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많게 하신 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로 나타나셨다.


주님 공현 후 화요일(1/6)


    말씀의 초대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오천 명 이상이 배불리 먹었다. 하느님의 풍요로움을 알려 주는 기적이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그런 능력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예수님의 손을 거치면 기적의 그 무엇으로 바뀔 수 있다(복음).
    복음
    <빵을 많게 하신 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로 나타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4-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어느덧 늦은 시간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알아보고서,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시어, 모두 푸른 풀밭에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 잡게 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았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빵을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제자들은 걱정합니다. 군중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지만 먹을 것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현실적인 고민입니다. 그들은 스승님께 빨리 이들을 파견하시라고 합니다. 먹을 것을 해결하도록 지시하시라는 것이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입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너무나 뜻밖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화들짝 놀라 반문합니다. ‘저희가 무슨 돈으로 그토록 엄청난 빵을 사 올 수 있단 말입니까?’ 스승님의 명령에 거절하고 반박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들을 놀라게 하시려 그랬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당신께서 계심을 잊었냐는 ‘질책’입니다. 수없이 기적을 보았으면서도 걱정하느냐는 ‘꾸중’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스승님의 능력을 잠시나마 망각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의 기적은 이렇게 해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지요? 어려움이 닥치면 무엇을 먼저 걱정하는지요? 복음의 내용은 동화 속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청하고 기다리면 주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루어 주신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니 그동안의 기도와 선행을 잊어선 안 됩니다. 가르침을 거부하려는 이유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물리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그는 어디에 있을까? - 노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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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많게 하신 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로 나타나셨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주님 공현 후 화요일(1/6)


      말씀의 초대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오천 명 이상이 배불리 먹었다. 하느님의 풍요로움을 알려 주는 기적이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그런 능력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예수님의 손을 거치면 기적의 그 무엇으로 바뀔 수 있다(복음).
      복음
      <빵을 많게 하신 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로 나타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4-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어느덧 늦은 시간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알아보고서,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시어, 모두 푸른 풀밭에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 잡게 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았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빵을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제자들은 걱정합니다. 군중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지만 먹을 것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현실적인 고민입니다. 그들은 스승님께 빨리 이들을 파견하시라고 합니다. 먹을 것을 해결하도록 지시하시라는 것이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입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너무나 뜻밖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화들짝 놀라 반문합니다. ‘저희가 무슨 돈으로 그토록 엄청난 빵을 사 올 수 있단 말입니까?’ 스승님의 명령에 거절하고 반박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들을 놀라게 하시려 그랬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당신께서 계심을 잊었냐는 ‘질책’입니다. 수없이 기적을 보았으면서도 걱정하느냐는 ‘꾸중’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스승님의 능력을 잠시나마 망각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의 기적은 이렇게 해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지요? 어려움이 닥치면 무엇을 먼저 걱정하는지요? 복음의 내용은 동화 속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청하고 기다리면 주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루어 주신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니 그동안의 기도와 선행을 잊어선 안 됩니다. 가르침을 거부하려는 이유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물리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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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주님 공현 후 화요일(1/6)


      말씀의 초대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온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게 된다. 사랑 안에 살아야 하느님 안에 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도 하느님의 사랑 때문이다. 인간을 사랑하셨기에 아드님을 보내 주신 것이다(제1독서).
      제1독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0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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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

    주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복음말씀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마 
    가장 많이 듣고 묵상을 한 말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복음말씀을 접할 때마다 느낌은 저의 변덕만큼이나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기분이 좋을 때는 당신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고...
    제가 변덕이 날 때 이솝이야기에 나올 법한 말씀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었고...

