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형제를 찾아가 화해하여라.


사순 제1주간 금요일(3/6)


    말씀의 초대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처럼 살지 말라고 하신다. 그들은 형제에게 성내고 욕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는 벌벌 떨고 있다. 그것은 엄살이다. 잘못된 율법관이다.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말씀이다(복음).
    복음
    <먼저 형제를 찾아가 화해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0ㄴ-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고대 이스라엘에는 ‘도피성’이 있었습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이거나 중상을 입힌 이들이 숨어 살던 곳입니다. 반드시 레위 지파 영역 내에 설치했습니다. 유목민에게 보복은 당연했습니다. 그러기에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도피성에 들어가면 안전합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해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도피성은 ‘스켐’으로, 예루살렘 북쪽에 있었습니다. 이렇듯 구약의 ‘도피성’은 살인자를 보호하는 곳입니다. 물론 우발적인 사고를 낸 사람입니다. 그렇더라도 철저한 율법 국가에 이런 제도가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살인은 또 다른 살인으로’ 이어지기에 보복을 막는 차원에서 생겨났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넘어서라고 하십니다. 그들처럼 글자나 따지는 형식주의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아버지였던 모세는 ‘도피성’까지 만드는 유연함을 지녔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길을 그렇게 걸어선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살인이라는 어마어마한 것에 매달리기보다 형제에게 욕하고 성내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가까운 사람들은 소홀히 하면서 ‘먼 곳의 사람들’에 대해 더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우리가 하나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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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형제를 찾아가 화해하여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사순 제1주간 금요일(3/6)


      말씀의 초대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처럼 살지 말라고 하신다. 그들은 형제에게 성내고 욕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는 벌벌 떨고 있다. 그것은 엄살이다. 잘못된 율법관이다.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말씀이다(복음).
      복음
      <먼저 형제를 찾아가 화해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0ㄴ-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고대 이스라엘에는 ‘도피성’이 있었습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이거나 중상을 입힌 이들이 숨어 살던 곳입니다. 반드시 레위 지파 영역 내에 설치했습니다. 유목민에게 보복은 당연했습니다. 그러기에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도피성에 들어가면 안전합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해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도피성은 ‘스켐’으로, 예루살렘 북쪽에 있었습니다. 이렇듯 구약의 ‘도피성’은 살인자를 보호하는 곳입니다. 물론 우발적인 사고를 낸 사람입니다. 그렇더라도 철저한 율법 국가에 이런 제도가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살인은 또 다른 살인으로’ 이어지기에 보복을 막는 차원에서 생겨났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넘어서라고 하십니다. 그들처럼 글자나 따지는 형식주의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아버지였던 모세는 ‘도피성’까지 만드는 유연함을 지녔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길을 그렇게 걸어선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살인이라는 어마어마한 것에 매달리기보다 형제에게 욕하고 성내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씀입니다. 가까운 사람들은 소홀히 하면서 ‘먼 곳의 사람들’에 대해 더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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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사순 제1주간 금요일(3/6)


      말씀의 초대
      아무리 악한 사람도 죄를 버리고 회개하면 구원하신다. 율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면 복을 내리신다. 주님께서는 죄인의 죽음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큰 죄인이라도 불의를 버리고 공정을 실천하면 지난날을 용서받게 될 것이다(제1독서).
      제1독서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8,21-28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자기가 실천한 정의 때문에 살 것이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주 하느님의 말이다.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고, 악인이 저지르는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하면, 살 수 있겠느냐? 그가 실천한 모든 정의는 기억되지 않은 채, 자기가 저지른 배신과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죽을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집안아, 들어 보아라. 내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냐? 오히려 너희의 길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는 것이다.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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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먼저 용서를 청하는 이가 아버지의 자녀라 하시지요.

    작은 계명이라도 지키는 이가 하느님 나라에선 큰 사람이라 불릴 것이라고~

    작은 계명이라도 지키지 못하는 이는 가장 작은 자라 불릴 것이라 하십니다.

    율법을 폐지하러 온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하시면서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참 무겁게 다가왔답니다.

    바로 의인의 길임을 깨달아 보지만 끝은 희미할 뿐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의로움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단, 잘못된 의로움을 가진 그들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하는데~~~

    과연 부족한 저가 그리할 수 있을런지요.

    큰 것에 치우치느라 작은 것을 일상으로 흘려 보내는 무의식이

    저를 더 멍들게 함은 아닌지를 생각해 봅니다.

    가까이에 있는 형제들에게 하지 못함은 인식하지 않으면서

    먼곳에 신경을 쓰는~

    엉뚱한 것에 신경을 쓰는 부족한 이가

    저의 모습은 아닌지를 반성해 봅니다.

    율법과 형식만을 중요시하는 바리사이들의 의롭지 못한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은 아닌지요.

    율법의 금지사항인 살인!

    아무도 살인을 쉽게 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형제에게 성내고 화내는 일은 예사로 합니다.

    이웃과 화해하지 않기에 살인까지 갈 수도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불러오는 것처럼

    저의 미성숙한 사랑이 혹여 이시간 또 다른 복수를 꿈꾸며

    움틀거리는 것은 아닌지를 돌이켜 봅니다.

