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롤로 르왕가와 그의 동료들은
아프리카 우간다의 순교 성인들이다.
이곳에는 19세기 말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다.
왕궁에서 일하던 가롤로 르왕가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왕조가 들어서자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당하였다.
끝까지 굴하지 않던 그는 1886년 6월 3일
동료 18명과 함께 순교하였다.
바오로 6세 교황은 1964년 가롤로 르왕가와
그의 동료 순교자들을 성인의 반열에 올렸다.
말씀의 초대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예수님을 곤궁에 빠뜨리려 한다.
세금 바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질문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세금으로 바치는 동전이 문제였다.
황제의 상이 새겨져 있었기에
우상 숭배자로 몰릴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간결한 답변을 하신다(복음).
복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3-17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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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하신 당신의 말씀에 마음이 아픕니다
이유는요?
바로 제가 당신을 믿지 못하고...
바로 제가 당신을 시험하고...
바로 제가 그랬습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그럴 듯하게...
번지르하게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구요 주님!
사실 저의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모두가 당신의 것임을 알면서도...
당신께 돌려드리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갖지 못해 안달을 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말씀을 깊이 새기며
당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의심하며
제 뜻대로 제 욕심대로 제 멋대로 살았던 자신을
반성해봅니다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마음으로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입으로만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다짐하는 오늘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아멘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묵상하며
♬ Mozart – Laudate Dominum `Vesperae solemnus de comfessore`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1. 말씀읽기: 마르코12,1-12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 (마태 22,15-22 ; 루카 20,20-26)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백성의 지도자들을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하느님을 따른다고 했지만 하느님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더 나아가 죽이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합니다. 장기를 두다 보면 외통수가 있습니다. 빠져 나가지 못할 곳으로 몰아서 이기는 방법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 항상 모든 면에서 밀리니까 작당을 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예수님께 질문을 한 것이 바로 세금 문제입니다.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면 백성의 원성을 사게 될 것이고, 바치지 말라고 하면 로마 당국으로부터 체포될 것입니다. 참으로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 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13 그 뒤에 그들은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본당에서도 매일 미사 나오시는 분들이 말이 많습니다. 신앙에 뿌리를 내리기 보다는 관계에 뿌리를 내리고, 그렇게 타성에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정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저 자기가 옳다고 우기는 사람들, 남이 조금만 잘못해도 잡아먹으려 으르렁거리고, 자신의 허물은 하나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남을 짓밟는 사람들.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 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거울을 들여다보십시오. 거기에 바로 그 사람이 나올 것입니다.
14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먼저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은 예수님을 칭찬합니다. ①스승님께서는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② 스승님께서는 사람을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③ 스승님께서는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치켜세워 드린 다음에 공격을 합니다. 즉 예수님은 진실하시니까 우리가 유다인 지도자들의 심부름꾼이라 하여 진실을 말씀하지 않으시면 안 되고, 예수님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를 물었습니다. 즉 이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이 질문을 한 것입니다.
고대에는 일반적으로 공물과 세금을 납부한다는 것은 속국임을 인정하고, 그들의 통치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유대인들은 지독히도 혐오스러워 했습니다. 세금을 바치는 것이 정당하여 바치라고 한다면 로마의 식민지 상황 속에서 괴로워하는 백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또 납세를 거부한다면 로마 당국에서는 사회 불온세력으로 낙인찍혀 붙잡힐 것입니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교묘한 말로 상대방을 어려움에 빠뜨려는 그들의 불쌍한 마음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없는 그들의 마음을.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서 사라져 주는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달라고 말씀하십니다.
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그러자 그들은 황제의 것이라고 그들 스스로 말합니다. 즉, 그들이 데나리온이 황제의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으니, 그들 입으로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는 황제의 것이니까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식민지 상황에서 세금을 내는 것은 억울하지만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민족은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넘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유다인들이 예수님께는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 합니까?”를 여쭤보기 보다는 “저희가 하느님께 드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를 여쭤봐야 했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물어보지 않는 사람들. 그가 바로 나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17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어떤 부자가 죽어가게 되었는데 자신에게는 아들이 한명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죽게 되었는데 많은 재산을 놓고 죽으려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걸 아들에게 물려줘야 하는데 지금 아들은 멀리 유학을 가고 없고, 내가 죽으면 저 교활한 하인이 내 재산을 몽땅 차지해 버리고 말텐데… 이런 걱정을 하다가 한 가지 꾀를 내어 종을 불러 유언을 했습니다.
