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의 비유, 금화의 비유

 

미나(금화)의 비유

1. 말씀읽기:루카 19,11-28 미나의 비유 (마태 25,14-30)

2. 말씀연구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미나(금화)의 비유를 통해서 설명을 해 주십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리라고 생각하던 그 사람들도 미나(금화)의 비유를 통해서 자신들의 현 주소를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미나(금화)의 비유는 그리스도가 곧 오신다는 그와 같은 열광적인 희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며 우리의 자세를 말씀해 주는 비유입니다. 그런데 미나(금화) 하나를 예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셨는데 나는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벌 받은 종은 수건에 쌓아서 묻어 두었지만 저는 어디에다 두었는지도 모르고 있으니 큰일입니다. 하루 빨리 나에게 맡겨진 미나(금화)를 찾아서 예수님의 뜻대로 관리해야 하겠습니다.



11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덧붙여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과월절 축제 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수많은 순례객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기념하러 떼를 지어 거룩한 도시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는 다윗 왕국의 수복에 대한 커다란 희망이 솟아올랐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라는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가 언제냐?”인 것입니다. 백성들은 하느님 나라가 당장 나타날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들어서 그들 마음에 준비하는 자세를 심어 주려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미나(금화)의 비유를 통해서 당신의 재림이 곧 시작된다는 사람들의 기대가 잘못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시대적 배경: 이 비유가 발설된 장소 예리코는 아르켈라오의 영토였습니다. 헤로데의 유언에 의하면 그의 세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와 필립보와 아르켈라오는 아버지의 영토를 나누어 가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아르켈라오는 유대를 차지하고 왕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먼저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의 승인을 얻어야만 했습니다. 그는 로마로 갔지만 그의 신하들은 그가 잔인하기 때문에 그를 미워했습니다. 오십 명의 유대인 대표단이 아르켈라오의 소망을 좌절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아우구스토는 아르켈라오가 스스로를 입증할 때까지 겨우 영주라는 칭호를 주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그 당대의 사건들에서 착상을 얻은 것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당신을 아르켈라오에 비유하십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왕좌의 권리를 찾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왕권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떠나기 전에 귀족은 신하들의 충실성을 시험해 보려고 저마다 미나(금화) 한 개씩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귀족은(왕위 청구자) 자기가 없는 동안 “종”들에게 어느 정도의 돈을 맡겨 그들이 그것을 가지고 장사를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종들이 받은 미나(금화) 한 개는 대단한 액수는 아닙니다. 일꾼이 3개월 동안에 벌 수 있는 금액입니다(하루 3만원*90일=2백7십만원 정도). 그 종들은 작은 것으로 그들의 충실성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재산(믿음, 사랑, 선교활동 등 )을 관리하게 하십니다. 나 또한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것들을 충실히 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가까운 신하들이 아르킬라오의 즉위를 원치 않았다는 이 사건은 역사적 사실이었습니다. 어느 유다인의 당파는 아르켈라오가 왕위를 얻지 못하도록 하려고 아우구스토 황제에게 사신을 보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나라를 발전시키려고 하셨을 때, 유다 백성들은 반감을 가지고 방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구원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과 자신들의 편협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박해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르켈라오의 이야기를 통해서 당신을 반대하고 박해하는 유다인들의 모습을 이야기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처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십니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아르켈라오는 왕권을 받아오지 못했지만 이 비유에서 그 귀족은 왕권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종들과 셈을 치르기 위해 종들을 불렀습니다. 이것은 마치 최후의 심판을 보는 듯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돌아오시면 그분은 나에게 맡기신 것, 내가 관리한 결과물을 요구하실 것입니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그런데 첫째 종은 금화 하나를 열개로 늘렸습니다. 둘째 종은 다섯 개로 늘렸습니다. 이 두 종은 그들의 돈을 성공적으로 관리하였습니다. 이들은 작은 일에 충성을 다 하였기에 그들이 번 이익에 상응하는 수의 도시를 다스리는 사람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주님의 날에 이렇게 충성스러운 종처럼 그렇게 영광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면 공동체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을 하기에 나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영광을 못 받으십니다.



