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연중 제3주간 화요일(1/27)


    말씀의 초대
    예수님의 어머니와 친척들이 찾아와 만나기를 청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뜻밖이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인간적인 혈연관계보다 하느님 안에서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시겠다는 말씀이다(복음).
    복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5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찾아온 친척들이 달갑지 않는 듯 말씀이 냉정합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얼핏 들으면 매몰차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귀찮아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암시였을 뿐입니다. 인간적 혈연보다 하느님 안에서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친척들은 섭섭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은총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에게서 ‘인간적인 모습만’ 찾고 매달리면 언제나 섭섭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교회 내에서도 학연과 지연과 인연은 큰 몫을 차지합니다. 서로 편하기에 그럴 것입니다. 그러한 관계를 승화시켜 ‘주님 안에서의 만남’으로 맺어지라는 것이 복음의 교훈입니다. 주님 안에서의 만남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서로 베푸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친숙해지면 ‘주는 것은 멈추고’ 받으려고만 합니다. 받았던 것은 잊어버린 채 주지 않는다고만 생각합니다. 갈등은 이렇게 해서 시작됩니다. 믿음은 봉헌을 통해 성장합니다. 어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스러운 관계도 ‘주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여기면 아름다운 봉헌이 됩니다. 바치면 깨달음을 주십니다. 바칠수록 ‘그분께 사로잡히는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당신의 그 섬김이/김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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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3주간 화요일(1/27)


      말씀의 초대
      예수님의 어머니와 친척들이 찾아와 만나기를 청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뜻밖이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인간적인 혈연관계보다 하느님 안에서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시겠다는 말씀이다(복음).
      복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5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찾아온 친척들이 달갑지 않는 듯 말씀이 냉정합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얼핏 들으면 매몰차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귀찮아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암시였을 뿐입니다. 인간적 혈연보다 하느님 안에서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친척들은 섭섭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은총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에게서 ‘인간적인 모습만’ 찾고 매달리면 언제나 섭섭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교회 내에서도 학연과 지연과 인연은 큰 몫을 차지합니다. 서로 편하기에 그럴 것입니다. 그러한 관계를 승화시켜 ‘주님 안에서의 만남’으로 맺어지라는 것이 복음의 교훈입니다. 주님 안에서의 만남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서로 베푸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친숙해지면 ‘주는 것은 멈추고’ 받으려고만 합니다. 받았던 것은 잊어버린 채 주지 않는다고만 생각합니다. 갈등은 이렇게 해서 시작됩니다. 믿음은 봉헌을 통해 성장합니다. 어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스러운 관계도 ‘주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여기면 아름다운 봉헌이 됩니다. 바치면 깨달음을 주십니다. 바칠수록 ‘그분께 사로잡히는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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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3주간 화요일(1/27)


      말씀의 초대
      유다인들은 율법에 따라 많은 제사를 지냈다. 속죄제는 수시로 지냈다. 율법 자체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증거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돌아가심으로써 인류 전체를 구원하셨다. 예수님의 위대하심이다(제1독서).
      제1독서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1-10 형제 여러분,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이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한 제물로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될 뿐입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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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예수님의 어머니와 친척들이 찾아왔는데도, 매정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오늘 하신 당신의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제 마음에 신앙이 좀더 뿌리 내리지 않았을 때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던 당신의 말씀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제가 만나는 사람들의 횟수를 헤아려보니, 부모님과
    동생들은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때가 되어야 얼굴을 보게 되지만,
    성당의 레지오 단원들이나 전례부 형제자매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나게 되니 말입니다.

    그리고 일년에 몇 번 얼굴을 보는 형제들과는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만나봐야 그닥 할 이야기가 없는 것에 비하면, 성당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형제 자매들과는 무궁무진함을 보면서, 마음 한 켠 부모님께 죄스러움을
    느끼기 까지 합니다.

