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아가셨다.
기적의 아이를 잉태한 두 사람이 만난 것이다.
두 여인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며 주님을 찬미하였다.
‘마리아의 노래’는 이렇게 해서 전래된 찬미가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민족들의 임금이시며 교회의 모퉁잇돌이신 주님,
흙으로 빚으신 사람을 구원하러 오소서.
◎ 알렐루야.
복음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6-56
그때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주님의 사랑을 믿으며 거룩한 제단에 예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은총으로 깨끗하여진 저희가 주님께 드리는 이 성찬의 제사로
더욱 깨끗하여지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음이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를 받아 모신 저희에게 힘을 주시어,
저희가 믿음을 증언하는 삶으로 구세주를 기쁘게 맞이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 | | | | | | | | | | | | |
“당신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찬미가가 정말 새롭게
와 닿습니다.
성무일도로 아침기도를 바치면서도
사실 오늘처럼 정겹고 가슴깊이까지 내려온 적도
없었습니다.
지금껏은 졸려서 그랬을까요?
제가 이렇습니다. 아버지~~
그래도 예삐 봐 주실 것을 믿기에
하루를 까불면서 쟁쟁거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생활합니다.
마냥~~
유난스럽게 좋아해서 그런가? ㅎㅎ
남들이 그래서 미워하나봐요. 그치요?
죄송~~ 또 ~~
정말로 평범한 한 여인!
아버지의 뜻에 순종함으로 높은 분을 잉태하시고
또다른 지위로 올라서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겸손되이
찬미노래 부르심에 정말로 멋지십니다.
만약 제가 그 입장이라면
교만한 자태로 우쭐대며 사람들앞에서
온갖 거드럼을 다 피웠을텐데~~
조용한 모습이지만
가슴벅차게 밀려든 기쁨을
엘리사벳과 나누려는 모습을 묵상하면서
저를 돌아봅니다.
저렇게 신앙생활한다면~~
그 모습이 바로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모습이실텐데~~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성숙함으로…
의로움으로 살아가는 성실한 저로…
옳지 않은것에 응하지 않고,
부당한 것에 바른 소리할 수 있는 저로….
아버지의 구원을 생각하며
제 모든 것은 아버지의 것이라는 당연함의 저로….
그럴때 아버지께서는
보잘것 없는 저에게,
가난한 저에게,
은총을 주시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음만 가득하진 않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드러냄의 극치를 보이진 않았는지…
모든 중심이 저여야 되진 않았는지…
아버지앞에 다른이가 서는 것은 안된다는
옹졸하고 교만한 생각은 하지 않았는지…
조용히 엘리사벳을 찾는 성모님!
성령으로 잉태하신 거룩하신 분의
어머니가 됨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겸손되이 조용히~
대신 크게 기뻐하며 노래하는
그 모습에 저의 모습이
참으로 작아짐을 느낍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성모님의 노래에서 말합니다.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제가 아버지 아니셨다면
지금의 저가 어찌 있겠습니까!
성찰하면서 저를 돌아볼 줄도 몰랐을 것이고
제 교만과 이기심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비천한 이와 가난한 이 모두에게 내리시는
아버지의 깊은 사랑도 몰랐을 것입니다.
불의한 것들로 가득채워진
제 마음을 모두 비우고
사랑으로 채워질 자리를 마련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성모님처럼 순종하면서
저를 드러내지 않는 겸손의 그늘을 주시어
자리를 내어 줌에 기뻐함을 알게 하소서.
제가 드러나지 않아도 아버지께서는 아시기에
더 행복함을 깨닫게 하소서.
깨어나면서부터 잠들때까지
아버지께서 계심에 기뻐하며
노래할 수 있는 제가 되게 하소서.
아멘.
힘든 길을 가는 나그네에게
제 그늘을 나누어 줄 수 있다면…?
바로 말씀 묵상임을 압니다.
그것이 제가 나누어 줄 수 있는 그늘이자
비타민이 될 수 있음을 압니다.
저 또한 그 그늘에서 쉬어가거든요.
다시 일어날 땐 힘들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그 말씀의 힘으로….
사랑합니다.
주님!
당신 오심을 찬미하나이다.
