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11/17)


    엘리사벳 성녀는 1207년 헝가리의 공주로 태어나 14세 때 독일 중부의 튀링겐 왕국으로 시집갔다. 세 명의 자녀를 두며 행복하게 살았지만, 6년 뒤 남편 루트비히는 십자군 전쟁에서 사망한다. 이후 성녀는 자신의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며 자선 활동에 전념했다. 1231년 선종한 그녀는 4년 뒤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이란 이름으로 시성되었다. 오늘날 ‘작은 형제회 재속회’의 수호성인으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예리코의 소경은 우연히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니다. 평소 그는 간절한 소망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자 곧바로 뛰쳐나왔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었다.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애절한 기다림이었기에 기적을 만난 것이다(복음).
    복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35-43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집트를 떠나 광야를 방황하던 이스라엘은 마침내 가나안 땅에 정착합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의 인도로 ‘예리코 성’을 공격합니다. 요르단 강이 사해로 흘러드는 입구에 있던 오아시스 도시입니다. 해수면보다도 지면이 낮았기에 무덥지 않았고, 물과 과일이 풍부해 부자들의 별장이 많았습니다. 헤로데 임금도 기원전 4년 이곳에서 숨을 거둡니다. 원래 요르단 영토였는데, 19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이 점령했고 현재도 이스라엘이 관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예리코에서 어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그는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막무가내로 외칩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그를 막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순간을 놓치면 영영 눈을 뜰 수 없다.’ 그는 마음이 바빴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만을 청합니다. 다른 말은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부르십니다. 보지 못해도 그는 어느 분이 예수님이신 줄 압니다. 기적은 소망의 결과입니다. 주님께서는 온몸으로 청하는 그에게서 ‘간절한 소망’을 읽으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기적의 원인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내 눈을 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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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11/17)


      엘리사벳 성녀는 1207년 헝가리의 공주로 태어나 14세 때 독일 중부의 튀링겐 왕국으로 시집갔다. 세 명의 자녀를 두며 행복하게 살았지만, 6년 뒤 남편 루트비히는 십자군 전쟁에서 사망한다. 이후 성녀는 자신의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며 자선 활동에 전념했다. 1231년 선종한 그녀는 4년 뒤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이란 이름으로 시성되었다. 오늘날 ‘작은 형제회 재속회’의 수호성인으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예리코의 소경은 우연히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니다. 평소 그는 간절한 소망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자 곧바로 뛰쳐나왔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었다.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애절한 기다림이었기에 기적을 만난 것이다(복음).
      복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35-43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집트를 떠나 광야를 방황하던 이스라엘은 마침내 가나안 땅에 정착합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의 인도로 ‘예리코 성’을 공격합니다. 요르단 강이 사해로 흘러드는 입구에 있던 오아시스 도시입니다. 해수면보다도 지면이 낮았기에 무덥지 않았고, 물과 과일이 풍부해 부자들의 별장이 많았습니다. 헤로데 임금도 기원전 4년 이곳에서 숨을 거둡니다. 원래 요르단 영토였는데, 19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이 점령했고 현재도 이스라엘이 관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예리코에서 어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그는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막무가내로 외칩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그를 막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순간을 놓치면 영영 눈을 뜰 수 없다.’ 그는 마음이 바빴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만을 청합니다. 다른 말은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부르십니다. 보지 못해도 그는 어느 분이 예수님이신 줄 압니다. 기적은 소망의 결과입니다. 주님께서는 온몸으로 청하는 그에게서 ‘간절한 소망’을 읽으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기적의 원인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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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11/17)


      말씀의 초대
      묵시록의 주인공은 주님이시다. 언젠가 그분께서 하실 일들을 담고 있다. 사도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글을 보낸다고 했다. 에페소 교회에 보내는 말씀이 제일 먼저 등장한다(제1독서).
      제1독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여라.> ☞ 요한 묵시록의 시작입니다. 1,1-4.5ㄹ; 2,1-5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당신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리스도께 알리셨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천사를 보내시어 당신 종 요한에게 알려 주신 계시입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곧 자기가 본 모든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때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에페소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일곱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가 한 일과 너의 노고와 인내를 알고, 또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너는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냈다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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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예리고의 소경을 치유하시는 예수님

    1.말씀읽기: 루카18,35-43

    예리코에서 눈먼 이를 고치시다 (마태 20,29-34 ; 마르 10,46-52)

    2. 말씀연구

    한 소경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소경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는지, 후천적으로 장님이 되었는지는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그는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의 소원이 있다면 눈을 뜨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고, 하느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직접 바라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그런데 어느 날 그 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35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 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예수님께서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에 예리코에 들르십니다. 예루살렘에서는 당신의 수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리코는 헤로데가 쾌락의 도시로 만든 곳으로서 많은 저택이 즐비하고 극장과 경마장, 그리고 수영장이 있었습니다. 그 환락의 도시 안에 고통 받고 있는 소경이 있었는데 마르코(10,46)에서는 그의 이름을 바르티매오라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36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37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눈먼 사람들의 치유. 사실 그 당시의 의료 기술로는 그 사람이 어떻게 해서 눈이 멀었든지 간에 치료라는 것은 기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로 인해 고통을 받은 이들의 운명이라는 것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평생을 장님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렇게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보고 싶었습니다. 하루하루 구걸을 하면서 살아가던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오천 명을 먹이시고, 모든 병자를 낫게 하시고, 새로운 가르침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다는 그분. 소경은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이시라면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줄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소경이니 예수님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무리였고, 어쩌면 포기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지금 자신의 앞으로 지나가고 계신 것입니다.


