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1982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내도록 하였다.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권리가
짓밟히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려는 것이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이 그에 맞갖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자 한 것이다.
말씀의 초대
요한은 광야에 나타나 회개를 부르짖는다.
예언자 이사야는 일찍이 요한의 출현을 예고한 바 있다.
유다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가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다.
요한은 구세주께서 곧 오실 것을 선언한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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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일(12/7)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1982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내도록 하였다.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권리가 짓밟히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려는 것이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이 그에 맞갖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자 한 것이다.
말씀의 초대
요한은 광야에 나타나 회개를 부르짖는다. 예언자 이사야는 일찍이 요한의 출현을 예고한 바 있다. 유다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가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다. 요한은 구세주께서 곧 오실 것을 선언한다(복음).
복음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8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다. 이사야 예언자의 글에,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기록된 대로,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그리하여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모두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 그리고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은 두 번째 맞이하는 대림 주일입니다. 요한은 광야에 나타나 회개와 세례를 외칩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죄 사함이 어려웠습니다. 속죄제는 까다로웠고 제물은 부담스러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례자 요한의 외침이 나타난 것입니다. ‘요르단 강 물에 들어가 씻기만 하여라. 그러면 그대의 모든 죄가 사해질 것이다.’ 가난하고 무지했던 보통 사람들은 놀라고 기뻐하며 그의 말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습니다. 물에 들어가기 전 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버리고 새 삶을 결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단순한 동작을 통해 ‘사랑의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회개는 이렇듯 은총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예비 동작이 회개인 것이지요. 그러니 뉘우침만 의식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더 중시해야 합니다. 인생길에서 잘못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은 요한의 회개를 묵상하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날입니다. 이것이 대림 두 번째 주일의 메시지입니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라도 축복입니다. 그런 마음 자세는 아무 때나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대림 시기의 은총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대림 제2주일(12/7)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로하실 것이다. 속죄가 끝났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올바르게 사는 일뿐이다. 굽은 것은 곧게 하고, 거칠고 험한 것은 편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분께서는 권능과 함께 오실 것이다(제1독서).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그분은 시간의 지배를 받는 분이 아니시다. 시간 역시 그분께서 만드신 피조물인 것이다. 그분께서 오시는 날까지 흠 없이 살도록 해야 한다(제2독서).
제1독서
<너희는 주님의 길을 닦아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0,1-5.9-11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어린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베드로 2서의 말씀입니다. 3,8-14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올 것입니다. 그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스러지며, 땅과 그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스러질 터인데,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거룩하고 신심 깊은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날이 오면 하늘은 불길에 싸여 스러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녹아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는 세례자 요한!
고행의 삶을 살아가며
말합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라고 ~~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선포하며
길을 닦는 세례자 요한!
“와! 멋있다.”
라는 생각만이 제 머리에서 맴돌았습니다.
제 마음과 가슴에 함께 하는 아버지!
전 아버지를 위해,
아니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빛내기 위해
무엇을 한 자식인가!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아버지 오실 길을 닦고
지극히 겸손되이 자신을 낮추이며
아버지를 드러내 보이는 그 모습에서
정말 작아지는 저의 모습이 보였답니다.
겸손과 회개!
이 두 단어가 제 뇌리에서 떠날 줄을 모르는 시간입니다.
전엔 회개라는 단어조차 생소할 정도로
저를 돌아보거나 반성하거나
뉘우칠 줄을 몰랐던 저였지요.
그치만 아버지를 알고서 제게도 변화가 생겼죠?
허긴 변화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래도
저밖에 모르는 이기덩어리로~
저가 모자란 구석이 없다는 착각속에서
헤어나질 못했는데,
이젠 아주 아주 쬐끔은 변화가 된 것 같아요.
말씀이 저를 고개숙이게 했고,
말씀이 저의 위치를 낮추이게 했고,
말씀이 저의 길을 비춰주었기에
흙구덩이에 빠지지 않고
바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답니다.
맞다!
때론 반항을 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도 했지요? ㅎㅎ
저를 낮추이는 부분에서
“왜 저만 져야해요?”
“왜 저만 고개숙여야 되나요?”
“왜 저만 바보가 되어야 하나요?”
“아버지! 이러다 저 진짜 바보되면 어떡해요?”
라고 하면서 맘 아프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
이젠 저 많이 씩씩해 졌답니다. ㅎㅎ
세례자 요한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열정으로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
아버지께서 채워주실 것이니까
전 맘과 가슴으로 나아간답니다.
촛불 두 개를 밝히고 아버지앞에서 수다떨고 있으니까
몸이 스펀지처럼 가벼워 졌네요.
무지 바쁘고 힘든 하루였는데
말씀속에서 머물면서
다시 충전을 하였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세례자 요한이 말하지요.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라고 ~~
뒤에 오실 분을 위해 길을 닦고
자신을 낮추이며 그분을 드러내 보이시는 그 모습!
정말 작아짐을 느낍니다.
전 과연 아버지의 딸로써 무엇을 했을까요?
어떻게 길을 닦았으며,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게
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참 한게 없지요?
아마도 일상에 쫒기어 몸이 바쁜 것을
아버지의 일로 바쁜것이라 착각했었나 봅니다.
아버지!
저 가냘프고 힘이 없어 보이는 촛불이지만
작은 빛이 어둠을 가시게 하는 것처럼
저의 작은 마음일지라도
그것이 아버지를 위한 것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저를 낯추임에
그 빛이 더 밝아짐을 깨닫게 하소서.
