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1/31)


    요한 보스코 사제는 1815년 이탈리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에게서 신앙과 노동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사제가 된 그는 고아들과 불우한 소년들을 만나면서 청소년 사목에 헌신하게 된다. 규율보다는 사랑으로 대했으며, 각자의 개성과 신앙을 격려하는 교육을 펼쳤다. 요한 보스코 사제는 1859년 제자들과 함께 청소년을 위해 일생을 바칠 것을 서약하였다. ‘살레시오회’의 출발이다. 1888년에 선종한 요한 보스코 사제는 1934년에 시성되었다.
    말씀의 초대
    돌풍은 갑자기 부는 바람이다. 어부였던 제자들은 위험한 바람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다. 하지만 그분은 기적의 주님이시다. 제자들은 인간적 판단 때문에 잊고 있었던 것이다. 스승님의 꾸중에 제자들은 깨달음을 얻는다(복음).
    복음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5-41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돌풍은 갑자기 부는 바람입니다. 순식간에 호수는 파도에 휩싸이며 배를 삼키려 합니다. ‘예사 바람이 아니다.’ 출신이 어부였던 제자들은 직감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십니다. 이대로 가면 뒤집어질 게 분명합니다. 순간적으로 제자들은 외칩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그들에겐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빠지면 죽는다는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기적의 스승님을 모시고 있었건만 ‘인간적 계산’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스승님의 꾸중은 단순했습니다. 세속적 판단의 포기가 그렇게도 힘드냐는 질책입니다. 제자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늘의 힘을 보았고 기적의 자리에 동참했던 이들입니다. 그런데도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자 모든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아무것도 생각해 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무실 수 있었지만 제자들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믿음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 주신다는 ‘믿음’이 제자들에겐 부족했던 것입니다. 믿음은 힘입니다. ‘위급함을 느낄 때’ ‘불가능이 보일 때’ 우리를 잡아 줄 수 있는 유일한 힘입니다. 제자들에겐 이 힘이 약했습니다. 그러기에 죽는다고 소리쳤습니다. 스승님의 꾸중을 듣고서야 그들은 깨닫습니다. 믿음의 힘이 죽음의 힘을 ‘누를 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믿음의 기쁨 / 김정식
 




이 글은 카테고리: 오늘의독서·묵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1/31)


      요한 보스코 사제는 1815년 이탈리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에게서 신앙과 노동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사제가 된 그는 고아들과 불우한 소년들을 만나면서 청소년 사목에 헌신하게 된다. 규율보다는 사랑으로 대했으며, 각자의 개성과 신앙을 격려하는 교육을 펼쳤다. 요한 보스코 사제는 1859년 제자들과 함께 청소년을 위해 일생을 바칠 것을 서약하였다. ‘살레시오회’의 출발이다. 1888년에 선종한 요한 보스코 사제는 1934년에 시성되었다.
      말씀의 초대
      돌풍은 갑자기 부는 바람이다. 어부였던 제자들은 위험한 바람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다. 하지만 그분은 기적의 주님이시다. 제자들은 인간적 판단 때문에 잊고 있었던 것이다. 스승님의 꾸중에 제자들은 깨달음을 얻는다(복음).
      복음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5-41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돌풍은 갑자기 부는 바람입니다. 순식간에 호수는 파도에 휩싸이며 배를 삼키려 합니다. ‘예사 바람이 아니다.’ 출신이 어부였던 제자들은 직감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십니다. 이대로 가면 뒤집어질 게 분명합니다. 순간적으로 제자들은 외칩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그들에겐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빠지면 죽는다는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기적의 스승님을 모시고 있었건만 ‘인간적 계산’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스승님의 꾸중은 단순했습니다. 세속적 판단의 포기가 그렇게도 힘드냐는 질책입니다. 제자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늘의 힘을 보았고 기적의 자리에 동참했던 이들입니다. 그런데도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자 모든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아무것도 생각해 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무실 수 있었지만 제자들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믿음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 주신다는 ‘믿음’이 제자들에겐 부족했던 것입니다. 믿음은 힘입니다. ‘위급함을 느낄 때’ ‘불가능이 보일 때’ 우리를 잡아 줄 수 있는 유일한 힘입니다. 제자들에겐 이 힘이 약했습니다. 그러기에 죽는다고 소리쳤습니다. 스승님의 꾸중을 듣고서야 그들은 깨닫습니다. 믿음의 힘이 죽음의 힘을 ‘누를 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믿음의 기쁨 / 김정식
     
