이라도 묵상을 하면 좋을텐데
쥐꼬리만한 양심은 있는가 봅니다
분심이 들어 정리가 되지 않는 저의 모습을 당신께서는 보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에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복음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말씀을 성찰하며
입으로만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떠들어댔던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신앙가였는지를 깨닫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복음묵상을 할때만이라도
부족한 저의 신앙심을 당신께 고백하고 싶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만이라도….
참으로 좋으신 주님!
복음을 묵상할 때의 거짓없는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이신 당신께서 저에게 지혜와 믿음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고 겸손한 신앙인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묵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