그런데 문제의 종이 등장합니다.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이 종은 자신에게 맡겨진 돈을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의 뜻을 받들지 않았습니다. 왜그랬을까요? 아마 이 종도 주인이 왕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싫어했을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주인을 지독한 폭군, 탐욕스러운 장사꾼, 자기 중심주의자라고 비난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안전하게 처신하기로 작정하였고 아무런 모험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비유는 형식적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을 무자비한 청구자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을 문자 그래도 지키는 데 빈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둘레에 침범할 수 없는 울타리를 쳐 놓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지켰지만 아무런 모험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이 종이 수건으로 자신의 미나(금화)를 쌓아 둔 것처럼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자체이심을 몰랐기에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었을 때, 오히려 예수님을 박해했던 것입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하느님은 두려운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을 두려운 분으로 생각하여 하느님께 모욕을 드린다면 하느님께서도 당신 자비를 거두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시어 당신 외아들까지 내어주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불평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맡은 것은 하나도 되지 않습니다. 그는 그것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이런 저런 말들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 주위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 일 수 있습니다.

이제 그 귀족은 종에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즉 최소한이라도 했다면 조금이라도 이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고자만 한다면 됩니다. 안 하려고 하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왕위를 받아온 귀족은 자기 돈을 돌려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종들에게 장사를 해보라고 하였지만 이 종은 주인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귀족은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는 가진 것마저 빼앗겼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충실하고 성실한 사람이길 원하십니다. 대담하고 활기차기를, 분별 있게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나는, 그리고 노력하여 주님께 기쁨을 드릴 나는 그냥 주저앉아 있으면서 탓만을 하면서 살아가면 안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이 종처럼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25 ─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

주인은 종들에게 한 미나 씩을 맡긴 것이 아니라 주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인은 종들을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종들은 주인을 잘못 알았습니다. 못된 종에게서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라고 말씀하시자 다른 이들이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있는데 왜 더 주시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을 통해서 주인의 뜻이 밝혀지겠지만 이 말을 한 의도가 열 미나를 가진 이를 시기하거나 경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으면 합니다.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잘 들어라.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겠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주인의 결정은 놀랍기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삶을 돌아다보면 이 말씀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당에서 회의를 하는데 한 형제가 “한 사람이 여러 일이 아니라 하나씩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었습니다. 물론 사람이 많으면 당연히 그렇게 하면 좋습니다. 그런데 시골 본당에서는 사람이 없다보니 이 사람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합니다. 그런데 특징은 하나를 잘 하는 사람은 다른 하나를 더 잘 하고, 하나를 잘 못하는 사람은 다른 것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안전함은 모든 것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이익을 남기는 데 있다.”고 합니다. 제자의 삶은 가진 것을 활용함 없이 평화롭게 소유하거나 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의 삶은 끊임없는 도전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라는 것이고, 선교여행을 떠날 때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기 가정, 자기 형제, 자기 본당만 생각한다면 이 다음에 이 불충실한 종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잘못 이해하면 내 가정, 내 형제, 내 본당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행한 사람이 받게 될 것이 무엇인지 오늘 이 종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은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 마지막에 하느님께서 하실 일은 그것을 도로 회수하시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몹쓸 종에게 내리는 벌입니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아르켈라오는 바라던 그 왕위를 얻지 못한 채 돌아왔을 때 자기의 반대자들에게 끔찍스러운 복수를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재림하실 때 심판관으로 행동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끔찍하게 우리를 다루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명심해야 할 것은 내가 게으른 종처럼 그렇게 행동할 때 나는 결코 예수님께서 주시는 축복에 참여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미나(금화)의 비유로서 메시아의 찬란한 출현을 기다리고 있던 군중의 기대를 잠재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유혹을 늘 물리치셨습니다. 그럴 계획이시라면 결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말구유에서 태어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왕권은 내어줌에서 시작되어 내어줌으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렇게 내어주는 삶을 바라시며 나 또한 그렇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시어 나에게 영원한 행복을 주실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상을 받은 종들과 벌을 받은 종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②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 내가 체험한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혹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종처럼 그렇게 무서운 분으로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시다.



③ 수건으로 금화를 쌓아둔 종의 모습은 마치 나만을 생각하는,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그런 신앙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지, 내가 다른 공동체, 다른 본당을 위하여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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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의 비유, 금화의 비유에 1개의 응답

  1. ^*^ 님의 말:

    성실한 사람이 있고,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참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불성실한 사람은 참 말이 많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실하게 살아갑시다.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그리고 그렇게 성실하게 살아가면서 내 수준을 끌어 올립시다.
    손에서 장풍도 나가고(^*^)
    이해심 많고
    열정적이고
    사랑 지극하고
    기도하면 분심없이 금방 깊은 단계까지 이르고
    싸울 일 안하고
    시기나 질투, 분열을 일으키지 않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 칭찬하며
    내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채우려 노력하고
    ..
    그래서 존경 받는 사람으로…

    그 수준에 오르기 위해 노력합시다.

    나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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