“자네! 그동안 수고가 많았네. 그래서 나의 모든 재산을 자네에게 주겠네. 집이며 땅이며, 모든 재산을 다 자네에게 주네. 대신 한가지부탁이 있네. 이 편지만은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마지막으로 전하는 말이니 뜯어보지 말고 전해주게”
이 말을 남기고 부자는 죽었습니다. 종은 주인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면서 재산을 관리해서 몇 배로 늘려놨습니다. 마침내 아들이 돌아오자 교만한 종은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이야기 해 주면서 유서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유서를 가지고 자신의 집에서 빨리 사라지기를 바랬습니다.
허탈한 마음으로, 유산이라고는 편지 한 장 달랑 받은 아들은 유서를 펼쳐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 종을 너에게 준다.”
결국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아들에게 차질 없이 상속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라고 말씀하셨지만
황제는 결국 하느님의 것이니, 모든 것은 하느님께 드려야 함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얼마만큼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드렸는지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하느님께 무엇을 드렸는가? 내 것을 챙기기만 하고 그리고 그것을 내 것 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느님을 잊고 살지는 않았는가? 어리석은 종과같이 그렇게 자기 것이 아닌데도 자기 것처럼 움켜쥐고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사도 바오로는“우리 주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것도 모든 사람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주시려는 것이라고 생각 하십시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내 것 인양 움켜쥐고 드리지 않은 모든 행동을 하느님께서 참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하느님께 무엇을 드릴 것인가를 고민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1. 다른 이들을 어려움에 빠뜨리게 하기 위해서 교묘한 말로 상대방의 마음을 흔드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때 나는 그에게 어떤 말을 해 줍니까? 내 일이 아니니까 그냥 넘어갑니까? 아니면 그 말이 옳지 않음을 지적을 하십니까?
2. 내가 하느님께 바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느님께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들(시간, 열정 등)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아버지!
주어진 삶에 순명하는 자세가 가장 아름다움을 알지만 쉽진 않나 봅니다.
흐르는 물에 몸을 적시는 것이 바르다 하지만
흙탕물이면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거든요.
이것도 순명하지 않는 모습일까요?
의무의 순명!
사랑의 순명!
어떤 것이 바람직할까를 생각해 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율법을 지킨다는 그들이~ 똑똑하다는 그들이~
아버지께 순명하면서 일을 처리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그럼 멋진 카이사르의 입지를 더 살렸을텐데~~
오늘 말씀에서 바리사이와 헤로데 당원들이 예수님을 찾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올가미를 쒸우려고 찾아옵니다.
그들의 양면성에 저의 모습을 비추어 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를 밀어내기 위해 그에게 접근하진 않았는지요.
단 맞지 않는다고~~ 같은 색의 옷을 입지 않느다 하여서~
그리고선 저와 맞는 사람에게로만 향하진 않았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그 모든 행위는 그사람에 대한 두려움이었겠지요.
예수님이 그렇게도 두려웠나 봅니다.
얼마나 자신이 없고 두려웠으면 그렇게 했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 저보다 더 나으면 올가미를 쒸우려 온갖 궁리를 하면서
정작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식어가지 않았는지요.
누가 우선인지를 모르고 헤매는 모습으로 허덕대진 않았는지요.
예수님께서는 정말 지혜롭게 통쾌한 답을 하십니다.
올가미에 걸리지 않으면서 지혜로운 답을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전 기쁨과 의무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세금을 내지만 어떻게 하면 덜낼까를 고민한답니다.
본질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적게 내려 고민하고 머리를 짭니다.
과연 기쁨이 있었다면 제가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 드리는 사랑은 그런 계산이 서질 않습니다.
도리어 적게 드림에 몸이 작아질 뿐이지요.
오로지 아버지만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만이 있었기에 그러함을 압니다.
세상의 모습에서 나름대로 다 자기만을 생각하고
권력의 노예가 되어 아버지의 권능을 알지 못한 이들의 무리중에 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기도 합니다.
카이사르가 신이라 자칭해도 내면의 흐름까진 강요할 수는 없음이지요.
