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7주일(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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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추운 어느 겨울 날,
한 꼬마가 손을 호호불며 얼음 위에서 재밌어라 발을 동동구르고 있었습니다.
두껍게 얼은 강위에서 조그마한 구멍을 뚫고 낚시를 했지요.
아무것도 달지 않았지만 고기들이 꼬마의 낚싯줄에 달려 나왔습니다.
신이 난 꼬마는 온 몸이 얼었어도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추위에 몸이 얼어 꼬마에게 달려 나온 고기는
옆의 작은 물감옥에 꼼짝없이 갇히게 되지요.
작은 고사리 손이 얼을까 아버지는 자식의 손을 가슴에 넣어 녹여 줍니다.
그리고 고기가 물면 얼른 줄을 꼬마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넘치게 주면서도 부족함만을 느끼기에
사랑하는 자식에게 그 기쁨을 느끼게 해 주려고~~
하지만 꼬마는 아버지의 사랑보다 고기를 잡는 기쁨이 더 컸지요.
자식의 손을 녹여주려 자신의 품은 찬기온으로 변해감에도 불구하고
마냥 행복해 합니다.
기쁨에 넘치는 자식의 웃음이 먼저였으니까요~~
꼬마가 지쳐 집에 가자고 할 때까지 아버지는 기다립니다.
춥고 손과 발이 얼어서 느낌이 없어도 자식을 위해 참지요.
아비의 사랑보다 고기를 잡는 기쁨에 젖어 있는 자식이 그다지도 이쁜가 봅니다.
오늘 아버지께서는 중풍병자를 고쳐주십니다.
사랑으로 한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는 아버지를
되려 의아해 하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율법학자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보았음에도 인정하지를 않는 그들의 모습!
죄를 용서하시는 권한을 보여주심에도 불구하고
인정하지를 못하는 그 모습이 꼭 제 모습 같습니다.
열정적인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지만,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로 나아갈 수가 없자
지붕을 뚫고 들것에 중풍병자를 달아 내려 보냅니다.
아버지를 믿는 이들의 멋진 모습!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라고 하시면서 그의 병을 고쳐 주십니다.
아버지시기에 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율법학자들은 의하해 합니다.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인정하지를 않습니다.
심지어는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말하지요.
한 중풍병자의 병이 치유됨에 고개를 숙이고 받아들여야 함에도
그들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권한을 보여주심에도
인정하지를 않는 그들의 모습이 저의 모습은 아닌지요.
철없는 한 꼬마가 아비의 사랑을 모르듯이
율법학자들 역시 그 철없는 꼬마같아 보입니다.
오롯한 사랑이기에 그 추위에도 불구하고 자식곁에서 얼고 있음인데
자식은 그것을 알지를~ 아니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재미난 놀이에 그저 기쁠 뿐~~~
그 철없는 꼬마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허긴 형식의 틀에 박혀있는 그들이
주위의 시선 때문에 인정을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지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른 봉사자를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이요. ㅎㅎ
차라리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삶이 달라졌겠지요?
말씀을 묵상하면서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내려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초라한 저를 보았고,
보고도 믿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율법학자들의 모습에서
제 모습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죄를 용서하시는 아버지!
정말 사랑하는 울아버지를 가슴깊이 담아보는 시간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한 중풍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얘야,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평생을 그리 살았을 중풍병자!
어리둥절했겠지만 얼마나 기뻤을까요.
한생을 아픔에 시달리면서 살아왔을 그 사람의 삶에 빛이 드리웁니다.
늘 사랑을 넘치게 받으면서도 부족하다 투정만하는 제게 주시는 교훈처럼 와 닿았습니다.
따스한 메아리로 잔잔하지만 강한 힘을 불어 넣어 주시듯
그렇게 가슴에 자리잡았습니다.
그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버지 앞에 서지도 못했겠지요.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과연 아픔에 시달리는 이들을
아버지께로 인도한 적이 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제 아픔이 아니기에 외면하지는 않았는지요.
그러면서 다른 이가 인도하여 기쁨을 찾으면 되려 그를 밀어내려 하지는 않았는지~~
율법학자들이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처럼
저역시 그런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서 있는것은 아닌지요.
아버지시기에 죄를 용서하심인데~~~
그런 아버지께 사랑을 드리고, 행동으로 고백하며,
믿음의 열정으로 가슴깊이 받아들였는지요.
아버지!
부족한 저이지만 아버지를 사랑하는 열정을 몸으로 말하게 하소서.
제 아픔보단 다른이의 아픔에 먼저 움직이는 저가 되게 하시어
아버지를 고백하게 하소서.
많은 말보단 행동으로 아버지를 증언하게 하시어
기쁨을 전하는 작은 천사의 날개짖으로 행복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
(no content)
연중 제7주일(2/22)
오늘 복음에서는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람들이 많아 예수님께로 갈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지붕을 뚫고 내려갔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는 우리와 달라 지붕을 쉽게 걷어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더라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용기를 묵상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신다. 가족들은 병자를 예수님께 가까이 데려가려고 필사적이었다. 그들의 용기를 주님께서 갚아 주신 것이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예수님의 말씀이 끝나자 그는 벌떡 일어나 걸어 나갔다. 모든 이가 기적을 체험한 것이다(복음).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환자의 가족들은 적극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 예수님께 갈 수 없게 되자 지붕을 뚫고 환자를 내려보냈던 겁니다. 사람들은 어떤 표정으로 봤을까요? 더러는 웃었을 것이고, 어이없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의 용기를 받아 주십니다. 그분의 넓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은 못마땅해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에게 죄를 용서해 준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완고한 마음도 받아 주십니다. 모두에게 애정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환자의 가족들은 용기가 있었습니다. 주변을 의식했더라면 예수님 앞에 나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의 용기는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결정입니다. 사람에게 기대고 사람의 판단에 구애된다면 ‘참된 용기’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주님의 시선만을 생각해야 참된 용기에 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 학자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믿지 못했고 주위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따집니다. 신앙 안에서 따진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주님 앞에서까지 따져야 할 일은 별로 없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법보다 위에 있습니다. 사랑은 무질서입니다. 용기 있는 사람은 따지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