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연중 제33주간 수요일(11/19)


    말씀의 초대
    주인은 종들에게 열 미나의 돈을 나누어 주었다. 어떤 종은 열 배의 이윤을 남겼다. 능력 있는 종이다. 하지만 돈을 갖고만 있던 다른 종은 꾸중을 듣고 빼앗긴다. 미나는 능력이다. 주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이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그런 능력을 주셨다(복음).
    복음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1-28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미나’는 예수님 시대의 그리스 화폐 단위로 ‘100데나리온’과 가치가 같았다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로마의 은전으로 노동자 하루의 품삯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미나는 노동자 100일의 품삯에 해당되는 큰돈입니다. 오늘 복음은 왕권을 쥐게 된 어떤 귀족이 자신의 종들에게 한 미나의 거금을 나누어 주는 비유 이야기입니다. 어떤 종은 그 돈으로 열 미나의 이윤을 남깁니다. 대단한 종입니다. 귀족은 그에게 열 고을을 맡기지요.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종입니다. 그런데 한 미나의 돈을 수건에 그대로 싸 두었던 종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화를 내며 그의 돈을 빼앗아 열 미나를 남긴 종에게 주라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해도 어리석은 종입니다. 주인의 말처럼 은행에 넣어만 두었더라도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미나는 능력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능력입니다. 활용하지 않고 그대로 썩힌다면 주님의 질책은 당연한 일입니다. 미나는 또한 가족이나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좋은 성격일 수도 있습니다. 이 역시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기쁨을 만들며 살라고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열 개는 아니더라도 다섯 개의 이윤은 남겨야 합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주어진 ‘미나’를 빨리 찾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삶은 분명히 달라집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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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33주간 수요일(11/19)


      말씀의 초대
      주인은 종들에게 열 미나의 돈을 나누어 주었다. 어떤 종은 열 배의 이윤을 남겼다. 능력 있는 종이다. 하지만 돈을 갖고만 있던 다른 종은 꾸중을 듣고 빼앗긴다. 미나는 능력이다. 주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이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그런 능력을 주셨다(복음).
      복음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1-28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미나’는 예수님 시대의 그리스 화폐 단위로 ‘100데나리온’과 가치가 같았다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로마의 은전으로 노동자 하루의 품삯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미나는 노동자 100일의 품삯에 해당되는 큰돈입니다. 오늘 복음은 왕권을 쥐게 된 어떤 귀족이 자신의 종들에게 한 미나의 거금을 나누어 주는 비유 이야기입니다. 어떤 종은 그 돈으로 열 미나의 이윤을 남깁니다. 대단한 종입니다. 귀족은 그에게 열 고을을 맡기지요.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종입니다. 그런데 한 미나의 돈을 수건에 그대로 싸 두었던 종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화를 내며 그의 돈을 빼앗아 열 미나를 남긴 종에게 주라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해도 어리석은 종입니다. 주인의 말처럼 은행에 넣어만 두었더라도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미나는 능력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능력입니다. 활용하지 않고 그대로 썩힌다면 주님의 질책은 당연한 일입니다. 미나는 또한 가족이나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좋은 성격일 수도 있습니다. 이 역시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기쁨을 만들며 살라고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열 개는 아니더라도 다섯 개의 이윤은 남겨야 합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주어진 ‘미나’를 빨리 찾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삶은 분명히 달라집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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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33주간 수요일(11/19)


      말씀의 초대
      묵시록의 저자는 천상의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물네 명의 원로들이 거룩하심을 노래하고 있다. 그들은 천상 세계로 들어간 지도자들이다. 스물넷은 열두 지파의 곱이다. 유다인과 이방인 전부를 상징한다(제1독서).
      제1독서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4,1-11 나 요한이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들었던 그 목소리, 곧 나팔 소리같이 울리며 나에게 말하던 그 목소리가, “이리 올라오너라. 이다음에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곧바로 성령께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하늘에는 또 어좌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어좌에는 어떤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거기에 앉아 계신 분은 벽옥과 홍옥같이 보이셨고, 어좌 둘레에는 취옥같이 보이는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그 어좌 둘레에는 또 다른 어좌 스물네 개가 있는데, 거기에는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쓴 원로 스물네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어좌에서는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좌 앞에서는 일곱 횃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또 그 어좌 앞에는 수정처럼 보이는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좌 한가운데와 그 둘레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황소 같았으며,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습니다. 그 네 생물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개씩 가졌는데, 사방으로 또 안으로 눈이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낮 쉬지 않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 어좌에 앉아 계시며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생물들이 영광과 영예와 감사를 드릴 때마다, 스물네 원로는 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금관을 어좌 앞에 던지며 외쳤습니다. “주님, 저희의 하느님, 주님은 영광과 영예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님의 뜻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고 창조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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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미나(금화)의 비유

