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


사순 제2주간 수요일(3/11)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부활을 말씀하시건만 제자들은 못 알아듣는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엉뚱한 요구까지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의 잔’을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 당신의 수난에 동참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다(복음).
    복음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7-28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시건만 제자들의 반응은 엉뚱합니다. 복음에서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까지 가세합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두 아들을 스승님 곁에 앉게 해 주십시오.’ 어머니의 소박한 청원이었습니다. 별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은 서운한 마음을 가집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 고통의 잔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는 당신 곁에 머물 수 없다는 암시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의 잔’을 받아들여야 주님 곁에 머물 수 있습니다. 넘어지더라도 ‘자신의 십자가’를 잡고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힘들게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넘어지기도 하셨고, 시몬의 도움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베로니카와 예루살렘 부인들의 위로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고통의 잔’을 마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도와 희생을 함께하는 행위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봄가을에만 꽃이 피는 줄 압니다. 하지만 여건이 갖춰지면 언제라도 꽃은 피어납니다. 하지만 봄가을의 꽃은 유난히 아름답습니다. 겨울의 추위와 여름의 더위를 견디어 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를 안고 살아가야 ‘자신만의 향기’를 지닐 수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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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사순 제2주간 수요일(3/11)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부활을 말씀하시건만 제자들은 못 알아듣는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엉뚱한 요구까지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의 잔’을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 당신의 수난에 동참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다(복음).
      복음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7-28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시건만 제자들의 반응은 엉뚱합니다. 복음에서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까지 가세합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두 아들을 스승님 곁에 앉게 해 주십시오.’ 어머니의 소박한 청원이었습니다. 별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은 서운한 마음을 가집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 고통의 잔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는 당신 곁에 머물 수 없다는 암시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의 잔’을 받아들여야 주님 곁에 머물 수 있습니다. 넘어지더라도 ‘자신의 십자가’를 잡고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힘들게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넘어지기도 하셨고, 시몬의 도움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베로니카와 예루살렘 부인들의 위로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고통의 잔’을 마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도와 희생을 함께하는 행위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봄가을에만 꽃이 피는 줄 압니다. 하지만 여건이 갖춰지면 언제라도 꽃은 피어납니다. 하지만 봄가을의 꽃은 유난히 아름답습니다. 겨울의 추위와 여름의 더위를 견디어 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를 안고 살아가야 ‘자신만의 향기’를 지닐 수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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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사순 제2주간 수요일(3/11)


      말씀의 초대
      백성은 예언자를 없애려 한다. 그의 예언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없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들에게 유익한 쪽으로만 살겠다는 이야기다. 예레미야는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고 있다. 그는 동족의 배신을 마음 아파한다(제1독서).
      제1독서
      <어서 그를 치자.>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18,18-20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자, 예레미야를 없앨 음모를 꾸미자. 그자가 없어도 언제든지 사제에게서 가르침을, 현인에게서 조언을, 예언자에게서 말씀을 얻을 수 있다. 어서 혀로 그를 치고,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무시해 버리자.” 주님, 제 말씀을 귀담아들어 주시고, 제 원수들의 말을 들어 보소서. 선을 악으로 갚아도 됩니까? 그런데 그들은 제 목숨을 노리며 구덩이를 파 놓았습니다. 제가 당신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당신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리려 했던 일을 기억하소서.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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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예수님의 수난예고와 높은 자리를 원하는 제베대오의 가족

    1.말씀읽기:마태20,17-28

    수난과 부활을 세 번째로 예고하시다 (마르 10,32-34 ; 루카 18,31-34)

    출세와 섬김 (마르 10,35-45 ; 루카 22,25-27)


    2.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손에 넘어가 죽게 될 것임을. 그러나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그런데 제자들은 아직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죽으러 가시는 예수님을 제자들은 왕위에 오르시기 위해 가시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야고보와 요한)과 어머니가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어머니 살로메(완전한 자라는 뜻)는 예수님께 큰 절을 하면서 청탁을 합니다. 인사 청탁 입니다. 어머니 자신이 이런 청을 하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아들들 쪽에서 원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한 마음으로 보입니다.


    17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향하여 나아가십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제자들을 교육하고 계십니다.


