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연중 제6주간 월요일(2/16)


    말씀의 초대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한다. 자신들이 ‘깜짝 놀랄 일’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믿겠다는 조건이다. 하늘의 권능을 지니신 분 앞에서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한탄하신다(복음).
    복음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1-13 그때에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표징을 요구합니다. 하늘의 기적을 보여 주면 승복하겠다고 합니다. 조건을 다는 것이지요. 믿음에 조건을 다는 것은 성숙한 자세가 아닙니다. ‘이렇게 해 줘야만’ 믿겠다는 것은 어린이의 신앙입니다. 답답한 것은 우리 인간이지 주님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사이들 앞에서 답답한 것이 없으셨습니다. ‘하도 그러니까 참석하겠다.’ ‘하도 저렇게 말하니까 들어 주겠다.’ 이것은 끌려가는 신앙생활입니다. 주일 미사를 ‘참석해 준다.’는 자세로 임한다면 어떻게 은총이 함께할는지요? 강론 말씀을 ‘들어 준다.’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어떻게 깨달음이 찾아올는지요? ‘자꾸만 읽으라니까’ 읽는 성경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읽다 보면 그저 평범한 말이 어느 날 ‘칼날’이 되고, ‘따듯함’이 됩니다. 은총은 늘 그렇게 갑자기 다가옵니다. 그러니 앞에서 끌고 가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뒤에서 밀고 가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신자들은 가끔씩 ‘이러이러한’신부님 때문에 성당에 못 다니겠다고 합니다. 신부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저러한’ 교우님들 때문에 사제 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돌아보면 모두가 조건을 다는 일이 아닐는지요? 믿음의 길 역시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닙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순례자 / 韓國  國立合唱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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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6주간 월요일(2/16)


      말씀의 초대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한다. 자신들이 ‘깜짝 놀랄 일’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믿겠다는 조건이다. 하늘의 권능을 지니신 분 앞에서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한탄하신다(복음).
      복음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1-13 그때에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표징을 요구합니다. 하늘의 기적을 보여 주면 승복하겠다고 합니다. 조건을 다는 것이지요. 믿음에 조건을 다는 것은 성숙한 자세가 아닙니다. ‘이렇게 해 줘야만’ 믿겠다는 것은 어린이의 신앙입니다. 답답한 것은 우리 인간이지 주님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사이들 앞에서 답답한 것이 없으셨습니다. ‘하도 그러니까 참석하겠다.’ ‘하도 저렇게 말하니까 들어 주겠다.’ 이것은 끌려가는 신앙생활입니다. 주일 미사를 ‘참석해 준다.’는 자세로 임한다면 어떻게 은총이 함께할는지요? 강론 말씀을 ‘들어 준다.’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어떻게 깨달음이 찾아올는지요? ‘자꾸만 읽으라니까’ 읽는 성경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읽다 보면 그저 평범한 말이 어느 날 ‘칼날’이 되고, ‘따듯함’이 됩니다. 은총은 늘 그렇게 갑자기 다가옵니다. 그러니 앞에서 끌고 가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뒤에서 밀고 가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신자들은 가끔씩 ‘이러이러한’신부님 때문에 성당에 못 다니겠다고 합니다. 신부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저러한’ 교우님들 때문에 사제 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돌아보면 모두가 조건을 다는 일이 아닐는지요? 믿음의 길 역시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닙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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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6주간 월요일(2/16)


