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다.


대림 제3주간 금요일(12/19)


    말씀의 초대
    가브리엘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요한의 탄생을 알린다. 즈카르야는 순간적으로 의심한다. 자신의 아내는 임신이 불가능한 몸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즈카르야는 보속으로 벙어리가 된다(복음).
    복음
    <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25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로서 즈카르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으로서 이름은 엘리사벳이었다.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즈카르야가 자기 조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사제직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았는데, 그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기로 결정되었다. 그가 분향하는 동안에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섰다.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 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자,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한편 즈카르야를 기다리던 백성은 그가 성소 안에서 너무 지체하므로 이상하게 여겼다.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와서 말도 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어떤 환시를 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그러다가 봉직 기간이 차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즈카르야는 천사의 모습을 보자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갑작스레 천상의 모습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사의 음성은 뚜렷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순간, 그는 아내를 떠올립니다. 생리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아내를 기억합니다. 그러고는 말을 더듬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는지요? 저와 제 아내는 나이가 많습니다.’가브리엘 천사는 그를 질책합니다. 그러고는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 합니다. 순간, 그는 벙어리가 됩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말은 잃었지만 깨달음의 은총을 얻었던 것입니다. 평생을 제관으로 살아왔던 즈카르야입니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천사의 말을 긴가민가했을까요? 현실만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지식이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즈카르야는 모든 시련을 아들을 위해 견디어 냅니다. 그 아들이 세례자 요한입니다. 아버지의 희생을 바탕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요한은 열매였고, 즈카르야는 뿌리였습니다. 물을 찾아 보이지 않는 땅속으로 내려가는 뿌리였습니다. 즈카르야는 죽을 때까지 요한을 위해 참고 희생했을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J.S. Bach의 Cantata BWV.147 -가톨릭 성가 180 : 주님의 작은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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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대림 제3주간 금요일(12/19)


      말씀의 초대
      가브리엘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요한의 탄생을 알린다. 즈카르야는 순간적으로 의심한다. 자신의 아내는 임신이 불가능한 몸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즈카르야는 보속으로 벙어리가 된다(복음).
      복음
      <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25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로서 즈카르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으로서 이름은 엘리사벳이었다.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즈카르야가 자기 조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사제직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았는데, 그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기로 결정되었다. 그가 분향하는 동안에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섰다.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 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자,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한편 즈카르야를 기다리던 백성은 그가 성소 안에서 너무 지체하므로 이상하게 여겼다.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와서 말도 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어떤 환시를 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그러다가 봉직 기간이 차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즈카르야는 천사의 모습을 보자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갑작스레 천상의 모습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사의 음성은 뚜렷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순간, 그는 아내를 떠올립니다. 생리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아내를 기억합니다. 그러고는 말을 더듬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는지요? 저와 제 아내는 나이가 많습니다.’가브리엘 천사는 그를 질책합니다. 그러고는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 합니다. 순간, 그는 벙어리가 됩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말은 잃었지만 깨달음의 은총을 얻었던 것입니다. 평생을 제관으로 살아왔던 즈카르야입니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천사의 말을 긴가민가했을까요? 현실만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지식이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즈카르야는 모든 시련을 아들을 위해 견디어 냅니다. 그 아들이 세례자 요한입니다. 아버지의 희생을 바탕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요한은 열매였고, 즈카르야는 뿌리였습니다. 물을 찾아 보이지 않는 땅속으로 내려가는 뿌리였습니다. 즈카르야는 죽을 때까지 요한을 위해 참고 희생했을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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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대림 제3주간 금요일(12/19)


