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도, 대사제의 기도

 

 이 대사제의 기도는 4부분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①17장 1-5절 은 예수님의 계시와 그 의미를 요약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② 6-19절은 세상에 남아있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③20-24절은 미래의 공동체를 위한 기도이고 ④25-26절은 기도의 전체적인 요약입니다.



1. 계시란 무엇인가?

 우리는 계시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도 안에서 계시를 생생하게 구체화시키는 형태로, 그리고 동시에 지상적이면서 천상적인 전례형식으로 내용이 전개시켜 주십니다. 계시란 이론적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님, 하느님 자체이며, 예수님과 아버지와의 생명력 있는 통교이며, 예수님의 삶이라는 것을 대사제의 기도에서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계시가 있어야 하며, 이 계시는 오직 성자이신 예수님만을 통해서만 제시될 수 있다는 것이 1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 안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계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먼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모든 사람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고, 따라서 아들은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활동 안에 드러난 구원사업에 협력하게 된다면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둘째,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참된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살리시려고 당신 아들을 죽음에 부치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지 않는 모든 신은 거짓 신이며, 우상이라는 것이고, 더 나아가 참된 인간은 타인들의 형제자매로서 예수님처럼 그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며, 자기 자신을 이웃을 위해 개방해놓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2. 영광

 예수님께서는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 주시어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니다. 죽음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의 여정은 아버지 하느님과의 대화 속에서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하느님의 뜻이었으며, 불신자들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개인과는 관계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예수님의 죽음은 예수님 자신이 고통을 당한 것이었지만 남김없이 자신을 바친 완전히 능동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아버지에 의한 영광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영광과 예수님에 의한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이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졌으며 이것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이 완전히 계시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십자가와 부활은 예수님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며 동시에 계시의 절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영원한 생명

 우리 신앙인들은 아버지 하느님에 의해 예수님께 맡겨진 존재들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베푸시기 위한 모든 권한을 위임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인간도 제외됨이 없이 모든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대상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단지 종말론적 미래의 끝없는 생명만이 아니라 지상의 삶에서 이미 부여받는 현재의 선물로서 생명을 갖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즉 신앙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지금 현재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곧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3절) 하느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의 조건인 것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신앙에 근거한 그리스도교적 구원의 방법을 강조합니다. 이 구원의 방법은 바로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는 것이며, 이 믿음은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첫째, 요한이 말하는 믿음은 계시된 바를 단순히 알아내고 받아들이며, 묵묵히 따르는 것이라고 종종 말하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로 믿음은 하느님의 빛 안에서 하느님과 세상 만물을 보도록 하는 것이며, 셋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느님의 계시는 당신 사랑의 최고 계시이기 때문에 신앙과 사랑에는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일과 말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일 또는 사업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오직 한 인간에게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라 시작부터 어떤 효과, 즉 “열매를 맺기”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 사건의 가장 중요한 열매는 “예수님에 의한 제자 공동체, 즉 교회의 설립”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공동체를 통해 개별적으로 예수님에게 접근해 왔으며, 그렇게 그리스도인 공동체, 즉 교회의 첫 줄기를 형성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뽑아 맡겨 주신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바로 공동체 설립이 거룩한 일이라는 것이며,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행위 속에 궁극적이고 영원한 근원을 둔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 공동체는 인간적 성취가 아니라 계시자를 통해 신앙에 도달해야 할, 그리고 그분을 통해 하느님 안에서 신앙에 도달해야 할 거룩한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공동체의 구성 요인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며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설립한 것도 이 말씀이며, 교회의 계속적인 존재를 보장해주는 것도 이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말씀을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말씀을 지키고 따랐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 신앙인들도 말씀안에 현존하시고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그리스도를 만나야 할 것입니다.