    
    
    
    
    

  2. guest 님의 말: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1/31)


      말씀의 초대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여 준다. 믿음을 통해 주님의 이끄심을 깨닫게 된다. 아브라함은 믿음을 지녔기에 모르는 곳으로 떠날 수 있었다. 믿음 때문에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광야에서 살았던 것이다. 그의 후손들은 결국 축복을 받는다(제1독서).
      제1독서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1,1-2.8-19 형제 여러분,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그 외아들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믿음의 기쁨 / 김정식
     
    
    
    
    
    

  3. guest 님의 말: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저의 마음이 들킨 것 같았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조금만 힘들면 당신을 믿기보다 
    “점”을 보고 싶은  사악한 마음이 저의 마음 속에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특히 요 며칠동안 집안의 이런 저런 일들로 저의 마음이
    지옥 같았는데 당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당신께
    하소연을 하기보다  제 멋대로 머릿 속에서 기와집을 지었다
    허물었다 하면서 온갖 공상과 망상으로 하루하루를 허비하였습니다
    복음묵상 할 때 만 신앙인 처럼 ...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곰곰 자신을 성찰해보니
    신앙따로 생활따로 그야말로 당신이 저의 전부라고 평소에는
    그렇게 요란하게 떠들어댔는데 정작 중요할 때 당신께
    의지하기보다  제 멋대로 판단하며 지냈습니다
    그러고보니 저의 믿음이라는 것이 별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참 부끄러운 신앙가 헬레나였습니다
    복음묵상은 폼으로 하였는지 묵상을 한답시고 회개하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한 사람이 헬레나가 맞는지 의심이 됩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성찰해보니
    저의 신앙은 바람 앞에 촛불이었음을 느낍니다
    저의 신앙심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습니다
    정작 당신이 필요할 때 당신을 찾기보다 제 마음대로
    생각하고 제 멋대로 살았으니까요

    주님!
    저 당신의 딸이 맞는지요?
    당신께 죄만스럽습니다 이런 정신상태로 복음묵상을 한다고
    까불고 있으니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입으로만이 아닌 온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께 저의 전부를 봉헌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저의 부족한 신앙을 반성하며
    당신께 부끄럽지 않은 신앙인 헬레나로 거듭나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당신 외아들을 보내 주셨으니,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아멘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묵상하며

  4. user#0 님의 말: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저의 마음이 들킨 것 같았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조금만 힘들면 당신을 믿기보다 
    “점”을 보고 싶은  사악한 마음이 저의 마음 속에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특히 요 며칠동안 집안의 이런 저런 일들로 저의 마음이
    지옥 같았는데 당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당신께
    하소연을 하기보다  제 멋대로 머릿 속에서 기와집을 지었다
    허물었다 하면서 온갖 공상과 망상으로 하루하루를 허비하였습니다
    복음묵상 할 때 만 신앙인 처럼 ...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곰곰 자신을 성찰해보니
    신앙따로 생활따로 그야말로 당신이 저의 전부라고 평소에는
    그렇게 요란하게 떠들어댔는데 정작 중요할 때 당신께
    의지하기보다  제 멋대로 판단하며 지냈습니다
    그러고보니 저의 믿음이라는 것이 별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참 부끄러운 신앙가 헬레나였습니다
    복음묵상은 폼으로 하였는지 묵상을 한답시고 회개하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한 사람이 헬레나가 맞는지 의심이 됩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성찰해보니
    저의 신앙은 바람 앞에 촛불이었음을 느낍니다
    저의 신앙심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습니다
    정작 당신이 필요할 때 당신을 찾기보다 제 마음대로
    생각하고 제 멋대로 살았으니까요

    주님!
    저 당신의 딸이 맞는지요?
    당신께 죄만스럽습니다 이런 정신상태로 복음묵상을 한다고
    까불고 있으니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입으로만이 아닌 온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께 저의 전부를 봉헌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저의 부족한 신앙을 반성하며
    당신께 부끄럽지 않은 신앙인 헬레나로 거듭나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당신 외아들을 보내 주셨으니,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아멘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묵상하며

  5. guest 님의 말: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가슴 뭉클하게 제 가슴에 내려 꽃힙니다.

