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대림 제2주간 금요일(12/12)


    말씀의 초대
    사람들의 변덕을 예수님께서는 꾸짖고 계신다. 요한이 회개를 부르짖자 그들은 비웃었다. 단식과 절제를 강조하자 실성한 사람으로 여겼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시자 단식도 절제도 하지 않는다면서 공격하고 있다(복음).
    복음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자폐증에 걸린 사람은 백약이 무효입니다. 가족의 사랑만이 겨우 제 한 몸을 가눌 수 있게 합니다. 자폐증이 있는 자녀를 헌신과 애정으로 바로 세운 어머니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위대한 어머니들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신앙인에게는 자폐 증상이 없을는지요? 믿음에 대해 말하기 싫어하고 신자인 것을 감추고 싶어 한다면 의심해 봐야 합니다. 선교에 대해서는 냉소적이고 믿는 이들에 대해서도 차가운 시각을 드러낸다면 ‘신앙의 자폐증’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분명한 이유 중의 하나는 신앙생활에 끌리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믿음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쁨이어야 할 신앙이 멍에가 되어 있는 셈입니다. 누군가 애정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사랑으로 다가가 ‘기쁘게 믿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합니다. 간섭이 아니라 감동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따뜻함만이 차가움을 녹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꾸짖으십니다. 그들의 ‘변덕스러운 모습’ 때문입니다. 그러니 꾸준히 믿음의 길을 걸으면 누구나 ‘기쁨과 평화’를 만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애정을 주시고자 기다리고 계십니다. 신앙의 자폐증을 극복하면 삶의 자폐증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내 마음 주님 곁에 / 김시연 (Ag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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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대림 제2주간 금요일(12/12)


      말씀의 초대
      사람들의 변덕을 예수님께서는 꾸짖고 계신다. 요한이 회개를 부르짖자 그들은 비웃었다. 단식과 절제를 강조하자 실성한 사람으로 여겼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시자 단식도 절제도 하지 않는다면서 공격하고 있다(복음).
      복음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자폐증에 걸린 사람은 백약이 무효입니다. 가족의 사랑만이 겨우 제 한 몸을 가눌 수 있게 합니다. 자폐증이 있는 자녀를 헌신과 애정으로 바로 세운 어머니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위대한 어머니들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신앙인에게는 자폐 증상이 없을는지요? 믿음에 대해 말하기 싫어하고 신자인 것을 감추고 싶어 한다면 의심해 봐야 합니다. 선교에 대해서는 냉소적이고 믿는 이들에 대해서도 차가운 시각을 드러낸다면 ‘신앙의 자폐증’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분명한 이유 중의 하나는 신앙생활에 끌리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믿음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쁨이어야 할 신앙이 멍에가 되어 있는 셈입니다. 누군가 애정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사랑으로 다가가 ‘기쁘게 믿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합니다. 간섭이 아니라 감동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따뜻함만이 차가움을 녹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꾸짖으십니다. 그들의 ‘변덕스러운 모습’ 때문입니다. 그러니 꾸준히 믿음의 길을 걸으면 누구나 ‘기쁨과 평화’를 만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애정을 주시고자 기다리고 계십니다. 신앙의 자폐증을 극복하면 삶의 자폐증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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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대림 제2주간 금요일(12/12)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분은 야훼 하느님이시다. 언제나 유익한 길을 제시하신다. 그분의 말씀을 따르며 계명의 길을 걸어가면 이스라엘에는 평화가 넘칠 것이다. 백성은 축복 속에 살게 될 것이다.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후손들이 불어날 것이다(제1독서).
      제1독서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8,17-19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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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

    주님!
    저의 마음을 꽤뜷어 보시는 것 같은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이 성가가 생각이  불러 봅니다

    주여 어서 오소서
    내 마음에 오소서 애타게도 그리니
    어서 빨리 오소서

    사랑이신 주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말씀이 어느 때보다 저의 가슴이 뭉쿨합니다

