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연중 제33주간 목요일(11/20)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신다. 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철저하게 주님의 보호로 건설된 도시였다. 그런데 그분의 뜻을 외면하고 있다면 멸망은 당연한 귀결이다. 주님께서 보호하지 않으시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어 있다(복음).
    복음
    <네가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41-44 그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아름다운 성전이 부서지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로마 군인들에 의해 파괴됩니다. 기도의 집이 ‘전투의 장소’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유다 독립운동이 실패로 끝나자 저항군들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최후를 준비합니다. 로마 군인들은 작심하고 그들을 공격합니다. 마침내 저항군들은 지성소 안으로 피신했고, 추격하던 군인들은 횃불을 던집니다. 이렇게 해서 성전은 불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돌 위에 돌이 얹혀 있지 못할 정도’로 참혹하게 불타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일 뿐입니다. 원인은 이스라엘의 독선에 있었습니다. 종교적 우월주의에 젖어 로마의 다신교를 깔봤기 때문입니다. 투쟁하면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로마를 물리쳐 주실 것이라 여겼던 것이지요. 하느님을 자신들의 계획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위험한 발상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비참한 결과로 끝났습니다. 그토록 자랑하던 성전이 폐허로 변해 버렸습니다. 어느 사회든 무모한 사람은 있습니다. 어느 조직이든 지나친 사람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여든 사람을 흩어 버리는 지도자도 있습니다. 사랑과 애정만이 치유책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신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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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33주간 목요일(11/20)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신다. 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철저하게 주님의 보호로 건설된 도시였다. 그런데 그분의 뜻을 외면하고 있다면 멸망은 당연한 귀결이다. 주님께서 보호하지 않으시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어 있다(복음).
      복음
      <네가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41-44 그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아름다운 성전이 부서지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로마 군인들에 의해 파괴됩니다. 기도의 집이 ‘전투의 장소’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유다 독립운동이 실패로 끝나자 저항군들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최후를 준비합니다. 로마 군인들은 작심하고 그들을 공격합니다. 마침내 저항군들은 지성소 안으로 피신했고, 추격하던 군인들은 횃불을 던집니다. 이렇게 해서 성전은 불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돌 위에 돌이 얹혀 있지 못할 정도’로 참혹하게 불타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일 뿐입니다. 원인은 이스라엘의 독선에 있었습니다. 종교적 우월주의에 젖어 로마의 다신교를 깔봤기 때문입니다. 투쟁하면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로마를 물리쳐 주실 것이라 여겼던 것이지요. 하느님을 자신들의 계획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위험한 발상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비참한 결과로 끝났습니다. 그토록 자랑하던 성전이 폐허로 변해 버렸습니다. 어느 사회든 무모한 사람은 있습니다. 어느 조직이든 지나친 사람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여든 사람을 흩어 버리는 지도자도 있습니다. 사랑과 애정만이 치유책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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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33주간 목요일(11/20)


      말씀의 초대
      묵시록의 일곱은 완전을 의미한다. 일곱 번 봉인되었다면 가장 완벽한 봉인이다. 하느님의 계획을 상징하는 것이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봉인을 떼신다. 그분만이 주님의 계획을 실현하실 수 있다(제1독서).
      제1독서
      <어린양은 살해되시고, 자신의 피로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5,1-10 나 요한은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안팎으로 글이 적힌 두루마리 하나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일곱 번 봉인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또 큰 능력을 지닌 천사 하나가 큰 소리로, “이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펴기에 합당한 자 누구인가?” 하고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에도 땅 위에도 땅 아래에도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보기에 합당하다고 인정된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슬피 울었습니다. 그런데 원로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라. 보라,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여 일곱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또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사이에,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이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어린양은 뿔이 일곱이고 눈이 일곱이셨습니다. 그 일곱 눈은 온 땅에 파견된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그 어린양이 나오시어,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으셨습니다. 어린양이 두루마리를 받으시자, 네 생물과 스물네 원로가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수금과, 또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들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님께서는 두루마리를 받아 봉인을 뜯기에 합당하십니다. 주님께서 살해되시고, 또 주님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속량하시어 하느님께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한 나라를 이루고 사제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들이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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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오늘은 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이 사람에게 준 자유의 의지라는 것을 생각해 봤다.

    그리고 나를 성찰해 봤다.
    행동은 변화할 생각이 전혀없고 하느님이 어떻게 해 주겠지 바라는 마음…
    결국엔 파멸임을 느껴봤다.
    자유의지를 줬으면 알아서 해야지…
    항상 기대하고 바라면서 살고 있다.
    기회인데 모르고…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투덜되고 있었다.