    돌풍이 일어 배에 물이차자 두려움에 휩싸인 제자들의 모습이

    지금이 제 모습임을 새삼 느낍니다.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있으면서도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그들이 바로 저였습니다.

    독서에서도 말하지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도 보게 하여 준다고~~

    새삼 아브라함의 믿음이 제 믿음이 될 수 있을까를 갈망해 보기도 합니다.

    정말 믿음이 있었기에 광야에서 살 수 있었겠지요.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면서

    몸과 머리가 따로 움직이고 있는 저를 돌이켜 봅니다.

    기본에 충실한 사람!

    아버지를 사랑함에 나오는 성실함으로 의롭운 신앙인으로 바로 서야 하는데

    요즈음은 그리하질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고 한발 뒤로 물러나면 되는 것을

    전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제안에 물기를 다 빨아 먹고 있습니다.

    아주 가뭄이 든 평야처럼 금방이라도 갈라질 듯~~~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께서 머무시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될까를 걱정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

    제자들보다도 못한 제 믿음의 한계인가 봅니다.

    그치만 아버지를 무지 사랑하거든요.

    그래서 더 어려운 것일까요?

    아니면 부족한 믿음에서 오는 두려움일까요?

    울아버지의 향취가 머무는 집!

    무너지고 부서지는 것이 무지 싫답니다.

    그래서 아직도 걸래를 들고 빗자루를 들고 서 있나봅니다.

    아마도 바다같은 믿음으로 성숙하지 못해서일까요?

    아니면 제가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일까요?

    아버지만 믿고 그냥 내버려 두면 되는 것일텐데~~~

    꼭 오늘 제자들의 모습이 저의 모습이지요? ㅎㅎ

    차라리 그런 상황에서 오는 두려움이라면 낳을텐데~~

    그렇다면 저의 부족한 믿음을 고백하면 되니까요>>>>

    아버지와 함께 하면서도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모르고

    두려움에 밀리는 철없는 딸의 고백이라면 그나마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 시간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돌풍이 일어 배에 물이차자 제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버지를 깨웁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제 모습임을 깨닫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울아버지가 계시는데 불안해 하면서,

    기본이 무너질세라 걱정에 걱정을 하면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것을~~~

    부족한 저이기에 저만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줄로 착각하면서

    빈마당에 혼자 서서 울고 있었나 봅니다.

    결국은 아버지의 크신 사랑의 그늘속에서 다들 머무름을 제가 잠시 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두려움이 더 큰 두려움을 데려옴도 모른채

    하루하루 가슴으로 다하지 못한 저의 사랑고백을 되돌아 봅니다.

    아버지!

    각자 다른 모습으로 아버지께 믿음을 고백함을 알게 하시어

    한발 뒤로 물러나 지혜로운 자세로 관망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기본에서 벗어나려 할 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믿음의 화살을 당기게 하소서.

    아버지에 대한 믿음의 힘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것을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아버지에 대한 제 사랑의 고백이 그 모든 것을 이겨내어

    의로운 모습으로 당당하게 서게 하시어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오로지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제자들의 그 모습이 제 모습임을 깨달아 늘 깨어 기도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이

    아버지의 등에 업히어 저를 묻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든 늘 아버지와 함께 함을 잊지 않게 하시어

    그 어떤 것에서 오는 두려움일지라도 다 이겨내게 하소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제 믿음이 되기를 간절히 청해 봅니다.

    하라시는 데로 움직이되 두려움이 아닌 믿음의 확신에서 오는 사랑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6. user#0 님의 말: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가슴 뭉클하게 제 가슴에 내려 꽃힙니다.

    돌풍이 일어 배에 물이차자 두려움에 휩싸인 제자들의 모습이

    지금이 제 모습임을 새삼 느낍니다.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있으면서도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그들이 바로 저였습니다.

    독서에서도 말하지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도 보게 하여 준다고~~

    새삼 아브라함의 믿음이 제 믿음이 될 수 있을까를 갈망해 보기도 합니다.

    정말 믿음이 있었기에 광야에서 살 수 있었겠지요.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면서

    몸과 머리가 따로 움직이고 있는 저를 돌이켜 봅니다.

