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야, 일어나라!


연중 제4주간 화요일(2/2)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다. 사람들은 소녀가 죽었다고 믿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여기지 않으셨다. 기적은 언제나 믿음의 결과다. “탈리타 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소녀는 곧바로 일어나 걸었다. 제자들은 너무 놀라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발음 그대로 기록했던 것이다(복음).
    복음
    <소녀야, 일어나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1-43 그때에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탈리타 쿰!”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예수님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스승님의 말씀을 ‘소리 나는 그대로’ 적어 놓았던 것입니다. “탈리타 쿰!” 이 한마디에 죽었던 소녀가 곧바로 일어났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듯 위력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분의 음성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말씀이 담긴 성경을 자주 접해야 합니다. 말은 곧 힘입니다. 애정이 담긴 말은 죽음까지도 일으켜 세웠습니다. 하지만 독이 담긴 말은 칼이 되어 상처를 남깁니다. 우리가 자주 체험했던 일입니다.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죽음도 ‘자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의 습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면 바꿀 수 있습니다. 실패와 좌절에서도 일어설 수 있습니다. 나쁜 인간관계도 고쳐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진지하게 주님의 말씀을 청해야 할는지요? 삶이 힘들고 우울할 때 감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 주십사고 청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탈리타 쿰!” 하시며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실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다시 일어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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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야, 일어나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4주간 화요일(2/2)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다. 사람들은 소녀가 죽었다고 믿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여기지 않으셨다. 기적은 언제나 믿음의 결과다. “탈리타 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소녀는 곧바로 일어나 걸었다. 제자들은 너무 놀라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발음 그대로 기록했던 것이다(복음).
      복음
      <소녀야, 일어나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1-43 그때에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탈리타 쿰!”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예수님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스승님의 말씀을 ‘소리 나는 그대로’ 적어 놓았던 것입니다. “탈리타 쿰!” 이 한마디에 죽었던 소녀가 곧바로 일어났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듯 위력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분의 음성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말씀이 담긴 성경을 자주 접해야 합니다. 말은 곧 힘입니다. 애정이 담긴 말은 죽음까지도 일으켜 세웠습니다. 하지만 독이 담긴 말은 칼이 되어 상처를 남깁니다. 우리가 자주 체험했던 일입니다.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죽음도 ‘자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의 습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면 바꿀 수 있습니다. 실패와 좌절에서도 일어설 수 있습니다. 나쁜 인간관계도 고쳐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진지하게 주님의 말씀을 청해야 할는지요? 삶이 힘들고 우울할 때 감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 주십사고 청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탈리타 쿰!” 하시며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실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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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4주간 화요일(2/2)


      말씀의 초대
      죄를 벗고 가야 할 길을 꾸준히 가야 한다. 그것이 믿는 이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고 온갖 수모 속에서도 끝까지 가셨다. 그러니 낙심하여 지쳐서는 안 된다. 힘들 때는 예수님을 바라봐야 한다(제1독서).
      제1독서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2,1-4 형제 여러분,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죄인들의 그러한 적대 행위를 견디어 내신 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낙심하여 지쳐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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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아주 이쁜 눈썹 달이 어둠을 정겹게 비춰주고 있답니다.

    으스름 달빛아래서 하늘만 바라보아도

    어렸을 적 고향의 정취가 물씬 다가 옴을 느끼면서 하루를 그려봅니다.

    어제 안경이 부러져 맡기러 갔다가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제가 나간 시간대가 점심 때였는데 가계 앞에서 무언가를 집어먹고 있었지요.

    순간 가슴이 메어옴을 느끼면서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무리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식사를 하고 내놓은 그릇을 할아버지가 손으로 닦아 먹고 있었던 것이랍니다.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라서 우두커니 있었습니다.

    그러다 빵을 구워 파는 곳이 보여서 달려가서 사다가 그 할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

    금방 드리기가 어려워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드렸습니다.

    드리는 전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미안해 하실까봐….

    그러자 그 가계 주인이 나오더니 돈을 넣어 주더군요.

    하루가 힘들고 어려운 경기라지만 그 주인의 모습에서 사랑을 느꼈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나누는 그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아주 멋지고 고풍스러운 유명화가의 작품보다 더 멋진 한폭의 그림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아버지의 그지없으신 사랑을 다시금 느껴봅니다.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한 여인이 아버지의 옷에 손을 대지요.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라는 믿음을 아버지께선 보셨기에

    그녀의 병을 고쳐 주십니다.