     
    어느 때는 당신의 사랑과 자비에 눈물이 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생각모두가 같은 복음말씀인데도
    저의 기분에 따라 묵상이 다르다는 생각에 저의 신앙심이라는 것또한
    별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확고하면 복음묵상의 느낌이 같았을텐데...
    어느 때는 오히려 영세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가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생활을 어떻게 한 것인지....
    복음묵상을 한지가 언제인데...
    영세한지가 언제인데...
    왜? 아직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인지...
    아직도 저의 마음 속에는 오병이의 기적이 믿어지지 않아서인가?
    등등....
    참 많이도 갈등을 합니다

    당신께서는 겨우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도
    감사의 기도를 하시는데 그 마음을 그 사랑을 
    왜 깨닫지 못하는지...
    감사의 마음이 부족해서 인가 봅니다
    신앙의 깊이의 척도가 형편없어서 인가 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인가 봅니다
    당신께서는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로도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데...
    허기진 배를 움켜지고도 당신의 말씀을 듣고 믿었던
    군중들의 믿음을 본받았으면 좋을텐데...
    저의 불신앙이 저의 부족한 믿음이 부끄럽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기쁘게 받아 드리며
    감사 할 줄 아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욕심내지 않으며 주어진 삶을 감사하며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린 당신을 닮아..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묶인 이들에게 해방을 알리게 하셨도다.

    아멘

  4. guest 님의 말:


     

    아주 쌀쌀하지만 달을 벗삼아 잠시 마당을 돌고 왔습니다.

    촛불도 켜 놓은채로~~

    말씀을 묵상하면서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랑이시기에 이 모든 것들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시간 참사랑을 나누지 못함을 반성합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사랑과 믿음에 대해서 말하지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라고~~~

    그리고 오늘 말씀에선 아버지의 깊고 애틋한 사랑을 느낍니다.

    그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는 아버지!

    그들이 목자없는 양들 같았기에 마음 아파하시는 아버지!

    정말 깊은 아버지의 사랑을 안으면서 옛 추억을 떠올려 봅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 랍니다.

    가을 추수로 한참 바쁠 때 였습니다.

    주일이었는데 벼를 벤다고 저희 가족모두가 들로 갔지요.

    그땐 다 낫으로 베었잖아요.

    먼저 가시어 한줄을 베어서 질지 않은 곳에 벼를 깔아놓고

    저를 앉혀 주신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한톨이 아까운 시절이었는데~~

    재밌죠?

    몇일 뒷면 영어 암송대회를 나가는 딸에 대한 배려였지요.

    그리고 전 일을 전혀 못하기도 했었지만요.

    늘 오빠는 맏이라고, 동생은 남자라고 모든 일을 했지요.

    그러니 베짱이같은 저를 두고 둘이서 얼마나 뭐라하던지요.

    허긴 당연하지요.

    오전내내 배짱이처럼 볏단을 밟고 건너뛰기를 하면서 요란하게 외웠지요.

    그러다 갑자기 호기심에 그것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빠한테 낫을 달라고 해서 두어번 했을까

    난데없이 손가락을 건드렸는데 피가 멈추질 않았습니다.

    놀란 저는 울기만 했고 엄마가 달려오고

    옆논에 계시던 아버지께서 하얗게 질려 달려오시더니

    낫으로 아버지의 속옷을 잘라가지고 제 손가락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들고 있으라고 하신뒤에야 오빠를 찾았지요.

    그땐 이미 오빠는 튀고 없었습니다.

    사실은 엄마가 오빠를 논두렁 밑 개울로 숨겼거든요.

    솔직히 제가 달라고 한 것인데~~

    오빠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징그런 차별이겠지만

    제겐 세상 무엇보다 아름다운 사랑이거든요.

    얼마의 시간이 지난뒤에 손을 내리고 보니 피가 멎었습니다.

    근데 아버지의 배부분에 피가 묻어 있었답니다.

    알고보니 제 손가락을 감으려 옷을 자를때

    낫끝이 아버지의 배를 살짝 건드린 것이었지요.

    그런데도 그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때문에~~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려 옵니다.

    그 사랑을 이젠 제가 아버지께로 돌리고, 그런 부모님을 아버지께 맡겨 드렸지요.

    제가 과연 그런 사랑을 아버지께 드릴 수 있을까요?

    또한 부모님께 돌려 드릴 수 있을까요?

    사랑!