오로지 아버지를 가슴에 품고 살고 있는 저에게 보여지는 것들이라 하여도
아버지를 거스를순 없음을 다시금 새겨봅니다.
제 마음속에 아버지에 대한 확고한 사랑이 심어져 있지 않다면
세상의 올가미에 휩싸여 그것을 탈출하려고 결국 아버지를 저버릴 수 있음을 압니다.
제가 내는 세금이 국민으로서의 기본을 행하는 것이기에
거스를 수 없는 형식과 의무가 들어가있는 어두움이라 한다면
아버지께 드리는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모든 것은 너무나 기쁘고~
더 드려야 한다는 마음에 기쁨만이 있습니다.
의무가 아닌 사랑이기에 그러함을 압니다.
의무와 사랑을 거스르지 않되 본질은 사랑으로 가득차 있어야 함을 압니다.
돈은 황제의 것이지만 백성은 아버지의 사랑물인 것처럼~~
보여지는 포장지는 멋지더라도 내용물이 머금은 것이 보잘것없은 것이라면
얼마나 더 서글픈 일일까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저 또한 아버지의 자식으로 살아감에 보여지는 모습보다
내면을 충실히 채우기 위해
하루하루 말씀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며,
그리하여 예수님의 단호함으로 세상과 맞서며 아버지를 사랑하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말씀에서 바리사이와 헤로데가 예수님께 올가미를 쒸우려 찾아옵니다.
무엇에 충실한 모습일까를 다시 생각해 보면서 저의 모습도 돌이켜 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지혜롭고 단호하게 통쾌하게 한방 먹이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열심히 봉사하고 정말 멋진 사람을 앉히려 올가미를 쒸우려 하진 않았는지요.
삶을 살아가면서 아버지께 받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제게 하시는 말씀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임을 알면서도 세상의 색을 입고
본질의 색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요.
늘 사랑한다 고백은 하였지만 현재의 의무엔 충실하면서
아버지껜 어떠한 핑계를 들어 소홀함을 합리화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달아
아버지 앞에 부끄럽지 않은 단호함으로 서게 하소서.
현실에 발을 두고 마음은 아버지를 향한 발걸음에
기쁨과 환희가 있음을 가슴깊이 깨닫게 하시어
늘 아버지께 드려할 사랑이 의무가 아니 기쁨이 되게 하소서.
받았음에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식으로 당연히 드려야 함을 알게 하시어
사랑의 수를 놓게 하소서.
아멘.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부담도 되었지요
저의 이기심 때문에 저의 욕심 때문에 ...
세속의 미련 때문에 등등...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참 많은 이유와 핑계로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겉 치례로
했다는 생각에 반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아직도...
당신의 뜻보다는 저의 욕심이 저의 이기심이 당신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입으로야 당신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해보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욕심 때문에 저의 이기심 때문에 세속의 미련 때문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당신의 말씀을 거역하고 제 뜻대로
제 마음대로 살고 있습니다
제가 갖고 잇는 것이 모두 제 것인 것처럼
아니!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에도 제가 노력해서 얻은 결과라고
움켜지고 내어놓기 아까워 하고 있습니다
제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모두가 당신의 것인데....
당신께서 주신 선물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인정하기 싫다는 표현이 맞지요? 주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당신의 자녀답게 신앙인답게
무늬만이 아닌 몸과 마음이 한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의 말씀을 깊이 깨달아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살아야한다고 다짐해봅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묵상하며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노력해서 번 돈이나 제가 가진 모든 것들은
누구의 것일까?
내 것이 아닌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등등…
참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습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저의 생각들 모두가 저의 욕심과 믿음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믿음이 없기에….
욕심이 많기에….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익숙한 저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당신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햇습니다
저의 것이 없어질 까 두렵고 아까운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지가 언제인데…
하루 이틀 한 두해 신앙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복음묵상을 한지도 십년이 다 되어 가는데….
왜?
발전이 없는 것일까?
왜?
믿음이 없는 것일까?
왜?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한 것일까?
반성이 되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세속적인 욕심과 이기심에서 벗어나 신앙인다운
당신의 자녀답게 꼴값을 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굳게 다짐해봅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그리하여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게하소서
아멘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묵상하며
♬ 예수는 인간의 소망의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