    1. 말씀읽기:루카 19,11-28 미나의 비유 (마태 25,14-30)

    2. 말씀연구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미나(금화)의 비유를 통해서 설명을 해 주십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리라고 생각하던 그 사람들도 미나(금화)의 비유를 통해서 자신들의 현 주소를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미나(금화)의 비유는 그리스도가 곧 오신다는 그와 같은 열광적인 희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며 우리의 자세를 말씀해 주는 비유입니다. 그런데 미나(금화) 하나를 예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셨는데 나는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벌 받은 종은 수건에 쌓아서 묻어 두었지만 저는 어디에다 두었는지도 모르고 있으니 큰일입니다. 하루 빨리 나에게 맡겨진 미나(금화)를 찾아서 예수님의 뜻대로 관리해야 하겠습니다.


    11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덧붙여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과월절 축제 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수많은 순례객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기념하러 떼를 지어 거룩한 도시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는 다윗 왕국의 수복에 대한 커다란 희망이 솟아올랐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라는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가 언제냐?”인 것입니다. 백성들은 하느님 나라가 당장 나타날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들어서 그들 마음에 준비하는 자세를 심어 주려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미나(금화)의 비유를 통해서 당신의 재림이 곧 시작된다는 사람들의 기대가 잘못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시대적 배경: 이 비유가 발설된 장소 예리코는 아르켈라오의 영토였습니다. 헤로데의 유언에 의하면 그의 세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와 필립보와 아르켈라오는 아버지의 영토를 나누어 가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아르켈라오는 유대를 차지하고 왕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먼저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의 승인을 얻어야만 했습니다. 그는 로마로 갔지만 그의 신하들은 그가 잔인하기 때문에 그를 미워했습니다. 오십 명의 유대인 대표단이 아르켈라오의 소망을 좌절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아우구스토는 아르켈라오가 스스로를 입증할 때까지 겨우 영주라는 칭호를 주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그 당대의 사건들에서 착상을 얻은 것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당신을 아르켈라오에 비유하십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왕좌의 권리를 찾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왕권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떠나기 전에 귀족은 신하들의 충실성을 시험해 보려고 저마다 미나(금화) 한 개씩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귀족은(왕위 청구자) 자기가 없는 동안 “종”들에게 어느 정도의 돈을 맡겨 그들이 그것을 가지고 장사를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종들이 받은 미나(금화) 한 개는 대단한 액수는 아닙니다. 일꾼이 3개월 동안에 벌 수 있는 금액입니다(하루 3만원*90일=2백7십만원 정도). 그 종들은 작은 것으로 그들의 충실성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재산(믿음, 사랑, 선교활동 등 )을 관리하게 하십니다. 나 또한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것들을 충실히 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가까운 신하들이 아르킬라오의 즉위를 원치 않았다는 이 사건은 역사적 사실이었습니다. 어느 유다인의 당파는 아르켈라오가 왕위를 얻지 못하도록 하려고 아우구스토 황제에게 사신을 보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나라를 발전시키려고 하셨을 때, 유다 백성들은 반감을 가지고 방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구원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과 자신들의 편협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박해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르켈라오의 이야기를 통해서 당신을 반대하고 박해하는 유다인들의 모습을 이야기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처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십니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아르켈라오는 왕권을 받아오지 못했지만 이 비유에서 그 귀족은 왕권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종들과 셈을 치르기 위해 종들을 불렀습니다. 이것은 마치 최후의 심판을 보는 듯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돌아오시면 그분은 나에게 맡기신 것, 내가 관리한 결과물을 요구하실 것입니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그런데 첫째 종은 금화 하나를 열개로 늘렸습니다. 둘째 종은 다섯 개로 늘렸습니다. 이 두 종은 그들의 돈을 성공적으로 관리하였습니다. 이들은 작은 일에 충성을 다 하였기에 그들이 번 이익에 상응하는 수의 도시를 다스리는 사람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주님의 날에 이렇게 충성스러운 종처럼 그렇게 영광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면 공동체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을 하기에 나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영광을 못 받으십니다.