    제 속에 따뜻한 사랑이 흐르고 있겠지요?

    아직은 도랑이지만 나아가선 개울이 되고,

    더 나아가선 바다가 되었음 합니다.

    사랑이신 아버지께서 많은 이들을 그냥 돌려 보내지 않으시고

    그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찼고,

    빵을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다고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다 고백하면서도

    때론 아버지를 믿지 못하고 뭔가를 더 보여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은 없었는지~

    보고서도 믿지 못하는 이가 저는 아니었는지~~

    사랑의 실천이 곧 아버지를 사랑함을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요.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다고 하지요.

    전 많은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드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씀을 새기면서 전 많은 추억들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도 전 당연한 걸로 알았고

    누구나 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엄청난 착각을 했었지요.

    그랬던 제가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면서 참사랑을 알게 되었고

    자식을 키우면서 그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이 아버지의 향취속에 머물며

    변함없이 재재거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의 힘으로 제가 설 수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아버지께서는 모여든 군중들을

    돌려 보내어 먹게 하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라고~~

    굶주림에 지쳤을 그들을 생각해 보면서

    마음 한켠에선 아버지의 그 사랑을 제 온맘에 담아봅니다.

    목자없는 양들같아서 가엾은 마음이 드신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무겁기도 했습니다.

    독서에서도 말합니다.

    아버진 사랑이시라고~~~

    그 사랑이시기에 오천 명을 먹이고도 그만큼이나 남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반성합니다.

    사랑을 받았음에 돌려주어야 함을 모른 이기공주 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를 사랑함에 제 삶을 사랑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부족한 사랑의 소리지만 아버지를 사랑함에 큰 메아리 되어 돌게 하소서.

    그리하여 사랑의 메가폰으로 널리널리 저의 사랑을 전하게 하시어

    소외된 이들에게 제 기쁨의 삶을 나누게 하소서.

    사랑의 삶이기에 아버지께로 나아감에 있어서 힘이 넘치게 하소서.

    욕심의 삶이 아니라 사랑의 삶이기에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시어,

    아침 이슬을 담는 눈부신 햇살처럼 불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5. guest 님의 말:

     

    오천 명을 먹이시다.

    1. 말씀읽기: 마르코 6,34-44

    오천 명을 먹이시다 (마태 14,13-21 ; 루카 9,10-17 ; 요한 6,1-14)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그들에게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과 병자를 치유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둘씩 짝지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면서 회개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하였고, 그렇게 예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병자를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내었는데, 그것들을 예수님께 모두 보고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습니다. 분명 예수님도 지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염려하시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바로 제자들입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 일행의 행선지는 알지 못하였지만 배가 향하는 방향을 보고 예수님께서 가실 곳을 앞질러 달려갔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배에서 내리시니 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십니다.

     예수님께로 달려온 사람들은 결코 외면 받지 않는다는 것 반드시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예수님께로 가기만 하면, 달려가기만 하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반겨 주십니다. 나의 청을 들어 주십니다. 예수님께 매달리십시오. 예수님께 달려가십시오.

     그들은 길이 멀든, 괴롭든, 먹을 것이 있든 없든, 오직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달렸을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기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길 잃은 양을 발견한 착한 목자는 자신의 양들을 돌보십니다.


    35 어느덧 늦은 시간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한 가지 걱정이 생겼습니다. 외딴 곳에 있는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얼마나 큰일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을 작게 보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입니다. ①외딴 곳 ② 시간도 이미 늦었다는 것.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외딴 곳이기에 이들을 먹여야 하고, 시간이 이미 늦었기에 당연히 먹여서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36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이들의 배고픔을 달랠 수가 없으니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참으로 손쉬운 해결책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원하실까요? 성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쉬운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유혹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런 유혹을 당할 때, 어떻게 반응할까요?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하죠.”,“없던 걸로 하죠.”라고 해서는 안 되겠지요.