      말씀의 초대
      삼손은 괴력을 지닌 판관이었다. 훗날 그는 ‘필리스티아’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킨다. 하느님의 권능이 그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었지만, 천사는 삼손의 잉태를 알려 주며 준비할 것을 명한다(제1독서).
      제1독서
      <천사가 삼손의 탄생을 알리다.> ☞ 판관기의 말씀입니다. 13,2-7.24-25 그 무렵 초르아 출신으로 단 씨족에 속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마노아였다. 그의 아내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그 여자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보라, 너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지만,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조심하여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마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기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자 그 여자가 남편에게 가서 말하였다. “하느님의 사람이 나에게 오셨는데, 그 모습이 하느님 천사의 모습 같아서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묻지도 못하였고, 그분도 당신 이름을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나에게, ‘보라, 너는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마라.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자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삼손이라 하였다. 아이는 자라나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 그가 초르아와 에스타올 사이에 자리 잡은 ‘단의 진영’에 있을 때, 주님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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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이었지만 아들이 없었던 두사람!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얘기를 듣고

    얼마나 기뻤을까요?

    너무나 기뻐서 믿을수가 없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수도~

    “이렇게 나이가 많은 우리가 어떻게”

    라는 생각을 안할수가 없지요.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하시고자 하면 안되는 것이 없음을

    다시한번 상기시켜 주시는 듯 합니다.

    그들을 통해

    아버지의 자비와 권능이 더 깊이 드러나는 듯 합니다.

    사라나 레베카나 한나에게 아들을 안겨 주신것처럼

    엘리사벳에게도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주십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가 만약 즈카르야라면

    어떤 기분이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얻게 된다는데

    과연 그 사실을 듣는 순간 믿을수가 있을까?

    천사를 보내시어 말씀하심에도

    믿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능력을 믿는다지만

    제 머리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지식에 근거하여

    부인하며 고개를 젖겠지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아버지의 표징을 바라며

    뭔가를 보여지기를 바라면서

    정작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아버지께서는 늘 제곁에 계시며

    제가 무엇을 갈망하는지,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다 알고 계심도 압니다.

    저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언젠간 들어주심을 알면서

    때론 아버지의 사랑을 믿지 못함을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만 믿어요. 하면서 다른 곳을 찾지요.

    아버지의 음성을 주셔도

    미련한 저는 듣지를 못하고

    아버지의 꾸중을 듣고서야 뒤늦은 후회를 합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셨는데

    부족한 저는 아직도 보여지기를 바라며

    아버지를 부르고 있진 않은지요.

    오로지 아버지만 믿고 저를 던져야 하는데

    아직은 그리하지 못함에 고개를 숙입니다.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겠지요.

    말씀을 묵상하면서

    간절히 청하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심을 새삼 느끼면서

    아버지의 권능과 자비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외골수였던 저가 아버지를 알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의 기쁨이 더 큼을 알았고

    기쁨은 행복으로 전염됨을 알았습니다.

    더 깊은 사랑을 위해선 비워야 함을 알았고

    그 빈자리에 아버지의 방석을 준비해야 함도 알았습니다.

    입으로만 고백함이 아니라

    가슴으로 아버지의 자리를 내어 드릴 준비를 해야만이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음을 이젠 압니다.

    말씀에서 아버지를 부를 때

    가장 가까이에서 저를 깨우쳐 주시고

    제게 바른 길을 제시해 주심을 이젠 알기에

    늘 아버지의 무릎을 베려고 합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가브리엘 천사가 알려줍니다.

    하지만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믿지를 못합니다.

    있을수가 없는 일임에~~

    천사의 말을 듣고 즈카르야가 말합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라고

    하는 즈카르야의 말이 와 닿습니다.

    제가 즈카르야라도 믿지 못하며 그리 말을 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임을 그땐 몰랐으니까요.

    그리고 사실에 근거한 제 확신이

    아버지의 사랑을 더 작게 만들었겠지요.

    시간이 지나서야 즈카르야는 압니다.

    아버지께서 해 주신 일임을~~

    아버지의 오실 길을 준비하러 올 세례자 요한!

    그런 요한을 아무에게나 안겨주시겠습니까?

    아버지의 자비와 권능을 드러내는데

    이 부족한 딸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청합니다.

    언제나 말씀속에 저를 비추어 볼 수 있게 하시고

    말씀에 비추어 들을 수 있게 하소서.