    18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9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로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세 번 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말씀하시면서 괴로우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첫 번째 예고에서는 베드로의 강력한 반대가 뒤따랐으며 베드로는 예수님의 단호한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두 번째의 예고에서는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높은 자가 될 것인지를 따지는 수치스러운 논쟁이 뒤따랐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아들들과 인사청탁을 하게 됩니다.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수난과 죽음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앞으로 다가올 영광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영광의 옥좌에 앉을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열 두 옥좌를 약속하셨는데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그 첫째 자리를 두 아들에게 주시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살로메)는 그 자리가 이 나라의 자리인지, 내세의 나라에 있는 자리인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살로메가 성모님의 자매였다고 하니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형제가 없으시니 사촌인 야고보와 요한에게 마땅히 그 자리를 주어도 좋으리라고 그녀는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제자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으며 부활하신 주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실 때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세속적인 영광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고통을 이겨내고, 그 상으로 주어지는 축복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바로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주어지는 상급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영광의 길이 있기 위해서는 수난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마시는 그 수난의 잔을 마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잔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니지만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도 수난의 잔을 마시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사도들 중에서 맨 처음의 순교자가 되어 기원 44년 예루살렘에서 목 베임을 당했고(사도12,2), 요한은 투옥당하고 채찍질을 받고,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지고, 그 후 파트모스 섬에 추방되고(묵시1,9;사도4,3:5,40-41) 트라이야누스 황제(98-117년)때 에페소에서 죽을 때까지 고난의 사도직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무리 예수님과 함께 죽음을 같이한 제자들이라 할지라도 영광 속에 준비되어 있는 자리를 요구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다른 열 제자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의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불쾌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왜냐하면 야고보와 요한의 모습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이 두 사도가 마시겠다는 잔이 무엇인지를 알았더라면 그렇게 불쾌하게 여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격려를 해 주었을 것입니다. 아직도 그들은 갈 길이 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을 살고 있는 나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화를 내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내가 조금만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해도 화를 내고, 내가 중심이 되지 않아도 화를 내고, 나보다 못한 사람이 인정을 받아도 화를 내고…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과 세상의 통치자들의 차이점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명예심은 질투심과 공동체의 불목을 일으키는 시발점이 됩니다. 이런 욕망이 교회내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면 사랑과 존경의 공동체,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는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 사이에 이런 마음들이 생겨나게 된다면 교회는 완전히 분열되고 파괴되어 하느님께 모욕만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보여주어야 할 자세를 몸소 십자가를 지고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교회는 따라야 합니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봉사자들은 자신을 낮추어 종이 되어야 합니다. 교황님께서 자신을 종들의 종이라고 표현하신 것처럼 그렇게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오늘날 교회 안에서 봉사직무를 맡고 있는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공동체 앞에 서 있는지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선익을 위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봉사자들을 부르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섬기는 봉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봉사는 가장 진실한 통치 양식입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버림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형제자매들의 종이 되었기에 헛된 욕망에로 이끌려는 오만하고 유혹에 빠진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시며 “너희도 그렇게 하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오셨습니다.” 몸값은 노예를 해방하기 위하여 치르는 돈을 말합니다. 이 말씀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죄의 노예였음을 알려 주십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몸값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신의 몸값을 치르고자 한다면 그는 다른 데 의존해야만 합니다. 그가 의존할 수 있는 유일한 분, 그리고 몸값을 지불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사람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의 몸값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기까지 봉사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라는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왜 모든 사람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일까요? 인류 가운데는 몸값을 대신 치러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일까요? 아무도 몰락한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스스로 몸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몸값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죄의 노예로 살아가렵니다. 방해하지 마세요…”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사람(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3.나눔 및 묵상

    ①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두 아들을 위해서 무리한 청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자신이 어떤 수모를 당한다 할지라도 자녀가 잘 되면 그것으로 만족해하시는 분들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되어 내가 내 자녀들을 위해 했던 것 중에 무리한 것은 없었는지를 나눠 봅시다.


    ② 섬김을 생각해 보면서 나는 섬기는 사람인가? 섬김을 받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섬기는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봅시다.


  4. guest 님의 말: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주님!

    오늘당신께서는 세 번씩이나 당신수난을 예고하십니다
    하지만 당신의 참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제베데오 아들들의 어머니께서 드린 청탁을 보면서
    그런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임을 느낍니다

    아무리 당신수난을 말씀하셔도 알아듣지 못하는 헬레나
    당신의 참된 사명이 무엇인지 말씀하셔도 알아듣지 못하고
    세속의 욕심과 허영으로 똘똘뭉쳐 알아듣지 못하는 헬레나
    저의 마음이 이렇게 세속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으니
    당신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척하며 세속적인 생각에 
    당신께 온갖 청탁을 하고 저희 가정만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의 마음이 이렇기에 사순시기를 어떻게 지내야하는지
    입으로만 떠들고 있습니다
    알량한 판공문제집을 하는 것조차 생색을 내면서...
    바쁘다고 거들먹 거리고 있지요
    마음 속에서는 구역식구들한테 
    “나보다 잘하는 사람없지요?”
    “아마 없을 꺼예요”
    “저는요 매일 복음묵상을 하느라 성서공부도 하구요
    그것도 몇 년동안 복음묵상을 했답니다
    나보다 잘난 사람있으면  나와봐요
    머릿 속에서 온갖 상상을 합니다
    자신이 정말 잘난 사람처럼 그리고 구역식구들 보는데서는
    겸손한척 열심한 척 연기도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저의 연기에 모두들 속아 넘어가고 있지요

    오늘만해두요 주님!

    부활판공문제집 풀고 구역회가니 모두들 칭찬해주었습니다
    어떤 자매님은 어려워서 풀지 못했다면서 저더러 머리가
    좋다고 칭찬을 했지요
    어느 자매님은 저더러 원래 잘한다고 하구요
     모두들 답안지 작성을 하면서 한마디씩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저의 모습은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 같았습니다
    겸손할줄도 모르고 자신이 정말 잘난 사람같았지요
    제가 이렇습니다 주님!
    문제집 풀은 것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신자라면 당연한 것을
    집에 오면서 겸손하지 못한 저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언제쯤이면 겸손해질런지...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 같은 사람이 당신께 사형성고를 내리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신만이 섬김을 받고 싶어
    안달하는 것같았습니다
    자신을 낯추는 사람이 높아지는 것이라는 말씀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헬레나는 바리사이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형식에 얷매여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저 같은 사람이 당신의 가슴에 비수를 꼿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울합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대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섬김받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니...
    언제쯤이면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변화될지...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말씀을 깊이 새기며
    당신닮아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고
    당신닮아 자신을 높이기보다 낯추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그리하며 당신께서 웒하시는 신앙인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용서의 시기이며 화해의 시기인  사순시기를 겸손하고
    섬기는 사람답게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세속에 얷매여 교만과 아집으로 똘똘뭉친 저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소서
    겸손하지 못하고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하는 어리석은
    헬레나가 아니라 당신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할줄 아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께서 원하시는 나눔의 삶을 살게 하시고
    섬김을 받기 보다 섬기는 삶을 살게 하소서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 내 발을 씻으신 예수-신상옥.폴리포니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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