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다.
그렇게 해야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하신다.
원수는 핍박하는 자들이다. 박해자는 고통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돌아보라는 말씀이다.
그들 안에서도 주님의 뜻을 찾아보라는 말씀이다(복음).
복음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랑의 에너지는 감동입니다. 감동을 주고받을 때 사랑은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감동을 주는 행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주라는 말씀입니다. 가능한 일일는지요?
원수는 원한이 맺힌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주는 이들은 많습니다. 삶의 의욕을 앗아 가는 이들입니다.
원인이 나에게 있든 그들에게 있든 그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큰 감동은 ‘용서’입니다. 용서를 담고 있는 언행과 몸짓입니다.
그러기 위해 때로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때로는 용감하게 투자해야 합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붙잡고 있다면 지금 당장 건너뛰어야 합니다.
그것이 감동을 주는 행위입니다.
자신에게 감동을 주고 상대에게도 감동을 줍니다.
장애물 없는 길은 없습니다. 고통 없는 인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통과 장애라고 느껴진다면 넘을 수 있는 힘을 청해야 합니다.
타인에게 감동을 주면 되돌아옵니다. 하느님께서 개입하시기 때문입니다.
언제라도 이 사실을 기억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행복해집니다.
사랑받는 어린이가 행복하게 자란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다.
그렇게 해야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하신다.
원수는 핍박하는 자들이다. 박해자는 고통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돌아보라는 말씀이다.
그들 안에서도 주님의 뜻을 찾아보라는 말씀이다(복음).
복음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랑의 에너지는 감동입니다. 감동을 주고받을 때 사랑은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감동을 주는 행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주라는 말씀입니다. 가능한 일일는지요?
원수는 원한이 맺힌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주는 이들은 많습니다. 삶의 의욕을 앗아 가는 이들입니다.
원인이 나에게 있든 그들에게 있든 그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큰 감동은 ‘용서’입니다. 용서를 담고 있는 언행과 몸짓입니다.
그러기 위해 때로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때로는 용감하게 투자해야 합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붙잡고 있다면 지금 당장 건너뛰어야 합니다.
그것이 감동을 주는 행위입니다.
자신에게 감동을 주고 상대에게도 감동을 줍니다.
장애물 없는 길은 없습니다. 고통 없는 인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통과 장애라고 느껴진다면 넘을 수 있는 힘을 청해야 합니다.
타인에게 감동을 주면 되돌아옵니다. 하느님께서 개입하시기 때문입니다.
언제라도 이 사실을 기억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행복해집니다.
사랑받는 어린이가 행복하게 자란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주님께서는 당신의 규정을 실천하라고 명령하신다.
마음을 다해 실천에 옮긴다면 그분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계율을 지키면 그분의 백성이 된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민족들 위에 세우시고
명성과 영화를 받게 하실 것이다(제1독서).
제1독서
<너희는 너희 주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라.>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26,16-19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오늘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너희에게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주님을 두고 오늘 너희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곧 주님께서 너희의 하느님이 되시고, 너희는 그분의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의 규정과 계명과 법규들을 지키고, 그분의 말씀을 듣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오늘 너희를 두고 이렇게 선언하셨다.
곧 주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분 소유의 백성이 되고, 그분의 모든 계명을 지키며,
그분께서는 너희를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민족들 위에 높이 세우시어,
너희가 찬양과 명성과 영화를 받게 하시고,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예수님께서는 오늘 자기에게 잘 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는 것은
이방인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시며,
자신을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사랑하기를 권하십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쉽게 용서하고 더구나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용기는 없습니다
그러니 이방인과 하나도 다를게 없는 사람이 바로 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계명을 지키고 당신을 따르겠노라고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이방인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지만 저라는 사람은 어쩌면 이방인 보다도 더 못할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말의 비수에 살짝만 찔려도 아프다고 성을 내고 흥분하여 그 보다 몇 갑절
더 갚아주곤 합니다.
그러면 저를 살짝 건드렸던 상대방은 너무나 놀라며 그토록 화를 낼 줄은
몰랐다며,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또 다른 모습이 숨어 있음에 놀라곤
합니다. 한마디로 다혈질적인 기질이 많이 내재하고 있음을 저 자신이
잘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질 않습니다.
평소에 쌓아놓은 이미지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게 되는 셈이죠.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게 되어라.’
