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주님 공현 전 토요일(1/5)


    말씀의 초대
    나타나엘은 위대한 스승을 찾고 있었다. 예수님의 소문은 들었지만 나자렛 출신이라는 말에 마음을 닫는다. 그러나 그분을 만나는 순간 돌변한다. 마음과 영혼을 꿰뚫는 주님의 힘을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나타나엘은 신앙 고백을 하고 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우리에게 거룩한 날이 밝았으니, 모든 백성들아, 와서 주님께 경배하여라. 오늘 큰 빛이 세상에 내리셨다. ◎ 알렐루야.
    복음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3-5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기로 작정하셨다. 그때에 필립보를 만나시자 그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필립보는 안드레아와 베드로의 고향인 벳사이다 출신이었다. 이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 하느님, 참된 열심과 평화를 주시니, 저희가 예물을 바쳐 지극히 높으신 주님을 합당히 공경하고, 이 신비로운 제사에 참여함으로써 주님과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도다.
    영성체 후 기도
    주 하느님, 주님의 백성을 도와주시며 다스리시니, 오늘도 내일도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덧없는 현세의 사물로도 위안을 받고, 주님을 더욱 신뢰하며 영원한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나타나엘은 예수님께 승복합니다. 자신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걸 보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셨다는 말에 그렇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그의 지난날을 이야기하셨을 것입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는 표현은 나타나엘의 ‘과거를 이야기하셨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말합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시골에서 무슨 걸출한 인물이 나오겠느냐는 말입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문화 시설이 전무했던 나자렛에서 뛰어난 인물이 나올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로마 문화가 판을 치던 시대에 예루살렘 말고는 그 어디에서도 훌륭한 인물이 나올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어쩌면 나타나엘은 위대한 스승을 찾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마음을 읽으셨고, 그의 소년 시절과 앞으로의 꿈을 이야기하셨을 것입니다. 그것이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는 표현입니다. 그러자 나타나엘은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그가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언어였습니다.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꿈을 이루어 주실 분으로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꿈을 이루어 주실 분이십니다. 그분의 제자로서 제대로 살아가면 우리가 바라는 많은 것이 현실이 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다 와서 주 영광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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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도 나타니엘처럼……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고백할수 있는 믿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타니엘처럼….
    당신을 굳게 믿으며….
    나타니엘처럼….
    당신께 저의 마음을 고백하고….
    나타니엘처럼….
    당신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주님!
    저는 언제쯤이면 당신을 진심으로 믿을 수 있을까요?
    입으로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하루에도 수 십번씩 당신을 의심히고….
    당신을 부정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잠시 뿐입니다
    제 정신이 아닐 때입니다
    당신을 원망하고 미워 할때….
    저의 마음이 지옥이라는 것을 …..

    평소에는….

    당신을 굳게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가 곤경에 처할 때나 마음이 산란할 때….
    제가 믿는 분은 오직 당신 뿐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이렇게 변덕이 죽끓듯하는 저 같은 사람은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지요?
    상황에 따라 변하는 저 같은 사람은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지요?
    아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주님!
    저의 마음을 저도 …..
    하루에도 수 십번씩 변하는 변덕장이 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나타니엘처럼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당신이 누구신지……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어느누구에게도 자신있게 증언할수 있는 신앙인이
    되엇으면 좋겟습니다
    아니!
    그런 바램으로 하루하루를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당신을 증언할수 있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기를 기도해봅니다
    사랑이신 당신께서 저의 꿈을 이루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에게 거룩한 날이 밝았으니, 모든 백성들아,
    와서 주님께 경배하여라. 오늘 큰 빛이 세상에 내리셨다

    아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묵상하며


    ♬ 다 와서 주 영광을 보며

  2. user#0 님의 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로 가시는 도중에

    또 다른 제자들이 될 사람,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만나십니다.


    먼저 필립보를 만나시자,

    “나를 따라라” 라고 말씀하시어 그도 제자가 되었고

    필립보는 바르톨로메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라고 말하자 바르톨로메오는
    석연치 않은 듯이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수 있겠소?”

     라고 묻습니다.

    그리 묻는 모습이 저의 모습같기도 했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날수 있나?’
    옆에서 어떤 말을 할 때,
    제가 그런 모습으로 대하며 제 교만의 머리로
    한사람을 아래로 내리진 않았는지~
    언제나 시큰둥한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진 않았는지~
    열심히 봉사하는 이에게,
    ‘니가 얼마나 잘하겠어’
    ‘야~다른 본당과는 비교도 안되’
    ‘니가 알아야 얼마나 알겠어’ 라고 말하는
    또 다른 제가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참으로 작지요?

