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사순 제2주간 목요일(3/12)


    말씀의 초대
    부자와 라자로는 너무 다른 삶을 살아간다. 이승의 부자는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저승에서는 고통 속에 버려진다. 한순간 운명이 바뀐 것이다. 삶은 언제나 역전될 수 있다. 그러니 감사하며 나누는 삶에 늘 충실해야 한다(복음).
    복음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복음 말씀은 부자와 가난한 이의 비유입니다. 부자는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고, 가난한 이의 이름은 ‘라자로’입니다. 라자로는 히브리 말 ‘엘리아자르’(Eleazar)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도우셨다.’라는 뜻이지요. 다분히 의도적인 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부자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라고 복음은 전합니다. 자주색 옷은 유다인 부자들 가운데에서도 아무나 입는 옷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라자로는 부잣집 대문 앞에 누워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몸은 종기투성이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버려지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려 했습니다. 너무나 대조적인 삶입니다. 그런데 죽음 저쪽에선 달라집니다. 라자로는 아브라함 곁으로 가고, 부자는 모든 것을 잃은 채 고통 속으로 떨어집니다. 이 세상의 삶이 한순간 ‘정면으로 뒤바뀐 것’입니다. 부자가 잘못 살았다는 말은 없습니다. 라자로가 잘 살았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복음의 가르침은 완벽하게 뒤바뀐 두 사람의 삶을 묵상해 보라는 데 있습니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가난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앞날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니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좌절해서도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한순간에 사람의 운명을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십자가를 안고 살아가야 ‘자신만의 향기’를 지닐 수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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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사순 제2주간 목요일(3/12)


      말씀의 초대
      부자와 라자로는 너무 다른 삶을 살아간다. 이승의 부자는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저승에서는 고통 속에 버려진다. 한순간 운명이 바뀐 것이다. 삶은 언제나 역전될 수 있다. 그러니 감사하며 나누는 삶에 늘 충실해야 한다(복음).
      복음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복음 말씀은 부자와 가난한 이의 비유입니다. 부자는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고, 가난한 이의 이름은 ‘라자로’입니다. 라자로는 히브리 말 ‘엘리아자르’(Eleazar)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도우셨다.’라는 뜻이지요. 다분히 의도적인 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부자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라고 복음은 전합니다. 자주색 옷은 유다인 부자들 가운데에서도 아무나 입는 옷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라자로는 부잣집 대문 앞에 누워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몸은 종기투성이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버려지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려 했습니다. 너무나 대조적인 삶입니다. 그런데 죽음 저쪽에선 달라집니다. 라자로는 아브라함 곁으로 가고, 부자는 모든 것을 잃은 채 고통 속으로 떨어집니다. 이 세상의 삶이 한순간 ‘정면으로 뒤바뀐 것’입니다. 부자가 잘못 살았다는 말은 없습니다. 라자로가 잘 살았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복음의 가르침은 완벽하게 뒤바뀐 두 사람의 삶을 묵상해 보라는 데 있습니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가난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앞날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니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좌절해서도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한순간에 사람의 운명을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십자가를 안고 살아가야 ‘자신만의 향기’를 지닐 수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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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사순 제2주간 목요일(3/12)


      말씀의 초대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는 실망을 얻는다.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고 신뢰하는 이는 축복을 받는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다. 그러므로 언제라도 주님의 길을 걸어야 한다. 예언자는 주님을 바라보며 살 것을 당부하고 있다(제1독서).
      제1독서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고, 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복되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17,5-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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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주님!

    부자와 가난한 이의 비유를 말씀하신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받으며 당신의 사랑을 생각하며
    기쁘게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과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과
    오순도순 아기자기하게 지지고 볶으며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저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봅니다

    하지만 마음 뿐...
    그동안의 저의 삶을 생각해보니
    저의 마음은 저의 바램은 소박하다고 생각했는데
    저의 욕심임을 깨닫습니다

    이유는요? 주님!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별로 베풀지 못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세속의 욕심으로 남보다 더 잘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이웃의 고통과 형제들의 아품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고통만 크고 저의 아품만 크다고 생각했지요
    저의 마음이 그러니 베푼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 생각은 하고 있었지요
    제가  잘살게 된다면 불우이웃돕기도 하고 베풀면서 살겠다고...
    제가 부자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가난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만 인색하시다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저에게만 축복을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도 하였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참 어리석은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살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고... 
    아직도...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말씀을 깊이 새기며
    후회하지 않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기도해봅니다

  4. guest 님의 말:

     

    부자와 라자로 그리고 아버지!