    기본에 충실한 사람!

    아버지를 사랑함에 나오는 성실함으로 의롭운 신앙인으로 바로 서야 하는데

    요즈음은 그리하질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고 한발 뒤로 물러나면 되는 것을

    전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제안에 물기를 다 빨아 먹고 있습니다.

    아주 가뭄이 든 평야처럼 금방이라도 갈라질 듯~~~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께서 머무시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될까를 걱정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

    제자들보다도 못한 제 믿음의 한계인가 봅니다.

    그치만 아버지를 무지 사랑하거든요.

    그래서 더 어려운 것일까요?

    아니면 부족한 믿음에서 오는 두려움일까요?

    울아버지의 향취가 머무는 집!

    무너지고 부서지는 것이 무지 싫답니다.

    그래서 아직도 걸래를 들고 빗자루를 들고 서 있나봅니다.

    아마도 바다같은 믿음으로 성숙하지 못해서일까요?

    아니면 제가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일까요?

    아버지만 믿고 그냥 내버려 두면 되는 것일텐데~~~

    꼭 오늘 제자들의 모습이 저의 모습이지요? ㅎㅎ

    차라리 그런 상황에서 오는 두려움이라면 낳을텐데~~

    그렇다면 저의 부족한 믿음을 고백하면 되니까요>>>>

    아버지와 함께 하면서도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모르고

    두려움에 밀리는 철없는 딸의 고백이라면 그나마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 시간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돌풍이 일어 배에 물이차자 제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버지를 깨웁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제 모습임을 깨닫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울아버지가 계시는데 불안해 하면서,

    기본이 무너질세라 걱정에 걱정을 하면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것을~~~

    부족한 저이기에 저만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줄로 착각하면서

    빈마당에 혼자 서서 울고 있었나 봅니다.

    결국은 아버지의 크신 사랑의 그늘속에서 다들 머무름을 제가 잠시 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두려움이 더 큰 두려움을 데려옴도 모른채

    하루하루 가슴으로 다하지 못한 저의 사랑고백을 되돌아 봅니다.

    아버지!

    각자 다른 모습으로 아버지께 믿음을 고백함을 알게 하시어

    한발 뒤로 물러나 지혜로운 자세로 관망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기본에서 벗어나려 할 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믿음의 화살을 당기게 하소서.

    아버지에 대한 믿음의 힘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것을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아버지에 대한 제 사랑의 고백이 그 모든 것을 이겨내어

    의로운 모습으로 당당하게 서게 하시어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오로지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제자들의 그 모습이 제 모습임을 깨달아 늘 깨어 기도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이

    아버지의 등에 업히어 저를 묻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든 늘 아버지와 함께 함을 잊지 않게 하시어

    그 어떤 것에서 오는 두려움일지라도 다 이겨내게 하소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제 믿음이 되기를 간절히 청해 봅니다.

    하라시는 데로 움직이되 두려움이 아닌 믿음의 확신에서 오는 사랑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7. guest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유난히 겁이 많은 저에게 오늘의 말씀은 항상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같아
    복음을 읽을 때마다 살며시 미소를 짓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그 많은 치유의 기적들을 눈으로 직접 보았음에도
    순간에 닥쳐오는 위험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걸려 넘어지고 마는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믿음이 약한 루실라의 모습임을 너무도 잘 느끼게 됩니다.

    어젯밤엔 같은 레지오 단원의 시어머님 기일인데, 그 분께서 비록 세례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꼭 연도를 바쳐 드리고 싶다기에, 피곤함도
    뒤로한 채 흔쾌히 그 집으로 방문하여 함께 연도를 바쳤습니다.
    세례도 받지 않으셨던 분인데 연도를 바쳐드려도 되는가 싶은 의구심을
    갖으면서도 정성을 다해 연도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연도중에 자꾸만 그 시어머님께서 연옥연기에 감싸여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조금만 더 기도를 바쳐 주기를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비록 당신께서는 믿지 않아 세례를 받지 못하고
    가셨지만, 훌륭하고 또 깨어있는 후손을 두어 이렇게 늦게나마 기도를
    받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부럽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그분은 살아생전에 좋을 일을 많이 하시고 두루 덕을 베풀고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연도를 마치고 간단하게 맥주를 마셨는데, 신자들이 모두 모였으니
    신앙적인 얘기를 시작하니 끝이 없이 이어지고, 시간이 어느덧
    자정이 가까워지자 서서히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어요.
    마침 세상을 더들썩하게 한 살인마의 소식이 뉴스마다 자자하니
    안그래도 겁많은 겁보가 집에 갈 일이 걱정이 된 것이지요.