    뒤늦은 후회를 하더라도

    깨달음의 깊이를 더해 주시어

    아버지께로 한발 더 가까이 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 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아버지께서 하심을 깨닫게 하시어

    현실에 젖어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물리쳐 주소서.

    아멘.

     

    아버지와 딸이 다투었습니다.

    딸은 밥상을 같이하지 않고

    아버지는 딸을 기다립니다.

    철없는 딸은 아버지의 사과를 기다리며

    방문을 닫아겁니다.

    사랑깊은 아버지는 원인모를 사과를 하고

    딸에게 밥을 먹게 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가 백번 무릎꿇어도 너라면 괜찮다. 하하하”

    이것이 부모의 바다같이 깊은 사랑인가 봅니다.

     

     

  4. user#0 님의 말: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이었지만 아들이 없었던 두사람!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얘기를 듣고

    얼마나 기뻤을까요?

    너무나 기뻐서 믿을수가 없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수도~

    “이렇게 나이가 많은 우리가 어떻게”

    라는 생각을 안할수가 없지요.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하시고자 하면 안되는 것이 없음을

    다시한번 상기시켜 주시는 듯 합니다.

    그들을 통해

    아버지의 자비와 권능이 더 깊이 드러나는 듯 합니다.

    사라나 레베카나 한나에게 아들을 안겨 주신것처럼

    엘리사벳에게도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주십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가 만약 즈카르야라면

    어떤 기분이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얻게 된다는데

    과연 그 사실을 듣는 순간 믿을수가 있을까?

    천사를 보내시어 말씀하심에도

    믿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능력을 믿는다지만

    제 머리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지식에 근거하여

    부인하며 고개를 젖겠지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아버지의 표징을 바라며

    뭔가를 보여지기를 바라면서

    정작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아버지께서는 늘 제곁에 계시며

    제가 무엇을 갈망하는지,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다 알고 계심도 압니다.

    저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언젠간 들어주심을 알면서

    때론 아버지의 사랑을 믿지 못함을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만 믿어요. 하면서 다른 곳을 찾지요.

    아버지의 음성을 주셔도

    미련한 저는 듣지를 못하고

    아버지의 꾸중을 듣고서야 뒤늦은 후회를 합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셨는데

    부족한 저는 아직도 보여지기를 바라며

    아버지를 부르고 있진 않은지요.

    오로지 아버지만 믿고 저를 던져야 하는데

    아직은 그리하지 못함에 고개를 숙입니다.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겠지요.

    말씀을 묵상하면서

    간절히 청하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심을 새삼 느끼면서

    아버지의 권능과 자비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외골수였던 저가 아버지를 알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의 기쁨이 더 큼을 알았고

    기쁨은 행복으로 전염됨을 알았습니다.

    더 깊은 사랑을 위해선 비워야 함을 알았고

    그 빈자리에 아버지의 방석을 준비해야 함도 알았습니다.

    입으로만 고백함이 아니라

    가슴으로 아버지의 자리를 내어 드릴 준비를 해야만이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음을 이젠 압니다.

    말씀에서 아버지를 부를 때

    가장 가까이에서 저를 깨우쳐 주시고

    제게 바른 길을 제시해 주심을 이젠 알기에

    늘 아버지의 무릎을 베려고 합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가브리엘 천사가 알려줍니다.

    하지만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믿지를 못합니다.

    있을수가 없는 일임에~~

    천사의 말을 듣고 즈카르야가 말합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라고

    하는 즈카르야의 말이 와 닿습니다.

    제가 즈카르야라도 믿지 못하며 그리 말을 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임을 그땐 몰랐으니까요.

    그리고 사실에 근거한 제 확신이

    아버지의 사랑을 더 작게 만들었겠지요.

    시간이 지나서야 즈카르야는 압니다.

    아버지께서 해 주신 일임을~~

    아버지의 오실 길을 준비하러 올 세례자 요한!

    그런 요한을 아무에게나 안겨주시겠습니까?

    아버지의 자비와 권능을 드러내는데

    이 부족한 딸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청합니다.

