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2/28)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레위의 집에 머무르신다. 그는 세리였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못마땅해한다. 부정한 사람과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개의치 않으신다. 사람들의 판단보다 레위의 믿음을 보시기 때문이다(복음).
    복음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밖에 나가셨다가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복음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못마땅해합니다. 세리들과 함께 식사한다고 투덜거립니다. 그것이 왜 불평의 이유가 되는지요? 부정한 사람과 어울리면 함께 부정해진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세리를 죄인으로 간주했습니다. 로마에 빌붙어 동족을 배신하는 이들로 치부했습니다. 그들과 어울리는 행위 자체를 죄악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진 자들’이 율법대로 사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세리는 안 만나면 되고, 죄인과는 어울리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기에 바리사이들은 자기들끼리 함께 살았습니다. ‘바리사이’라는 말 자체가 ‘분리와 격리’를 뜻합니다. 민중과 구분되어 산다는 의미입니다. 진정으로 ‘가진 사람’은 남을 배려합니다.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일수록 감싸 줍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세리들과 어울리심으로써 상처 받던 그들의 편에 서시려 하셨던 것입니다. 실력 있는 지도자는 혼자 나타납니다.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자신 있기’ 때문입니다. 실력 없는 지도자들이 여러 사람을 데리고 등장합니다. 그러고는 법을 따지고 권위를 내세웁니다. 능력이 모자란다는 표시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내가 너를 불렀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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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2/28)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레위의 집에 머무르신다. 그는 세리였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못마땅해한다. 부정한 사람과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개의치 않으신다. 사람들의 판단보다 레위의 믿음을 보시기 때문이다(복음).
      복음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밖에 나가셨다가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복음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못마땅해합니다. 세리들과 함께 식사한다고 투덜거립니다. 그것이 왜 불평의 이유가 되는지요? 부정한 사람과 어울리면 함께 부정해진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세리를 죄인으로 간주했습니다. 로마에 빌붙어 동족을 배신하는 이들로 치부했습니다. 그들과 어울리는 행위 자체를 죄악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진 자들’이 율법대로 사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세리는 안 만나면 되고, 죄인과는 어울리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기에 바리사이들은 자기들끼리 함께 살았습니다. ‘바리사이’라는 말 자체가 ‘분리와 격리’를 뜻합니다. 민중과 구분되어 산다는 의미입니다. 진정으로 ‘가진 사람’은 남을 배려합니다.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일수록 감싸 줍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세리들과 어울리심으로써 상처 받던 그들의 편에 서시려 하셨던 것입니다. 실력 있는 지도자는 혼자 나타납니다.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자신 있기’ 때문입니다. 실력 없는 지도자들이 여러 사람을 데리고 등장합니다. 그러고는 법을 따지고 권위를 내세웁니다. 능력이 모자란다는 표시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내가 너를 불렀나니
    
    
    
    

  2. guest 님의 말: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2/28)


      말씀의 초대
      단식하는 이가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들어 주신다. 그분께서는 굶주린 이에게 양식을 주시고 고생하는 이에게 위로를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니 율법을 지키고 계명에 충실하여야 한다. 그러면 주님의 축복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제1독서).
      제1독서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8,9ㄷ-1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주님께서 늘 너를 이끌어 주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네 넋을 흡족하게 하시며, 네 뼈마디를 튼튼하게 하시리라. 그러면 너는 물이 풍부한 정원처럼, 물이 끊이지 않는 샘터처럼 되리라. 너는 오래된 폐허를 재건하고, 대대로 버려졌던 기초를 세워 일으키리라. 너는 갈라진 성벽을 고쳐 쌓는 이, 사람이 살도록 거리를 복구하는 이라 일컬어지리라. “네가 삼가 안식일을 짓밟지 않고, 나의 거룩한 날에 네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 네가 안식일을 ‘기쁨’이라 부르고, 주님의 거룩한 날을 ‘존귀한 날’이라 부른다면, 네가 길을 떠나는 것과 네 일만 찾는 것을 삼가며, 말하는 것을 삼가고 안식일을 존중한다면, 너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나는 네가 세상 높은 곳 위를 달리게 하며, 네 조상 야곱의 상속 재산으로 먹게 해 주리라.”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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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정말 가슴깊이 내려와 앉습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세리마태오의 집에서 머무시는 것을 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투덜거리자 그리 말씀하시지요.

    그들의 모습이 제 모습은 아니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진정 아파하는 이들의 곁에서 함께 하시는 모습에서

    사랑을 느끼고 그 모습을 닮아가려 해야 하는데 시기가 먼저는 아니었는지요.

    길잃은 양들에게 그 사랑이 꼭 필요함을 알면서도 외면하진 않았는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도 관심받는 이들이 있으면

    괜한 투정을 부리면서 그들을 밀어내려 한적은 없었는지요.

    그리고 그의 손과 발을 묶으려 하진 않았는지요.

    그가 바로 아파하는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제가 그를 가린것은 아닌지요.

    아픔을 함께 하면서 위로해 주기는 커녕 무시하면서

    그를 따돌린 적은 없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뭐 저런 사람과 어울리냐~” 하면서..

    제가 아주 어려서 사랑과 배려가 무엇인지를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일곱 살 때랍니다.

    아주 더운 여름날 집에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떼가 꼬질꼬질한…

    그리고 역겨운 냄새가 나는 한 아저씨가 대문으로 들어왔습니다.

