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연중 제2주일(1/18)


    (일치 주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일치를 위하여 기도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1월 18일부터 ‘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인 1월 25일까지를 ‘일치 주간’으로 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특별히 올해 일치 주간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와 개신교(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가 공동으로 준비한 ‘일치 주간 기도문’을 전 세계 교회가 교파를 초월하여 공동으로 바치게 되어, 한국의 교회 일치 운동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일치 주간을 맞으며, 이 기간(18-25일)에는 ‘오늘의 묵상’에 이어,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에서 제공한 ‘일치 주간의 묵상’도 함께 싣는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첫 제자들을 부르신다. 안드레아와 그의 형 시몬이었다. 특별히 시몬에게는 ‘케파’(베드로)라는 영적 이름을 주신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암시다(복음).
    복음
    <그들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2 그때에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 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놀랍게도 주님께서는 처음 만난 그에게 이름을 바꾸라고 하십니다. 본래 이름 ‘시몬’ 대신에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십니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을 숨기고 싶을 때 이름을 바꿉니다. 지난날의 모습을 없애고 싶을 때 이름을 바꿉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런 암시를 주셨던 것입니다. ‘시몬은 죽었다. 그러니 너는 이제 베드로로 다시 태어나라.’ 이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은 이렇게 이름을 바꾸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베드로의 운명을 바꿉니다. 바위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위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견디어 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 모습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흔들리고 있는지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흐느적거리며 살고 있는지요? ‘별것도 아닌 말’에 속상해하고, 별일도 아닌 사건’에 격분합니다. 지나고 보면 정말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었던’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베드로 사도만이 이름을 바꾼 것은 아닙니다. 우리 역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세례명에 걸맞게 살고 있는지 오늘은 돌아봐야겠습니다. 일치 주간의 묵상 - 1일째 우리는 누구나 첫 만남과 첫 경험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예수님과 첫 만남을 가졌던 장소와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교회 안에서 세례성사로 하나가 된 모든 그리스도인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으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함께 고백합니다. 일치 주간의 첫날인 오늘은 갈라진 우리의 현실에 대한 성찰로 시작합니다. 민족이 분단된 현실 속에서 우리는 교회마저 갈라진 채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부끄러운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분명히 분열된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의 현실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복음적 증언 능력에 막대한 손상을 입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십자가 안에서 끌어안으시는 하느님과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친교의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서로가 하나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대화와 공동 증언, 선교의 노력을 기울일 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일치시키시고, 반목과 질시로 얼룩진 우리를 서로 화해시켜 주실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며 그 구원의 사랑으로 온 인류를 화해시켜 주시고자 하시니, 갈라진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의 일치를 위하여 일하고 기도하는 저희를 굽어보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한 형제자매라는 것을 체험하게 하시고, 주님 손안에서 하나 되게 하소서. 아멘.”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를 처음 만난 날 




이 글은 카테고리: 오늘의독서·묵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그들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2주일(1/18)