    언제나 말씀속에 저를 비추어 볼 수 있게 하시고

    말씀에 비추어 들을 수 있게 하소서.

    뒤늦은 후회를 하더라도

    깨달음의 깊이를 더해 주시어

    아버지께로 한발 더 가까이 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 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아버지께서 하심을 깨닫게 하시어

    현실에 젖어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물리쳐 주소서.

    아멘.

     

    아버지와 딸이 다투었습니다.

    딸은 밥상을 같이하지 않고

    아버지는 딸을 기다립니다.

    철없는 딸은 아버지의 사과를 기다리며

    방문을 닫아겁니다.

    사랑깊은 아버지는 원인모를 사과를 하고

    딸에게 밥을 먹게 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가 백번 무릎꿇어도 너라면 괜찮다. 하하하”

    이것이 부모의 바다같이 깊은 사랑인가 봅니다.

     

     

  5. user#0 님의 말: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말씀에 그동안의 신앙생활을 반성해보았습니다
    사제즈카리아처럼  당신의 계명과 규정을 지키며 흠없이
    살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신앙인의 기본도리는 해야한다고...
    아니! 

     

    당신의 계명을 지키고 규정을 따라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적어도 신앙인이라면...
    생각하고 다짐하고 또 반성해보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아니었습니다 주님!

    저의 삶은 사제 즈카리아만은 못할지라도 기본도리는 해야하건만
    언제나 복음을 묵상할 때 뿐...
    복음묵상이 끝나면  세속의 일로 가득차 있는 저의 머릿 속에는
    당신이 계실 자리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틈난 나면 복음말씀을 읽어봐야지 하며 컴퓨터를 키면서
    복음묵상이 아닌 인터넷기사를 보면서 그날 그날의 사건이나
    오늘은 어느 연예인의 기사가 났을까? 궁금해 보고 또 보고

    읽고 또 읽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지요
    텔레비전 연속극은 하루라도 시청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중독이 되어있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연예인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에 반만큼이라도
    당신을 사랑하며 복음묵상을 열심히 한다면 좋을텐데 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참 부끄럽습니다 주님!

    당신을 감히 연예인과 텔레비전연속극과 비교를 하다니...
    하루라도 연속극을 보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정도로
    당신을 사랑한다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반성도 많이 하지요
    하지만 고쳐지지 않는 저의 세속의 욕심과 재물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가 당신을 사랑하는데 장애가 됨을 깨달으면서도
    포기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재물에 대한 끊임없는 욕심으로 형제들도 미울 때가 있으니
    제가 생각해도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말씀에  그동안의 저의 신앙생활을 반성하며
    마음만이 아닌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지키기 어려울지라도 지키려는 노력만이라도 해야한다고
    절제하며 절약하며 사랑하며 베풀며 봉사하며
    당신의 계명과 규정을 지키려는 노력을 한다면
    멋진 당신의 자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떠오르는 태양이 높은 곳에서 우리를 찾아오시어,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

    아멘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묵상하며

    ♬ J.S. Bach의 Cantata BWV.147 -가톨릭 성가 180 : 주님의 작은 그릇


  6. guest 님의 말:

    (no content)

  7. guest 님의 말: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얼마나 믿음이 깊은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먼저 나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진실을 믿지 못 할때가 많음을 봅니다.
    특히 믿기 어려운 일이 있을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설마…
    혹시 이루어졌다해도 운이 좋아서 그렇겠지 합니다.
    아마 마음의 저변에는 거짓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거짓은 의구심을 갖게합니다.
    그래서 기적적인 일들을 봐도 과학적으로 이해가 되야했습니다.
    이렇게 매사에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나의 거짓은 내 믿음을 조금씩 조금씩 쪼아먹음을 깨달아 봅니다.

    오늘 즈가리아에게 하느님은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믿지 못하고 맙니다.
    저역시 그렇습니다.
    내게도 하느님께서 말씀을 통해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믿지 못하고 사는 저를 봅니다.
    예언자의 말씀, 제자들의 죽음,순교자의 증거,주님의 탄생과 죽으심…
    이렇게 보여주고 보여줘서 이제는 더 이상 보여줄게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나는 더 강한 그 무엇을 요구하고 살아갑니다.
    영혼이 벙어리가 되어야만 느낄라나 싶습니다.

