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1. 말씀읽기: 요한 14,27-31
2. 말씀연구
누구나 원하는 것은 평화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참 평화인지 거짓 평화인지가 중요합니다. 거짓평화를 참 평화라고 생각하면 그는 평화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참된 평화에 마음을 열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고서 떠나고자 하십니다. 유다인들은 인사를 할 때에 언제나 “평화가(샬롬) 있기를”하고 인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평화는 인사의 의미보다 더 깊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평화는 종말론적 구원 개념으로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사람들에게 제시되어 선물로 주어지고(루카2,14;19,38) 예수님의 말씀과 함께 각 사람에게 전달되며, 예수님 안에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알고 희망을 가지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를 알지 못하고 가지지도 못합니다. 이 평화는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두려움을 이기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오른뺨을 치면 왼뺨마저 돌려 댈 수 있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힘이요, 견고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처음 하신 말씀이 바로 “평화”입니다.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평화를 나는 어떻게 관리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믿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지금 당신이 떠나신다 하여 걱정하거나 두려워하기를 결코 원치 않으십니다. 제자들의 상황과 지금의 내 상황은 너무도 다릅니다. 너무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지금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당당하게 신앙 생활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호경을 그으면 누가 흉을 보지는 않을까?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아실까? 알고 계시다면 왜 도와주시지 않으시는 것일까?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실까?…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최선을 다하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제자들은 두려워하거나 뿔뿔이 흩여 져서는 안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께서 걸으시는 십자가의 길이 바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길을 가는 것을 기뻐해야 하며, 마침내 제자들 또한 그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는 표현은 예수님의 말씀들(계명이나 가르침)을 받아들여 지키는 것을 뜻합니다. 바로 이런 사랑에서는 슬픔보다 오히려 기쁨이 솟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의 완성을 뜻합니다. 이 길은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가는 목적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제 그 길을 가는 것에 대해 기뻐해야 합니다. 아들의 영광에 참여함으로써 제자들의 기쁨은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기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기에 웃지 못하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모르면 웃지 못합니다. 모르면 그 맛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노력하지 않으면,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웃거나 기뻐할 수 없습니다.
기쁨과 평화는 전통적으로 성령의 선물로 언급된다는 것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나 또한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또한 평화가 있고, 평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과 함께한다면…,
또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는 말씀은 아들이 아버지보다 지위가 낮거나 못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구원의 주도권이 아버지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즉 아들과 성령은 아버지로부터 파견되고 아들의 영광도 아버지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영광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모든 유혹을 물리치시고 수난의 잔을 받아 마시는 예수님, 그 처절한 십자가의 길을 걸어 당신 백성을 위하여 피를 흘리시어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고, 마침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는 예수님. 그 영광은 바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함에서 나오는 것이요, 닫혔던 천국의 문을 열어 주심에서 나오는 것이요, 죄에 물들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죄의 사슬에서 풀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심에서 나오는 영광인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영광과는 전혀 다른 영광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바로 이 일들이 일어날 때 믿게 하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수난이 닥쳐올 때 믿음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인해 낙담하여 믿음을 잃을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떠나시기 전에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30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당신의 수난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께 영광을 드리지 않고, 예수님께 모욕과 고통과 죽음을 안겨 드리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힘이 없으셔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마음만 먹으시면, 말씀 한마디면 모든 것이 먼지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유혹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잘 알고 계시기에 박해자들의 손에 당신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31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일어나 가자.”
세상은 예수님의 행동이 아버지께 대한 사랑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예수님의 일을 보고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말씀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감사하면서 살수 있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1.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기뻐하고 있습니까?
2. 신앙생활을 하면서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