하신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그 완전함이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음을 잘 압니다.
하루하루 예수님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다 보면 오늘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그 다음날이 조금씩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당신께 기도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사랑이신 당신께 청해봅니다
저를 비난하는 말을 듣더라도 섣불리 판단하여 흥분할게 아니라
차분하게 듣고 천천히 대답하는 습관을 들이게 해주시라고요.
사랑이 많으시고 인내의 주인이신 주님!
제가 당신의 인내심과 사랑 많으심을 배워 닮도록 노력하게 하시고
쉽게 판단하여 흥분하지 않게 하시고,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말문을 열 수 있도록 지혜와 슬기로
채워주소서. 아멘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말씀처럼 사랑이 있어야 용서도 되는건데…
제 성격상 사랑하기도 전에 보기싫은 사람을 본다는 자체가 고통이라…
결국 용서할줄 모르는 내가 아닌가 그런 생각해 봤다.
아무튼 열심한 사람들은 주님처럼 사랑하고 용서하라고들 한다.
하지만 실천하기에 너무 어려운 말씀인건 사실이다.
먼저 사랑해야만 용서가 가능하니 말이다.
나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어유! 어떻게 이렇게 완전한 사랑을 할수 있느냐”고 반문을 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셨다.
그럼 나도 할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런데 그분께서는 당연히 할수 있는 쉬운 일이고
저는 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분이 나와 같은 육을 취하신 인간으로 생각하기보다
육신마저도 신으로 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쨋든 주님께서 인간으로 오셨다는 자체하나만으로도
이미 인간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셨지 않나 묵상해 봤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부모님 사랑도 그렇다.
자식이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용서를 잘 하시니 말이다.
당신들의 분신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다.
암튼 “자식이기 때문에 용서가 된다.”가 아니라
당신의 깊은 사랑으로 키운 조건없는 존재이기에
그냥 용서가 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봤다.
또한 하느님도 그렇지 않으실까…
당신 모상대로 저를 만드셨기에 무슨일을 저질러도
싹싹 빌면 용서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이토록 나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달아나려고만 했는지…
내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핑계와 남의 탓만 하고…
내죄는 쉽게 용서받았다 생각하면서 타인의 잘못은 용서하기 힘들어 했다.
반성해 보면서
그럼 나는 용서를 어떻게 실천해야 되는 걸까 …
무척 어렵겠지만
그분께서 저의 죄에 대해 무게를 달지 않으시고 무상으로 용서하셨듯이
나역시 내가 마워하고 용서하지 못할 사람들을 무상으로 용서해야 하는 것임을…
사순 제1주간 토요일(3/7)
말씀의 초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다. 그렇게 해야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하신다. 원수는 핍박하는 자들이다. 박해자는 고통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돌아보라는 말씀이다. 그들 안에서도 주님의 뜻을 찾아보라는 말씀이다(복음).
복음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랑의 에너지는 감동입니다. 감동을 주고받을 때 사랑은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감동을 주는 행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주라는 말씀입니다. 가능한 일일는지요? 원수는 원한이 맺힌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주는 이들은 많습니다. 삶의 의욕을 앗아 가는 이들입니다. 원인이 나에게 있든 그들에게 있든 그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큰 감동은 ‘용서’입니다. 용서를 담고 있는 언행과 몸짓입니다. 그러기 위해 때로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때로는 용감하게 투자해야 합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붙잡고 있다면 지금 당장 건너뛰어야 합니다. 그것이 감동을 주는 행위입니다. 자신에게 감동을 주고 상대에게도 감동을 줍니다. 장애물 없는 길은 없습니다. 고통 없는 인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통과 장애라고 느껴진다면 넘을 수 있는 힘을 청해야 합니다. 타인에게 감동을 주면 되돌아옵니다. 하느님께서 개입하시기 때문입니다. 언제라도 이 사실을 기억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행복해집니다. 사랑받는 어린이가 행복하게 자란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사순 제1주간 토요일(3/7)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당신의 규정을 실천하라고 명령하신다. 마음을 다해 실천에 옮긴다면 그분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계율을 지키면 그분의 백성이 된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민족들 위에 세우시고 명성과 영화를 받게 하실 것이다(제1독서).