    아버지께로 가는데 있어서 방해되는 모든 것들은

    곧 재판에 회부됨을 기억하면서 하루하루의 삶을 돌이켜 보는 저가 되기를 청해 봅니다.

    아버지와의 관계!

    가족간의 관계!

    부부간의 관계!

    형제,자매의 관계!

    이 모든 관계를 아버지께로부터 선물로 받았지만

    주신 선물을 잘 관리하였는지요.

    주어진 선물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그 선물의 의미를 새기면서 더 큰 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늘 불평속에서 십자가만을 탓하면서 오는 투정이

    화해를 모르는 악의 그림자로 서 있게 하진 않았는지요.

    아버지!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넘어선 저가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힘차게 나아가기를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작은 계명이라도 지키려 하는 이는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 불릴 것이고

    작은 계명이라도 지키지 못하는 이는 하느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 불릴 것이라 하셨지요.

    바리사이들을 능가하는 의로움!

    정말 그러한 의로움이 제게도 있을수 있을런지요.

    가슴 깊이 와 닿습니다.

    제가 과연 의인의 길로 걸어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고~~

    지금까진 보여지는 큰 것에 치우쳐서

    작은 것에 소홀히 하진 않았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정작 가까이에 있는 형제들에게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면서

    다른 무언가를 위해 달려온 것은 아닌지요.

    무슨 이유에서든 제 작은 마음이

    소홀이 했던 모든 것을 생각하여 사랑의 손을 내밀 것을 다짐해 봅니다.

    난 아니데 저 사람이~~ 라는 생각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렵니다.

    그리하여 제 맘의 이기심이 또 다른 복수를 꿈꾸지 않게

    아버지만을 바라보면서 화해의 꽃을 피우게 하소서.

    누군가 그 꽃을 꺽을지라도 미소로 바라보게만 하소서.

    바보가 아니라 현명하고 지혜로운 의로움의 나무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화해를 못해 힘들어 하는 이들이 쉬어가게

    제 그늘을 내어주는 지혜로운 나무되게 하소서.

    아멘.

  4. guest 님의 말: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말씀에 미운 형제자매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상처받은 마음을 누구한테 보상받나?
    너무 억울하고 마음이 상해서 가슴이 아픈데
    어떻게 화해를 할 수 있을까? 
    마음 속에서 응어리가 진 상태에서 화해를 할 수 있을까?
    미워서 정말 너무 미워서 제가 받은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는데 어떻게 너무 억울한데...
    등등...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행동에 대해 성찰을 했습니다
    얼마나 신앙인답게 행동을 했는지...
    얼마나 사랑을 많이 베풀었는지...

    아니었습니다  주님!
    남에게 상처만 받아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이었는지 반성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형제자매들에게 상처도 주고 미운 행동을 했을 거라는
    생각에 이기적인 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부끄러운 신앙가였음을 깨닫습니다
    신앙인으로 가장한 신앙가 빈수레가 요란한 깡통신자였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며 교만했던 저의 신앙생활을 반성해봅니다

    더구나 오늘복음에서 당신께서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말씀에 가슴이 뜨끔합니다
    신앙생활 헛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인생 헛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게 상처 준다고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했던 저의 교만과
    저  때문에 상처를 받아 자신이 용서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미련한 사람이 바로 저 헬레나라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

    말씀을 깊이 새기며

    자신만이 피해자라는 망상에서 벗어나 당신께서 원하시는
    멋진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겟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복음을 묵상 할때의 일시적인 마음이 아닌 
    당신의 말씀인 복음을 묵상하는 신앙인답게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여라 하신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

    묵상하며

    ♬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

  5. guest 님의 말:

    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형제와 싸우거나 안좋은 상태에 놓인 사람은
    예물을 바칠때 먼저 그 형제를 찾아가 화해하고 예물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자기형제와는 싸우면서 재단에 예물을 바치는 것은 당신의 첫 째 가는
    계명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실천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라는
    나무라심으로 들립니다.

    그런데 저는 화를 내기는 쉽지만 화해는 참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
    마음은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으나, 화해의
    행동은 따라주질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특히 재단에 예물을 봉헌하려고 할 때는 여지없이 마음에 담아둔
    서운한 사람들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가지만, 예물을 그대로 놓아두고
    그 형제를 찾아가고 싶진 않아 슬그머니 예물을 놓고 나옵니다.
    예수님께 죄스럽고 마음이 편치 않지만, 먼저 손을 내밀 용기가 나질 않는거죠.
    재단에 봉헌할 때는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드려야 함을 알면서도, 가까운
    형제자매와 안좋은 관계에 놓여 있을 때는 예물을 바치는 것도 기쁘지가
    않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싸우지 않고 늘 평화롭게 지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다투게 되면 화를 내거나 거친말이 오가더라도, 화해는
    빠를수록 좋은 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그저 생각은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마는 행동으로 실천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먼저 형제를 찾아가 화해 하여라.”

    화해의 주인이신 주님!
    화해에 더디고 무딘 저를 당신의 사랑안에 머물게 하소서.
    이웃에게 다소 서운한 마음이 있더라도 그 마음을 빨리 거두고
    기쁘고 밝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이끌어 주소서.아멘.

    ♬ 우리가 하나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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