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1. 말씀읽기: 마르코 1,29-39



2. 말씀연구

병을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 마귀를 쫓아내시는 예수님. 그분은 나를 위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정성을 쏟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그렇게 내 주변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29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당신의 백성을 가르치시고, 마귀를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십니다. 즉 시몬이 예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마침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시몬의 장모를 위해서 예수님께 사정을 이야기 합니다. 누군가가 고통 중에 있을 때, 그를 위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그를 위로 한다는 것은 사랑입니다. 또한 그런 사랑을 베풀지 않으면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시몬의 장모는 덕망이 있는 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덕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다른 이들에게 복을 줄 수 있고, 또 내가 다른 이들을 통해서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변덕만 쌓아 가면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없게 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봉성체를 주선해 주고, 환자들을 위한 미사에 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사람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덕 있는 삶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시몬의 장모의 사정을 알린 것처럼 나 또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어야 하고, 그가 아프면 본당에 알려주고, 공동체에서 방문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그러자 열이 가셨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문득 “시중을 들게 하기 위해서 고쳐 주셨나?” 하는 분심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이용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당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분은 결코 아니십니다. 그분께서는 아무 조건 없이, 청하는 이들의 청원을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녀의 봉사는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고, 할 수 있는 기회가 예수님을 통해서 온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도 기쁘게 주님께 봉사를 한 것입니다.



<웃어봅시다.>

시몬과 시몬의 친구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시몬의 집으로 왔다.

“어머니! 저희들 왔습니다.”

“어서들 오시게. 그런데 내가 좀 아파서…,”

시몬의 장모님은 열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시몬은 장모님께 말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중국집에 시켜서 먹을게요.”

그러자 친구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리 마을에서 자네 장모님 음식 솜씨가 최고 아닌가?”

“어머님이 아프시니 어쩔 수 없지!”

그러자 한 친구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어!”

그리고 예수님께 말씀드렸다.

…….

“예수님! 시몬의 장모님 좀 고쳐주세요…,”

그날 밤 예수님과 친구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동네에는 예수님의 소문이 돌았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해 주셨다는 소식,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셨다는 소식. 아픈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을까요? 그들은 안식일 규정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안식일의 규정은 해질 때까지 지켜야 했기 때문에 해가 지자마자(안식일이 끝나자마자) 곧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모여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어 주신 이 행위는 자비심에 넘치는 선의의 표본입니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루만져 주시는 예수님. 나도 그래야 합니다. 내 손길이 필요로 하는 이들을 향해서 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식일을 지키는 유다인들처럼 형식에 얽매여 손을 내밀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머뭇거리거나 주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바로 내가 아닌가를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내가 다른 사람들을 눈치 보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로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요? 하지만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의 눈을 의식해야 했기에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예수님께로 달려오는 것입니다. 아마도 해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그들의 마음은 모두 까맣게 타들어갔을 것입니다.

 하고 싶은데 못하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눈치를 보는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부족한 사람들은 그의 그 순수한 마음에 나는 상처를 주고, 눈치를 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온 고을 사람들이 시몬 베드로의 집 앞에 모여 들었습니다. 집안에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 한계가 있으니 결국 못 들어 간 사람들은 문 앞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당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도 많은 형제자매들이 성당으로 몰려들어 모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성당 문 앞에서 미사에 참례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상황이 매일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귀들은 예수님께 대항하려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예수님을 무기력 하 하려 했습니다. 고대에서는 악마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 악마를 추방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여기서 마귀 들린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들에게 대항하고 한 그 마술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예수님께 대항하려 하였습니다. 이제 구원의 시대가 도래 하여 예수님과 마귀와의 투쟁이 불타올랐습니다. 그러나 마귀들의 힘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승리를 거두십니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일어나시어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셨습니다. 늘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 그러므로 예수님을 본 것은 바로 아버지 하느님을 본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이 하느님 아버지의 일이고, 예수님의 말씀이 곧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에 홀로 아버지와 대화하셨는데, 아마도 이날은 기도하실 시간이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즉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르침을 청했고, 또 치유를 청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새벽녘에야 비로소 집으로 가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집에 가서 얼른 아침을 먹고 또 예수님을 찾아 왔을 것을 입니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시몬과 그 일행은 새벽에 사라지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아마 밤새워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고, 치유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잠깐 눈을 부치고 다시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사라지시자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고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로부터 기적의 힘이 나오고, 예수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걱정 없을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 이들이 예수님을 참된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예수님의 활동영역은 계속 확산되어 나갑니다. 나자렛으로부터 카파르나움과 그 주변으로, 그리고 팔레스티나 전역을 의미하는 유대 지방으로 확산됩니다. 예수님의 메시지가 모든 회당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회당들에서만 울려 퍼집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후에는 예수님의 활동 영역이 모든 경계를 초월하게 될 것입니다.

 씨 뿌리는 이의 비유가 떠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믿음의 씨를 뿌리십니다. 어떤 동네에서는 잘 자라고, 또 어떤 동네에서는 전혀 결실이 없기도 합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믿음의 씨는 어떻게 자라서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그늘을 드리울 만큼, 시원함을 줄 만큼 자랐습니까?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고 있습니까?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예수님께서는 안주하지 않으십니다.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야 합니다.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시기 위해서는 늘 기도하셔야 했고, 하느님의 뜻을 물으셔야 했고,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상기하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야 수많은 반대세력과 모욕자들 속에서도 힘을 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또한 그렇게 예수님께서 나에게 부여하신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그런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병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해서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병자들을 방문하면서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②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곳에 기쁜 소식이 퍼져 나가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세상 모든 것은 접어 두고라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어렵습니다. 냉담중인 부모님이나, 아이들, 비신자인 남편이나 아내, 동네 사람들, 직장 동료들. 그들에게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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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에 1개의 응답

  1. 엘리사벳 님의 말:

    기도하는 방법외엔 딱히 해 드릴게 없음이 죄송할 뿐이랍니다. 마음을 드린다곤 하지만 다는 아니겠지요.
    안타깝고 가엾기도 하면서 저분들이 눕기전에 더 많이 아버지앞에 나올 수 있게
    그분들의 눈과 손과 발이 되어 드려야 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잘하지 못함을 반성해 봅니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선 제 신체의 일부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참 이기적이지요?

    맞습니다. 저도 남편이 늦게 영세를 받았는데 정말 어려웠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넘어지지 않는 한, 불가능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제가 지쳐 주저앉지 않으면 무엇이든 아버지께로 가는데 있어서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뛰어 넘을 수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제가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당장 폭탄이 터질 것 같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제가 놀라지 않으니 결국엔 그쪽이 주저 않더군요.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2. ^*^ 님의 말:

    골수 기증이라든지 장기 기증이라든지…
    아마 내 가족중의 하나가 필요하다면 거부하지 못하겠지요.
    그런데 사후 시신 기증 등은 왠지 꺼려지는데…ㅎㅎ
    무서워서 그런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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