나의 주님!
거룩하신 분…
제 곁에 당신이 계시오니 아쉬울 것 없나이다.
세월이 갈수록 검은 머리는 백발이 되고 육신은 쇠퇴해져 가지만
영혼은 한 걸음씩 당신 곁으로 가고자 합니다.
분노, 질투. 아픔. 상처. 고통… 제 아무리 크다해도
당신보다 더 클 수 없나이다.
당신이 계셔서 행복하고
당신이 계셔서 희망을 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죄 많은 저…
내치지 않고 품어 주시니 기뻐 눈물이 납니다.
나의 주님!
오늘도 계시고 영원히 계시는 당신…
저도 살아가는 동안 당신 어머니처럼 당신을 찬미하며 살겠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말씀이 가슴을 울립니다
하지만 언제나 복음을 묵상할 때 뿐...
작심삼일은 고사하고 작심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당신의 자비를 잊고 살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셨다는 사실도...
당신께서 저를 사랑해주셨다는 사실도...
당신께서 제가 지은 모든 죄를 사해주신다는 사실도...
모두 다...
당신께서 저에게 베푸신 모든 일들을 잊고 삽니다
그저 마음으로만 당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왜?
당신을 사랑이시니까....
당신을 사랑하니까...
하지만 저의 그런 마음 모두가 복음을 묵상할 때의
일시적인 기분임을 깨닫습니다
저의 욕심이 저의 교만이 저의 이기심이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저 일시적인 기분임을 깨닫습니다
그래두요 주님!
염치없지만 당신께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신 그 마음이
영원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저를 사랑해주신 그마음이 영원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기적인 제가 당신의 사랑을 깨달을수 있도록...
당신께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신 그 마음을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을 주십시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말씀을 깊이 새기며
당신의 사랑을 깨달아 당신의 자녀답게
당신의 자비를 깨 달을수 있도록 지혜를 주십시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음이로다.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요
아멘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묵상하며
“내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늘 성무일도를 바치면서도
오늘 같은 기분을 느끼진 못했습니다.
아마도 형식적으로 입으로만 했었나 봅니다.
‘마리아의 노래’
늘 잔잔한 물결처럼 와 닿았지만
오늘은 살짝 깊이있게 마음에 전율을 줍니다.
참 아름다운 노래임을 새삼 느낍니다.
제가 아버지를 믿음에
이러한 마음으로 찬미를 드렸다면
더 기쁘게 다가왔겠지요?
기쁨이 넘칠 때 제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뭔가 달라도 다르지요.
제가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늘 기쁨을 노래하고
아버지에게 찬미와 감사를 드렸는지
새삼 돌이켜 보는 시간입니다.
하루하루 제게 일어나는 모든 것에 감사드리며
그 모든 것에 대해 아버지께
찬미를 드리며 재재거렸는지요.
ㅎㅎ
저 살기 바쁘다고
모든 것을 당연함으로 돌리고
교만의 길로 걸어오진 않았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계심에 제가 있음을 늘 잊고 살지요.
저혼자 잘 났다고 어깨를 으쓱하며
찬미는 커녕 제공덕으로 돌리며
외길로 걸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매사에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아버지의 그늘에 살고 있음에 늘 아버지를 기억하고
언제 어디서나 제 삶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로 돌려야 했는데
부족한 저는 자신의 이기항아리에 빠져
아버지를 잊고 저를 드러내지 않았는지요.
참 많은 것을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참 부족하지요?
자식의 도리로 받은 사랑을 드리고
늘 돌봐 주심에 감사와 찬미와 사랑을 드림은 당연한데
어떠한 계기가 되어야 이렇게 짧게나마
철이 들면서 잠깐 중심을 잡나 봅니다.
지나고 나면 또다시 부족한 저로 돌아가서
아버지께 투덜거리겠지요.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평화로움의 사랑으로 꼭 끌어안아 주시지요.
때론 밉기도 할텐데~~~
정말 어렵고 힘든 요즈음이라지만
아버지 계시기에 힘이나고
아버지의 돌봄으로 어려움을 모르고
하루하루 바삐 움직일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아버지를 알고서 그래도 감사를 드릴줄 알게 되었지요?
