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사순 제4주간 수요일(3/5)


    말씀의 초대
    주님만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 역시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없애려고 한다.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도무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복음).
    복음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토록 완벽하게 순명하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아버지를 따르는 것이 진리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역사 안에는 실패한 영적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공통된 잘못은 자신의 목소리를 진리로 착각한 점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야 함에도 자신의 목소리에 매달려 있었기에 은총이 함께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쿼바디스』는 폴란드의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장편 소설입니다. 끝 부분에는 제목을 암시하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베드로는 박해를 피해 로마를 탈출하지요. 자신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권유 때문에 억지로 달아납니다. 로마를 벗어나는 도로 위에서 그는 스승을 만납니다. 베드로는 놀라며 묻습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쿼바디스 도미네) 이에 예수님께서는 짧게 답하십니다. “네가 내 백성들을 버리기에 한 번 더 죽으러 간다.” 그 말에 베드로는 깨달음을 얻고 로마로 다시 돌아옵니다. 왜 그는 내키지 않는 탈출을 실행했겠습니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살아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존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베드로의 생각이었습니다. 주님의 뜻은 달랐지요. 죽어 거름이 되는 것이 그분의 뜻이었습니다. 교회는 베드로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라는 점을 그는 순간적으로 착각했던 겁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Nearer, my God, to Thee/ Anne Mur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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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sponse to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1. user#0 님의 말: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말씀이 저의 가슴을 울립니다

    왜냐구요?

    저는  당신의 뜻을 따르기보다  제 뜻대로 제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언제나...

     
    당신의 뜻을 헤아리기 보다 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랬습니다
    저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을때는 당신을 원망하면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자니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그랬습니다 주님!
    그러면서도 이유또한 많았습니다
    이런 것은 이래서 안되고 저런 것은 저래서 부당하고....

     
    핑계또한 많았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보다 합리화시키며...
    저의 마음 보가 그러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고치지 못하고 타성에 젖어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뜻에 따르기보다 저의 뜻대로 제 멋대로 살면서...
    편리하게 살고 있습니다 죄책감이 들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헤아려  당신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아멘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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