      말씀의 초대
      카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가 낳은 아들들이다. 카인은 농부가 되었고, 아벨은 양 치는 목자가 되었다. 하느님께서 아벨의 제물만을 굽어보시자 카인은 동생인 그를 죽여 버린다. 하느님께서는 카인을 꾸중하신다. 그리고 세상을 떠돌아다닐 운명이 될 것이라 하신다(제1독서).
      제1독서
      <카인은 아우 아벨을 들에 데리고 나가서 죽였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4,1-15.25 사람이 자기 아내 하와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남자아이를 얻었다.” 그 여자는 다시 카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기가 되고 카인은 땅을 부치는 농부가 되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 주님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카인이 아우 아벨에게 “들에 나가자.”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이제 너는 저주를 받아,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아우의 피를 받아 낸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네가 땅을 부쳐도, 그것이 너에게 더 이상 수확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될 것이다.” 카인이 주님께 아뢰었다. “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 당신께서 오늘 저를 이 땅에서 쫓아내시니, 저는 당신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하고,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되어, 만나는 자마다 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나 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을 것이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는 카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아들을 낳고는, “카인이 아벨을 죽여 버려, 하느님께서 그 대신 다른 자식 하나를 나에게 세워 주셨구나.” 하면서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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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 어떤 표징을 보여달라고 졸라대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임을 깊이 깨닫습니다.
    겉으론 안그런척 하면서도 맘속으로는 항상 그렇게 생각할때가 많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반드시 어떠한 표징을 보여 줄것이며
    또한 커다란 기적도 따를 것이라는 황당한 바램을 갖을 때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미성숙한 신앙인의 행동임엔 틀림없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어린이같은 신앙심이 불쑥불쑥 치고 올라올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열심히 묵주의 구일기도를 마쳤을때 내가 간절히 바라던 일이
    턱하니 이루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답니다.
    그야말로 어린이 같은 보상심리를 바라는 것이겠죠.
    하지만 결국엔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도 감사할줄 알아야 함을 곧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쉬는 날임에도 새벽같이 일어나 나가는 남편을 보고 맘으론
    안쓰러움을 느꼈는데, 8시가 지나자 딸아이를 깨우라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 또 한번 놀랐습니다ㅏ.
    딸래미 데리고 청소년 미사 가야하니까 준비하고 주차장으로 내려 보내라는
    전화를 받고 참으로 감사함을 느꼈지요.
    자신의 신앙도 중요하지만, 신앙생활을 게을리하는 딸을 데리고 미사보러
    가려는 아빠의 정성이 갸륵해 보여서 너무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둘이서 오붓하게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면서 불러내는데
    제가 잘 어울리는 형제 자매님들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불러내어
    함께 했는데 분위기를 잘 조절하는 남편을 고맙게 생각하고 즐거워하는
    형제 자매님들을 보니 저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평소에 급한 성격을 못마땅해 했는데, 또 저를 아는 형제 자매들앞에서
    그들 기분도 잘 맞춰주는 남편을 보고 어찌나 기분이 좋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는지 모른답니다.
    그중에 냉담을 하는 형제님이 계셨는데, 남편의 애교작전으로 앞으로
    열심히 나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곰도 재주는 부릴줄 안다고… 다들 저마다의 달란트가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지요.

    오늘 복음 속에서의 바리사이들처럼 굳이 대단한 표징을 보여주시지
    않더라도 순간순간 제 곁에서 일어나는 기적들이 바로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임을 깊이 깨닫습니다.

    주님!
    제가 대단한 표징을 요구하기 보다는 제 곁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와 발전에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인이 되게하소서.
    표징만을 쫒는 미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거두어 가시고
    작은 성과에도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 순례자 / 韓國  國立合唱團

  4. guest 님의 말:

     

    “아버지! 정의가 승리하게 해 주소서.” 라고

    다른이가 아닌 저가 아버지께 청하고 있습니다. ㅎㅎ^*^

    제가 청함에 다른 이가 상처를 받을 것임을 알면서 요즈음은 간절히 청하고 있습니다.

    간사한 입으로 맘에 들기 위한 온갖 말로 비위를 맞추면서,

    듣기 좋은 말로 자기의 자리를 찾아 허덕이는 이들의 모습이

    안스러움을 기도하기 보다,

    미운 마음이 더해져 그들이 아픔을 겪어보기를 청하면서

    아버지께 투정을 부립니다.

    그치만 아시죠?

    말뿐이고 사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바보가 저잖아요.

    오늘 새벽에도 사실 그들을 위한 수다를 떨다가 미사에 살짝 늦었지요.

    아버지!

    신앙의 삶이 아름답지만은 않음을 깨달으면서 힘이 빠질 때가 있답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면서 아버지의 가르침속에서 기쁜 행복으로 나아감에

    행복한 삶의 모습이 이웃에게 전해져

    함께 아버지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그런 바람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요즈음은 가끔 아버지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표징을 요구하는 바리사이중의 한사람이 저는 아닌지요.

    아버지께서 다 알아 판단하실 것을 제가 조릅니다.

