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도 아빠스는 1090년 프랑스에서 영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출세를 위해 공부하던 그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24세 때부터 수도자의 길을 걸었다. 훗날 아빠스(수도원장)가 된
베르나르도 성인은 탁월한 지도력으로 수도원을 이끄는 가운데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유럽 각지를 다니며 수많은 설교와 저술을 남겼다.
1153년에 세상을 떠난 그를 비오 8세 교황은 ‘교회 학자’로 선언하였다.
말씀의 초대
포도밭 주인은 일당으로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하였다.
당시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 한 데나리온이었다.
그런데 늦게 와서 조금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도
똑같은 일당을 받아 갔다. 주인의 너그러움이다.
이스라엘은 늦게 주님의 백성이 된 이방인을 시기해서는 안 된다(복음).
복음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인생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입니다. 굽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굽은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좋은 면도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도로가 직선뿐이라면 얼마나 밋밋할는지요?
좋은 일만 생기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무미건조할는지요?
오늘의 고통이 내일의 기쁨으로 바뀐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삶이라도 비관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자신에게는 힘든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보람 있는 일이 남에게는 동정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관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현실은 틈만 나면 남과 비교하게 만듭니다.
눈치 보기를 피해 갈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인생의 참주인은 주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삶의 설계도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재산이든 명예든, 기쁨이든 슬픔이든
어느 정도의 몫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적게 받았다는 생각은 느낌일 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뒤에 와서 잠깐 일한 사람이나
아침부터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나 주인은 똑같은 품삯을 주었습니다.
양(量)을 따지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믿음의 참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주의 자비가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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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당신을 아버지라 믿는 모든 이를 언제나 기억하신다.
늦게 오나 일찍 오나 당신이 보시기엔 똑 같으시다.
오히려 늦게 온 자식에게 각별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 봤다.
간절히 기다렸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인간이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보상을 받으려 한다.
나만 사랑해주고…
더 많은걸 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이에게 베푼 사랑에 대해 질투를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들도 아버지를 알아서 구원의 대열에 들어간다면 얼마나 기쁜일인가…
그분은 나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인간인 우리들의 아버지가 아닌가…
그분을 늦게 알았으니 나보다 은총을 덜 받아야 된다는 생각은 내 계산법인 것이다.
그분의 계산은 인간의 계산법과 판이하게 다르다.
내가 볼때는 불공정해 보이지만 실로 공정하시다는 것을…
또한 아무리 내가 발버둥쳐도 그분의 은총없이는 구원받을수 없음을 오늘 복음을 통해서 깨달았다.
암튼 그분께서는
내 몫은 다 주셨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몫에만 족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비교하며 투덜대고 살지 않았던가…
사실 주님께서 그들을 더 많이 기억해 주신다면 기뻐해야 할것이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아버지를 알았으니 말이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늦게 주님을 안 형제자매의 열심한 모습이
질투의 대상이 아니라 기쁨의 대상임을 깨달아 본다.
또한 다른 이가 나보다 더 많은 은총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없어서 안쓰럽고 통괘한 것 보다 있어서 넘쳐 흘러보이는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주지못하게 질투하고 막을게 아니라 내몫이라도 더 주고 싶어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하느님 나라에 발을 들여 놨다는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갈세라 깨질세라 노심초사해야 한다.
최소한 나가게끔은 하지 말아야 않는가.
그런데 말로써 행동으로써 밀어낸다.
참으로 창피한 일이다.
반성해 보면서…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할때마다 느끼는 것은 ……
저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수 있는지…
어떻게…
하루종일 일한 사람과 하시간동안만 일한 사람의 품삯이 같은지…
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의 계산법과 저의 계산법이 판이하게 틀린지….
그러다…
웃음이 나왔습니다
감히
엉검생신 당신의 마음까지 제 마음대로 하려는 못된 심성이…..
저 라는 사람은 구제불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교만의 극치인 저의 욕심과 건망진마음이 당신의 말씀까지 “토” 를 달고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으면서 ……
저에게만 인색한 사랑을 주신다고 투덜거리고 있습니다
제가 받은 사랑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남의 것만 크게 보이니….
눈뜬 장님이 되어있는 저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드니…..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쥐꼬리만큼은 있나봅니다
당신께서 저만 바라봐 주시기를 기대하는 어린이만도 못한 쩨쩨한 저의 신앙심이
오늘따라 유난히 작게 보입니다
아직은 저의 신앙이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깨닫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 꼴찌가 되지 않도록 당신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자신의 능력과 신앙심을 과대포장하지 않으며 겸손하게 신앙인답게….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묵상하며
♬ 내 생애의 주님
요즘들어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에 관해서 자주 생각하게 된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인간의 생각을 뒤어 넘으시는 …
결과보다는 순수한 의도(사랑)를 보시는 그분을 본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모두를 아우르는 사랑이고
우리 모두의 구원을 통해 찬미받으시고자 하심임을 알겠다.
내 의지를 그분께 맡겨드리고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께 의지하고 매사 하느님을 선택하는 삶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내 삶이 아닌가 싶다.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 당신의 마음을 정말 알수 없을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왜냐구요?
오늘복음말씀만해두요 주님!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왜 품삯이 같은지...
왜 저만 손해를 보는지...
왜 저 같이 미련한 사람은 당신의 은총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는지...
참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습니다
왜? 저만
남들은 편하게 잘 살고 있는데 한 시간만 일하고서도...
왜 저만
하루종일 일하고 또 해도 품삯을 같이 받는지...
설령 첫째가 꼴찌가 된다하더라도...
따지고 싶습니다 주님!
왜? 저만 불이익을 당하는지...
저도 당신의 자녀가 맞습니까? 하고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러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닏다
신앙생활을 한지가 언제인데...
복음묵상을 한지가 언제인데...
봉사활동을 한 사람이 맞는지...
피정.성지순례.봉사.희생(비록 약간이지만)한 사람인지...
영세 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초보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한 시간만 일한 사람과 하루종일 일한 사람과 품삯을
같이 받았다고 억울하다고 말 할 자격이 있는지...
아니었습니다 주님!
쩨쩨하고 치사하기까지 한 저의 옹졸한 심성이 부끄럽습니다
신앙인의 자세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왜? 무슨자격으로 따지고 억울하다고 하는지 생각하니
믿음이 부족한 탓이었습니다
신앙심이 부족한 탓이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말씀의 의미를 깨달으며
한 시간도 일하지 않으면서 하루 품삯 아니!
평생품삯을 바랬던 저의 이기심과 세속의 욕심을 반성합니다
남을 판단할 자격도 단죄할 자격도 저에게는 없음을 깨닫습니다
제가 할 일은 제가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판단 할 자격은 저에게 없음을 깨달으며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묵상하며
♬ 누구나 때로는 힘들어 하지만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님!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경우가 밝은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적당히 선행도 하는 것같고….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같았고
적당히 …
사실 적당히라는 기준이 어떤 것인지….
제 나름대로 틀을 만들어놓고 맞추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혼자서 판단하고 섭섭해하고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바리사이가 바로 저 같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해타산하고 자신만 손해보기 싫어하고 자신만 폼내고 싶어하고…
첫째가 꼴찌가 된다는 말씀이 저에게 하신말씀 같았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꼴찌가 첫째가 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복음을 묵상할때의 일시적인 기분이지만
노력하겠습니다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핼레나로
거듭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묵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