    조연과 주연 그리고 감독!

    가난한이와 부자의 비유를 들어 회개에 대해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그리면서

    문득 조연과 주연 그리고 감독의 관계를 그려 봅니다.

    부자라 다 아버지 나라로 감이 아님을~

    가난한 자라 하여 무조건 아버지 나라로 가는 것도 아님을 다시금 되뇌여 봅니다.

    부자라 할지라도 진정 회개의 삶을 산다면 당연히 아버지 품으로 가겠지요.

    그리고 가난한 자라 하여도 회개하지 않는 삶을 산 이였다면

    결코 아버지 나라로 갈 수 없음을 압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제가 정녕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제 삶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떤 위치에서든지

    최선을 다하는 의로운 삶이었는지를 반성해 보기도 합니다.

    삶의 주연으로 살기위해 감독을 넘어서는 교만과 이기로 저를 감싸진 않았는지요.

    진정한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이가

    감독임을 알면서도

    멋진 포장으로 저를 감싸 어떻게든 통과하고 보려는 헛된 욕심이

    저를 회개의 반대길로 걸어가게 한적은 없었는지요.

    살아가면서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주연의 활동이 더 돋보이게 받쳐주면서

    작은 일이지만 작은 일이 탄탄해야 큰 일이 드러남을 깨닫고

    최선을 다하는 저였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아무리 멋진 주연이라 할지라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영원한 주연으로 남게 되지 않음을 잊은 채 살아온건 아닌지요.

    보잘 것 없는 조연이지만 주어진 역에 최선을 다하면서

    상대가 빛날 수 있게 하면서 언제나 깨어있는 조연으로

    늘 자신을 돌아보면서 고개숙이는 자세로

    어떤 역이든 소화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왔는지요.

    감독이 바로 아버지시지요.

    단체장을 맡은 주연들!

    그 주연이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조연들!

    언제 어느때 주연이 될 지~

    언제 어느때 조연이 될 지는 모르지요.

    그리고 언제 어느때 제가 회개하지 않는 부자의 모습이 될 지~

    언제 어느때 가난하지만 진정으로 회개하는 이의 모습으로 설지는 모르지요.

    주어진 삶의 양면성에서 제대로 회개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아버지의 손을 놓지 않고 더 힘을 다해 잡는 저가 되길 청해 봅니다.

    어떤 삶을 제게 주셔도 진정 중요한 것은 회개임을 다시금 가슴에 묻어봅니다.

    누군가 아무리 알려주어도 제가 받아들이고 변화된 삶을 살지 않는다면

    저라는 사람은 늘 선택되진 않는 조연으로 빛이 없는 조연으로 살다가

    아버지 앞에 가서 애걸하겠지요.

    가짜의 눈물로~~~~

    그치요?

    현재의 삶과 저승의 삶은 다르겠지요.

    회개하는 삶의 모습에서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풍겨나는 그런 저가 되길 다짐합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그중에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라고 ~~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바로 옹고집으로 가득찬 저의 모습을 꾸짖는 듯

    그렇게 가슴에 무겁게 와서 앉았습니다.

    주어진 제 삶에 충실하면서 누가 뭐라고 할 때 저를 돌아보면서

    변화된 삶을 추구하였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정작 회개의 삶으로 살아왔는지요.

    누가 뭐라고 하면

    “너나 잘해” 하는 식으로 되려 그에게 손가락질을 하진 않았는지요.

    아버지!

    믿음 가득한 이의 모습으로 진정 가난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저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잔잔한 미소의 회개를 하게 하소서.

    통회의 눈물이 아니라,

    늘 회개의 기쁨이 저의 삶에서 드러나게 하소서.

    조연이든, 주연이든 주어진 삶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저가되게 하소서.

    회개의 삶을 사는 이의 진정한 향취가 베어나는

    그런 신앙인의 행복한 얼굴로 매일매일 아버지를 바라보게 하소서.

    삶의 양면성을 잊지 않게 하시고

    때론 한발 물러서 훈수를 두는 이의 모습이 되어

    틀안에 있는 저의 모습을 보는 눈을 주소서.

    아멘.