    어제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아니 아침에 다 잡은 마음은 어느새 잊어버렸다.
    반복되는 상황은 나를 너무쉽게 무너뜨리고 만다.
    이렇게 쉽게 기회를 잃어버리고 사는 나.

    마귀가 날 시험하면 홀딱 넘어간다.
    가슴이 뻘겋다.
    화가 사랑을 질투하고 분노가 사랑을 방해하고 만다.
    증오가 죽고싶지? 하며 유혹할때도 있다.

    멸망을 예고하고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
    예루살렘은 내 모습이었다.
    눈물이 나는구나.
    내가 불쌍해서…
    그분의 뜻을 외면하고 사는 나.

    그분이 왜 우셔야 하는가…
    날 사랑하기 때문이다.

    주님!
    저에게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당신의 눈물을 기억하게 하소서.

  4. user#0 님의 말:

    오늘은 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이 사람에게 준 자유의 의지라는 것을 생각해 봤다.

    그리고 나를 성찰해 봤다.
    행동은 변화할 생각이 전혀없고 하느님이 어떻게 해 주겠지 바라는 마음…
    결국엔 파멸임을 느껴봤다.
    자유의지를 줬으면 알아서 해야지…
    항상 기대하고 바라면서 살고 있다.
    기회인데 모르고…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투덜되고 있었다.

    어제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아니 아침에 다 잡은 마음은 어느새 잊어버렸다.
    반복되는 상황은 나를 너무쉽게 무너뜨리고 만다.
    이렇게 쉽게 기회를 잃어버리고 사는 나.

    마귀가 날 시험하면 홀딱 넘어간다.
    가슴이 뻘겋다.
    화가 사랑을 질투하고 분노가 사랑을 방해하고 만다.
    증오가 죽고싶지? 하며 유혹할때도 있다.

    멸망을 예고하고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
    예루살렘은 내 모습이었다.
    눈물이 나는구나.
    내가 불쌍해서…
    그분의 뜻을 외면하고 사는 나.

    그분이 왜 우셔야 하는가…
    날 사랑하기 때문이다.

    주님!
    저에게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당신의 눈물을 기억하게 하소서.

  5. guest 님의 말: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말씀에 “울면서 후회하네” 유행가 가사가 생각이 났습니다

    맞아요 주님!
    제가 당신을 믿는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씀을 드릴 수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다만...
    제가 아쉽고 어려울때 절대자이신 당신께 도와달라고 하는 정도
    그 정도 입니다 솔직히 고백한다면 어느 땐 ...
    저의 생활이 즐거울때나 일이 잘 풀릴 때는 당신이 생각이
    나지 않을 때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참 이기적인 헬레나이지요?주님!
    하지만  사실입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못된 사람입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언제나 “사랑”을 말씀하셨지만...
    저는 언제나 사랑보다는 세속의 욕심과 교만으로 가득차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입으로만 “사랑”을 말했을 뿐...
    저의 삶은 “사랑의 삶”보다는 시기와 질투로 “미워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사랑”을 외칠 뿐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말씀에 당신의 절절하신 마음을 쬐끔은 알 것같습니다
    그것도 저도 자식을 키우다보니 부모의 답답한 심정을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벼랑 끝을 가는 자식들을 향한
    안타까운 부모의 심정이 당신의 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아파하는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알수 있을 것같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몰라주고 제 멋대로 살고 있는 당신께서
    안타까워 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죄만스럽습니다 주님!
    지금보다 쬐끔만 아주 쬐끔만이라도 철이 들면 좋을 텐데
    당신의 마음을 쬐끔은 덜 아프게 해드릴텐데.....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불효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최소한 당신의 말씀을 기본만이라도 들을 수 있도록
    세속적인 저의 마음으로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는
    않아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오늘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아멘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묵상하며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신상옥

  6. user#0 님의 말: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말씀에 “울면서 후회하네” 유행가 가사가 생각이 났습니다