제1독서
<너희는 너희 주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라.>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26,16-19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오늘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너희에게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주님을 두고 오늘 너희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곧 주님께서 너희의 하느님이 되시고, 너희는 그분의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의 규정과 계명과 법규들을 지키고, 그분의 말씀을 듣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오늘 너희를 두고 이렇게 선언하셨다. 곧 주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분 소유의 백성이 되고, 그분의 모든 계명을 지키며, 그분께서는 너희를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민족들 위에 높이 세우시어, 너희가 찬양과 명성과 영화를 받게 하시고,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잔잔한 불빛아래서 아버지를 그려봅니다.
말씀을 묵상하려니 무거운 마음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억울한 마음,
속상한 마음,
죄송한 마음,
여러 가지 마음이 교차하는 그런 밤이랍니다.
답답한 마음에 마당으로 나갔는데 달빛이 정말 정겨웠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저를 위로해 주는 온기가 되어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는 것을 새삼 느껴보는
정겨운 밤이기도 했답니다.
말씀을 묵상하려니 저가 더 자세히 보입니다.
“괜찮아. 그럼” 이라고 했지만 맘속엔 그렇지 않았던 것일까요? ㅎㅎ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 말씀에 제가 기가 죽었나 봅니다.
사실 아버지의 딸다운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영 자신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은 믿음으로 용서의 꽃을 피워야 하는데
그리하질 못함에 더욱 작아집니다.
따지고 보면 용서하지 못할 일은 없는데~~
다만 제게 주어지는 아픔이기에 용서의 그늘이 지지 않나 봅니다.
그리고 저만 용서하고 사랑하면 바보같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랍니다.
삶의 관계에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할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외면하고 밀면서 상처를 남깁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며 순명하지 않는다고
벼랑으로 밀어버리면서 아주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누구에 대한 순명인지를 생각하기 전에
자신을 위한 순명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욕심에 서로가 서로를~~
저역시 상처를 내기도 하였고 나기도 하였겠지요.
하지만 하찮은 인간이기에 낸 것보단, 난 것에 더 아파합니다.
그러면서 상처난 곳을 멀리서 쳐다보면서 방관까지 하는 모습이
바로 저이진 않았는지도 깊이 반성해 보는 시간입니다.
또 언젠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무슨 신앙인이고,
어떻게 기도하는 이라 하겠냐고 말한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지요.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난 그것을 그대로 할 수 없다고
소리치는 사람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누구로부터 상처를 받아서 무척 속상했고
당장 집어치우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하소연 한 사람이
정작 다른 사람에겐 상처를 안받게 잘하면 될거 아니냐고 말하는
그런 사람마저
사랑해야 하는지요.
축복의 삶을 살아감에 용서하지 못할 것도,
사랑하지 못할 것도 없음을 압니다.
다만 울아버지의 이마를 닦아드리기 위해 새하얀 수건에 물을 적시어
두손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작은 사랑을 순명하지 않는다 하여
매도해 버리는 그 아픔은 어떤것에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작은 아이에겐 흉이 남지 않는 상처임도 압니다.
그렇지만 가슴이 너무나 아파서~~~
아버지!
오늘 수다는 너무 아리시지요?
철없는 딸이 정말 가슴이 아팠나 봅니다.
제가 아버지 아니면 한 대 패고 싶었네요. ㅎㅎ
죄송해요. 아버지.
제가 아무리 큰소리쳐도 엇갈린 길로는 가지 않는거 아시죠?
아버지의 사랑이 제게 생긴 어떤 상처에 흉이 남지 않음을 잘 압니다.
호호불어 주시는 사랑의 입김을 알기에 지금까지도 이렇게 씩씩하게 재잘거립니다.
아버지 아니셨으면 저 어떡했을까요? ㅎㅎ
아픔을 이기면 바다같이 깊고 넓은 사랑의 용서를 선물로 주시는 울아버지!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사랑하겠다고는 못하지만
단 한가지 미워하며 아파하진 않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그들도 아버지의 소중한 자식이니까요.
그리고 아버지!
제가 존경하는 분이 이런 말을 해 주신게 기억납니다.
“힘을 더 빼세요.” 멋있죠?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그 마음에 흡족한 저가 되려면
바로 힘을 빼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힘을 빼고 바라볼 때, 삶의 기쁨을 앗아간 이들을 더 이상 미워하면서
아파하지 않을수 있음을~~
그리고 용서할 수 있음을~~~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한참동안 머리와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지나간 일들이 스쳐갔습니다.