    겉으로 티 안나도록 살짝 일어나서 가려고 했더니, 눈치 빠른 자매님께서
    우리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따라나서니, 형제님들 까지 함께 일어서서
    죄송스런 마음도 들었지만, 두려운 마음은 사라지고 함께 갈 수 있는 아군이
    많아짐에 든든했답니다.
    가장 먼 곳에 사는 저희 집 앞까지 배웅을 받게 되어 염치가 없었지만,
    함께 담소를 나누면서 못다한 이야기의 꽃을 피울 수 있어서 좋았지요.
    머지 않아 ‘겁보 자매’라는 별칭까지 붙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무엇보다도 믿음 약한 저의 모습이 만천하에 밝혀질까가 더 두렵습니다.

    주님!
    오늘 믿음이 약한 제자들이 당신의 능력을 망각하고 놀라 자빠지듯이
    저 또한 당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크고 작은 일들에 깜짝깜짝
    놀라 자빠지는 일이 많습니다. 작은 일에도 걸려 넘어지는 것이지요.
    저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그렇진 않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
    믿음이 약한 루실라에게 특별한 은총으로 믿음을 심어 주시어 온갖 두려움을
    떨치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와 주소서. 아멘.

    ♬ 믿음의 기쁨 / 김정식

  8.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유난히 겁이 많은 저에게 오늘의 말씀은 항상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같아
    복음을 읽을 때마다 살며시 미소를 짓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그 많은 치유의 기적들을 눈으로 직접 보았음에도
    순간에 닥쳐오는 위험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걸려 넘어지고 마는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믿음이 약한 루실라의 모습임을 너무도 잘 느끼게 됩니다.

    어젯밤엔 같은 레지오 단원의 시어머님 기일인데, 그 분께서 비록 세례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꼭 연도를 바쳐 드리고 싶다기에, 피곤함도
    뒤로한 채 흔쾌히 그 집으로 방문하여 함께 연도를 바쳤습니다.
    세례도 받지 않으셨던 분인데 연도를 바쳐드려도 되는가 싶은 의구심을
    갖으면서도 정성을 다해 연도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연도중에 자꾸만 그 시어머님께서 연옥연기에 감싸여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조금만 더 기도를 바쳐 주기를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비록 당신께서는 믿지 않아 세례를 받지 못하고
    가셨지만, 훌륭하고 또 깨어있는 후손을 두어 이렇게 늦게나마 기도를
    받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부럽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그분은 살아생전에 좋을 일을 많이 하시고 두루 덕을 베풀고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연도를 마치고 간단하게 맥주를 마셨는데, 신자들이 모두 모였으니
    신앙적인 얘기를 시작하니 끝이 없이 이어지고, 시간이 어느덧
    자정이 가까워지자 서서히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어요.
    마침 세상을 더들썩하게 한 살인마의 소식이 뉴스마다 자자하니
    안그래도 겁많은 겁보가 집에 갈 일이 걱정이 된 것이지요.

    겉으로 티 안나도록 살짝 일어나서 가려고 했더니, 눈치 빠른 자매님께서
    우리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따라나서니, 형제님들 까지 함께 일어서서
    죄송스런 마음도 들었지만, 두려운 마음은 사라지고 함께 갈 수 있는 아군이
    많아짐에 든든했답니다.
    가장 먼 곳에 사는 저희 집 앞까지 배웅을 받게 되어 염치가 없었지만,
    함께 담소를 나누면서 못다한 이야기의 꽃을 피울 수 있어서 좋았지요.
    머지 않아 ‘겁보 자매’라는 별칭까지 붙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무엇보다도 믿음 약한 저의 모습이 만천하에 밝혀질까가 더 두렵습니다.