    37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제자들이 무척 당황했을 것입니다. 무슨 재주로 그들을 먹일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신앙을 시험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출발점이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을 당신의 양떼로 보고 계시고, 제자들은 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일과 기쁨의 거리는 너무 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때, 제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갈 것입니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알아보고서,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사실 이 정도의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그렇게 풍족하게 먹으면서 전도여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한적한 곳으로 가서 쉬려고 했다면 좀더 많은 것을 준비했어야 했을 텐데 제자들이 준비한 것은 겨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 어쩌면 이 고백 안에는 “주님! 지금 저희 코가 석자인데 누구를 돕는단 말씀입니까?”라는 불평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3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시어, 모두 푸른 풀밭에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 잡게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실 일을 실행에 옮기십니다. 먼저 군중들을 자리에 앉게 하는 것입니다. 푸른 풀밭은 목자가 양들을 이끄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푸른 풀밭은 양들에게 있어서는 목자가 만들어 주어야만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양들이 누워서 쉬기 위해서는 배부르게 먹어야 하고, 사나운 짐승들의 위협이 없어야 합니다. 그 모든 것들은 목자가 양들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목자이심을 양들에게 보여주시려 하십니다.


    40 그래서 사람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았다.

     제자들은 사람들을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 잡게 하였습니다. 군중들은 제자들의 말을 잘 따라주었습니다.


    41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오천 명 앞에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보잘것없는 식사라 할지라도 그것에 감사를 드린다면 기적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난하여 밥과 반찬을 제대로 준비할 수 없는 가정에서 “그것만이라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감사하면서 함께 식사를 하는 집과 불평과 불만에 가득 차서 식사를 하는 집”감사하는 가정에는 분명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들의 식탁이 풍요로워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랑으로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에 웃음이 흘러나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웃음이 나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눠 주십니다.


    42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작은 것을 가지고 군중을 배불리 먹이십니다. 기적을 이루십니다. 12광주리가 남았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먹이실 수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 너무도 관대하셔서 백성들을 풍족하게 먹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은 것을 모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것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을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광주리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빵과 물고기. 제자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이 기적을 엘리야를 통하여 사렙다의 과부는 이미 체험했습니다. 아무리 써도 줄지 않은 밀가루와 기름의 기적으로…,


    43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제자들은 먹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두 모았습니다. 그런데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던 제자들에게는 이제 열두 광주리의 음식이 있습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얼마나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지,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먹는 식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그것을 남기거나 소홀히 취급한다면, 그래서 버리게 된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소홀히 여기는 것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해 주신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44 빵을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다.

     빵을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말씀으로 배부르고, 빵으로 배부른 그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일만 남았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예수님께로 향하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 욕심이 있습니다. 나는 어떤 욕심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향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기 위한 욕심입니까? 아니면 다른 것을 청하기 위한 욕심입니까?


    ② 빵을 배불리 먹은 군중들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제자들의 마음이 되고, 제자들의 눈이 되어 그 상황을 이야기 해보고, 제자들의 기쁨을 나눠 봅시다.


  6. guest 님의 말:

    주님 마음은 늘 따뜻하셨다.
    아파하는 이가 있으면 함께 아파 해 주신다.
    측은지심으로 언제나 사람들을 품어 주신다.

    가진 것을 다 내어 놓으시는 분,
    미루지도 않으신다.
    생각으로 끝내지도 않으신다.
    지금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다음이 아니라 지금 도움을 주신다.

    “너희가 주어라.”

    외딴 곳이고 이미 늦었으니 어찌해야 하느냐는 제자의 말에
    “가서 보아라.”이르신다.

    사랑이란 미룰 일도 아니고
    사랑이란 불가능이 없나보다.

  7. guest 님의 말:

    어제는 이른 아침부터 대문앞에 젊은 여인과 아이 둘이 서 있었습니다.
    몇일 굶었으니 먹을 것이 있으면 자기보다 아이들 좀 주면 안되냐고 합니다.
    ………
    요즘 모두가 힘든가 봅니다.
    얼마전 TV에서 가슴 아픈 개의 모습을 봤습니다.
    몇달을 굶었는지 몸은 앙상하고 눈동자가 다 풀려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자기를 버린 그곳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착한 사람들이 있어 거두어 주는 걸 보고 기뻤습니다.

