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이 당신께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신다.
예수님 시대에도 어린이는 약자였다.
제자들은 그들을 막았지만 스승님께서는 다르셨다.
아이들을 가까이하시며 축복해 주셨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것 역시 예수님을 닮는 행위다(복음).
복음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3-15
그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정아는 올봄에 엄마를 잃었습니다.
이제 일곱 살 어린아이에게는 너무 가혹한 운명입니다.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코끝이 찡해집니다.
정아의 유일한 희망은 천국에서 엄마를 만나는 일입니다.
“정아야 잘 있었니? 할머니도 잘 계시고?”
어린이 미사 때면 일부러 정아에게 말을 건네려 애씁니다.
승미는 아빠가 없습니다. 지난해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늘 어두운 그림자가 작은 어깨에 얹혀 있습니다.
주일 학교에서도 말이 없습니다.
어린것이 안쓰러워 만날 때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시키곤 합니다.
그럴 때면 쳐다보는 눈가에 목마름이 가득합니다.
미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흩어져도 승미는 가지 않고 기다립니다.
어깨를 안아 주고 잘 가라며 토닥거려야 떠납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저는 승미의 아빠가 됩니다.
너무 빨리 삶의 슬픔에 적응해 가는 승미가 안타깝습니다.
시련이 은총이란 걸 언제쯤 깨닫게 될는지요?
세상에는 가슴 아픈 아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대부분 어른들의 잘못이 원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 아이들을 축복하신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축복하고 계십니다. 누군가 예수님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 따듯한 빛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