비록 광야에서 아버지의 길을 닦진 못할지라도
늘 말씀속에서 제 삶의 길을 닦게 하시고
겸손의 포장을 깔아
아버지 오실 때 환한 미소 지으실 수 있게
늘 깨어 기도하며
움직이는 저가 되게 은총주소서.
아멘.
사랑합니다.^*^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는 세례자 요한!
고행의 삶을 살아가며
말합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라고 ~~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선포하며
길을 닦는 세례자 요한!
“와! 멋있다.”
라는 생각만이 제 머리에서 맴돌았습니다.
제 마음과 가슴에 함께 하는 아버지!
전 아버지를 위해,
아니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빛내기 위해
무엇을 한 자식인가!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아버지 오실 길을 닦고
지극히 겸손되이 자신을 낮추이며
아버지를 드러내 보이는 그 모습에서
정말 작아지는 저의 모습이 보였답니다.
겸손과 회개!
이 두 단어가 제 뇌리에서 떠날 줄을 모르는 시간입니다.
전엔 회개라는 단어조차 생소할 정도로
저를 돌아보거나 반성하거나
뉘우칠 줄을 몰랐던 저였지요.
그치만 아버지를 알고서 제게도 변화가 생겼죠?
허긴 변화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래도
저밖에 모르는 이기덩어리로~
저가 모자란 구석이 없다는 착각속에서
헤어나질 못했는데,
이젠 아주 아주 쬐끔은 변화가 된 것 같아요.
말씀이 저를 고개숙이게 했고,
말씀이 저의 위치를 낮추이게 했고,
말씀이 저의 길을 비춰주었기에
흙구덩이에 빠지지 않고
바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답니다.
맞다!
때론 반항을 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도 했지요? ㅎㅎ
저를 낮추이는 부분에서
“왜 저만 져야해요?”
“왜 저만 고개숙여야 되나요?”
“왜 저만 바보가 되어야 하나요?”
“아버지! 이러다 저 진짜 바보되면 어떡해요?”
라고 하면서 맘 아프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
이젠 저 많이 씩씩해 졌답니다. ㅎㅎ
세례자 요한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열정으로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
아버지께서 채워주실 것이니까
전 맘과 가슴으로 나아간답니다.
촛불 두 개를 밝히고 아버지앞에서 수다떨고 있으니까
몸이 스펀지처럼 가벼워 졌네요.
무지 바쁘고 힘든 하루였는데
말씀속에서 머물면서
다시 충전을 하였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세례자 요한이 말하지요.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라고 ~~
뒤에 오실 분을 위해 길을 닦고
자신을 낮추이며 그분을 드러내 보이시는 그 모습!
정말 작아짐을 느낍니다.
전 과연 아버지의 딸로써 무엇을 했을까요?
어떻게 길을 닦았으며,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게
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참 한게 없지요?
아마도 일상에 쫒기어 몸이 바쁜 것을
아버지의 일로 바쁜것이라 착각했었나 봅니다.
아버지!
저 가냘프고 힘이 없어 보이는 촛불이지만
작은 빛이 어둠을 가시게 하는 것처럼
저의 작은 마음일지라도
그것이 아버지를 위한 것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저를 낯추임에
그 빛이 더 밝아짐을 깨닫게 하소서.
비록 광야에서 아버지의 길을 닦진 못할지라도
늘 말씀속에서 제 삶의 길을 닦게 하시고
겸손의 포장을 깔아
아버지 오실 때 환한 미소 지으실 수 있게
늘 깨어 기도하며
움직이는 저가 되게 은총주소서.
아멘.
사랑합니다.^*^
왜 세례자 요한은 사람도 없는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쳤을까…
7년전 성지순례를 하면서 광야에서 묵상하는 시간을 갖어봤다.
나를 돌아보면서 그분께 고백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덩그러니 있다보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괜한 것들도 생각이 난다.
거기엔 인간의 갈등과 미움,증오,사랑들도 있었고
백화점도 있었고 통장과 세상살이 걱정거리도 있었다.
광야속에 있었지만 광야가 아니었다.
이렇게 거의 한시간을 생각속에서 헤매이다 지쳐 버렸었다.
꼭 폭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나는 이렇게 초토화되고서야 나의 광야를 찾았다.
그리고 다짐했었다.
주님을 증거하며 살겠노라고…
그런데 지금은 다짐했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갔는가…
다시 쌓아놓은 세상 것들로 회개는 “다음에…”로 밀려났다.
그러니 누구에게 무엇을 증거한다 말인가.
그분이 오셔도 난 보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산다면 말이다.
오늘 복음에서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라고 하신다.
빨리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나를 변화시키라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주님!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는 저를 붙들어 주소서.
왜 세례자 요한은 사람도 없는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쳤을까…
7년전 성지순례를 하면서 광야에서 묵상하는 시간을 갖어봤다.
나를 돌아보면서 그분께 고백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덩그러니 있다보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괜한 것들도 생각이 난다.
거기엔 인간의 갈등과 미움,증오,사랑들도 있었고
백화점도 있었고 통장과 세상살이 걱정거리도 있었다.
광야속에 있었지만 광야가 아니었다.
이렇게 거의 한시간을 생각속에서 헤매이다 지쳐 버렸었다.
꼭 폭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나는 이렇게 초토화되고서야 나의 광야를 찾았다.
그리고 다짐했었다.
주님을 증거하며 살겠노라고…
그런데 지금은 다짐했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갔는가…
다시 쌓아놓은 세상 것들로 회개는 “다음에…”로 밀려났다.
그러니 누구에게 무엇을 증거한다 말인가.
그분이 오셔도 난 보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산다면 말이다.
오늘 복음에서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라고 하신다.
빨리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나를 변화시키라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주님!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는 저를 붙들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