    제 잣대로 판단하면서 그 틀속에서 제가 원하는 것이 나오지 않으면

    다른 이가 아닌 바로 저가 아버지께 칼을 드밀며

    그 무언가를 요구하는 바리사이가 아니었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지금의 저가 그런 사람은 아닌지를~~

    오늘 독서에서 나오는 ‘카인과 아벨’에서 저의 모습을 비추어 보기도 했습니다.

    저 스스로 아벨이라 생각하면서

    정작은 카인임을 모르고 살아가는 신앙인이 아닌지를 깊이 묵상해 봅니다.

    저의 편협한 생각이 무고한 아벨을 죽이는 카인처럼

    그런 삶을 살아가려는 바보는 아닌지요.

    아버지 마음에 드는 사람을 죽이면서도

    아버지 앞에서 다른 표징을 요구하며 덤비는 저가 아니었는지~~

    무지한 복수가 저를 수렁으로 이끌수 있음을 반성해 봅니다.

    그 수렁으로 들어갈수록 전 아버지의 뜻에서 벗어나

    늘상 표징을 바라면서 조건을 내세우는 그런 바리사이되어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탄식할 수 있음을 깊이 새기며

    저의 부족한 모습을 추스립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표징을 바라는 바리사이들에게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를 시험하려 논쟁을 벌이는 바리사이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보시며 탄식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가슴에 깊이 와 닿습니다.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늘 몰아세우는 바리사이가 바로 저의 모습은 아닌지 가슴이 뜨금했습니다.

    겉으론 인정하는 듯 하면서 속내는 고개를 흔드는 그런 저가 아니었는지요.

    누군가를 인정하지 못함이 저의 부족임을 모른 채

    그를 욕하면서 어떤 계기로든 그를 떨어뜨리려 하진 않았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상대는 제 잣대로 평가하면서,

    전 평가 받기를 거부하는 그런 옹졸한 이가 저이진 않았는지~~

    아버지!

    부족한 저가 아버지를 고백함에

    그 어떤 표징을 바라는 저가 아닌

    고개를 숙이면서 주시는데로 받음에 행복해 하는 저가 되게 하소서.

    누가 뭐래든 전 그저 아버지만을 믿고 고백하며

    아버지의 말씀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안으며

    그 어떤 잣대로든 상대를 평가하지 않게 하시고

    누군가 저를 엉터리로 평가하여도 화내지 않게 하소서.

    아버지께 수다를 떨되 바람의 수다가 되지 않게 하시고

    아버지께 수다를 떨되 무언가를 보여지기를 바라는 수다가 되지 않는

    깊은 여울이 되게 하소서.

    주어도 주어도 알지 못하고 받지 못하는 어리석은 저가

    되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면서

    아버지께서 등을 돌리시게 되는 아픔을 드리지 않는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5. guest 님의 말:

     

    표징을 요구하는 바리사이들

    1. 말씀읽기: 마르8,11-13

    바리사이들이 표징을 요구하다 (마태 16,1-4)


    2. 말씀연구

     가까이 할 수 없는 당신! 내 마음을 몰라주고 언제나 자기 잣대로 나를 판단하는 당신. 마음 열고 받아들이면 그만인 것을,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면 그만인 것을. 꼭 입으로 말해야만 알아듣고, 이것이 그것이라고 말해야만 알아듣는 당신! 무딘 마음에 한마디 하라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제발 보시오. 그리고 알아차리시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의 속을 떠보려고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11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놀라운 기적을 통하여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증거를 보여주는 예언자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표징을 통하여 자신을 믿게 하는 예언자를 기다리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특별하신 분임은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시는 예수님,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마귀를 쫓아내시는 예수님. 분명 특별하신 분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이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3,22 참조). 바리사이들은 만일 예수님께서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이라면, 하느님께서 친히 예수님을 인정하시고, 그에 걸맞은 표징을 보여 주셔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이를 보여주시지 않는다면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거짓 예언자”로 몰아붙일 것입니다. 하지만 표징을 보여 달라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어떤 것을 보여 주어도 또 다른 것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불신앙을 드러낼 것입니다.


    논쟁하러 온 사람들은 표징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들은 믿음을 고백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믿어야 하고, 자신들의 능력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불신은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하게 만듭니다. 함께 어우러지기 보다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논쟁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도 결국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탄식하십니다.