    주님!
    오늘 믿음이 약한 제자들이 당신의 능력을 망각하고 놀라 자빠지듯이
    저 또한 당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크고 작은 일들에 깜짝깜짝
    놀라 자빠지는 일이 많습니다. 작은 일에도 걸려 넘어지는 것이지요.
    저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그렇진 않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
    믿음이 약한 루실라에게 특별한 은총으로 믿음을 심어 주시어 온갖 두려움을
    떨치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와 주소서. 아멘.

    ♬ 믿음의 기쁨 / 김정식

  9. user#0 님의 말:

     


    2. 말씀연구

     가끔은 제자들처럼 다급하게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급해 죽겠는데 전혀 들어주시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 볼 방법이 떠오르지 않고,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향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 참아서 주님을 원망하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오늘 제자들은 풍랑을 만나서 다급해 졌습니다. 뱃사람들이라 바다의 무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피곤하셨는지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알고 있다는 결론도 나옵니다. 불가항력적인 사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호숫가에서 하루 종일 군중들을 가르치신 예수님께서는 저녁때가 되자 “호수 저편으로 건너 가자.”고 말씀을 하십니다. 군중들도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제자들도 쉬어야 하고, 예수님도 쉬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곳에도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예수님께서 자리를 뜨시자 예수님을 따라오는 배들이 생겨납니다. 아마도 군중들 중에서 좀더 가르침을 받고 싶거나 자신들이 믿을만한 기적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다른 배를 타고 예수님의 배를 따라갔던 것 같습니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제자들이 호수를 건널 때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치게 됩니다. 작은 배가 거센 돌풍을 만나니 당연히 배 안은 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아무리 물을 퍼내도 들어오는 것이 많으니 제자들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또 뱃사람들이었기에 호수에서 돌풍을 만났을 때의 위험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배의 고물은 뱃고물이라고 하는데 배의 뒷부분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루 종일 군중을 가르치시느라고 피곤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거센 돌풍 속에서도 주무시니 말입니다. 배에 물이 차오르자 다급해진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웁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사실 바다의 전문가들은 자신들인데, 자신들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생겨나자 예수님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빠져 죽으면 예수님도 함께 죽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뭔가 대책이 있으시니 그렇게 태평하게 주무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들은 내가 아무리 울부짖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알아서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돌풍으로 요동치는 바다를 그리스도 신자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와해시키고, 파괴 하려는 불신자들과 박해자들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에 의해 박해를 받았던 시대에도 신앙의 선조들은 흔들림 없이 자신들의 신앙을 당당하게 지켰습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께 의지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꺼이 목숨까지 내어 놓았습니다.

     신앙인들이 믿음이 없다면 불신자들의 폭력에 쉽게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해 주셨기에 이렇게 신앙을 지킬 수 있었고, 그런 노력으로 지금의 나 또한 신앙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흔드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공동체와 함께 해야지, 믿음이 없으면 공동체에서 멀어지게 되고, 믿음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흔들게 됩니다. 믿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셨습니다.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그러자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습니다.

    예수님: “잠 좀 자자”

    바람: 저녁 많이 먹어서 소화 좀 시킬려구 힘자랑 좀 했네유. 예수님 계신 줄 몰랐지유. 지가 알았으면 혼날 것 알면서 그랬겠슈? 죄송해유. 저 가유. 노여워하지 마세유.^*^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라는 말씀은“내가 함께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로 바꿀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를 몰고 가는 아버지 옆에 탄 아이. 아이가 걱정을 해야 아버지가 운전을 잘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아이가 걱정을 안 해도 아버지는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 조심해서 운전을 하십니다. 아이는 믿고 그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만 바라보면 됩니다. 휴게소에서 쉴 때 아버지가 사주는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먹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아버지가 알아서 다 해주실 것입니다.