    그런데 문제의 종이 등장합니다.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이 종은 자신에게 맡겨진 돈을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의 뜻을 받들지 않았습니다. 왜그랬을까요? 아마 이 종도 주인이 왕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싫어했을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주인을 지독한 폭군, 탐욕스러운 장사꾼, 자기 중심주의자라고 비난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안전하게 처신하기로 작정하였고 아무런 모험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비유는 형식적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을 무자비한 청구자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을 문자 그래도 지키는 데 빈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둘레에 침범할 수 없는 울타리를 쳐 놓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지켰지만 아무런 모험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이 종이 수건으로 자신의 미나(금화)를 쌓아 둔 것처럼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자체이심을 몰랐기에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었을 때, 오히려 예수님을 박해했던 것입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하느님은 두려운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을 두려운 분으로 생각하여 하느님께 모욕을 드린다면 하느님께서도 당신 자비를 거두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시어 당신 외아들까지 내어주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불평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맡은 것은 하나도 되지 않습니다. 그는 그것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이런 저런 말들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 주위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 일 수 있습니다.

    이제 그 귀족은 종에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즉 최소한이라도 했다면 조금이라도 이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고자만 한다면 됩니다. 안 하려고 하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왕위를 받아온 귀족은 자기 돈을 돌려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종들에게 장사를 해보라고 하였지만 이 종은 주인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귀족은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는 가진 것마저 빼앗겼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충실하고 성실한 사람이길 원하십니다. 대담하고 활기차기를, 분별 있게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나는, 그리고 노력하여 주님께 기쁨을 드릴 나는 그냥 주저앉아 있으면서 탓만을 하면서 살아가면 안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이 종처럼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25 ─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

    주인은 종들에게 한 미나 씩을 맡긴 것이 아니라 주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인은 종들을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종들은 주인을 잘못 알았습니다. 못된 종에게서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라고 말씀하시자 다른 이들이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있는데 왜 더 주시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을 통해서 주인의 뜻이 밝혀지겠지만 이 말을 한 의도가 열 미나를 가진 이를 시기하거나 경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으면 합니다.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잘 들어라.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겠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주인의 결정은 놀랍기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삶을 돌아다보면 이 말씀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당에서 회의를 하는데 한 형제가 “한 사람이 여러 일이 아니라 하나씩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었습니다. 물론 사람이 많으면 당연히 그렇게 하면 좋습니다. 그런데 시골 본당에서는 사람이 없다보니 이 사람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합니다. 그런데 특징은 하나를 잘 하는 사람은 다른 하나를 더 잘 하고, 하나를 잘 못하는 사람은 다른 것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안전함은 모든 것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이익을 남기는 데 있다.”고 합니다. 제자의 삶은 가진 것을 활용함 없이 평화롭게 소유하거나 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의 삶은 끊임없는 도전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라는 것이고, 선교여행을 떠날 때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기 가정, 자기 형제, 자기 본당만 생각한다면 이 다음에 이 불충실한 종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잘못 이해하면 내 가정, 내 형제, 내 본당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행한 사람이 받게 될 것이 무엇인지 오늘 이 종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은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 마지막에 하느님께서 하실 일은 그것을 도로 회수하시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몹쓸 종에게 내리는 벌입니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아르켈라오는 바라던 그 왕위를 얻지 못한 채 돌아왔을 때 자기의 반대자들에게 끔찍스러운 복수를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재림하실 때 심판관으로 행동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끔찍하게 우리를 다루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명심해야 할 것은 내가 게으른 종처럼 그렇게 행동할 때 나는 결코 예수님께서 주시는 축복에 참여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미나(금화)의 비유로서 메시아의 찬란한 출현을 기다리고 있던 군중의 기대를 잠재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유혹을 늘 물리치셨습니다. 그럴 계획이시라면 결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말구유에서 태어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왕권은 내어줌에서 시작되어 내어줌으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렇게 내어주는 삶을 바라시며 나 또한 그렇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시어 나에게 영원한 행복을 주실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상을 받은 종들과 벌을 받은 종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②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 내가 체험한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혹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종처럼 그렇게 무서운 분으로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시다.


