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12/16)


    말씀의 초대
    세례자 요한은 감옥에 갇힌 몸이 되었다. 죽음을 예견한 그는 예수님께 질문한다.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알려 주십사 하는 부탁이었다. 예수님께서 답변하신다. “눈먼 이들이 보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요한은 그 말씀에서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깨닫는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도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11 그때에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예물을 정성껏 봉헌하며 비오니, 주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신비를 거행함으로써 저희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힘을 내어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우리 하느님께서 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자선 주일을 맞아 누구에게 자선을 베풀며 살아야 할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늘 가까이 있는 사람은 제쳐 두고 먼 곳의 사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가까이 사는 사람을 소홀히 하면 삶은 언제나 형식으로 흐릅니다. 가족들에게, 매일 만나는 이웃에게 전하는 따듯한 말 한마디와 밝은 미소가 때로는 살아 있는 자선이 됩니다. 삭막한 삶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자선이 될 수 있습니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인자하시니,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어, 다가오는 성탄 축제를 준비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영화에는 예고편이 있습니다. 예고편은 언제나 화려합니다. 본영화를 볼 마음이 생기도록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규모가 큰 경기에는 오픈 게임이 있습니다. 본경기에 앞서 분위기를 띄우는 시합이지요. 때로는 예고편과 오픈 게임이 더 재미있을 수도 있습니다. 보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큰 부담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본경기의 선수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보내 예수님께 묻습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이제야 본경기의 주인공이 오셨는지를 타진하는 질문입니다. 죽 음을 앞둔 그에게 구세주의 출현은 애절한 희망이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칭찬하십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그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고 격찬하십니다. 요한의 기다림에 대한 응답의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의 평생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 많은 기다림의 시간이 사실은 삶의 오픈 게임인 셈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쉽게 착각합니다. 주인공일 때도 있겠으나, 삶의 대부분은 조연으로 끝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역할이 조연임에도 주연으로 착각하고 산다면 어떻게 삶이 만족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요한은 주연이 등장하자 즉시 조연의 위치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질문하였던 것입니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주연이 당신이십니까?’
 
저녁노을(모니카)




♬ Nearer, my God, to Thee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Anne Mur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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