     사실 뱃사람들이었기에 돌풍의 위협을 잘 알고 있었고, 당연히 겁을 먹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들이 하느님의 아드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과 함께 있기에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고는 있지만 아직 완전하게 예수님을 알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후에야 비로소 어느 정도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 처음부터 믿고 따랐다면 어땠을까요? 믿고 맡겼으면 어땠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믿고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잔잔해진 풍랑. 내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느 순간 거센 파도에 휩쓸려서 침몰 직전에 있을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지 않으면 그냥 가라앉아 버립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면 그 풍랑을 힘차게 이겨낼 수 있고, 계속해서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항해를 할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항해를 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도 많은 거센 풍랑과 만났지만 훌륭하게 이겨냈고, 지금도 훌륭하게 항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그리고 걱정이 없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진 이들은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살아가면서 오늘 제자들처럼 그렇게 두려움에 빠진 때가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② 나는 어떤 항해를 하고 있습니까? 내 배 안에는 예수님께서 함께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계심에도 불구하고 혼자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10. user#0 님의 말: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동안의 저의 신앙생활을 점검해봤습니다
    결론은...
    아니었습니다
    아직은 제가 생각하기에도 턱 없이 부족하고 믿음이 없었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믿는다고 당신을 믿겠다고
    언제나 입버릇처럼 떠들었지만...
    조금만 시련이 오면 당신을 외면했습니다
    조금만 힘들고 지친다고 생각하면 당신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사람들의 신앙을 평가하고 자신은 엄청나게
    믿음이 깊은 사람처럼 평가하고 그랬습니다
    자신의 믿음도 확고하지 않으면서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말씀이 저에게 하신말씀 같아 뜨끔합니다

    헬레나야!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예! 주님!  죄송합니다

    헬레나야!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예!주님! 
    아직은 저의 신앙이 저의 믿음이 부족함을 깨닫습니다
    아직은 자신있게 당신의 자녀임을 말씀드릴 수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참 부끄럽습니다 주님!

    헬레나야!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예!주님! 아직은 당신보기기에 부끄러운 믿음입니다
    하지만 주님!
    당신께서 저를 사랑해주신다면 저도 변할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니!
    믿고 싶습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하시니 변하리라 믿습니다
    교만하고 믿음이 부족하고 게을러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이런 저런 핑계를 대는 저의 부끄러운 믿음도
    당신께서 도와주신다면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아니!
    믿고 싶습니다 주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당신께서 도와주신다면 믿음으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신앙생활을 게을리하는 저의 비겁한 행동이 고쳐지리라 믿습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그리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할수 있는 헬레나가 되게 하소서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묵상하며


    ♬7.Os Lusti-베네딕도수도원

  11. user#0 님의 말: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말씀에 뜨끔합니다
    왜냐구요? 주님!
    저에게 하신말씀  같았습니다

    헬레나야!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헬레나야!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헬레나야!
    “나다! 
    의심을 버리고 겁을 내지 말고 믿음을 가져라
    네 곁에 언제나 내가 있단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겁을 내지 말고 의심을 버려라
    헬레나야!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의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믿지 않으며
    겁을 내고 믿음이 부족한 저에게 당신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상상만으로도 기쁩니다 주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사랑이신 당신을 믿고 의심하지 않으며 겁내지 않으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주님!

    사랑이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이며 저의  사랑하는 친구  
    젤뚜루다의 남편 야고보형제의 병환을 낫게 해주소서
    우환으로 슬퍼하는 젤뚜루다에게 용기를 주시고
    당신께서 사랑하신다는 믿음으로 좌절하지 않으며
    살게 해주소서
    아멘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묵상하며

      


    ♬ 내 영혼이 힘들고 지칠 때 / You Raise Me Up

  12. user#0 님의 말: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생각해보니….
    당신의 자녀로 살아 온 20여년동안 아니!
    세례를 받기 전이 당신을 믿는마음이 더 깊었던 것
    같은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혼자서도 주일에 성당을 갔습니다
    어머니께서 주신 헌금 10원을 사탕을 사먹고 싶어도 꾹 참고
    열심히 봉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거짓말이나 봉헌금을 내지 않으면 “죄”를 받는 줄알았거든요
    생각해보니 정말 순수하고 착했었는데 ㅠㅠㅠ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20여년이 부끄럽습니다
    믿음이 부족하니 겁도 나고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예전만
    못한 것같아 마음이 산란합니다
    아! 옛날이여!!!!!!
    어린 시절로 돌아갈수 도 없는데 후회만 하고 ㅠㅠㅠ
    그래도 이렇게 복음묵상을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아직은 기회가 있다는 생각에 ^*^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묵상하며

    새해 다짐했던 모든 일들을 실천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저의 다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사랑이신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당신 외아들을 보내 주셨으니,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아멘

    ♬ 전능하신 나의 주 하느님

guest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