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 주인의 두 아들


포도원 주인의 두 아들

1. 말씀읽기:마태21,28-32 두 아들의 비유

 

2.말씀연구

두 아들이 등장합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각각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는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을 존중해 줍니다. 그런데 큰 아들은 처음에는 가기 싫다고 했다가 마음을 바꾸어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합니다. 둘째 아들은 대답만 하고서 가지 않았습니다. 맏아들은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회개한 죄인들을 가리킵니다. 둘째 아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고 회개하지 않는 백성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원을 가진 아버지와 두 아들의 관계를 통해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들과 죄인이었지만 회개하고 의롭게 돌아서 의인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그런데 큰 아들은 그 일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절을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그렇게 잘 해주셨는데, 나는 이게 뭔가? 특별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당연히 해야 될 일 조금 하라는 것을 왜 나는 거부하고 있는가? 아버지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그래! 오늘부터는 아버지 일손을 도와 드려야겠다.”

 

그렇게 아버지 마음을 헤아리는 맏아들은 유다인들이 죄인이라고 여기고 있는 세리와 창녀들이었습니다. 회심하는 세리 자캐오, 향료의 단지를 깨뜨리고 그 향료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주던 죄 많은 여인. 그들은 모두 큰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마음을 몰라주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내가 내 일에 집중하다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다보면 부모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나 더 나아가 작은 심부름조차도 거절하게 됩니다. 부모님께서는 마음이 아프시지만 나를 사랑하시기에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언젠가는 부모마음 알아주겠지!”하고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부모님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십니다. 그리고 기다리십니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대답만 하는 사람. 마음에도 없지만 그저 그 순간을 넘기기 위해서 좋은 말을 하는 사람.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아들에게도 아버지는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둘째 아들은 가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지 않았습니다. 이 둘째 아들은 바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유다인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사실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얼마나 구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대하는 행동을 보면 굴러들어온 복을 발로 차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그런 오만한 마음을 가진 이들은 결코 회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답은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늘 웃으면서 뭐든지 좋다고 합니다. 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대답하고 행동으로 즉시 옮기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 합니다. 하겠다고 말만하고 결국은 안 해 놓고 이 다음에 이런 저런 핑계만 댑니다. 그것도 웃으면서. 그리고 말합니다. “다음에는 꼭 할께요.”라고.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를 물으셨을 때 그들은 모른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자신들에게 관련된 곤란한 질문에 대답을 회피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큰 아들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자기들을 향한 질문인지를 모르고 대답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 그들 스스로 죄를 인정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의로움과 경건의 가면을 썼기에 스스로도 의롭고 경건하다고 착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죄인들은 그들의 죄짓는 생활을 청산하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였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앞서서 하늘나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세리와 창녀들을 경멸하고, 그들을 돌보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지도 않았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었던 그들이 세리와 창녀들의 목자였지만 돌보지를 않았습니다. 즉 대답만 “예”하고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는 사람들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하고 응답했지만 자기 하고 싶은 것들을 행했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모든 이들의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죄인들에게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들이 하느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습니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세례자 요한은 정의의 길을 가지고 하느님의 뜻을 다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모든 백성들은 물론 세리들까지도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으며 하느님의 뜻을 받아 들였으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들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내 옆에서 신앙을 권고하는 사람들의 말을 흘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을 권고하는 사람이 나를 잘못된 길로 이끌리는 전혀 없습니다. 마음을 열고 주변의 형제 자매들이 나를 위해서 해 주는 말에 귀를 기울입시다. 누가 평일미사나 레지오나 성경강좌, 기타 교리에 함께 가자고 할 때, 기꺼이 따라가야 합니다. 직장 일이 바쁘니까 못해요. 뭐가 있어서 못해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도 그것이 핑계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기꺼이 응답합시다.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이 세례자 요한의 삶과 메시지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면 그래서 행동이 바뀌었다면, 그래서 믿게 되었다면 그들은 구원의 문으로 성큼성큼 들어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생각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세례자 요한은 너무도 극단적이었고, 고행적이었고, 그들의 권위를 넘어섰기에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결국 세례자 요한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끝내 생각을 바꾸지 않았기에 예수님까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바뀝니다. 행동이 바뀌면 내 삶이 바뀌고, 내 삶이 바뀌면 영생이 바뀝니다. 우리 모두 불신에서 믿음으로 생각을 바꿉시다. 그렇게 바뀌면 보이는 것들이 더욱 새롭게 보이고, 모든 것들이 나를 믿음에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내 옆에서 신앙에로 초대하는 사람들의 초대에 기쁜 마음으로 “예”하고 응답할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나는 큰아들의 모습입니까? 작은 아들의 모습입니까? 하느님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② 내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해 보고, 그 죄의 모습이 혹시 내 안에는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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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 주인의 두 아들에 1개의 응답

  1. 엘리사벳 님의 말:

    작은 아들의 모습에서 살짝 올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ㅎㅎ 저의 열정을 쏟아낼 때 비로소 늦게나마 회개하여 아버지께로 향하는 제가 되겠지요. 아버지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아버지께 받은 사랑을 나누며 말씀으로 함께 뿌리를 틈실히 내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기본에 충실하는 자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저가 죄인이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단 아버지께로 향하는 의로운 이들의 길을 가로막는 것만은 죄인이라 합지요. 아마도 그런 모습이 제안에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혹여 아버지께로 가는 길의 길목에서 그들을 지키고 있진 않은지 반성해 보는 시간입니다. 잠시나마 돌아보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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