    힘든 경제 때문에 사랑하는 이들과 어쩔수 없이 헤어져야 하고
    동고동락 했던 짐승들 또한 버릴수 밖에 없었나 봅니다.
    그러나 있는 사람은 이런 절실한 마음을 잘 모릅니다.
    그전보다 소비가 줄어들어 조금 어려울 뿐입니다.
    그들은 생계의 위협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삽니다.

    어제는 푸짐하고 비싼 점심을 얻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생각하니 괴로웠습니다.
    왜 먹지 못하냐고 합니다.
    사실 돈이 넘쳐서 절 사주는 거 아니라는 거 압니다.
    감사한 마음에 기쁘게 먹긴 했습니다만 마음 한구석은 솔직히 편치 않았습니다.
    저녁 또한 비싼 음식으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대화중에 이런 말도 오갔습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해도 아직은 아닌 것 같다고…
    스키장에 사람이 몰려 터질지경이고 골프장 역시 마찬가지라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보지 못해서 입니다.
    볼려고 마음만 먹으면 볼수 있는데 마음이 불편해지니 눈을 감아버리고 맙니다.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더 가난에 시달립니다.
    정말 빈익빈 부익부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아무리 일을 하려고 노력해도 일자리를 구할수 없는 어느 가장의 애타는 심정에 눈물이 납니다.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스키라는 단어에 “그게 뭔데? 나도 가고싶다…”합니다.

    얼마전 동행이란 프로를 봤습니다.
    6섯살짜리 어린소녀가 하루종일 굶고 600원짜리 삶은계란 하나를 사달라고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래도 밥을 먹이고 싶어서 삼각김밥을 먹으라 합니다.
    아이는 계란이 먹고 싶다고 자꾸 떼를 씁니다.
    저는 그날 삼각김밥 하나가 600원인줄 처음 알았습니다.
    가격도 모르고 사는 내가 창피했습니다.
    없는 사람은 단돈 백원때문에 울고 웃는데…
    암튼 600원짜리 계란 하나를 사서 자식에게만 먹이고 자신은 굶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수많은 군중에게 늦은시간이 되도록 많은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늦어지는 것을 걱정을 합니다.때(먹을때)가 다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모두 굶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합니다.
    또한 재빠른 계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셨을때
    제자들은 이백데나리온어치가 드는데요? 라고 말을 할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역시 제자들 처럼 계산을 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나 반성해 봤습니다.
    나눔에 있어서 이것저것 재지 않고 그분이 채워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나누어야 하는데
    내가 이것을 주면 내가 어려워 질테지…
    아니면 저사람은 내게 뭘 줄건가 이렇게 말입니다.

    물질을 줬으니 물질로 받기를 바랬기에 채워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물질로 주지 않더라도
    제가 필요한 또 다른 것으로 차고 넘치게 채워주셨음을 솔직히 고백해 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십니다.
    그분은 하느님이시에 가능하십니다.
    인간의 머리와 계산으로써는 절대 이해될수 없는 모습입니다.

    저는 이 복음을 접할때마다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마더데레사처럼 하나 둘 나눔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기적으로 이해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은 전혀 다른 기적임을 깨달아 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그분이 뭐는 못하시겠는가…말이지요.

    제가 제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그만큼 그분에 대한 믿음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자들처럼 계산하는 저이기에
    눈물만 흘리면서 나눔에는 인색한지 모르겠습니다.

    엊그제
    신자들의 기도에서 가난이들에게 어쩌구 저쩌구….주님 들어주셔요.기도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볼때 아! 불쌍해 눈물이 난다….입으로 밥 사먹으셔요…했습니다.
    돈을 줘야지! 지나가는 나그네야…
    그분이 채워주지 않을까봐 의심스러워 내것을 다 나눌수 없는 나는 아닌가….

    주님!
    다 줄수 있도록 제 마음을 비워주소서.

  8. guest 님의 말:

    (no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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