쬠은~~ ㅎㅎㅎ
전엔 이기덩어리인 저였는데~~ 그치요?
이젠 저도 깊은 뿌리내리어
아버지께 사랑을 드리려 다짐해 봅니다.
깊지 않은 샘에서 나와봤자 얼마 안되겠지만
그래도 한 조롱박으로 깨끗한 물을 담아
아버지께 드리려고 노력한답니다.
그 맑은 것을 아버지께 드리려 맘먹는 것이
아마도 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에
저를 바꿀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보면서
성모님처럼 깊은 찬미드리기 위해 두손 모읍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선 성모님께서
찬미의 노래를 부르십니다.
저 같으면 그 엄청난 일에 놀라고 두려워서
어디론가 도망치려 했을텐데
성모님께서는 순명하면서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멋있던지요.
금방이라도 그 노래가 귓전에서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늘 부족하지만 오늘은 더 작아집니다.
하루하루 삶을 살아오면서
모든 것이 아버지께서 주심인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교만에 짖눌려 겸손을 잃어버리고 살아온건 아닌지요.
아마 저였다면
있을 수 없는 그 사실에서 헤어나지 못했을텐데~~
성모님은 축복으로 받아들이며
아버지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멋있음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믿음을 고백하면서
아버지께 제가 무엇을 드렸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다른 큰 무엇을 바라시는게 아님을 알지요.
자식이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기본!
감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니 드리긴 했어도
깊은 가슴에서 나오는 감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저도 성모님처럼 아버지께 기쁨에 넘쳐
사랑을 드리게 하소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저 스스로
삶의 모든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아버지께 찬미를 드리는 저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더 깊고, 더 넓은 사랑에 젖어
아버지를 닮아 가는 딸이 되게 하소서.
아버지의 자비와 사랑을 닮은 저가되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소리로 아버지께 찬미드리게 하소서.
아멘.
오늘 성모님께서 찬가를 부르십니다.
당신을 줌으로써 인간을 구원할수 있다는 것 때문에 행복해서 입니다..
또한 감히 하느님께서 비천한 자신을 선택했다는 자체가 황송해서 기뼈 노래하고 계십니다.
앞으로 수많은 아픔이 가슴을 도려낼 것임을 알고 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으로 승화시키겠다고 고백하십니다.
어떠한 상황이든 감사할것이고 끊임없이 기도로써
그분속에 당신을 녹이는 촛불처럼 살겠다는 약속의 노래를 하고 계십니다..
오늘 성모님의 찬가를 묵상하면서
저를 바라봤습니다.
그분을 매일 만난다고 하면서
매사에 기뻐하지 못하고 의무적이지 않았나…
마땅한 행복을 추구하지 않았나…
그래서 그게 충족되면 그분을 찾고 그렇지 못하면 금새 불만을 품고 삽니다.
성모님의 모습에서는
당신 감정을 하느님께 맞추면서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 가는 노력을 보았습니다.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그분과 함께 계시기에 두려움이 없다고 확신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내 삶에 있어 딜라마에 빠진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언제인가 sos라는 프로에서 아들이 어머니를 구타하는걸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머니는 이런 두려운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제 혈압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멍청한 엄마… 바보같은 엄마…
나같으면 아들이 잘때 손목아지를 잘라버린다는 둥…
사실 엄청 분노했습니다.
그어머니를 이해할수 없어서
나중에 그 어머니마저 미워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것들을 볼때면 속상해 하고 분노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에게 그럽니다.
저런 인간을 왜 안 데려가느냐고…
이 문제는 우리가 만든 문제이기에 우리 스스로 해결할 문제인데…
암튼 풀지 못한 딜레마였습니다.
오늘 아침 기도중에 이 문제에 대해 조금이나마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사랑이구나’ 라는 것을…
불효막심한 자식을 기다리는 그 어머니처럼…
그분 또한 이렇게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속상하게 만들때도 있었습니다.
날 행복에서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이를 용서하고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그런 인간 때문에
그분이 당신깨 오신다는 사실에 기뻐하셨고
지옥을 행복으로 만드려고 노력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 처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게 아니라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 하며, 감사하는 모습으로 사는 것.