    오늘도 설이라 부모님을 찾아뵙고 왔는데, 부모님께서는 우리가 모처럼
    왔으니 하룻밤 묵고 가기를 바라시는데, 우선은 잠자리가 불편함을 내새워
    그냥 와버린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남편과 아이들은 먼저 보내고 저 혼자라도 남아 하룻밤 묵고 올 수도 있는데,
    지하철을 여러번 갈아 탈 것을 생각하니, 복잡하고 귀찮은 생각이 들어
    따라 나서고 말았는데… 예수님! 저 정말 못된 딸이죠?

    자식이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의 백만분의
    일도 안된다더니… 옛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도 성당일을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면서…이렇게 기회가 되어도
    이 모양이니 어쩌면 좋아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예수님! 이렇게 말씀하셨던 그 때 심정이 어떠셨어요?
    예수님께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 하셨다지만,
    저는 그것도 아니면서 왜 이다지도 부모님께 소홀히 대하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살아생전에 자주 찾아뵙고 이야기도 해드리고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은 하지 못하고 있으니 죄만 스럽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주님!
    당신의 그 하해와 같은 사랑을 배워 닮고 싶습니다.
    다른 것 다 몰라도 부모님 살아생전에 제가 받은 그 많은 사랑의 천만분의
    일이라도 되갚고 싶습니다. 그리하도록 제 마음을 열어주시고 발길을 부모님께
    향하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아멘.

  4. guest 님의 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

    기축년 음력으로 새해 첫날 입니다
    분주했던 오늘하루 정말 몸과 마음이 고달픈 하루였습니다
    특히 마음이 많이 아픈 하루 였습니다
    아픈 마음을 잊기 위해 하루 종일 아니!
    복음묵상을 하는 이 시간까지 몸을 혹사시키며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무리 고달파도 아픈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네요
    새해 첫날부터 남편과 말다툼을 했습니다
    예전과 같지 않는 남편의 냉정함에 배신감을 느끼고...
    몸이 아프다보니 마음까지 변한 것 같아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아픈데 ...
    몸만 아픈 사람보다 마음까지 아픈 사람이 더 아픈 것이지요?
    몸과 마음이 지쳐 눈물도 메말랐는지 흔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메마른 마음으로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로 끝맺음을...
    하지만 아직도 마음의 상처로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마음의 상처로 ...

    주님!

    부부는 한  몸이라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한몸이 아니라 두 몸이 만나서 한몸이 되기위해 사는 것일 뿐...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 만나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아파서 불쌍하다는 생각도 ...
    남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저의 마음이 메마른 까닭인지...
    아니면 사랑이 없어서인지...
    이해하려해도 이해되지 않는 저의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몸과 마음이 지친 오늘하루 저의 메마른 마음을 반성하며
    예전에 함께 묵상하셨던 바실리오 형제님이 올려주셨던시를
    다시한번 올려봅니다
    저의 닫혀진 마음이 열리기 기도하며

    ◈우리는 마음부터 만났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부터 만나야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사랑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도….
    남편을 사랑하는 것도…..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 또한
    마음부터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마음부터 만났습니다◈

    우리는 마음부터 만났습니다.
    마음에 글을 놓았고, 글에 마음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그 글에 서로 만났습니다.
    그것이 우리입니다.

    우리는 마음부터 만났습니다.
    그리움을 두고서 서로 다른 그리움이지만
    너무나 같은 향기의 그리움이기에
    우리는 서로 그 향기에 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우리입니다.

    우리는 마음부터 만났습니다.
    또 하나의 이름앞에서 그 이름에 부끄럼없고자
    그 이름에 상처없고자 어쩌면 어색할수도있는
    순수함으로 서로를 만났습니다.
    그것이 우리입니다.

    우리는 마음부터 만났습니다.
    아주 먼곳에서 아주 가까운곳에서
    우리의 거리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저 만남의 거리를 잊지않고서
    추억속의 친구처럼 우리는 글을 전하며 만났습니다.
    그것이 우리입니다.

    우리는 마음부터 만났습니다.
    그것이 어설픈 마음일지라도
    그것이 초라한 마음일지라도
    같은 마음이길 바라며, 이해해 줄 수 있는 마음이길 바라며
    우리는 마음부터 만났습니다.
    그것이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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