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사도는 야고보 사도의 동생이다.
형제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였는데,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되었다.
두 사람은 스승님의 애정을 많이 받았다.
중요한 기적의 장소에는 늘 베드로 사도와 함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이 요한 사도에게 성모님을 당부하셨다.
초대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였던 요한 사도는
‘파트모스 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에페소에서 선종하였다.
말씀의 초대
막달레나의 보고를 듣고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으로 달려간다.
그러고는 빈 무덤을 확인한다. 그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그 놀람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었다.
확신이 느껴지는 놀람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놀람이었다(복음).
복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8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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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12/27)
요한 사도는 야고보 사도의 동생이다. 형제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였는데,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되었다. 두 사람은 스승님의 애정을 많이 받았다. 중요한 기적의 장소에는 늘 베드로 사도와 함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이 요한 사도에게 성모님을 당부하셨다. 초대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였던 요한 사도는 ‘파트모스 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에페소에서 선종하였다.
말씀의 초대
막달레나의 보고를 듣고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으로 달려간다. 그러고는 빈 무덤을 확인한다. 그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그 놀람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었다. 확신이 느껴지는 놀람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놀람이었다(복음).
복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8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막달레나는 이른 새벽 예수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분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무덤 속에 계신다고 인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극진한 사랑이 그녀를 무덤으로 가게 했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흔적을 보게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예수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막달레나의 말을 듣자 한순간에 달려갑니다. 그러고는 빈 무덤을 보고 놀랍니다. 환희와 기쁨의 놀람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애정’과 ‘제자들의 열의’를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믿음의 자세입니다. 이후에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발현하셨습니다. 무력감에 젖어 있던 그들을 위로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도 오셨습니다. 용기와 힘을 주시려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며칠 남지 않은 금년입니다. 성탄의 은총을 믿고 밝게 걸어가야 합니다. 평화와 기쁨을 만들며 살아야 합니다. 무덤은 언제든 나타납니다. 신앙이 부담스럽다면 ‘무덤의 시작’입니다. ‘삶의 에너지’인 믿음이 ‘삶의 멍에’로 바뀌기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막달레나의 정성과 요한의 열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 ‘부담스러운 믿음’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12/27)
요한 사도는 야고보 사도의 동생이다. 형제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였는데,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되었다. 두 사람은 스승님의 애정을 많이 받았다. 중요한 기적의 장소에는 늘 베드로 사도와 함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이 요한 사도에게 성모님을 당부하셨다. 초대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였던 요한 사도는 ‘파트모스 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에페소에서 선종하였다.
말씀의 초대
요한은 영원한 생명의 말씀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눈으로 보았고 손으로 만져 본 진리다. 그것은 또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스승 예수님에 관한 추억이기도 하다. 그분은 세상이 있기 전부터 계셨던 분이시고, 생명이 있기 전부터 존재했던 분이시다(제1독서).
제1독서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 요한 1서의 시작입니다. 1,1-4 사랑하는 여러분,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그리고 보고 믿었다.”
헬레나씨!
성탄 때 우리성당에서 미사참례하지 않았어?
요즈음 바빠서 타 본당으로 가는데 왜? 무슨 일있어?
이번 성탄미사는 주교님도 오셔서 좋았는데...
헬레나씨가 보이지 않아 섭섭했어
참 그리고 우리구역 판공문제집 잘해서 상탔어1등했어
상금이 거금 20만원이야 헬레나씨가 수고한 덕분이야
오! 정말? 우리 상금 모았다가 성지순례갑시다^^
나도 고마워^*^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리고 보고 믿었다.”
말씀이 가슴이 뭉쿨해집니다
그리고
너희는 보고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토마 사도께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맞아요 주님!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지요?
그럼 저도 행복한 사람이지요? 주님!
저도 당신을 보지 않고도 믿었으니 행복하지요?
녜!주님!
저 헬레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비록 세속에서 힘들고 고통이 많은 삶을 살고 있지만
당신을 보지 않고도 믿었기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리구요 주님!
저 사실은 이번 성탄 판공문제집을 풀면서 힘들고 어렵고
솔직히 구역반장님의 압력(?)으로 부담이 많이 되었지만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문제를 풀었습니다
구역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하는마음으로...
다행히 결과가 좋게 나와 기뻐하는 구역식구들을 보니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봉사는 거창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처해있는
그 자리에서 성의껏하면 되는 것이라고...
부담갖지 않으며 잔머리 굴리지 않으며 ...
순수하고 계산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
당신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리고 보고 믿었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찬미하나이다, 저희 하느님.
주님이신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영광에 빛나는 사도들의 대열이
주님을 높이 기려 받드나이다.
아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일수 있을까?
사랑하는 그 사람이 정말 부활했음을 믿을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던져 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아버지를 무지 사랑했나 봅니다.
그 새벽에 아버지의 무덤을 찾는 것을 보니까요.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무서워서~~
그치만 사랑이 있기에 그리할 수 있겠지요.