    전 먼저 마루로 올라가 밀문을 닫고 숨을 죽인채 보고 있었지요.

    근데 아버지께서 부엌으로 들어가시더니

    밥상을 차려서 가지고 마루로 가져오셨답니다.

    놀란 저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문을 쬐끔 열고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대뜸 화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아저씨한테 있는 벌레가 방으로 들어오면 우리 다 옮아.”

    껄껄 웃으시더니

    “그 벌레 내가 다 잡아줄게”

    “그런게 어딨어.개네들이 말을 듣나 뭐”

    하면서 꼬리를 물자 “쉬” 하시더니 나가셨답니다.

    그리고 물도 갖다주고 그 다음엔 베개를 내밀더니 한숨자고 가라고~~~~

    어린 마음이지만 한숨이 절로 나왔지요.

    안되겠다 싶어서 작은 문을 통해 나와서 아래채 뜨락에서 팔짱을 끼고

    아저씨를 쳐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저씨께서 절더러

    “몇살이냐?” 고 물었지만

    “아저씨가 왜 궁금하세요.” 라고 했지요.

    “나도 너 같은 아이가 있었는데~” 갑자기 그 아저씨가 불쌍해 보였답니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는데~~~

    제 잘못인거 같아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아버지께서 들어오시더니

    오늘 우리 딸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고~~

    내 딸만큼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어떤 환경에 있는 사람이든 차별하지 않는 그런 딸이길 바랬는데 아쉽다고 하시더군요.

    겉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내 작은 판단이 그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고~~~

    내가 나를 사랑할 때 그를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이 생긴다고~~

    그리고 그런 맘이 자리잡을때 사랑이 생겨나고,

    그럴때 배려깊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살다보면 언제 어느때 그 사람을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것이라

    한사람 한사람과의 관계는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참 좋은 가르침이었는데 제가 실천을 못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그때부터 사실 성장해서도 늘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그 아저씨는 먼저 간 딸에게 미안해서 힘든 길을 택했다고 했습니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은 알 수 있을것 같습니다.

    아버지!

    아픈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하듯,

    길잃은 양에겐 아버지의 손길이 더없이 필요하겠지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아버지시기에 누가 어떤 아픔이 있는지도 다 파악하시지요.

    그래서 아픈이의 집으로 들어가시지요.

    아버지의 발걸음에 기쁨을 더해드릴 수 있는 저가 되길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울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라고 하신 말씀이 가슴 깊이 와 닿았습니다.

    매번 신앙고백을 하면서 부족한 시기와 외면으로

    죄인이 의인이 되는 길을 가로막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깊이 반성해 보았습니다.

    아픈이가 있으면 달려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고서 울고 있는 이가 있으면 끌어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외면하고 그 사람이 제 자리를 빼앗을까 싶어 고개를 돌리적은 없었는지를

    반성해 보았습니다.

    욕심이 집착이 되어 저를 긁어 먹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아집과 욕심과 집착의 혹을 두턱에 달고서

    회개의 문고리를 잡고서 열어주지 않았던 심술보는 아니었는지요.

    언제 어디서든 제가 먼저 달려가 그들을 아버지께로 인도하고

    손을 잡았어야 했는데…

    제 부족으로 그리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요.

    소외당하고 외면당하는 가난한 이들이 정작 의인임에도 불구하고

    죄인아닌 죄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저의 부족함때문에~~

    사랑을 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는 저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삶의 고통속에서 힘겨워 하는 이들에게 작은 빛을 나눌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소서.

    많은 이들이 회개하여 기쁜 맘으로 의인이 되어 아버지께로 달려가는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4. guest 님의 말: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주님!

    오늘 갈매못성지에 다녀왔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갑자기 이사를 간 자매님 가정에
    기도를 하고 간 김에 성지에가서 미사를 했습니다 
    떡 본김에 제사지냈다고 할까요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오랜만에 바람도 쐬고 맛있는 굴밥과 굴회도 먹고 
     자매들과 수다를 떨고 깔깔거리며 웃고 떠드니
    몸은 피곤했지만 즐거웠습니다
    참 그곳성지 신부님의 강론말씀이 저희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불러본 떼제성가로 올 사순시기를 잘 보낼 것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신부님의 강론말씀 중 “예수님을 항상 가슴 속에서 떠나보내드리지
    말라시는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사실 당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언제나 당신을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을 미워한 적도 많았습니다
    당신을 원망한 적도 많았습니다
    당신께 감사의 기도 보다는 청원의 기도를 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결과가 나쁠 때는 당신께 모든 책임을 돌리고....
    참 이기적인 사람이지요? 주님!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언제나 저의 가슴 속에서 계시게 해야하는데
    제가 아쉬울 때만 저의 가슴 속에서 ...

    주님!

    그래도 다행이지요?
    올 사순시기는 잘 보낼 것같은 생각에 기쁩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당신께 고백할수 있다는 것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증거지요?
    당신께서 저를 위해 가신  골고타의 언덕을 생각하며
    당신의 고통을 생각하며 
    당신의 아품을 생각하며
    저도 당신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며
    반복하여 짓게 되는 저의 죄를 반성해봅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며 당신의 말씀으로
    행복하고 기쁜 신앙생활을 해야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노라.
    오히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멘

     

    생활성가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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