      (일치 주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일치를 위하여 기도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1월 18일부터 ‘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인 1월 25일까지를 ‘일치 주간’으로 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특별히 올해 일치 주간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와 개신교(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가 공동으로 준비한 ‘일치 주간 기도문’을 전 세계 교회가 교파를 초월하여 공동으로 바치게 되어, 한국의 교회 일치 운동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일치 주간을 맞으며, 이 기간(18-25일)에는 ‘오늘의 묵상’에 이어,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에서 제공한 ‘일치 주간의 묵상’도 함께 싣는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첫 제자들을 부르신다. 안드레아와 그의 형 시몬이었다. 특별히 시몬에게는 ‘케파’(베드로)라는 영적 이름을 주신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암시다(복음).
      복음
      <그들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2 그때에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 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놀랍게도 주님께서는 처음 만난 그에게 이름을 바꾸라고 하십니다. 본래 이름 ‘시몬’ 대신에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십니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을 숨기고 싶을 때 이름을 바꿉니다. 지난날의 모습을 없애고 싶을 때 이름을 바꿉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런 암시를 주셨던 것입니다. ‘시몬은 죽었다. 그러니 너는 이제 베드로로 다시 태어나라.’ 이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은 이렇게 이름을 바꾸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베드로의 운명을 바꿉니다. 바위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위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견디어 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 모습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흔들리고 있는지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흐느적거리며 살고 있는지요? ‘별것도 아닌 말’에 속상해하고, 별일도 아닌 사건’에 격분합니다. 지나고 보면 정말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었던’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베드로 사도만이 이름을 바꾼 것은 아닙니다. 우리 역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세례명에 걸맞게 살고 있는지 오늘은 돌아봐야겠습니다. 일치 주간의 묵상 - 1일째 우리는 누구나 첫 만남과 첫 경험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예수님과 첫 만남을 가졌던 장소와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교회 안에서 세례성사로 하나가 된 모든 그리스도인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으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함께 고백합니다. 일치 주간의 첫날인 오늘은 갈라진 우리의 현실에 대한 성찰로 시작합니다. 민족이 분단된 현실 속에서 우리는 교회마저 갈라진 채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부끄러운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분명히 분열된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의 현실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복음적 증언 능력에 막대한 손상을 입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십자가 안에서 끌어안으시는 하느님과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친교의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서로가 하나의 신앙을 고백하면서 대화와 공동 증언, 선교의 노력을 기울일 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일치시키시고, 반목과 질시로 얼룩진 우리를 서로 화해시켜 주실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며 그 구원의 사랑으로 온 인류를 화해시켜 주시고자 하시니, 갈라진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의 일치를 위하여 일하고 기도하는 저희를 굽어보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한 형제자매라는 것을 체험하게 하시고, 주님 손안에서 하나 되게 하소서. 아멘.”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를 처음 만난 날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2주일(1/18)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소년 사무엘을 부르신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한다. 사무엘의 스승 ‘엘리’는 하느님께 응답하는 자세를 알려 준다.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사무엘은 그렇게 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는다(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예수님의 힘으로 일으키셨다. 이로써 사람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다. 그분과 결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몸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궁전이다. 믿는 이는 누구나 자신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해야 한다(제2독서).
      제1독서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3,3ㄴ-10.19 그 무렵 사무엘이 하느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자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그가 “예.” 하고 대답하고는, 엘리에게 달려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그래서 사무엘은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주님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내 아들아,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주님께서 세 번째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는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엘리는 주님께서 그 아이를 부르고 계시는 줄 알아차리고, 사무엘에게 일렀다. “가서 자라.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은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주님께서 찾아와 서시어, 아까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6,13ㄷ-15ㄱ.17-20 형제 여러분, 몸은 불륜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몸을 위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주님을 다시 일으키셨으니, 우리도 당신의 힘으로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모릅니까?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분과 한 영이 됩니다. 불륜을 멀리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몸 밖에서 이루어지지만, 불륜을 저지르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를 처음 만난 날 
    
    
    
    
    

  3. guest 님의 말:

    “와서 보아라.”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예전 생각이 납니다
    예비자교리를 받을 때였지요?
    당신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기쁘고 행복해
    동네사람들을 볼 때마다 성당에 함께 가자고 권유를  했지요
    그때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아니! 예수님인지 하느님인지 예전에는 살았는지 모르지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메
    그리고 내 눈으로 보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믿어?
    제가 그랬습니다
    아니!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으면 3일만에 부활하셨다는
    말씀은 못 들으셨어요?
    그리고 모두들 바쁜데  주일이면 잠도 자지 않고 쉬지도 않고
    성당에 가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또 한 가지 보지 않아 믿지 못하신다면 조상들 모두 보셨어요?
    5대조 할아버지 어떻게 생기셨어요?
    고조 할머니 기억나세요?
    성당에 한번 가 보세요
    그 많은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 주일에도 쉬지 못하고
    성당에 가는 것은 그 만큼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 아닐까요?
    그러고 저러고 왈가왈부 할 것이 아니라 직접  성당에 가셔서
    보시면 좋을텐데 저와 함께 성당에 가시면 어떨까요?
    아니!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교회가자고 하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성당 다니는 사람들이 성당가자는 것은 처음이네
    음...
    다음 중에 성당에 행사가 있어요 그때 성당에 한번 오세요
    제가 안내할께요 
    그럴까? 아무나 가도 되는거야? 
    그럼요^*^
    제가 모시러 올께요

    주님!
    그랬습니다 제가 예전에는...
    영세 하기 전부터 십여년동안은 정말 열심히 전교도 많이 하고
    봉사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을 했지요
    요즈음...
    봉사는 커녕 전교는 커녕  주일 지키기도 벅찹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바쁘다는 핑계로...
    사실 저도 제가 이렇게 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랄까 핑계지만 이유는 분명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할 수 없이 봉사를 접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예전처럼 봉사를 할 날이 오리라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와서 보아라.”
    묵상하며
    예전처럼 당신을 증거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우리는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를 만났도다.
    은총과 진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도다. ”

    아멘

      

  4. user#0 님의 말:

    “와서 보아라.”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예전 생각이 납니다
    예비자교리를 받을 때였지요?
    당신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기쁘고 행복해
    동네사람들을 볼 때마다 성당에 함께 가자고 권유를  했지요
    그때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아니! 예수님인지 하느님인지 예전에는 살았는지 모르지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메
    그리고 내 눈으로 보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믿어?
    제가 그랬습니다
    아니!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으면 3일만에 부활하셨다는
    말씀은 못 들으셨어요?
    그리고 모두들 바쁜데  주일이면 잠도 자지 않고 쉬지도 않고
    성당에 가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또 한 가지 보지 않아 믿지 못하신다면 조상들 모두 보셨어요?
    5대조 할아버지 어떻게 생기셨어요?
    고조 할머니 기억나세요?
    성당에 한번 가 보세요
    그 많은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 주일에도 쉬지 못하고
    성당에 가는 것은 그 만큼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 아닐까요?
    그러고 저러고 왈가왈부 할 것이 아니라 직접  성당에 가셔서
    보시면 좋을텐데 저와 함께 성당에 가시면 어떨까요?
    아니!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교회가자고 하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성당 다니는 사람들이 성당가자는 것은 처음이네
    음...
    다음 중에 성당에 행사가 있어요 그때 성당에 한번 오세요
    제가 안내할께요 
    그럴까? 아무나 가도 되는거야? 
    그럼요^*^
    제가 모시러 올께요

    주님!
    그랬습니다 제가 예전에는...
    영세 하기 전부터 십여년동안은 정말 열심히 전교도 많이 하고
    봉사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을 했지요
    요즈음...
    봉사는 커녕 전교는 커녕  주일 지키기도 벅찹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바쁘다는 핑계로...
    사실 저도 제가 이렇게 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랄까 핑계지만 이유는 분명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할 수 없이 봉사를 접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예전처럼 봉사를 할 날이 오리라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와서 보아라.”
    묵상하며
    예전처럼 당신을 증거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우리는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를 만났도다.
    은총과 진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도다. ”

    아멘

      

  5. guest 님의 말:

     

    네비게이션! ㅎㅎ

    아버지,혹시 네비게이션이라고 아세요?

    모르는 길을 안내해 주는 길잡이의 선두주자 랍니다.

    전에 신부님께서 강론하실 때 이런말을 하셨습니다.

    “신앙인의 네비게이션!” 이라고~~

    처음에 무척 웃었는데 정말 기가 막힌 표현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지요.

    신앙인의 네비게이션!

    멋있죠?

    “나를 신앙으로 이끄는 네비게이션은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셨을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답니다.

    금방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 불쌍하지요?” ㅎㅎ

    오늘 말씀중에 요한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제가 영세를 받으려 교리교육을 하면서 함께 봉사를 할 때였지요.

    한결같이 그랬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해야 한다고~~ 그래야 은총이 온다고~~

    그 말을 듣고 열심히 했습니다.

    나름 말씀도 새기고 저도 보면서~~

    하지만 제가 넘지 못하는 산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발 한발 떼어서 걸음마를 하기 시작하니까

    절 두고 그러더군요.

    적당히 선을 지키며 해야 한다고~~

    나서지 말고 보이는 듯, 아닌 듯 해야 한다고~~

    얼마나 큰 혼동이 절 흔들었는지 모른답니다.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아마도 그때 제가 누군가의 손길만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요한이 사람들을 인도하듯 저역시 그런 신앙인의 네비게이션이 되어

    아버지께로 인도하고 있는지를 옛 생각을 더듬으며 반성해 봅니다.

    저가 마음아팠던 일로 또다른 사람들이 마음아파 하는 것은 아닌지요.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간다 하면서도

    누군가 저보다 위에 있는 것은 허락하지 못하고

    그가 올라가지 못하게 잡는 저이진 않았는지요.

    “상처받을까봐 그래” 하면서~~~

    길잡이가 아닌 아는 길도 헷갈리게 만드는 네비처럼

    저역시 열심히 아버지께로 발걸음을 돌리는 형제들을 혼동시켜

    결국은 아버지께로 가는 표지판을 돌려 버리는 유명무실한 엉터리 인도자가

    아니었는지를 깊이 반성해 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시몬에게 새 이름을 지어 주십니다.

    시몬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삶!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역시 아버지의 딸로 새로이 태어났음에 제게 주신 이름을 빛내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도 더불어 반성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말씀에서 요한이 증언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 라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준비하는 이의 모습으로~

    늘 아버지를 증언하는 요한의 모습이 정말 가슴깊이 와 닿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로 사람을 이끄는 모습에서 작은 저의 모습이 비추어 집니다.