    ③ 수건으로 금화를 쌓아둔 종의 모습은 마치 나만을 생각하는,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그런 신앙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지, 내가 다른 공동체, 다른 본당을 위하여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4. guest 님의 말: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예전에 본당에서 봉사를 하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그때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정도로 
    눈만 뜨면 성당으로 달려 갔습니다  
    이 단체 일을 하고나면 다른 단체 일이...
    그리고 또 다른 단체 일로  세속의 사람들과는
    담(?)을 쌓을 정도로 성당 일로 바빴습니다
    그때 ...
    힘이 들다보니 봉사하지 않는 형제자매들이 부럽기도 하고 
    어느 때는 왜 나만 뼈(?)빠지게 봉사를 해야하나?
    언제나 하는 사람만 봉사를 하니 능률이 오르지 않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짜증이 날때도 있었습니다

    몇년이 지난 요즈음...
    모든 직책 내어놓고 주일만 겨우 지키는 발바닥 신자가 되니
    힘들고 짜증이 나서 지겹다고 생각되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해야 될 일이면 기쁜마음으로 봉사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봉사도 때가 있다는 것을...
    신앙생활을 하는동안 가장 행복할 때가 그때 였음도...
    그렇다고 요즈음이 신앙이 없어 진 것은 아니지만...
    사실 냉정하게 판단을 한다면  정신없이 봉사를 했을 때보다
    바빠서 겨우 주일만 지키는 발바닥신자신세인 요즈음이 영적으로는
    더 성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유는 저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게 되니 지난 날을 반성도 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시간을 갖게 되니 봉사한다고 거들먹 거리던
    그때보다 겸손해진 것같은 생각에 봉사하지 못해 죄책감이 드는
    자신을 위로도 하게 되어 봉사를 한다고  영적으로 성장이 되는
    것만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제가 이만큼 영적으로 성장하고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된것
    모두가 예전에 봉사를 열심히  했기에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기쁩니다
    하느님의 사업은 공짜가  없다는 생각도 들고....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의 이런 생각모두가 당신께서 저에게 지혜를 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행복합니다
    쥐꼬이 만한  봉사를 한 댓가로 (그때는 봉사는 혼자하는 것같은
    교만한 생각이었지만)
    아무튼....
    당신께서는 
    당신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주신다는 사실을깨닫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지요
    당신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지위도 물질도 지혜가 없어도
    세속에서 말하는 소위 “빽”이라는 것이 없어도
    당신의 나라를 갈수 있다는 은총을 주시니 이익이 엄청나게 많이
    남는 장사임에 틀림이 없으니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행복합니다 이 순간만은.....
    복음을 묵상하면서 갑부가 된 느낌이 드니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아니!
    당신을 사랑해야 당신을 믿어야만이 영생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비록 복음을 묵상할때만의 일시적인 기분이지만
    그래도 기쁩니다 행복합니다
    당신을 믿는 이유를 확실하게 깨달으니 복음을 묵상해야 하는
    이유를  당신의 자녀라면 당신을 믿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 지를 깨닫게 되어 기쁩니다
    이제....
    원인을 알았으니 제가 할 일이 무엇인지
    힘들고 지칠지라도 어렵지만 복음을 묵상해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말씀을 성찰하며
    작은 일에 성실히 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보내노니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아멘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묵상하며

    ♬ 님쓰신 가시관


  5. guest 님의 말:

    나의 미나는 얼마만큼 있는걸까…
    알수가 없다.
    그래서 헤매이나 보다.
    하느님이 묻는다면 할말이 없다.

    내가 별것인가
    가시덤불로 철옹벽을 치고 살 필요가 뭐가 있던가.
    그속에 미나를 꽁꽁 숨기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느꼈다면 걷어내야 한다.
    그래서 타인이 기뻐하고 이웃들이 그분을 알게 된다면
    상대방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받아들이고 사는 거다.

    어제는 친구들과 많은 얘기를 했다.
    삶이 달라서 그런지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의 차이로 여럿이 만나는 것을 되도록 피해 왔는데
    어제는 그들이 하자는 대로 했다.
    뭐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라는 생각을 해봤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바로 이방언의 이글이었다.
    기회주의자같은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지금에 와서 “뭐~~따져”라는 생각을 해봤다.
    좋은게 좋은거지
    너 기쁘고 나 기쁘면 좋은게 아닌가.
    결론은 모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용서하고 이해하면 되는게 아닌가?
    “네 죄는 네 것이고 내 용서와 이해함은 내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를 변화시키니 참 쉽다.
    마음도 편해진다.
    내틀을 깨고 나니 뭔가 내가 없어지고 망가진 느낌은 들었지만
    모두들 좋아하니 정말 좋은게 좋은거로구나 싶다.

    나는 그분이 두려운게 아니라
    내가 두려웠다.
    내죄로 인해 그분을 잃어버릴까봐…

    아! 과연 나는 내 미나는 잘 쓰고 있는가…
    오늘은 감실앞에서 조용히 묵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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