    그분은 확실하게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목숨을 걸고 나서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 약속은 쉽사리 변합니다.
    내 편리한 대로 말입지요.
    반성해 보면서…

    살아있는 동안 그분께 드린 나의 약속…
    믿음으로 지켜야 나가야 겠음을 다짐해 보는 하루입니다.

  8. user#0 님의 말: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얼마나 믿음이 깊은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먼저 나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진실을 믿지 못 할때가 많음을 봅니다.
    특히 믿기 어려운 일이 있을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설마…
    혹시 이루어졌다해도 운이 좋아서 그렇겠지 합니다.
    아마 마음의 저변에는 거짓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거짓은 의구심을 갖게합니다.
    그래서 기적적인 일들을 봐도 과학적으로 이해가 되야했습니다.
    이렇게 매사에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나의 거짓은 내 믿음을 조금씩 조금씩 쪼아먹음을 깨달아 봅니다.

    오늘 즈가리아에게 하느님은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믿지 못하고 맙니다.
    저역시 그렇습니다.
    내게도 하느님께서 말씀을 통해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믿지 못하고 사는 저를 봅니다.
    예언자의 말씀, 제자들의 죽음,순교자의 증거,주님의 탄생과 죽으심…
    이렇게 보여주고 보여줘서 이제는 더 이상 보여줄게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나는 더 강한 그 무엇을 요구하고 살아갑니다.
    영혼이 벙어리가 되어야만 느낄라나 싶습니다.

    그분은 확실하게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목숨을 걸고 나서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 약속은 쉽사리 변합니다.
    내 편리한 대로 말입지요.
    반성해 보면서…

    살아있는 동안 그분께 드린 나의 약속…
    믿음으로 지켜야 나가야 겠음을 다짐해 보는 하루입니다.

  9. guest 님의 말: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1. 말씀읽기:루카1,5-25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2. 말씀연구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아버지 즈카르야가 겪게되는 놀라움과 두려움. 그리고 한 여인의 기쁨. 그 축복의 현장에서 즈카르야나 엘리사벳이 되어 그 기쁨을 느껴 봅시다.

     

    5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로서 즈카르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으로서 이름은 엘리사벳이었다.

    헤로데가 유다의 임금이었을 때는 기원전 40년부터 기원전 4년까지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은 유다 임금 헤로데의 통치 시대와 관련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통치 시대에 이루어집니다.

    세례자 요한의 부모님들은 성덕으로 이름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비야 조의 사제였고, 그의 어머니의 선조는 첫 대사제인 아론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혼인은 사제들이 지켜야 할 율법의 신성한 의무에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사제는 반드시 사제의 딸과 결혼해야만 했고, 유대인들에게 있어 사제직은 친자식에게만 이양되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봉헌된 거룩한 사제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느님을 섬기는 일은 그의 아버지가 하느님을 섬기던 일과는 매우 다르게 될 것입니다.

     

    6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의로운 이들이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시는 분들이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세례자 요한은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셨고, 그렇게 하느님에 대한 열정을 물려받았을 것입니다.

     

    7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구원사의 위대한 인물들 중 많은 이들의 어머니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었습니다. 이 인물들은 자연적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을 하느님께서 개입하심으로써 이루어 주신,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이 인물들의 예를 들자면, 이사악(창세기 17,16), 판관 삼손(판관기 13,2), 사무엘(사무엘상 1-2장)등이 있습니다. 세례자 또한 이 위대한 인물들의 계열에 들게 될 것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던 어머니, 게다가 두 부부는 나이가 많이 있었습니다. 즉, 아이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8 즈카르야가 자기 조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모든 사제들이 다 예루살렘에 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사제들은 팔레스티나의 여러 고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차례가 되면 성전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제관들은 24조로 나뉘어 한 주간씩 돌아가며 성전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아비야 조는 여덟째 조(1역대24,1-19)입니다. 예수님시대에 그렇게 성전에서 봉사하던 제관들과 레위인들은 모두 이만명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9 사제직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았는데, 그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기로 결정되었다.