    하지만 저의 모습과는 달리 바르톨로메오에게는
    또 다른 멋진 모습이 있었습니다.
    천리를 보시는 아버지께서
    이미 그를 알고 계셨음을 나타나엘이 알고서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제가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는 부족함에 비한다면
    바르톨로메오는 참으로 멋진 사람입니다.

    알게 되자 당당히 고백하는 모습이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전 알아도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를 비웃으며,
    남이 볼 땐 웃는 척, 신앙인인 척하면서
    마음속에서는 많은 병균을 키우진 않았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알아 모심에 지혜로움이 더 깊어짐을 모른채
    제 교만에 빠져서
    다른 이를 칭찬하며 그를 멋진이로
    고백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바르톨로메오가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말이 참 마음속 깊이 내려왔습니다.
    처음엔 무지로 아버지를 몰라보았지만
    알게 되자 무릎을 꿇습니다.
    메시아로 인정하면서~
    부족한 저도 그처럼 멋진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소서.
    남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제가 되게 하시어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은총주소서.
    정말 참된 신앙인으로써
    깊은 확신으로 저의 모든 욕심을 버리고,
    저의 교만을 버리고,
    아버지를 알아모심에
    몸으로 움직여
    아버지의 사랑을 전할수 있게 하소서.

    아멘.


    동네에 행사가 있을때마다

    빠지지 않는 우리 아버지!

    농사철이 되면 어르신들만 계시거나

    혼자 기거하시는 분들을 위해

    그 많은 농사일을 하시면서도

    다 해주십니다. 그리고

    대보름땐 풍물을 하시며 동네 기금마련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에 들어오셔서는

    가장 작게 치십니다.

    가장 힘없이 치시며, 대충하십니다.

    어린나이에도 그것이 싫어서 물어 보았습니다.
    “아버진 우리 집에서는 왜 그렇게 하세요?”
    라고 했더니
    “남들 집에서는 목이 쉬라, 팔이 부러져라 쳐 주어도
    자기네 집에선 대충했다고 한단다.
    그러니 날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겠냐.
    내집이니까 여기서라도 쉬게 해야지.”
    라고 하셨는데~
    그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인정도 못받으면서 뭐하러 하시나~’
    라는 생각만을 했는데~
    “남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내 몫이요,
    남이 나를 칭찬하지 않는 것도 내 몫이다.
    다만 내가 안하면 사람이 없잖냐.” 라고 하셨답니다.
    “둘레 너도 성당 다니면서 안다니는 사람하고
    똑같이 살면 시간낭비다.” 라고
    하신 말이 이 시간에 생각이 납니다.
    오늘에서야 알 것 같습니다.









  3. user#0 님의 말:

    부모는 자식의 어린시절을 당연히 잘 알지 않나싶다.
    갓난아기땐 궁둥이가 물러었는지…
    알레르기가 있었는지…
    천식을 앓았는지…
    뭘 먹으면 좋고 나빴는지…
    허지만 자식인 나는 부모님을 잘 모르고 살아간다.

    그저 알고 있는건
    나를 위해 당연히 들어줘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며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식과 부모는 서로에게 조건없이 주고 받는 당연한 존재라 하는데…
    나는 과연 부모님에게 당연한 도리를 얼마나 하고 살았나…반성해 본다.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생각해 봤다.
    주님 역시 인간을 만드신 아버지시기에 인간의 마음을 잘 알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그래서 주님은
    나타나엘이 당신을 얼마나 그리워하며 찾아 헤매고 있었는지 잘 알고 계셨지 않았을까…

    자식으로써 부모를 향한 당연한 도리…
    나타나엘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의로운 효자는 아버지를 보는 즉시 알아본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고…

    나도 이래야 하는데
    세상에 살면서 주님을 얼마나 절실하게 그리워 하며 살았나…
    그분께 매사에 당연함을 바라면서
    나는 당연히 해야 할 도리를 하지 않고 살았다.
    그러니 받았어도 만족이 없기에 “와서 보시오” 해도 그분을 알아 보지 못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만족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때만이 느낀다 한다.
    적게 줬던 많게 줬던…
    이렇게 그분은 주시기만 하신 분인데….

    주님!
    자식중에 싸가지 없는 자식이 저 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이미 저를 알아 봤고 지금도 부르시고 계시는데…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제 삶안에서
    교회의 활동안에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세상속에서
    그런데 매번 “주님.당신은 어디에 계신지요?” 묻고 살았네요.

    주님!
    다시는 이렇게 묻지 않으리라 다짐하오며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당신을 굳게 믿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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