    38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하느님께서 내리신 기회였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조용히 시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더 큰 소리로 예수님께 자비를 청합니다.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험하다고 느끼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로마의 식민지인 이스라엘에 메시아가 나타났다면 로마 군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지도층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한다는 것을 “율법도 모르는 하찮은 존재들”의 외침이었습니다. 좌우지간 사람들의 귀에는 이 소경의 외침이 귀에 거슬렸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소경이었으니.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눈 뜬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지 못하지만 보지 못하는 소경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말씀 안에 등장하는 사람들이고, 이 말씀을 듣고 믿음을 실천하지 못하는 나 자신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부르십니다. 그분은 결코 청하는 사람의 마음을 외면하신 적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끊임없이 청한다면 반드시 들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계십니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무엇을 해 주었으면 좋겠느냐고…,”. 바르티매오는 기적을 요구합니다. 본질적인 것을 요구합니다. 먹어서 없어질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어도 도움이 안 되는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는 눈을 뜨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만 먹으시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그것을 청한 것입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믿음을 보인 소경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즉 그의 믿음대로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청하는 이에게 그 청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 매달리면 나는 내가 청한 모든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굳은 믿음을 가지고 매달립시다.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소경은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이제 그 소경은 소경이 아닙니다. 그는 너무도 기뻐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 소경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어야 하겠습니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나 또한 나의 굳은 믿음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내가 그 소경처럼 그렇게 간절하게 예수님께 청하는 것이 있습니까?


    ② 소경은 예수님을 자신을 치유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굳게 믿었고, 그 믿음대로 치유를 받았습니다. 만일 내가 그 소경이였다면, 그래서 내 믿음대로 될 것이라면 나는 과연 치유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혹시 내 마음 안에는 “설마 예수님이 나를 고치실수 있겠어?”라는 의심이 조금도 없었을까요?


  4. guest 님의 말: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도 예리고의 소경처럼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을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게 당신께서 헬레나야!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저에게 예리고의 소경의 믿음의 반이라도 있다면 참 좋을텐데...
    희망사항입니다
    아니! 꼭 그리 되고 싶습니다
    예리고의 소경처럼 당신을 굳게 믿으며
    당신께서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당신을 믿는 것이 저에게는 영생을 얻게 되는 길이라는
    사실을 모두 다....
    당신의 말씀이라면 의심하지 않으며  
    당신의 말씀이라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참고 견디며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만이라도...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의 간절한 마음이 변치 않기를
    기도해봅니다
    변덕많고 믿음이 부족한 헬레나이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이라도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으며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힘들고 지칠지라도....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예리고의 소경의 믿음을 본받아 교만하고 부족한 믿음을
    반성하며 겸손된 마음으로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어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아멘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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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user#0 님의 말: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도 예리고의 소경처럼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을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게 당신께서 헬레나야!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저에게 예리고의 소경의 믿음의 반이라도 있다면 참 좋을텐데...
    희망사항입니다
    아니! 꼭 그리 되고 싶습니다
    예리고의 소경처럼 당신을 굳게 믿으며
    당신께서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당신을 믿는 것이 저에게는 영생을 얻게 되는 길이라는
    사실을 모두 다....
    당신의 말씀이라면 의심하지 않으며  
    당신의 말씀이라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참고 견디며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만이라도...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의 간절한 마음이 변치 않기를
    기도해봅니다
    변덕많고 믿음이 부족한 헬레나이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이라도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으며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힘들고 지칠지라도....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예리고의 소경의 믿음을 본받아 교만하고 부족한 믿음을
    반성하며 겸손된 마음으로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어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아멘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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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guest 님의 말: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세가지의 생각이

    살짝 숨어버린 저를 끌어냅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는

    소경의 간절한 이 말이 저의 가슴을 아리게 했고,

    예수님께로 부르짖으며 나오는 소경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하는 이들의 모습이

    혹여 제모습은 아니었는지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삶에 지치고 힘들어 아버지를 찾았을때

    말없이 안아주시는 그 따뜻한 사랑을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라는 말씀에서

    지친 몸을 스르르 잠재우듯 깊은 정으로 와 닿기도 했답니다.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뇌리에서 맴돌았고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처럼 애절하고 간절하게 아버지를 불러 본 적이 있는지를

    새삼 반성하는 날입니다.

    아버지의 그러한 사랑을 제가 식지않게

    잘 간직하며 살아왔는지요.

    소경이 아니면서 소경보다 더 불쌍한 삶이

    저를 눈멀게 하진 않았을까도 반성해 봅니다.