    특정한 누구에게 정해진 구원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이는 모두 구원의 길로 갈 수 있음을 보여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따뜻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믿음을 가진자의 청을 물리치지 않으시는 아버지!

    회당장 야이로의 믿음 또한 깊음을 말씀에서 느껴봅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만약 제 아이가 그런 상황이라면 온갖 말을 다 쏟아부어 아버지를 잡으려 했을 것입니다.

    강한 믿음이 아니라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컸을 것이기에…..

    하지만 야이로는 달랐습니다.

    모든 것을 초월한 야이로의 믿음이 가슴깊이 다가 왔습니다.

    제게 과연 그러한 믿음이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결국 아버지께서는 아이를 살리시지요.

    “탈리타 쿰!” 하자 아이는 일어서서 걸어다녔습니다.

    야이로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믿음과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는 딸의 모습이 제 가슴에 깊이 자리잡았습니다.

    아버지이시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아버지께서는 늘 저희곁에 머물러 계시면서 안아 주시지만

    정작은 저희가 아버지를 찾지 않는 것은 아닌지를 반성해 봅니다.

    그리고 사랑의 메아리로 다가오시지만 듣지를 못하진 않았는지요.

    늘 귀를 열어 아버지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말씀으로 저를 돌아보며 행동으로 드러날 때

    아버지께서 미소지으심을 잊고 살진 않았는지요.

    내 마음의 밭을 잘 가꿔야 믿음의 뿌리가 내린다고 하셨답니다.

    기적이 아니라 믿음의 결실이라고…..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던 한 여인과

    야이로의 딸을 고쳐주십니다.

    믿음으로 청하는 모든 이를 마다않고 사랑을 베푸시는 아버지를 가슴에 그리면서

    저의 믿음을 생각해 봅니다.

    과연 얼만큼의 간절함으로 아버지께 매달렸는지…

    기적이 아닌 아버지의 사랑을 바라는 마음으로 저를 드렸는지…..

    늘 믿음을 노래하면서 과연 그 노래의 의미를 알고 불렀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가슴에서 아려오는 사랑으로 아버지께 의탁하는 간절한 믿음이었는지요.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의 얕은 바닥이 드러남을 깨달았습니다.

    말씀에 저를 묻고 하루하루 성찰하며 살아가는 지혜로움을 주시어

    늘 아버지 음성에 귀기울이며

    부르심에 바로 응답하는 저가 되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든 제가 아버지를 부르면 단번에 달려 오심을 잊지 않게 하시어

    죽어있는 저가 아니라 영적으로 깨어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부르심에 일어나는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4. user#0 님의 말:

     

    아주 이쁜 눈썹 달이 어둠을 정겹게 비춰주고 있답니다.

    으스름 달빛아래서 하늘만 바라보아도

    어렸을 적 고향의 정취가 물씬 다가 옴을 느끼면서 하루를 그려봅니다.

    어제 안경이 부러져 맡기러 갔다가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제가 나간 시간대가 점심 때였는데 가계 앞에서 무언가를 집어먹고 있었지요.

    순간 가슴이 메어옴을 느끼면서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무리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식사를 하고 내놓은 그릇을 할아버지가 손으로 닦아 먹고 있었던 것이랍니다.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라서 우두커니 있었습니다.

    그러다 빵을 구워 파는 곳이 보여서 달려가서 사다가 그 할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

    금방 드리기가 어려워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드렸습니다.

    드리는 전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미안해 하실까봐….

    그러자 그 가계 주인이 나오더니 돈을 넣어 주더군요.

    하루가 힘들고 어려운 경기라지만 그 주인의 모습에서 사랑을 느꼈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나누는 그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아주 멋지고 고풍스러운 유명화가의 작품보다 더 멋진 한폭의 그림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아버지의 그지없으신 사랑을 다시금 느껴봅니다.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한 여인이 아버지의 옷에 손을 대지요.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라는 믿음을 아버지께선 보셨기에

    그녀의 병을 고쳐 주십니다.

    특정한 누구에게 정해진 구원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이는 모두 구원의 길로 갈 수 있음을 보여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따뜻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믿음을 가진자의 청을 물리치지 않으시는 아버지!

    회당장 야이로의 믿음 또한 깊음을 말씀에서 느껴봅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만약 제 아이가 그런 상황이라면 온갖 말을 다 쏟아부어 아버지를 잡으려 했을 것입니다.

    강한 믿음이 아니라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컸을 것이기에…..

