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사순 제1주간 수요일(3/4)


    말씀의 초대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들 중의 몇몇은 표징을 요구하고 있다. 기적을 보여 주시길 청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요나 예언자의 이야기를 하신다. 그의 말에 이방인이었던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하였음을 강조하신다. 회개가 곧 기적이라는 말씀이다(복음).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그때에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요나 예언자는 특이한 분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치려 합니다. 예언자가 싫다며 먼 곳으로 달아나려 합니다. 당시 예언자는 신분을 보장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카리스마’가 인정되면 먹고사는 데도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예언자의 신분을 거절하려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는지요? 얽매이는 것이 싫었거나 아니면 남다른 취미 활동을 즐기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그는 자유분방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도 그를 돌릴 수 없었습니다. 말로써 되는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러기에 그는 죽음을 체험합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폭풍우를 만나자 태풍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더구나 자기 때문에 무모한 사람들이 죽 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에게 말합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내던지시오. 그러면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오. 이 큰 폭풍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소”(요나 1,12). 요나는 마음을 비웠던 것입니다. 니네베 사람들 역시 죽음의 위협을 느꼈기에 회개했습니다. 요나의 목소리에는 죽음의 힘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힘을 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을 뻔했던 사건들’은 모두가 은총입니다. 온갖 이유를 들이대며 그렇지 않다고 말해도 ‘살아 있음’은 분명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요구하는 청중들에게 요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자신 안에서 ‘하늘의 표징’을 찾아보라는 말씀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통회 - 김태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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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사순 제1주간 수요일(3/4)


      말씀의 초대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들 중의 몇몇은 표징을 요구하고 있다. 기적을 보여 주시길 청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요나 예언자의 이야기를 하신다. 그의 말에 이방인이었던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하였음을 강조하신다. 회개가 곧 기적이라는 말씀이다(복음).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그때에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요나 예언자는 특이한 분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치려 합니다. 예언자가 싫다며 먼 곳으로 달아나려 합니다. 당시 예언자는 신분을 보장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카리스마’가 인정되면 먹고사는 데도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예언자의 신분을 거절하려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는지요? 얽매이는 것이 싫었거나 아니면 남다른 취미 활동을 즐기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그는 자유분방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도 그를 돌릴 수 없었습니다. 말로써 되는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러기에 그는 죽음을 체험합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폭풍우를 만나자 태풍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더구나 자기 때문에 무모한 사람들이 죽 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에게 말합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내던지시오. 그러면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오. 이 큰 폭풍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소”(요나 1,12). 요나는 마음을 비웠던 것입니다. 니네베 사람들 역시 죽음의 위협을 느꼈기에 회개했습니다. 요나의 목소리에는 죽음의 힘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힘을 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을 뻔했던 사건들’은 모두가 은총입니다. 온갖 이유를 들이대며 그렇지 않다고 말해도 ‘살아 있음’은 분명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요구하는 청중들에게 요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자신 안에서 ‘하늘의 표징’을 찾아보라는 말씀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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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사순 제1주간 수요일(3/4)


      말씀의 초대
      요나 예언자는 니네베의 멸망을 외쳤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놀랐다. 단식과 회개를 선포하며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청했다. 임금까지 그렇게 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모습을 눈여겨보시며 재앙을 거두신다(제1독서).
      제1독서
      <니네베 사람들은 악한 길에서 돌아섰다.> ☞ 요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10 주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내렸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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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표징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요나 예언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아버지를 따르면서도 때론 저가 어떠한 것을 바라며

    보여주시기를 청하진 않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요나 예언자!

    아버지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외면하지요.

    니네베로 가서 회개를 외치라 하셨지만 도망을 칩니다.

    무서워서 였을까요?

    그 모습에 저를 비추어 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지워주심을 모르고 두려워서~

    그리고 관계에 얽매이기 싫어서 도망친 적은 없었는지~~

    요나 예언자는 아버지를 피해 세상 끝에 있다는 도시인

    타르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큰 바람을 보내어 폭풍이 일어 배가 부서지게 되자

    누구 때문인지를 가리기 위해 제비뽑기를 하지요.

    요나가 걸리자 결국은 스스로를 던지라고 합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요나 예언자!

    그 모습을 생각하면 저의 작은 모습이 더 자세히 보이는 듯 합니다.

    늦게나마 깨우침을 얻는 요나에 비해 전 어떤지~~

    바다에 던져지자 큰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삼키게 하십니다.

    한번에 기회가 아닌 깨우침을 주시어 아버지의 품에 머물게 하시는 모습에서

    더없이 큰 사랑을 느낍니다.

    그리고 요나가 고기의 배안에서 했던 기도중에 와 닿는 것이 있습니다.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구렁에서 제 생명을 건져 올리셨습니다.