    12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속 썩이는 자녀를 둔 부모를 생각해 봅시다.“저에게 해 주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면서 조건을 제시하고, 땅을 달라는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에는 탄식만 흘러나옵니다. 그러다가 부모는 “어찌하여 이새^*^가 땅만 요구하는가?”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을 하십니다. 믿지 않는 이들을 향한 안타까움은 탄식으로 이어집니다. 마르코 3,1-6에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셨을 때도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탄식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의 완고함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 예수님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도 큰 불신에 대한 고통에 찬 탄식이지만, 그 같은 무딘 마음은 예수님을 향한 그분 당대 시대 사람들, 즉 “이 세대”의 특성입니다. 그런데 “이 세대”는 완고한 마음을 가진 오늘의 나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 무딘 마음은 나에게도 보여 지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으로…, 그런데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형제가 전에는 본당에서 많은 봉사를 했는데 지금은 주일 미사에만 참례합니다. 성당에서 큰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회적 약속 때문에 미사도 빠지고 놀러 갔습니다. 왜 그런 행동이 나올까요? 사회의 약속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려 하고, 주일미사에는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신자들에게 한 달 전부터 시간을 비워 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약속으로 방향을 돌린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무딘 마음으로 봉사를 하면 기도하지 않고 봉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발길을 돌리게 됩니다. 성당 사람들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결국 기도하지 않는 다는 것은 자신을 망쳐버린다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무딘 마음을 여리게 만들고, 새롭게 만들 때, 나는 믿을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 이 세대가 왜 이다지도 믿음이 없을까!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살며 이 성화를 받아야 한단 말이냐?”(9,19)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보여 달라는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에 보여 줄 징표는 하나도 없다”라고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하느님은 강요받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러한 표징을 보여주시기를 거절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분께 강요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게 하려거든 증거를 보여 주시오. 증거를…”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세대는 믿지 않는 이들을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을 향하여 끊임없이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13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에 가서 회개하고 믿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그때에는 증명으로서 요구되었던 그 기적이 심판의 표징이 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셔서 다른 기적을 행하셨다면 그것은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물리치셨습니다. 그리고 표징을 보여 달라는 요구도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물리치십니다.


     그런데 그분을 따르는 나는 나에 대해서 의심을 품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동서분주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알아주실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십니다. 이렇게 그분의 현존을 거두어들이시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심판인 것입니다.

     어느 신부님께서 인사이동을 하시는 날, 새벽미사를 마치시고 신자들에게 인사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셨다고 합니다. 받아들이지 않는 신자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요? 하지만 신자들은 금방 잊어 먹습니다. 이들도 분명 잊어 먹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그들의 무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을까요?


    3. 나눔 및 묵상

    ① 믿음에는 조건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예수님께 조건을 거는 경우는 없습니까? 예수님! 당신께서 이거 하나만 해주신다면. 예수님! 이번 로또복권 1등 당첨만 된다면 성전건립기금 1억 내겠습니다…내가 내 걸고 있는 조건은 어떤 것입니까?


    ②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십니다. 가끔은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믿어주지 않는 그에게 어떻게 다가가십니까?


  6. guest 님의 말:

    나는 표징을 끊임없이 찾았고 원하면서 살아왔다.
    보여줘도 더 큰 무엇을 바랬기에 아무리 많은 표징이 도처에 널려있다 해도 볼수가 없었다.

    믿음의 증거는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세상과 인간, 자연과 동물,식물…
    이렇게 많은데 어디에서 표징을 보려 했던가…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해도
    풀잎하나의 생명 조차 만들수 없는 것..
    이렇게 그분의 표징은 곳곳에 널려 있었으며 단 하루도 멈춘적이 없었다.

    오늘도
    인간안에 인간이 태어나고
    또 다시 시작하는 오늘이 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것들에서 믿음의 증거를 보는 순간이
    바로 표징을 깨닫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해봤다.
    그래서 아무리 특별한 그 어떤 표징을 보았다해서 자발 떨 이유가 없는 게 아닐까 싶다.
    그분은 원래 그런 분이시니 말이다.

    오늘도…
    하찮은 벌레에서 그분의 표징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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