    맞아요 주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나지요
    하지만 저는 매번 말씀을 묵상하면서 행동으로 실천한다고
    다짐하고 또 해보지만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천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연히 저의 고집과 아집과
    교만과 당신을 진심으로 믿지 않기 때문이지요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는다면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을
    실천하며 기쁘게  신앙생활을 할텐데...
    마음과 뜻대로 되지 못하는 것은 
    저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오시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대림시기인 요즈음
    촛불이 벌써 두 번 켜졌건만....
    언제나 다짐했던 마음은 하루도 못가 제 멋대로 제 마음대로
    세속에서 지지고 볶으며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남의 허물을 들추어가며
    성토를 하는 저의 못된 습관등...
    바리사이와 같은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저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의 잘못된 습관과 이기적인 마음과  교만과 아집을 버리고
    당신이 오실 그날을 기다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당신을
    기다리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 할때의 일시적인 기분이 아닌 신앙인으로써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답게 꼴값을 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고 싶은 마음 가득합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그리하여 복음을 묵상 할때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그 마음이 변치 않기를 기도해봅니다
    사랑이신 당신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리라는 믿음으로

    하느님의 은총이 제 안에 머물러지이다
    하느님의 은총이 제 안에 머물러지이다
    하느님의 은총이 제 안에 머물러지이다
    아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

    묵상하며


    ♬ 내 마음 주님 곁에 / 김시연 (Agnes)

  4. guest 님의 말:

    (no content)

  5. guest 님의 말:

     

    이 세대를 무엇과 비교할까?

    1. 말씀읽기:마태11,16-19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과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을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기들 멋대로 하려는 아이들, 자기가 좋은 것만 하려는 아이들, 자기 중심적으로 놀려고 하는 아이들. 그들이 바로 유다인들이었습니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노는 아이들은 변덕스럽고 기분에 따라 움직이며 예측할 수 없는 럭비공과도 같이 뛰어 놉니다.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즐거운 가락을 연주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흥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울한 곡조와 장송곡을 불러 보았지만 다른 아이들은 여전히 냉담한 태도를 보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만 하려고 하는 아이들. 함께 놀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있다면 잔치집 놀이 할 아이들을 따로 모여 놀고, 초상집 놀이 할 아이들을 따로 모여서 노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말씀 안으로 초대를 하십니다. 구원하시기 위함을 모르는 유다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의미를 설명하십니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요한은 아주 엄격한 속죄의 생활을 하였기에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미쳤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요한은 그들의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그들을 즐겁게 해 줄 수도 없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지도 않았으므로 그를 서슴없이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이들과 함께 하셔야 했기에 엄격한 금욕생활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버림받은 이들,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기를 꺼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너무 세속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혼자 계실 때는 모든 것을 떠나 계셨고, 오로지 아버지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만 머무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엄격한 금욕생활을 강조하지 않으시고, 할 수 있는 이들에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요구하셨습니다.


    가끔 열심한 사람들이 매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 너만 혼자 잘나서 그려냐? 신부님께 아부하려고 그러냐? 그렇게 하면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시간 많이 남아서 신앙생활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돈이 너무도 많이 남아서 교무금 내고 헌금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자기가 내지 않으려고 하니 남도 내지 못하게 하는 듯 합니다. 자기가 기도하지 않으려고 하니 남도 못하게 하는 듯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사람들이 아무리 뭐라 해도, 자신들의 잣대에 맞춘다 하더라도 그릇된 것은 그릇된 것으로 판명날 것입니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이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요한을 엄한 속죄의 설교가로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기쁨의 전달자로, 천상의 신랑으로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들을 귀가 있고 볼 눈이 있는 사람들,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감각과 느낌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하느님의 일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과 예수님의 행적을 볼 수만 있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가르침과 요한의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볼 눈이 없는 사람이 그릇된 해석으로 많은 이들을 현혹시킵니다. 오늘도 우리들 곁에서 말입니다. 어쩌면 그가 바로 나 일수도 있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내가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놀이(삶, 행위)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초대하시는 놀이는 무엇입니까?


    ② 나는 옳다고 우기며 내기까지 하다가 혹시 내가 틀린 적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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