    성소는 사제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고, 백성들은 바깥에서 기도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제라 할지라도 제비를 뽑아 당첨된 사람만이 그 안에 들어가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거룩한 예식을 거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성전에서 당신 백성 가까이에 계시지만 하느님 가까이 나아가는 일은 하느님께서 친히 선택하시어 제비뽑기를 통하여 부르시는 사람들에게만 맡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성전에서는 매일 아침과 오후에 두 차례 정기적 제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각 조마다 제관이 수백 명에 달했기 때문에 제관 대부분은 그냥 참관만 하고, 제비를 뽑아 당첨된 제관들만이 제례를 주관했습니다. 어린양을 잡아 번제를 바칠 제관, 기름으로 반죽한 밀가루와 포도주를 바칠 제관, 분향할 제관, 촛대를 보살필 제관을 추첨으로 선발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제례 가운데 분향을 가장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만일 어느 제관이 당첨되어 한번 분향했으면 자기 조의 제관이 모두 분향할 때까지는 분향 제비를 뽑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제관들은 일생 단 한 번만이라도 분향하는 일을 더없는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10 그가 분향하는 동안에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다.

    분향은 기도의 상징이고(시편 141,2 참조)., 하느님을 향해 자신을 태워 버리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즈카르야는 분향을 하며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있었고, 성소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11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섰다.

    거룩한 장소에서 거룩하게 기도할 때 거룩한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다는 것은 그 기쁜 소식이 하늘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천사는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서 있었다고 전해주는데, 오른쪽은 구원을 의미합니다(마태오 25,33-34)

     

    12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느님은 전적으로 “다른 분”,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이사야 6,5참조). 하느님의 사자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하느님의 거룩함과 영광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요한의 출생 예고는 성전 성소라는 금지된 장소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곳은 거룩한 전례에 관한 모든 규정들로 둘러싸여 있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거룩한 힘으로 뒤덮은 곳으로서, 구약성경에서는 영의 세계에 속합니다. 즈카르야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마주하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13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얼마나 놀랐을까요? 두려울 만 합니다. 하지만 하늘로부터 내려 온 어떤 사람이나 신적 존재가 인간에게 말을 건넬 때면 언제나 용기를 북돋우는,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을 먼저 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짓누르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일으켜 세워 주려 하십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즈카르야는 늘 아이를 얻기를 소망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고 말씀하시면서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고 전해줍니다. 즈카르야의 기도가 받아들여 진 것입니다.

     

    요한은 “하느님은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그 아기의 이름을 지어 주시고 아울러 그 아기에게 사명을 내려 주시며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기뻐할 사람은 부모만이 아닙니다. 다른 많은 이들 곧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들 역시 그들과의 기쁨을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의 삶을 바라본다면 결국 기뻐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기뻐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자 하는 사람은 결코 세례자 요한을 반기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5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구원역사 안에서 엘리야로서의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다른 위대한 인물들은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구원이 오기를 고대하였을 뿐이지만 세례자 요한은 그 문턱에서서 하느님 나라와 구원이 다가왔음을 선포하였고(루카 7,28참조), 예수님께서“하느님의 어린양”이심을 고백하였고,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생활양식에 있어서도 지난날의 위대한 인물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들은 결코 독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삼손(판관기 13,2-5.7)과 예언자 사무엘(사무엘 상 1,15-16)의 경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드러내는 예언자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예언의 은사들을 받았지만 세례자는 생명의 첫 순간, 즉 어머니의 모태에서부터 예언자였습니다. 성모님과 어머니 엘리사벳이 만났을 때 “태중에서 예수님을 알아 보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때는 구원과 함께 오는 성령의 풍부한 은사를 통하여 그 현존을 느끼게 합니다.