    하지만 야이로는 달랐습니다.

    모든 것을 초월한 야이로의 믿음이 가슴깊이 다가 왔습니다.

    제게 과연 그러한 믿음이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결국 아버지께서는 아이를 살리시지요.

    “탈리타 쿰!” 하자 아이는 일어서서 걸어다녔습니다.

    야이로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믿음과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는 딸의 모습이 제 가슴에 깊이 자리잡았습니다.

    아버지이시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아버지께서는 늘 저희곁에 머물러 계시면서 안아 주시지만

    정작은 저희가 아버지를 찾지 않는 것은 아닌지를 반성해 봅니다.

    그리고 사랑의 메아리로 다가오시지만 듣지를 못하진 않았는지요.

    늘 귀를 열어 아버지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말씀으로 저를 돌아보며 행동으로 드러날 때

    아버지께서 미소지으심을 잊고 살진 않았는지요.

    내 마음의 밭을 잘 가꿔야 믿음의 뿌리가 내린다고 하셨답니다.

    기적이 아니라 믿음의 결실이라고…..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던 한 여인과

    야이로의 딸을 고쳐주십니다.

    믿음으로 청하는 모든 이를 마다않고 사랑을 베푸시는 아버지를 가슴에 그리면서

    저의 믿음을 생각해 봅니다.

    과연 얼만큼의 간절함으로 아버지께 매달렸는지…

    기적이 아닌 아버지의 사랑을 바라는 마음으로 저를 드렸는지…..

    늘 믿음을 노래하면서 과연 그 노래의 의미를 알고 불렀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가슴에서 아려오는 사랑으로 아버지께 의탁하는 간절한 믿음이었는지요.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의 얕은 바닥이 드러남을 깨달았습니다.

    말씀에 저를 묻고 하루하루 성찰하며 살아가는 지혜로움을 주시어

    늘 아버지 음성에 귀기울이며

    부르심에 바로 응답하는 저가 되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든 제가 아버지를 부르면 단번에 달려 오심을 잊지 않게 하시어

    죽어있는 저가 아니라 영적으로 깨어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부르심에 일어나는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5. guest 님의 말: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도 당신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저에게 있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친다해도 당신을 믿으며
    참고 견딜 수 있을텐데...
    하지만 저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저에게 믿음이 없기에 
    당신의 말씀이 어느 때는 기쁘지만 어느 때는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당신께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어느 때는
    당신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을 원망하고 돌아서다가도 저의 가슴이 아프다는 사실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임을 깨닫습니다
    참 혼란스럽습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하는데 당신께서 원하시는대로 살지 못하니....
    언제나 공수표만 날리고 있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당신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는 원인은
    저에게 당신을 믿는 마음이 부족하다는것을 깨닫습니다
    당신을 온전한 마음으로 믿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당신의 말씀을 무조건 믿기보다
    저의 요구를 당신께서 정말 들어주실까하는 의심을 하기때문입니다
    저의 믿음이 보잘 것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도...
    당신의 말씀을 믿는 마음도...
    모두 다...
    믿지 않기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믿음이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당신께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말씀하실 그날을 위해 열심히 당신의 말씀을 믿으며
    당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저의 이 다짐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를 기도해봅니다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병고를 맡아 주시고,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셨도다
    아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묵상하며

  6. user#0 님의 말: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도 당신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저에게 있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친다해도 당신을 믿으며
    참고 견딜 수 있을텐데...
    하지만 저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저에게 믿음이 없기에 
    당신의 말씀이 어느 때는 기쁘지만 어느 때는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당신께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어느 때는
    당신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을 원망하고 돌아서다가도 저의 가슴이 아프다는 사실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임을 깨닫습니다
    참 혼란스럽습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하는데 당신께서 원하시는대로 살지 못하니....
    언제나 공수표만 날리고 있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당신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는 원인은
    저에게 당신을 믿는 마음이 부족하다는것을 깨닫습니다
    당신을 온전한 마음으로 믿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당신의 말씀을 무조건 믿기보다
    저의 요구를 당신께서 정말 들어주실까하는 의심을 하기때문입니다
    저의 믿음이 보잘 것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도...
    당신의 말씀을 믿는 마음도...
    모두 다...
    믿지 않기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믿음이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당신께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말씀하실 그날을 위해 열심히 당신의 말씀을 믿으며
    당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저의 이 다짐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를 기도해봅니다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병고를 맡아 주시고,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셨도다
    아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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