바로 이 모습이 성모님의 모습임을 깨달아보면서
저 역시 이렇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겠음을…
대림 4 주간 화요일
(전 요셉신부 복음 묵상)
어렸을 때부터 행복하기를 바랐고 그래서 늦게나마 신학교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행복하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불만만 늘어가고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전에도 말했지만, 며칠 굶어보기로 했습니다. 남들은 일주일씩도 단식하던데 저는 이틀 안 먹으니 뱃가죽이 등에 붙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성체를 영하면서 제가 얼마나 교만해있었나 반성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언가 하는데 마땅한 행복을 주시겠지!’라고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불러준 것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불러주셨는데 뭐 대단한 일이나 해드리는 것처럼 잔뜩 교만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침을 먹는데 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맛있는 식사는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밥알 하나하나를 헤아리며 그 하나하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겸손함으로 살면 신학교 삶도 행복하리라 느꼈습니다.
오늘 성모님은 이렇게 노래하십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을 찬송합니다. 찬미는 감사드린다는 말과 같습니다. 주님께 기뻐 뛰며 감사하는 이유는 바로 성모님께서 자신 스스로를 ‘비천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모님의 겸손이 바로 하느님께 감사하게 하고 기뻐 뛰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불평하고 우울해지는 것은 반대로 교만 때문이겠지요.
저는 겸손이 바로 행복의 비밀임을 깨닫고 이제 낮추고 사랑하기만 하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사정은 달랐습니다. 그런 감격은 며칠 내로 사라졌습니다. 다시 기쁘지 않았고 다시 미사와 기도가 찬미가 아니라 의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겸손해지기 위해서 성인들의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많은 유명한 영성서적을 읽었지만 겸손 하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성의 두 대가인 십자가의 성 요한과 아빌라의 데레사가 쓴 책을 모조리 읽기로 하고 제 기억엔 거의 다 읽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습니다. 영성에 왕도는 없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를 죽여 나가면 영성이 증가한다고 하였습니다. 며칠 굶으니 겸손해진 저의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계속 육체를 죽이다시피 하며 사는 것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아빌라의 데레사도 끊임없이 겸손과 사랑을 강조하지만 결론은 십자가의 성 요한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마지막에 “노력하라.”라고 합니다.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 중에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이 비록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더라도 그 천재성을 노력으로 승화시키지 않았다면 그 재능은 자신 안에 묻혀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최고 행복의 경지야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겠습니까?
아오스딩 성인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습관이 덕이 된다는 것입니다. 반복된 노력이 결국은 몸에 베이고 그것이 덕이 되는 것이지 한 순간의 결심에 의해 겸손이나 사랑, 인내, 친절 등의 덕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1년에 자신의 단점 하나씩만 고쳐도 모두 성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노력하지 않으면 살면서 자신의 단점 하나도 고치기 어렵습니다. 영성은 다름 아닌 ‘노력’에 있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당부합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1데살 5,16-18)
즉, 하느님의 뜻은 기뻐했다가 슬퍼했다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기뻐하는 것이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든’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일시적인 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하며 나의 일부로 만들어가야겠습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살라고 우리에게 내일이라는 시간을 주시는 것입니다.
자전거의 페달을 밟기를 멈추면 균형을 잡기 어려워져 넘어지고 맙니다. 어떠한 성인도 한 순간에 성인이 되신 분들이 없습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온 영혼으로 주님을 찬미하는 그날까지 정진, 또 정진합시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말씀에 행복해진 것같은 생각에 즐겁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함
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루하루의 삶이 이렇게 행복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안 될 것도 없는데….
그 마음이라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생각하는 것과 실생활이 다르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복음을 묵상하면서 비록
잠시동안이었지만 행복함을 느꼇다는 사실에 ….
희망이 보이는 것같아 좋습니다
저도 마음만 먹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
행복해져야 하지요 당신께서 함께 해주시니^*^
당신과 함께라면….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언제까지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사다난했던 올 한해 힘들고 어려웠던 모든 일들을
잊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꼭 꼭 꼭!!!!
그리되리라 믿고 싶습니다
아멘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묵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