     

    16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낙타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벌꿀을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할 것을 요구하였고, 그 표징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세례자 요한에게로 몰려와 회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렸고,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17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요한은 새로운 계약을 도입하기 위한 길을 준비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말라키에서 마지막 때에 관해 한 다음과 같은 예언이 그에게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말라키 3,1.24)

    즉 요한은 죄에 떨어진 이스라엘을 회개시켜 하느님 백성의 참된 일원이 되게 하고 불경한 이들을 덕스럽게 하여 주님을 맞아들이기에 합당한 백성으로 준비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8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자,

    유대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이 그러했듯이 즈카르야는 표징을 요구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유산으로 가나안 땅을 물려받으리라는 약속을 받은 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이 땅을 차지하게 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창세기 15,7-8). 기드온 역시 하느님께서 하신 약속에 대한 표징을 바랐으며(판관기 6,36), 히즈키야왕도 하느님께서 그의 생명을 연장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증거를 원했습니다(2 열왕기 20,8).

     

    부족한 나이기에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표징을 보여 주실 수도 있지만, 당신이 나를 위해 마련하신 표징을 보여 주실 때까지 내가 기다리기를 원하시며, 나아가 비록 표징이 없다 하더라도 기꺼이 믿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그러므로 하느님의 계시는 의심하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씨앗이 되고,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근원이 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 또한 주님께 무슨 표징을 요구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당신께서 이것만 해 주시면 제가 그것을 하겠습니다.”라고 너무도 많이 고백한 것 같습니다.

     

    19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면전에 서 있는 일곱 천사들(토비트 12,15; 요한 묵시록 8,2)중의 하나였습니다. 이 천사는 다니엘이 저녁 제사 때에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올리자(다니엘 9,4-19), 칠십 주간이 지난 후에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계시를 준 천사였습니다(다니엘 9,24).

    표징을 요구하는 즈카르야의 말에 가브리엘은 먼저 자신이 누군지를 밝힙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밝힙니다. 그리고 믿지 못했으니 벌이 주어질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때는 믿어야 합니다. 믿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0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즈카르야는 믿음의 부족으로 표징을 요구하여 하느님을 시험함으로써 “아들을 얻게 되는 기쁜 소식”을 듣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벙어리라는 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즈카르야가 갑자기 귀머거리가 되고 말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하느님께서 개입하셨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즈카르야가 받은 벌은 또한 표징이었는데 이것은 약속이 이루어졌을 때에 끝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당신 일을 하십니다. 내가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일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21 한편 즈카르야를 기다리던 백성은 그가 성소 안에서 너무 지체하므로 이상하게 여겼다.

    유대 제관들은 거룩한 제사를 결코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염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하느님 가까이에 있는 것을 위험스러운 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 제사가 끝나면 제관은 번제 제단 밖으로 나아가서 거기 모인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해 주었습니다(민수6,24-26).

    사람들은 즈카르야가 성소 안에서 너무 지체를 하니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이제 즈카르야를 보게 되면 늦은 이유를 짐작하게 될 것입니다.

     

    22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와서 말도 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어떤 환시를 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사람들은 즈카르야가 벙어리가 된 것을 보고, 하느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는 걸을 알았습니다. 즈카르야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습니다. 사람들은 즈카르야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궁금해 했을 것이고, 답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즈카르야는 기뻤을 것입니다. 이제 그는 기다리면 됩니다.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지기를……,

     

    23 그러다가 봉직 기간이 차자 집으로 돌아갔다.

    즈가리야는 한 주간의 사제 직무를 끝내고 그 거룩한 도시를 떠났습니다. 그는 엄청난 비밀, 자신의 꿈이 실현되리라는 것과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지키시리라는 것에 대한 확실한 표징을 간직한 채 그곳을 떠났습니다. 비록 하느님께서 그를 벌하셨지만, 그는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나 기쁜 발걸음이었겠습니까?