    볼눈이 있지만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볼눈이 있지만

     아버지의 일과 세상일을 바로 보지 못한 어리석은 자가

    바로 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몰려옵니다.

    겉을 보고 다 아는 것처럼 단정짖는 것,

    일면만보고 속을 다 정리해 버리는 것,

    하얀 백지위에 제 눈으로 해석한 것들을 늘어 놓으면서

    전체를 다 본듯이 한폭의 풍경화를 해석하는 어리석은 이가

    바로 저이진 않았는지~~

    아버지를 사랑한다 입으로만 고백하면서

    저의 눈에 먼지가 잔뜩 끼어있음도 모르고

    제 맘의 움직임으로만

    보고 말한적은 없는지도 깊이 반성해 보았습니다.

    앞못보는 소경보다 더 못한 삶이

    두 손을 모으지 못하게 하진 않았는지…..

    차라리 소경이었다면 겸손과 사랑이 있었을텐데….

    사랑이신 아버지!

    예리코의 한 소경이 간절한 믿음으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고백하는 모습이

    제 가슴에 아리게 와 닿았습니다.

    소경의 모습에 비해 너무나 보잘것 없는 저가

    드러나는 듯 합니다.

    삶에 지쳐 힘들면 아버지를 찾고 청하고,

    별일없이 무탄하면 잊고 살면서

    형식적인 전례에 저를 묻으며

    나름 그것이 잘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무뎌지진 않았는지…

    매일미사에 참여하면서 아버지의 향을 맡는 듯 하지만

    진정으로 그 향을 맡았는지..

    눈이 있되 보지를 못했고

    귀가 있되 듣지를 못했고

    머리가 있되 바로 새기지를 못했고

    입이 있되 옳음을 말하지 못한 무지하고 부족한 이가

    바로 저임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예리코 소경의 애절하고 간절한 믿음이

    제 믿음이 될 수 있게 은총주소서.

    그리하여 제 삶에 모든 밑바탕이

    아버지의 사랑에서 우러나는 것임을 깊이 깨달아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열심히 묵상하게 하시어

    가슴깊이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을 고백하게 하소서.

    아멘.

  7. user#0 님의 말: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세가지의 생각이

    살짝 숨어버린 저를 끌어냅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는

    소경의 간절한 이 말이 저의 가슴을 아리게 했고,

    예수님께로 부르짖으며 나오는 소경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하는 이들의 모습이

    혹여 제모습은 아니었는지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삶에 지치고 힘들어 아버지를 찾았을때

    말없이 안아주시는 그 따뜻한 사랑을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라는 말씀에서

    지친 몸을 스르르 잠재우듯 깊은 정으로 와 닿기도 했답니다.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뇌리에서 맴돌았고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처럼 애절하고 간절하게 아버지를 불러 본 적이 있는지를

    새삼 반성하는 날입니다.

    아버지의 그러한 사랑을 제가 식지않게

    잘 간직하며 살아왔는지요.

    소경이 아니면서 소경보다 더 불쌍한 삶이

    저를 눈멀게 하진 않았을까도 반성해 봅니다.

    볼눈이 있지만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볼눈이 있지만

     아버지의 일과 세상일을 바로 보지 못한 어리석은 자가

    바로 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몰려옵니다.

    겉을 보고 다 아는 것처럼 단정짖는 것,

    일면만보고 속을 다 정리해 버리는 것,

    하얀 백지위에 제 눈으로 해석한 것들을 늘어 놓으면서

    전체를 다 본듯이 한폭의 풍경화를 해석하는 어리석은 이가

    바로 저이진 않았는지~~

    아버지를 사랑한다 입으로만 고백하면서

    저의 눈에 먼지가 잔뜩 끼어있음도 모르고

    제 맘의 움직임으로만

    보고 말한적은 없는지도 깊이 반성해 보았습니다.

    앞못보는 소경보다 더 못한 삶이

    두 손을 모으지 못하게 하진 않았는지…..

    차라리 소경이었다면 겸손과 사랑이 있었을텐데….

    사랑이신 아버지!

    예리코의 한 소경이 간절한 믿음으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고백하는 모습이

    제 가슴에 아리게 와 닿았습니다.

    소경의 모습에 비해 너무나 보잘것 없는 저가

    드러나는 듯 합니다.

    삶에 지쳐 힘들면 아버지를 찾고 청하고,

    별일없이 무탄하면 잊고 살면서

    형식적인 전례에 저를 묻으며

    나름 그것이 잘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무뎌지진 않았는지…

    매일미사에 참여하면서 아버지의 향을 맡는 듯 하지만

    진정으로 그 향을 맡았는지..

    눈이 있되 보지를 못했고

    귀가 있되 듣지를 못했고

    머리가 있되 바로 새기지를 못했고

    입이 있되 옳음을 말하지 못한 무지하고 부족한 이가

    바로 저임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예리코 소경의 애절하고 간절한 믿음이

    제 믿음이 될 수 있게 은총주소서.

    그리하여 제 삶에 모든 밑바탕이

    아버지의 사랑에서 우러나는 것임을 깊이 깨달아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열심히 묵상하게 하시어

    가슴깊이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을 고백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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