예전에 저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날 깜깜한 새벽에
저희 친정아버지가 없어지셨답니다.
겨울이었거든요.
가족 모두가 찾아 나섰지만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던중 이웃 할머니가 우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할아버지 산소에서 친정아버지가 울고 있더래요.
그 소리를 듣고 모두 뛰어갔는데
울다 지쳐서 목소리도 안나오더군요.
눈도 퉁퉁 붓고~~~ 온 몸이 얼어 굳어있었습니다.
오빠와 저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울었답니다.
살아계실 때 아버지에게 정말 못한 할아버지였는데~~
소문난 부자였지만 막내를 제외한 다른 아들들에게 다 주시고
자리에 누워선 갈곳이 없어 저희집에서 돌아가셨지요.
그러면서도 아들과 며느리에게 못할 일을 하면서
온갖 욕과 성질을 다 부리고 했답니다.
그런데도 대소변을 다 받아내면서 병수발을 10년이나 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분다요.
그런 아버지의 죽음이 애절했나 봅니다.
목이 쉬라 울정도로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토하며
한참을 할아버지 무덤앞에서 하소연을 하시다가 실신하여
동네 어른들이 아버지를 집에다 모셨습니다.
아마도 미움을 받고 서러움을 받았어도 사랑했나 봅니다.
그러한 아버지를~~~
저같으면 그리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새벽에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지도 않았겠지요.
마리아 막달레나의 모습을 그리다가
친정 아버지의 그 일이 떠 오르는 밤입니다.
그러한 친정 아버지마저 다 안아주실 아버지시기에
전 하루하루 아버지께 수다를 떨때면 너무나 행복하답니다.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 처럼 가슴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사랑으로
아버지를 더 깊이 사랑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 시간입니다.
모든 자식이 다 이쁘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어오는 자식이 있잖아요. ㅎㅎ
아닐수도 있지요.
사랑하는 자식에게 아버지의 부활을 보여주시고,
또 사랑하기에 온 마음으로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믿지요.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열정으로 기쁘게 전할 수 있었겠지요.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확신으로~~
만약 두려움이 있다면
아마도 무덤이 두려운게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약했기에 오는 두려움이 아닌가 싶네요.
그치요?
아버지!
전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를 돌아봅니다.
진정 제가 아버지께 제 온 마음을 드리고 있는지를~~
그리고 사랑의 열정으로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지를 돌이켜 봅니다.
그 새벽에 아버지를 찾는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불타올랐음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표징이 아니라
사랑함에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아버지의 목소리와 향취를 느낄수 있는
저가 되어야 겠다고 마음속 깊이 다짐을 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가
그 새벽에 아버지의 무덤을 찾습니다.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자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달려가
말하지요. “누가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라고~~
그 말에서 깊은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믿기지 않아 그 새벽에 찾아가는 모습!
누가 주님을 꺼내갔다고 하는 그 모습을 그리는데
제 가슴도 찡해 왔습니다.
그 모습에 비하면 전 얼만큼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는지요.
어설픈 사랑이기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주위만 멤돌고 있는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제자들이 가서 아버지께서 부활하심을 믿는 그 모습에서도
저의 부족한 믿음이 보여짐에 고개를 숙입니다.
한켠에 개켜진 아마포를 보고 믿는 제자들!
저라면 어림도 없지요.
사랑이 아니면 그리할수 없음을 압니다.
사랑하기에 보여주시고, 사랑하기에 볼 수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제겐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수치가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
부족한 저가 아버지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올라
두려움이 아닌 기쁨으로 아버지께 다가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제 삶으로 행복의 기쁨을 노래하게 하소서.
누가 뭐래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제 삶의 원동력이 되게 하시어
언제 어디서든 아버지를 부르며
가장 친한 딸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사랑의 믿음으로 아버지의 모습을 닮게 하소서.
또한 무덤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어
저를 돌아보는 지혜를 주소서.
아멘.
“그리고 보고 믿었다”라는 말씀에
외람되게도 안나는 웃음이 났다.
위로도 되었다.
그분들의 행위에 웃었다고 흉보지는 아니하시리라.
어쩌면 겸연쩍게 웃으시며 “우리도 그랬어요” 하시며
겸손으로 우리 손을 잡아 주시리라.
“괜찮아요 용기 잃지 말아요. 지금부터라도 결코 늦지 않았으니
천천치 천천히 시작하셔도돼요.”
우리가 지레 겁을 먹고 주저않지 않도록
한걸음씩 한걸음씩 하느님 아버지께 다가가신 그분들!
그분들과 우리가 다르지 않음이고
그분들과 모두가 다르지 않음이 아닌가.
생명의 씨앗인 사랑이 있는 한 넘어지고 일어섬은 성숙의 수련이리라.
먼저 가신 분들의 길에 서서 감사드리는 아침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