괜찮다 하였지만 저 스스로의 위안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아직도 아파하는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 같아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원수라고 할 것까지도~
용서를 하지 못할 것도 없음을 알면서
제게 난 상처이기에 더 아파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아무리 깊은 상처라 할지라도 제가 아버지의 손을 놓지 않는 한,
어떠한 흉도 남지 않음을 잊은채
남을 흉만을 생각하면서 힘들어 하진 않았는지요.
아버지를 사랑함에 고백하는 제 마음이 높은 믿음의 산을 이루게 하시어
사랑이 넘치는 푸른 숲으로 가득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삶에 지쳐 들어오는 모든 이들이
용서의 낙엽을 밟으며
새 옷을 입고 행복한 미소로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자기에게 잘 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는 것은
이방인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시며,
자신을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사랑하기를 권하십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쉽게 용서하고 더구나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용기는 없습니다
그러니 이방인과 하나도 다를게 없는 사람이 바로 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계명을 지키고 당신을 따르겠노라고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이방인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지만 저라는 사람은 어쩌면 이방인 보다도 더 못할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말의 비수에 살짝만 찔려도 아프다고 성을 내고 흥분하여 그 보다 몇 갑절
더 갚아주곤 합니다.
그러면 저를 살짝 건드렸던 상대방은 너무나 놀라며 그토록 화를 낼 줄은
몰랐다며,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또 다른 모습이 숨어 있음에 놀라곤
합니다. 한마디로 다혈질적인 기질이 많이 내재하고 있음을 저 자신이
잘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질 않습니다.
평소에 쌓아놓은 이미지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게 되는 셈이죠.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게 되어라.’
하신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그 완전함이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음을 잘 압니다.
하루하루 예수님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다 보면 오늘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그 다음날이 조금씩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당신께 기도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사랑이신 당신께 청해봅니다
저를 비난하는 말을 듣더라도 섣불리 판단하여 흥분할게 아니라
차분하게 듣고 천천히 대답하는 습관을 들이게 해주시라고요.
사랑이 많으시고 인내의 주인이신 주님!
제가 당신의 인내심과 사랑 많으심을 배워 닮도록 노력하게 하시고
쉽게 판단하여 흥분하지 않게 하시고,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말문을 열 수 있도록 지혜와 슬기로
채워주소서. 아멘
♬ 그 사랑 얼마나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말씀처럼 사랑이 있어야 용서도 되는건데…
제 성격상 사랑하기도 전에 보기싫은 사람을 본다는 자체가 고통이라…
결국 용서할줄 모르는 내가 아닌가 그런 생각해 봤다.
아무튼 열심한 사람들은 주님처럼 사랑하고 용서하라고들 한다.
하지만 실천하기에 너무 어려운 말씀인건 사실이다.
먼저 사랑해야만 용서가 가능하니 말이다.
나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어유! 어떻게 이렇게 완전한 사랑을 할수 있느냐”고 반문을 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셨다.
그럼 나도 할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런데 그분께서는 당연히 할수 있는 쉬운 일이고
저는 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분이 나와 같은 육을 취하신 인간으로 생각하기보다
육신마저도 신으로 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쨋든 주님께서 인간으로 오셨다는 자체하나만으로도
이미 인간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셨지 않나 묵상해 봤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부모님 사랑도 그렇다.
자식이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용서를 잘 하시니 말이다.
당신들의 분신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다.
암튼 “자식이기 때문에 용서가 된다.”가 아니라
당신의 깊은 사랑으로 키운 조건없는 존재이기에
그냥 용서가 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봤다.
또한 하느님도 그렇지 않으실까…
당신 모상대로 저를 만드셨기에 무슨일을 저질러도
싹싹 빌면 용서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이토록 나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달아나려고만 했는지…
내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핑계와 남의 탓만 하고…
내죄는 쉽게 용서받았다 생각하면서 타인의 잘못은 용서하기 힘들어 했다.
반성해 보면서
그럼 나는 용서를 어떻게 실천해야 되는 걸까 …
무척 어렵겠지만
그분께서 저의 죄에 대해 무게를 달지 않으시고 무상으로 용서하셨듯이
나역시 내가 마워하고 용서하지 못할 사람들을 무상으로 용서해야 하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