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사도는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야고보 사도의 동생이다.
형제는 호수에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두 사도는 성격이 급하고 흥분을 잘했기에
‘천둥의 아들들’이란 별명이 있었다(마르 3,17 참조).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요한 사도는
“예수님께 사랑받던 제자”라고 표현되어 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성모님을 맡기셨다.
훗날 요한 사도는 스승을 증언한 탓으로
파트모스 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고, 에페소에서 선종하였다.
말씀의 초대
마리아 막달레나의 보고를 듣고
베드로와 요한은 스승의 무덤을 찾아간다.
그러고는 빈 무덤을 확인한다.
그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그 놀람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었을 것이다.
무언가 확신이 느껴지는 놀람이었을 것이다.
부활의 은총은 이미 그들에게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찬미하나이다, 주 하느님.
주 하느님을 찬양하나이다.
영광에 빛나는 사도들의 대열이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8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봉헌하는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고,
성 요한 사도에게 계시하신 말씀의 신비를
저희가 이 성찬의 식탁에서 깨닫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도다.
우리는 모두 그분의 충만함을 받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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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님을 과연 어디에서 찾고 있었을까?
성경 말씀을 많이 알아야 하고…
성당일에 열심하고,활동에도 정열적이고…
주님은 분명 이런 사람을 무척 사랑하실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을 하면서
신부님이나 수녀님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 라면
주님을 찾기 보다 사람을 찾고 있었던게 아닐까 …
가만히 지난 세월을 생각해 보니
주님의 부활을 볼줄 모르는 눈뜬 봉사가 아니였나 반성해 본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받는 조그마한 상처도 아픔으로 다가오기도 했던거 같다.
하느님 일을 하기도 전에 먼저 남들의 시선과 말이 의식되고…
상처 받는게 두려워 회피와 무관심으로 살지 않았는지…
모든일에 있어 주님이 우선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에
제 가슴 속에는 주님이 머무룰 수가 없었던게 아닐까 싶다.
누가 알아 주던 말던, 시기와 질투 욕을 한다해도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복음묵상,성당활동, 인간관계, 나눔. 기타등등) 주님을 향한 것이라면
그러한 십자가가 온다해도 기꺼이 짊어질수 있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인간한테 관심받는 순간의 행복보다
주님한테 관심받는 영원한 행복을 선택해 보는게 더 좋지 않을까…
그렇다고
주님이 다른 곳에 계시는게 아니라
내가 사는 세상에 계심을 또한 잊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나는 주님을 찾습니다” 라는 성가가사에서 말했듯이
나는, 나는 주님을 찾습니다.
그 얼굴 그 모습을 형제들 가슴속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우리는 그리스도 피.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화.
그러나 무엇을 했나요?
주님!
저는 무엇을 했는지요…
“보고 믿었다.” 라는 당신 말씀처럼
형제들 얼굴과 모습에서 당신을 볼 줄 알게 하소서.
인간안에서 당신을 찾지 못한다면
어찌 당신을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보고 믿었다.”
헬레나씨!
성탄 때 우리성당에서 미사참례하지 않았어?
요즈음 바빠서 타 본당으로 가는데 왜? 무슨 일있어?
이번 성탄미사는 주교님도 오셔서 좋았는데...
헬레나씨가 보이지 않아 섭섭했어
참 그리고 우리구역 판공문제집 잘해서 상탔어1등했어
상금이 거금 20만원이야 헬레나씨가 수고한 덕분이야
오! 정말? 우리 상금 모았다가 성지순례갑시다^^
나도 고마워^*^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리고 보고 믿었다.”
말씀이 가슴이 뭉쿨해집니다
그리고
너희는 보고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토마 사도께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맞아요 주님!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지요?
그럼 저도 행복한 사람이지요? 주님!
저도 당신을 보지 않고도 믿었으니 행복하지요?
녜!주님!
저 헬레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비록 세속에서 힘들고 고통이 많은 삶을 살고 있지만
당신을 보지 않고도 믿었기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리구요 주님!
저 사실은 이번 성탄 판공문제집을 풀면서 힘들고 어렵고
솔직히 구역반장님의 압력(?)으로 부담이 많이 되었지만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문제를 풀었습니다
구역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하는마음으로...
다행히 결과가 좋게 나와 기뻐하는 구역식구들을 보니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봉사는 거창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처해있는
그 자리에서 성의껏하면 되는 것이라고...
부담갖지 않으며 잔머리 굴리지 않으며 ...
순수하고 계산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
당신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리고 보고 믿었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찬미하나이다, 저희 하느님.
주님이신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영광에 빛나는 사도들의 대열이
주님을 높이 기려 받드나이다.
아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일수 있을까?
사랑하는 그 사람이 정말 부활했음을 믿을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던져 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아버지를 무지 사랑했나 봅니다.
그 새벽에 아버지의 무덤을 찾는 것을 보니까요.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무서워서~~
그치만 사랑이 있기에 그리할 수 있겠지요.
예전에 저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날 깜깜한 새벽에
저희 친정아버지가 없어지셨답니다.
겨울이었거든요.
