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징을 요구하는 바리사이들
1. 말씀읽기: 마르8,11-13 바리사이들이 표징을 요구하다 (마태 16,1-4)
2. 말씀연구
가까이 할 수 없는 당신! 내 마음을 몰라주고 언제나 자기 잣대로 나를 판단하는 당신. 마음 열고 받아들이면 그만인 것을,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면 그만인 것을. 꼭 입으로 말해야만 알아듣고, 이것이 그것이라고 말해야만 알아듣는 당신! 무딘 마음에 한마디 하라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제발 보시오. 그리고 알아차리시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의 속을 떠보려고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11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놀라운 기적을 통하여 자신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는 예언자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특별한 행위를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시는 예수님,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마귀를 쫓아내시는 예수님. 분명 특별하신 분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이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3,22 참조). 바리사이들은 만일 예수님께서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이라면, 하느님께서 친히 예수님을 인정하시고, 그에 걸맞은 표징을 보여 주셔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이를 성취하시지 않는다면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거짓 예언자”로 몰아붙일 것입니다. 하지만 표징을 보여 달라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어떤 것을 보여 주어도 또 다른 것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불신앙을 드러낼 것입니다.
신앙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기적은 말로 설명이 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믿어야 하고, 자신들의 능력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불신은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탄식하십니다.
12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찾는 “이 세대”에 대해 탄식하십니다. 마르코 3,1-6에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셨을 때도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탄식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의 완고함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 예수님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도 큰 불신에 대한 고통에 찬 탄식이지만, 그 같은 무딘 마음은 예수님을 향한 그분 당대 시대 사람들, 즉 “이 세대”의 특성입니다. 그런데 “이 세대”는 완고한 마음을 가진 오늘의 나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 무딘 마음은 나에게도 보여 지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으로.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형제가 전에는 본당에서 많은 봉사를 했는데 지금은 주일 미사에만 참례합니다. 성당에서 큰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회적 약속 때문에 미사도 빠지고 놀러 갔습니다. 왜 그런 행동이 나올까요? 사회의 약속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려 하고, 주일미사에는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신자들에게 한 달 전부터 시간을 비워 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약속으로 방향을 돌린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무딘 마음으로 봉사를 하면 기도하지 않고 봉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발길을 돌리게 됩니다. 성당 사람들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결국 기도하지 않는 다는 것은 자신을 망쳐버린다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무딘 마음을 여리게 만들고, 새롭게 만들 때, 나는 믿을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 이 세대가 왜 이다지도 믿음이 없을까!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살며 이 성화를 받아야 한단 말이냐?”(9,19)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보여 달라는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에 보여 줄 징표는 하나도 없다”라고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하느님은 강요받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러한 표징을 보여주시기를 거절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분께 강요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게 하려거든 증거를 보여 주시오. 증거를…”
13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에 가서 회개하고 믿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그때에는 증명으로서 요구되었던 그 기적이 심판의 표징이 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셔서 다른 기적을 행하셨다면 그것은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물리치셨습니다. 그리고 표징을 보여 달라는 요구도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물리치십니다.
그런데 그분을 따르는 나는 나에 대해서 의심을 품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동서분주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알아주실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십니다. 이렇게 그분의 현존을 거두어들이시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심판인 것입니다.
어느 신부님께서 인사이동을 하시는 날, 새벽미사를 마치시고 신자들에게 인사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셨다고 합니다. 받아들이지 않는 신자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요?
3. 나눔 및 묵상
1. 믿음에는 조건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예수님께 조건을 거는 경우는 없습니까? 예수님! 당신께서 이거 하나만 해주신다면. 예수님! 이번 로또복권 1등 당첨만 된다면 성전건립기금 1억 내겠습니다…내가 내 걸고 있는 조건은 어떤 것입니까?
2.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십니다. 가끔은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믿어주지 않는 그에게 어떻게 다가가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