    맞아요 주님!
    제가 당신을 믿는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씀을 드릴 수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다만...
    제가 아쉽고 어려울때 절대자이신 당신께 도와달라고 하는 정도
    그 정도 입니다 솔직히 고백한다면 어느 땐 ...
    저의 생활이 즐거울때나 일이 잘 풀릴 때는 당신이 생각이
    나지 않을 때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참 이기적인 헬레나이지요?주님!
    하지만  사실입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못된 사람입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언제나 “사랑”을 말씀하셨지만...
    저는 언제나 사랑보다는 세속의 욕심과 교만으로 가득차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입으로만 “사랑”을 말했을 뿐...
    저의 삶은 “사랑의 삶”보다는 시기와 질투로 “미워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사랑”을 외칠 뿐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말씀에 당신의 절절하신 마음을 쬐끔은 알 것같습니다
    그것도 저도 자식을 키우다보니 부모의 답답한 심정을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벼랑 끝을 가는 자식들을 향한
    안타까운 부모의 심정이 당신의 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아파하는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알수 있을 것같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몰라주고 제 멋대로 살고 있는 당신께서
    안타까워 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죄만스럽습니다 주님!
    지금보다 쬐끔만 아주 쬐끔만이라도 철이 들면 좋을 텐데
    당신의 마음을 쬐끔은 덜 아프게 해드릴텐데.....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불효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최소한 당신의 말씀을 기본만이라도 들을 수 있도록
    세속적인 저의 마음으로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는
    않아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오늘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아멘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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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guest 님의 말:

    예루살렘의 멸망을 가슴 아프게 예고하시는 예수님

    1. 말씀읽기:루카19,41-44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며 우시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셨습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사람들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이여! 찬미 받으소서. 하늘에는 평화, 하느님께 영광”을 외치며 예수님을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예루살렘 가까이에 이르러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예수님께서는 한탄하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으면 우셨을까요? 뻔히 보이는 상황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마음. 아무리 말을 해도 말을 듣지 않는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 그 부모의 마음은 눈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당신에게 그 일들을 저지들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말씀을 하십니다.

    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지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예루살렘 입성 때 어떻게 들어가셨고, 어떻게 군중들이 맞이했는지는 성지주일의 예식을 떠 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환영을 받으시면서 가시다가 예루살렘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러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42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실제로 로마는 기원 70년 4월 해방절부터 예루살렘을 포위하다가 마침내 8월 29일에 예루살렘 시내를 완전히 점령하고 성전을 불태웠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예레미야서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내 눈에서는 밤낮으로 눈물이 흘러 울음을 그칠 수가 없구나. 처녀 같은 내 딸, 이 백성이 심하게 얻어맞아 치명상을 입었다”(예레미야 14,17)

    그런데 예수님의 눈물은 당신의 무능력의 고백인지도 모릅니다. 마음 닫은 이들을 향한 무능력의 고백.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시고 병자를 고쳐 주셨으며,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세리와 죄인들을 회개시키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제 십자가에 못 박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로운 결단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시기에 인간의 자유를 빼앗기보다는 예수님 안에서 무력하게 울기를 바라신 것 같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의 눈물은 당신이 이 완고한 도시 예루살렘에 하신 마지막 회개에로의 호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곳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란 그저 하느님께서 보내신 종말론적인 평화의 임금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을 하였지만 예루살렘 주민들은 마음을 닫고 오히려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느님이 제공하신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것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43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로마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멸시켜 버렸습니다. 유행가의 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

    좀 일찍 후회하고, 좀 일찍 마음을 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나는 대부분 일이 저질러 진 상태에서 후회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것을 망각하고 살아가기에 늘 후회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결심합시다.

    44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은혜로운 방문의 결정적인 때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잘못으로 말미암아 이 때를 부여해 주심으로써 드러난 하느님의 넘치는 사랑을 깨닫거나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의 때는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세례자 요한을 낳고 입이 풀려서 예언한 말씀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찬미하여라,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을! 당신의 백성을 찾아와 해방시키셨으며…우리 하느님의 지극한 자비의 덕분으로, 떠오르는 태양이 우리를 찾아와 죽음의 그늘 밑 어둠 속에 사는 이들에게 빛을 비추고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루카1,67-79) 그래서 성무일도를 바칠 때 아침기도 때 우리는 즈카리야의 노래를 꼭 바치게 됩니다.

    예수님의 갈릴래아 활동의 절정기에,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충만한 은총으로 자기들을 찾아 주셨음을 인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평화의 임금이 그 곳에 들어 가셨을 때에 하느님의 은혜로운 방문을 깨달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사랑을 주려 하셔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십니다. 내가 예루살렘(오늘의 신앙인들)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② 내가 화해하고 용서를 청해도 받아주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혹시 다른 사람이 나에게 화를 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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