     

    24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엘리사벳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역사상의 여인들 가운데 하나였지만 그녀는 하느님의 섭리하심에 의해 정상적으로 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여인들 중에는 이사악의 어머니가 된 사라(창세기 17,17), 삼손의 어머니인 마노아의 아내(판관기 13,2), 그리고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1사무엘 1,2.5)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탄생과 다른 점은 마리아는 인간적인 아무런 도움 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일을 해 주셨기에 엘리사벳은 잉태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기요한은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 하느님께 봉헌될 아기입니다. 엘리사벳은 모든 것을 조심하며 은둔생활을 합니다. 큰 기쁨은 다른 것들을 잊게 만들고, 다른 것들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25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그녀는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기를 갖지 못하는 그녀의 부끄러움을 없애 주셨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은 자기 백성의 역사를 자신의 삶에서 체험하였습니다.

    2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7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좋은 땅으로 데리고 가신다. 그곳은 물이 흐르는 시내와 샘이 있고, 골짜기와 산에서는 지하수가 솟아나오는 땅이다. ”(신명 8,2-7).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어떤 때는 시련처럼 느껴질 수 있고, 그것이 사랑이라면 증거를 대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감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시면 좋고, 안 주셔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감사하는 자세.” 그것이 바로 나의 자세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1.즈카르야는 분향할 수 있는 사제로 뽑혔고, 성소에서 하느님의 천사를 만났고, 아들을 얻게 되었고, 또 믿지 못해서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내가 즈카르야라면 내 마음의 변화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2. 즈카르야는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믿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하느님께 기도할 때 조건을 달 때가 있었습니까? 믿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10. guest 님의 말: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도 너무나 장한 일은
    내가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한 일이다.
    무디고 답답한 내가 어찌 부르심을 들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하느님의 초대를 순한 마음으로 받아 들였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충만해진다.

    가난한 내가 하느님을 모실 수 있는 이 기쁨은
    무엇으로도 설명하기 힘든다.
    하느님께서 사람되시는 것은
    날 만나러 오시는 지극한 사랑아니신가.

    보지 않으면 알지도 믿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안나이기에
    하느님께서는 겸손되이 비천한 신분으로 오셔서
    친절하게 당신을 보여 주신다.
    사랑하노라시며,

    아!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주셨구나.

  11. user#0 님의 말: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즈카리아와 엘리사벳처럼 당신의 말씀을 믿고 따르며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는 흠 없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고
    싶은 마음 간절했습니다
    즈카리아와 엘리사벳처럼 기쁘고 행복할텐데...
    하지만 마음 뿐...
    실천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신앙심과 믿음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자신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마음으로만 ....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이기심과 욕심으로 실천하지 못함을
    저 자신 잘 알고 있습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나은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데...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세례를 받을 때보다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남들이 저 처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하면 성토하고 있지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남의 잘못만 눈에 띄고 있습니다
    만약에 남들이 저한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입에 거품을 내면서 난리를 칠텐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면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새해에는 모범을 보이는 신앙인 헬레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헬레나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묵상하며

    ♬ 주여 임하소서 – Lowell Mason

  12. user#0 님의 말: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주님!
    신앙생활을 한 후 지금까지….
    감사하는 마음보다 아쉬운 마음이….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보다 힘들고 섭섭했던 순간들이….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신앙인이라기 보다 빈수레가 요란한 신앙가였음을 …
    깨닫게 되니 부끄럽습니다
    겸손하기보다 교만하고 순명하기보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세속적인 욕심과
    욕망이 저에게는 큰 자랑인 것처첨 살았다는 생각에 죄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남들보다 더 자신이 돋보여야했고…
    겸손보다 교만에 몸에 밴 탓으로 신부님이나 수녀님 형제자매님들의 충고를
    겸손하게 받아 들이지 못하고 아니!
    들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왜?
    제가 잘낫다는 착각으로…
    어리석다는 생각은 혼자서만 남들이 알아볼까 숨기고…
    그랬습니다 주님!
    언제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말씀을 깊이 깨달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
    꼭 그리해야한다고 언제부터?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부터 겸손하게 순명하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아멘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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