    제가 아버지를 고백함에 과연 무엇을 증언하며

    어떻게 형제들을 이끌고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바른 길을 가는 이에게 칭찬과 격려는 커녕,

    저보다 앞서간다 하여 잡아당기며 엉터리 말로 그를 자빠뜨리지는 않았는지를 ~~~

    아버지께 받은 이름으로 멋있게 가르침대로 살아가면서

    많은 형제들을 인도하는 그런 저였는지요.

    아버지!

    아버지를 향한 제 사랑의 불이 빛을 발하여

    아버지를 찾는 이들의 걸음에 비추이게 하소서.

    부족하지만 제 사랑을 불살라 그들에게 작은 등대되게 하소서.

    말씀에 저를 묻고, 아버지의 가르침에 저를 싫어

    더 큰 사랑으로 삶을 살아가는 작은 반딧불이 되게 하소서.

    아멘.

  6. user#0 님의 말:

     

    네비게이션! ㅎㅎ

    아버지,혹시 네비게이션이라고 아세요?

    모르는 길을 안내해 주는 길잡이의 선두주자 랍니다.

    전에 신부님께서 강론하실 때 이런말을 하셨습니다.

    “신앙인의 네비게이션!” 이라고~~

    처음에 무척 웃었는데 정말 기가 막힌 표현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지요.

    신앙인의 네비게이션!

    멋있죠?

    “나를 신앙으로 이끄는 네비게이션은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셨을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답니다.

    금방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 불쌍하지요?” ㅎㅎ

    오늘 말씀중에 요한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제가 영세를 받으려 교리교육을 하면서 함께 봉사를 할 때였지요.

    한결같이 그랬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해야 한다고~~ 그래야 은총이 온다고~~

    그 말을 듣고 열심히 했습니다.

    나름 말씀도 새기고 저도 보면서~~

    하지만 제가 넘지 못하는 산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발 한발 떼어서 걸음마를 하기 시작하니까

    절 두고 그러더군요.

    적당히 선을 지키며 해야 한다고~~

    나서지 말고 보이는 듯, 아닌 듯 해야 한다고~~

    얼마나 큰 혼동이 절 흔들었는지 모른답니다.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아마도 그때 제가 누군가의 손길만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요한이 사람들을 인도하듯 저역시 그런 신앙인의 네비게이션이 되어

    아버지께로 인도하고 있는지를 옛 생각을 더듬으며 반성해 봅니다.

    저가 마음아팠던 일로 또다른 사람들이 마음아파 하는 것은 아닌지요.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간다 하면서도

    누군가 저보다 위에 있는 것은 허락하지 못하고

    그가 올라가지 못하게 잡는 저이진 않았는지요.

    “상처받을까봐 그래” 하면서~~~

    길잡이가 아닌 아는 길도 헷갈리게 만드는 네비처럼

    저역시 열심히 아버지께로 발걸음을 돌리는 형제들을 혼동시켜

    결국은 아버지께로 가는 표지판을 돌려 버리는 유명무실한 엉터리 인도자가

    아니었는지를 깊이 반성해 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시몬에게 새 이름을 지어 주십니다.

    시몬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삶!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역시 아버지의 딸로 새로이 태어났음에 제게 주신 이름을 빛내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도 더불어 반성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말씀에서 요한이 증언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 라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준비하는 이의 모습으로~

    늘 아버지를 증언하는 요한의 모습이 정말 가슴깊이 와 닿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로 사람을 이끄는 모습에서 작은 저의 모습이 비추어 집니다.

    제가 아버지를 고백함에 과연 무엇을 증언하며

    어떻게 형제들을 이끌고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바른 길을 가는 이에게 칭찬과 격려는 커녕,

    저보다 앞서간다 하여 잡아당기며 엉터리 말로 그를 자빠뜨리지는 않았는지를 ~~~

    아버지께 받은 이름으로 멋있게 가르침대로 살아가면서

    많은 형제들을 인도하는 그런 저였는지요.

    아버지!

    아버지를 향한 제 사랑의 불이 빛을 발하여

    아버지를 찾는 이들의 걸음에 비추이게 하소서.

    부족하지만 제 사랑을 불살라 그들에게 작은 등대되게 하소서.

    말씀에 저를 묻고, 아버지의 가르침에 저를 싫어

    더 큰 사랑으로 삶을 살아가는 작은 반딧불이 되게 하소서.

    아멘.

user#0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