5. 공동체 안에서의 일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신 다음에, 당신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아버지와 아들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이 믿는 이들의 일치는 예수님께서 참으로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증거를 드러내는 징표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들의 사명은 믿는 모든이가 나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공동체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며, 그분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나를 통하여 사람들이 아버지 하느님을 알게 해야 만 하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일치는 역사속에서 항상 문제가 되어 왔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갈라져서 싸우고, 죽이고, 피를 흘리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전쟁이 있었습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그리스도교 공동체내에서 사회적으로 갈등으로서 가장 먼저 발생한 갈등은 재산의 공동소유에 관계된 문제였고, 초대 제자들이었던 아랍어권 공동체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희랍어권 유대인들간의 갈등이었습니다. 또한 나는 바울로 파다. 나는 아폴로 파다. 나는 베드로 파다. 하면서 갈라지기도 했습니다. 이 일치를 예수님께서도 강조했고, 제자들도 강조했고, 교부들도 강조를 했습니다. 그러나 일치의 길은 너무도 먼길인 듯 합니다. 결국 이 일치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일치가 아니라 계시자 그리고 계시자의 선물, 즉 구원의 열매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일치는 예수님의 구원업적에 의해 이미 공동체에 부여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완성되어야할 미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치란 모든 신자들에게 주어진 현재의 선물이며 동시에 영원한 목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7.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까? 가족입니까? 이웃입니까? 아니면 나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제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키시어, 우리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소서.”

 하느님께서 세상에서 선택하신 제자들, 예수님께로부터 들은 계시 말씀을 지키는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제자들은 바로 하느님의 사람들이요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사람들입니다. 바로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의 기도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째는 제자들을 지켜달라는 것이요, 두 번째는 제자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구약성서와 유다이즘에서는 하느님의 신성을 “거룩한”이란 말로 표현합니다. 이 표현은 세상을 초월한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두려움과 경외를 드러내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거리감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아버지”라고 하는 표현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친밀한 관계를 드러냅니다. 즉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을 가리키므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에 더 밀접한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 달라고 기도를 하십니다. “당신의 이름으로”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계시한 “아버지의 이름”을 가리킵니다. 아들 예수가 계시한 아버지의 이름은 아버지께서 친히 아들에게 “주신” 바로 그 이름을 뜻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요청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계시한 아버지 하느님의 모습 그대로 아버지께서 친히 그들을 지켜 달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몸소 하느님에게서 체험한 사랑과 기쁨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며 또한 전달하고, 하느님의 생명에로 그들을 인도하는 것을 총체적으로 가리킵니다. 한마디로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내적으로 열어 보이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듯이 제자들도 일치된 공동체를 이루도록 해달라는 뜻입니다. 이 일치는 신적 본질 또는 실존, 곧 사랑의 표현이요 표징이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을 지켜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 제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키고 보호했습니다. 멸망의 아들 외에는 그들 가운데 하나도 멸망하지 않았으니 이는 성경(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함이었습니다.”

 멸망의 아들은 배신자 유다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유다가 예수님의 보호에서 벗어나 구원에서 제외되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유다를 잃은 것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이해되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유다를 잃은 것은 예수님 탓이 아니며, 예수님은 제자 보호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훌륭히 완수하셨기에 이제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면서 말씀을 하십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세상에서 이런 일들을 말씀드리는 것은 그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외롭게 남을 제자들에게 자기 자신이 취한 그 기쁨과 평화를 주어서 그들이 증오와 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도 잘 견디어 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하느님의 보호를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예수님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그들을 미워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것처럼 그들도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지켜주십사 하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청하지 않고 그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청합니다.”  악은 세상의 두목 또는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세속적인 것들을 받아들이거나 오염되지 않도록 지켜 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을 지켜 주십시오

예수님의 기도 안에는 사랑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무장되어 세상에 파견되었듯이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기도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파견하신 것처럼 저 또한 그들을 세상에 파견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고 청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 파견하신 거룩한 아들로서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고 하느님의 영역까지 이끌 수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의 그러한 일을 위임받아 수행하기 위해 제자들 자신도 거룩해 져야 합니다. 바로 여기서 예수님의 중개 역할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위해서 저는 제 자신을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 또한 진리로 거룩해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도 거룩해지기 위해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대속적 죽음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다라는 것은 희생제물에 관한 동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칠십인역 성서에서 이 동사는 제물로 바치는 짐승을 신성시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희생제 예절을 주관하도록 제관들을 축성하는 것도 바로 이 동사로 표현합니다. 히브리서에서도 예수님을 대사제요 희생제물로 언급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진 자들을 ”거룩하게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기도는 자신의 속죄 죽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희생 죽음을 통해 자신을 거룩하게 했듯이 제자들도 세상에 파견되기 위해 예수님처럼 거룩해져야 합니다. 거룩함으로 무장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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