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주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가면서 밀 이삭을 비벼 먹었다.
무심코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안식일이었기에
‘해서는 안 될 추수 행위’로 간주되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거슬렀다며 이의를 제기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설득하신다. 그분의 넓은 마음이다(복음).
복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28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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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간 화요일(1/20)
말씀의 초대
주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가면서 밀 이삭을 비벼 먹었다. 무심코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안식일이었기에 ‘해서는 안 될 추수 행위’로 간주되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거슬렀다며 이의를 제기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설득하신다. 그분의 넓은 마음이다(복음).
복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28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많은 교우들이 주일을 ‘의무적인 미사 참여의 날’ 정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주일 미사’에 불참하면 고해성사를 봐야 하고, 그게 귀찮아 성당에 간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 수동적인 자세입니다. ‘주일날 미사 참여’가 의무 규정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한다면 신앙생활의 깊이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주일날 ‘미사 참여’는 안식일(주일)을 지키는 최저 기준입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입니다. 그러므로 미사 참여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미사에 참여하고 성체를 모시면 주일을 거룩히 지낸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안식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일날 잊지 말아야 할 일은 ‘사람을 위한 봉사’입니다.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행위’입니다. 미사 참여도 그런 지향으로 한다면 더 깊은 은총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주일을 ‘법적인 의무’로만 해석해 왔습니다. 그래서 ‘기쁜 주일’이 오히려 ‘짐스러운 주일’로 바뀌었습니다. 마지못해 미사에 참여한다면 살아 있는 은총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늘 묵상해야 합니다. 일치 주간의 묵상 - 3일째 유다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율법의 준수는, 하느님과 계약을 맺어 하느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장 중요한 삶의 토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 준수의 본래 의미를 잊고 율법 자체를 신성시하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탓하십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그 반대는 분명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치 주간 3일째인 오늘은 세상의 논리로 복음의 논리를 폄하하려는 온갖 형태의 경제적 불의와 가난에 맞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 소명을 상기시킵니다. 오늘날의 경제 위기는 경제 체제의 모순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에 있습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는 자신의 재화에 대해 감사하면서 이웃들과 나누기보다는 ‘더 많은 돈’을 인생의 목표이자 최고 가치로 여기는 우리의 탐욕에 있습니다. 율법 학자들처럼 율법 정신보다 율법 자체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재화의 축복 역시 하느님께로 되돌릴 수 있을 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가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가난한 이를 외면한 채 교회의 외적 성장에 매달린다면 결코 참된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로 거듭날 수 없을 것입니다. “정의의 하느님, 이 세상에는 먹을 것이 넘쳐 나는 곳도 있지만, 먹을 것이 없어 많은 이들이 굶주리고 병들어 가는 곳도 있습니다. 평화의 하느님, 이 세상에는 폭력과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자들도 있지만, 전쟁과 폭력 때문에 강제로 자기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된 이들도 있습니다. 자비의 하느님, 저희가 돈만으로는 살 수 없고 하느님 말씀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주소서. 하느님,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뜻과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고서는 저희가 생명을 얻고 참된 번영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출처 매일 미사-
연중 제2주간 화요일(1/20)
말씀의 초대
하느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은 끝까지 기다린다. “나는 너에게 복을 내리고, 너를 번성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브라함이었기에 주님의 축복을 계속 받았다(제1독서).
제1독서
<이 희망은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합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6,10-20 형제 여러분, 하느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시므로, 여러분이 성도들에게 봉사하였고 지금도 봉사하면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행위와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각자가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당신보다 높은 분이 없어 그러한 분을 두고 맹세하실 수 없었으므로,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면서, “정녕코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끈기 있게 기다린 끝에 약속된 것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이를 두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그 맹세는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하는 보증이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로, 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멜키체덱과 같은 영원한 대사제가 되시어, 우리를 위하여 선구자로 그곳에 들어가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
며칠 전부터 머리가 아프고 한축이 나더니 어제저녁부터...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더니 비몽사몽...
정신이 없었습니다 약에 취해서
머릿 속에는 복음묵상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눈이 떠지지 않았습니다
목도 아프고 머리는 띵하고 정신이 없고...
마음은 산란하고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말에 가슴이 뜨끔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입으로는 당신이 주인이시라고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참 입에 발른 말을 많이 했습니다
신앙인은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하는데
언제나 입만 풍년이었습니다
행동은 언제나 뒷전이고 남들의 행동을 비판하고
자신은 언제나 도덕군자처럼 ...
복음을 묵상하면서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자신이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바로 제가 그랬습니다 주님!
자신의 행동은 언제나 올바른 것처럼 설사 자신이 잘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핑계를 대고 그랬습니다 주님!
율법학자들처럼 복음묵상 또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힘들면 하루쯤 쉴 수도 있는데 대충 대충 수박 겉 핣기로
성의 없는 복음묵상을 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인지...
복음을 묵상하면서 오늘만큼 묵상하는 자세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대충이나마 저의 마음을 당신께
말씀을 드리는 것도 저에게는 위로가 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복음묵상이 누가 얼마나 잘하는지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가끔 씩 묵상하는 형제자매들이 저 보다 묵상을
잘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없어질 때가 있었지요
하지만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곰곰 자신을 성찰해보니
사람들마다 삶이 다르고 신앙생활 또한 모두 다르니
묵상 또한 같을 수가 없는데 의기소침해서 자신의 존재마저
무능하게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은 당신께 자신의 모습을 진실되게 보여드리는 것을
깨달았다면 좋을텐데...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안식일의 주인이 당신임을 깨달아 제 멋대로
제 마음대로 당신을 판단하며 신앙생활을 했던
자신의 경솔했던 행동을 반성하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는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찾게 하여 주소서.