    제 얼이 아득해질 때 저는 주님을 기억하였습니다.”

    라고 하는 기도중의 이 구절이 참으로 부족한 저의 모습을 보게 하는 듯 합니다.

    지칠대로 지쳐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되는 부족한 저의 모습은 아닌가 싶어서~~

    새로나는 요나!

    요나의 표징으로 부활을 알려 주시는 아버지!

    그러기에 회개하고 구원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다른 기적을 요구합니다.

    보았음에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 모습은 아닌지요.

    새로난 저로 다시 살아야 하는 삶인데도 불구하고

    그리 살지 못한것은 아닌지를 반성해 봅니다.

    요나의 설교를 듣고 이방인인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했습니다.

    제가 영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요.

    깨우침을 주셔도 제가 부족하여 아니 완고하여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것은 아닌지요.

    참 불쌍한 저지요?

    작은 바람에도 아버지를 느껴야 하는데 무뎌서 그리하지를 못하고

    센 바람에 제가 흔들려야~

    그제서야 쬐끔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들면서도

    온갖 투정을 부리진 않았는지~~

    자식에게 깨우침을 주시기 위해

    아버지의 맘은 더 아픈 것임을 알면서 모른 척하진 않았는지~~

    니네베 사람들도 스바 여왕도 다 이방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려 하는 모습이

    바로 제 모습이 되기를 청해 봅니다.

    그래야만 유다인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늘 깨어 기도하렵니다.

    그리고 움직이렵니다.

    기적이 기적이 아닌 아버지의 사랑에서 오는 은총임을 가슴에 품고

    기적을 바라는 자식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는 데에만 전념하려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표징을 바라는 이들에게 요나 예언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처음엔 아버지의 부르심을 받고도 도망치지만 결국은 깨닫고

    설교를 하지요.

    그 모습에서 저를 비추어 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얼만큼의 깨우침 속에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는지요.

    니네베 사람들이나 스바 여왕이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를 합니다.

    하물며 제가 아버지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어떤 삶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요.

    아버지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속은 다른 색으로 가득채워

    어떤 표징을 바라는 한 사람으로 있진 않았는를 반성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구원을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임을 깨닫게 하시어

    더 겸손되이 하루하루에 삶에 감사하며

    회개하는 이쁜 딸이 되어 아버지 앞에 서게 하소서.

    무엇을 바라는 자식이 아니라

    무엇을 드릴까를 고민하는 저가 되게 하소서.

    늘 아버지 앞에 서서 기쁘게 수다떠는 철없는 아이로 남게 하소서.

    그리하여 사랑속의 회개로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새로나게 하소서.

    아멘.

  4. guest 님의 말:

    (no content)

  5. guest 님의 말: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경에 나오는 주님의 기적들을 생각해 보면서 그 시대의 사람들 마음도 읽어보았다.

    성경을 읽다보면 주님이 얼마나 많은 기적을 행하셨는지 알수가 있다.
    죽은 이들을 살리시는 표징 뿐만아니라 심지어 썩어가는 나자로까지도 살리시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이 마저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
    주님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또 한번 요나의 기적을 통해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자 하심을 느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못함을 본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분노로써 인간을 내치시지 않으시고 더 큰 이를 준비하신다.
    즉 바로 당신의 십자가로 인간구원의 죽음을 예고하고 계심을…
    이렇게 무상으로 주시는 그분의 자비를 오늘 복음을 통해 가슴 깊이 깨달아 보았다.

    그럼 주님의 자비를 깨달았다는
    나는 세바여왕처럼 아주 먼곳에서 찾아오려는 노력은 했는가.
    니느베 사람들 처럼 요나의 설교만 듣고도 회개하고 믿는 나 였는가…
    그분의 말씀을 굳게 믿는다고 하면서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가…

    사소한 상처와 아픔을 크게 생각하고 이웃의 잘못만 탓하며 살아가지는 않았는지…
    이런 모든 잘못(열거하면 무지 많다.)된 자신의 모습은 전혀 변화시키지 못하면서
    그분을 알기위해 믿는다고 고백하는가 말이다.
    아마 지금 그분께서 또 다른 표징을 보여주신다해도 나는 볼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러면서 요구조건은 많지 않았나 싶다.
    이 요구조건들이 바로 내가 그분께 청하는 표징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봤다.
    “이건 이렇게 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아쉽습니다…서운했던 감정들…”
    정작 나는 회개하고 변화되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참~~ 부끄럽다.

    그렇다.
    그분의 표징을 요구하기 앞서
    오늘부터라도 성경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며 살았는지 먼저 자신을 돌아봤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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