가족 모두가 찾아 나섰지만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던중 이웃 할머니가 우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할아버지 산소에서 친정아버지가 울고 있더래요.
그 소리를 듣고 모두 뛰어갔는데
울다 지쳐서 목소리도 안나오더군요.
눈도 퉁퉁 붓고~~~ 온 몸이 얼어 굳어있었습니다.
오빠와 저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울었답니다.
살아계실 때 아버지에게 정말 못한 할아버지였는데~~
소문난 부자였지만 막내를 제외한 다른 아들들에게 다 주시고
자리에 누워선 갈곳이 없어 저희집에서 돌아가셨지요.
그러면서도 아들과 며느리에게 못할 일을 하면서
온갖 욕과 성질을 다 부리고 했답니다.
그런데도 대소변을 다 받아내면서 병수발을 10년이나 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분다요.
그런 아버지의 죽음이 애절했나 봅니다.
목이 쉬라 울정도로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토하며
한참을 할아버지 무덤앞에서 하소연을 하시다가 실신하여
동네 어른들이 아버지를 집에다 모셨습니다.
아마도 미움을 받고 서러움을 받았어도 사랑했나 봅니다.
그러한 아버지를~~~
저같으면 그리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새벽에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지도 않았겠지요.
마리아 막달레나의 모습을 그리다가
친정 아버지의 그 일이 떠 오르는 밤입니다.
그러한 친정 아버지마저 다 안아주실 아버지시기에
전 하루하루 아버지께 수다를 떨때면 너무나 행복하답니다.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 처럼 가슴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사랑으로
아버지를 더 깊이 사랑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 시간입니다.
모든 자식이 다 이쁘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어오는 자식이 있잖아요. ㅎㅎ
아닐수도 있지요.
사랑하는 자식에게 아버지의 부활을 보여주시고,
또 사랑하기에 온 마음으로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믿지요.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열정으로 기쁘게 전할 수 있었겠지요.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확신으로~~
만약 두려움이 있다면
아마도 무덤이 두려운게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약했기에 오는 두려움이 아닌가 싶네요.
그치요?
아버지!
전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를 돌아봅니다.
진정 제가 아버지께 제 온 마음을 드리고 있는지를~~
그리고 사랑의 열정으로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지를 돌이켜 봅니다.
그 새벽에 아버지를 찾는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불타올랐음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표징이 아니라
사랑함에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아버지의 목소리와 향취를 느낄수 있는
저가 되어야 겠다고 마음속 깊이 다짐을 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가
그 새벽에 아버지의 무덤을 찾습니다.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자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달려가
말하지요. “누가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라고~~
그 말에서 깊은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믿기지 않아 그 새벽에 찾아가는 모습!
누가 주님을 꺼내갔다고 하는 그 모습을 그리는데
제 가슴도 찡해 왔습니다.
그 모습에 비하면 전 얼만큼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는지요.
어설픈 사랑이기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주위만 멤돌고 있는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제자들이 가서 아버지께서 부활하심을 믿는 그 모습에서도
저의 부족한 믿음이 보여짐에 고개를 숙입니다.
한켠에 개켜진 아마포를 보고 믿는 제자들!
저라면 어림도 없지요.
사랑이 아니면 그리할수 없음을 압니다.
사랑하기에 보여주시고, 사랑하기에 볼 수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제겐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수치가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
부족한 저가 아버지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올라
두려움이 아닌 기쁨으로 아버지께 다가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제 삶으로 행복의 기쁨을 노래하게 하소서.
누가 뭐래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제 삶의 원동력이 되게 하시어
언제 어디서든 아버지를 부르며
가장 친한 딸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사랑의 믿음으로 아버지의 모습을 닮게 하소서.
또한 무덤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어
저를 돌아보는 지혜를 주소서.
아멘.
“그리고 보고 믿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
몸과 마음까지 황폐해가는 것같은 생각에 우울한 마음을 접으며
복음묵상을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예전보다 거리나 메스컴에서조차 크리스마스케롤송이
들리지 않아 아쉬운마음이지요
올 한해….
정말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몸과 마음
모두 다….
이제…
내년을 기대하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복음묵상도 열심히 하면서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리고 보고 믿었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당신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당신의 사랑을 느끼며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
참고 견디며 신앙인답게 당신의 자녀답게 꼴값을 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아겠다고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짐해봅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그리고 보고 믿었다.”
묵상하며
“그리고 보고 믿었다”
주님!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리고 보고 믿었다”
말씀에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믿음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영세한지가 언제인데….
그동안 신앙생활을 어떻게 했길래….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있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런 저런 성찰을 해보니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영세하기 전의 순수했던 마음으로 돌아가서….
교리공부도 다시하고 신앙생활도 예비자처럼 ….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것같아 쬐끔은 안심이 됩니다
세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저에게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합니다
이제….
새해부터….
아니!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벌써 반은 실천을 한 것이지요? 주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리고 보고 믿었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굳게 다짐합니다
찬미하나이다, 저희 하느님.
주님이신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영광에 빛나는 사도들의 대열이
주님을 높이 기려 받드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