아멘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1. 말씀읽기: 마르2,23-28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다 (마태 12,1-8 ; 루카 6,1-5)
2. 말씀연구
어떤 공소가 있습니다. 그보다 더 먼 공소는 미사에 잘 나오는데, 그 공소는 미사에 잘 나오지 않습니다. 공소예절을 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소예절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공소가 어떤 공소인데….”하면서 공소예절을 합니다. 그리고 공소예절하고 일터로 나갑니다. 과연 이분들이 주일을 지키는 사람들일까요?
공소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데, 한 할머니가 “우리 그냥 공소예절 하게 해 주세요. 너무 멀어요!”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할머니! 죽으시려면 혼자나 죽으세요. ^*^ ”
주일 미사에 나오지 않았던 사람이 영성체를 합니다. “주일 빠지면 성사를 보셔야지요!” 하지만 그는 말합니다. “공소예절 했어요!”참 어렵습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으니…,
또 본당에서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주일에 어디를 가지 않습니다. 내가 책임을 맡고 있는 한, 자기 역할을 다 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분들도 가야 할 곳이 참 많은 것입니다. 해야 할 일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일만큼은 주님을 위해서 봉사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한주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하루 쉬는 주일. 그 날을 어떻게 하면 쉬면서, 재충전 하면서, 거룩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주일은 나를 위한 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위해서 준비해 주신 날. 나는 예수님께서 준비해 주신 주일을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23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 때 함께 가던 제자들이 밀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자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안식일에 걸어도 괜찮은 거리는 1392미터)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밀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밀 이삭을 그 자리에서 잘라 먹는 것은 율법이 분명하게 허용하는 일이었으며 예부터 관습으로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이웃집 밭에 서 있는 곡식 이삭을 손으로 잘라 먹는 것은 괜찮지만 이웃집 밭에서 있는 곡식 이삭에 낫을 대면 안 된다”(신명기 23,25). 문제는 평상시 같으면 전혀 문제가 없지만 그 날이 바로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24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보십시오, 왜 저 사람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막지 않고 내버려 두셨기 때문에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엄격한 그들의 해석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극히 사소한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일정한 거리밖에 걸을 수가 없었고 생활에 필요한 손일만 할 수 있었습니다. 곡식을 따서 비비는 것조차도 금지된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에 해서 안 될 일로서 39 조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금지 조항은 파종, 경작, 수확, 밀단을 묶는 것, 밀을 타작하는 것, 한 마리의 짐승이라도 잡아 서는 안 될 것, 또 그것을 죽이는 것, 그 껍질을 벗기는 일, 소금에 저리는 일, 그 가죽을 보존하기 위해 약을 발라 두는 것 등등이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 안 되는 밀 이삭을 자른 것을 수확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면서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25 예수께서는 이렇게 반문하셨다. “너희는 다윗의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이야기와 성전에서 일하는 사제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제자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이야기 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26 에비아달 대사제 때에 다윗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을 먹고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도 주었다. 그 빵은 사제들밖에는 아무도 먹을 수 없는 빵이 아니었더냐?”
사울로부터 도망을 치고 있을 때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놉에 있는 성막 속에 보관되어 있는 거룩한 빵을 자기와 자기 동료들에게 주게 하였습니다(1사무엘 21,1-7). 이 빵은 사제들만 먹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전례적인 규정이 생명을 유지시켜야 하는 의무만큼 중요하다고는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을 무시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에게 있어서 안식일에 대한 규정은 제단에 안치되어 있는 빵에 대한 규정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경우에는 그러한 규정을 어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특별한 상황에 처해 계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니 더욱 당연한 것입니다.
27 예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 시대의 율법학자들은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에 한해서 안식일 법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안식일의 규정이 폐지되었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지만, 안식일 규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십니다. 안식일 규정보다 더 중요한 의무들이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의무들을 더 촉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으니 성전이나 성전 예배보다는 예수님께 더 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붙들고서 사랑을 고백하지 말고, 눈앞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비싼 카메라를 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카메라가 걱정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외출을 해도, 잠을 자도, 밥을 먹을 때도…, 카메라가 그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카메라를 위해서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 카메라를 빌려 달라면 절대로 빌려 주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찍어 주지도 않고, 그저 가지고 있는 것 그 자체로만 즐겼습니다. 어느 날 그는 굳은 결심을 하고 그것을 남을 주어 버립니다….그날 이후로 그는 평온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정말 중요한 것처럼 생각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조금만 나 자신을 소홀히 하면 그렇게 바뀌게 됩니다.
28 따라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메시아의 혼인 잔치가 있을 때는 단식할 아무런 이유가 없듯이 안식일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안식일 율법에 대한 해석과 안식일을 지내는 방법은 모두 주님이신 예수님께 예속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에 의존하여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대담하게 안식일을 지냈으며 결국은 주간의 첫째 날로(주일) 안식일을 대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에게 물려주신 예수님의 권한에 근거한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주일에 해야 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② 주일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