  5. guest 님의 말:

    (no content)

  6. guest 님의 말:

     

    부자와 라자로

    1. 말씀읽기: 루카16,19-31

    2. 말씀연구

    부자와 라자로. 들을 때 마다 측은한 생각이 듭니다. 종기투성이 거지 라자로는 부자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라도 배를 채우려고 했고, 부자는 너무도 풍족하여 라자로의 그런 고통을 이해할 수 없었고,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활을 보면 그는 당시 계급이 높고 부유했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다음에 그들의 운명은 바뀌었으니……, 내가 부자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분명 부자와 같은 행동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자처럼 그렇게 후회하며 영원을 보내겠지요. 고통 속에서…,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는 신분이 높음과 화려함과 풍요로움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그런 그의 삶에는 문제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 무엇이 문제인지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부자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가 누워 있었는데 그는 종기투성이의 가난뱅이였습니다. 그는 그 부자의 집 앞에서 구걸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생활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자의 모습과 라자로의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부자의 모습을 바라보니 제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는 나. 가끔은 자선을 베푸는 척 하기도 합니다. 자선을 베풀면서도 흐뭇해하면서, 내가 뭔가를 했다고 자만하면서 떠벌리고 다니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에는 관심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부자가 라자로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라자로는 “엘-아자르”의 생략형인데 “하느님께서 도우신다.”란 뜻입니다. 굶주려 배고픈 고통 속에서 살아온 라자로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배부르게 먹고 싶어 했습니다. 아마도 손에 묻은 기름기나 기타의 것들은 물수건으로 닦지 않고 마른 빵으로 닦아 내었는데 손을 닦은 빵으로라도 배를 채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라자로의 이름처럼 하느님께서는 살아생전에는 라자로를 도우시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생각해보며 그의 영생을 바라보면 정확하게 그 의미가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많은 이들이 지금의 불행을 하느님께서 방관하시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지만 하느님 눈에 비추어진 세상의 시간들은 보잘것없는 시간들인 듯합니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그러다가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의 품으로 데려갔습니다. 부자도 죽어서 묻혔습니다. 두 사람의 생활은 지상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지만 죽은 후에도 그 차이는 더 커집니다. 지상에서와는 반대로 라자로는 하느님의 나라로 갔고(아브라함 품), 부자는 땅에 묻히게 됩니다. 즉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죽습니다. 죽어서 어떤 모습으로 하느님 앞에 설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라자로의 시체는 가난뱅이들을 위한 무덤에 던져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하느님께서 반겨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품은 모든 신앙인의 아버지인 아브라함과 함께 메시아께서 하늘나라의 문을 열 때까지 의로운 영혼들이 평화로운 가운데 기다리고 있던 처소를 말합니다.

    부자는 죽어서 호화로운 무덤에 묻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놀라운 광경이 보였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인 것입니다. 처절한 고통을 당하는 자신의 처지와 복을 받고 있는 라자로. “인생역전 드라마”가 펼쳐진 것입니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인생역전. 하지만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너무 늦었기 때문입니다. 호화로운 식탁에서 귀한 옷을 입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던 부자, 그의 눈에 비친 라자로는 전혀 가치가 없는 존재였습니다. 왜 자신의 대문 앞을 지저분하게 만드냐고 쫓아내기도 여러 번 했을 것입니다. 부자가 라자로를 바라보는 눈빛. 내가 가난한 이들을 바라보는 눈빛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의 눈에 들어온 라자로. 부자였던 그는 지금 고통 속에 있지만 비렁뱅이였던 라자로는 기쁨 속에 있습니다. 부자는 무서운 불의 고통을 누그러뜨리려고 한 방울의 물을 청합니다. 인생 종친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다 제 혀를 식히게 해 달라는 이 청. 너무도 비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면 나 또한 부자의 뒤를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산 사람들이 모두 내세에서 불행에 빠진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세상에 살면서 가난한 이들과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않은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과 자기 자신의 세속적인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의 삶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다르게 나타나야 합니다. “상선벌악”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한번 결정된 것은 다시 번복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기회가 있을 때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그러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장 높은 선에다가 “빽”을 써야 합니다. 손을 쓰는 방법은 돈을 내거나 식사를 사거나 골프를 대접하거나 그런 종류가 아닙니다. 내가 하느님 보시기 좀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빽”을 쓰는 것입니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부자는 아브라함의 대답을 듣고서 자신은 가망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비참한 말로를 형제들까지 닮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만이라도 이곳에 오지 않을 수 있도록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심부름꾼으로는 라자로를 생각합니다. 라자로는 자기 집을 알고 있고 언젠가 받았을지도 모르는 적선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이 심부름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라자로를 보내어 다섯 형제들에게 경고하여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부자는 청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 없었던 부자가 이제 고통 속에서 자신의 형제들을 생각하면서 청하고 있습니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하느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 의무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만일  그들이 정의와 사랑을 지키고 재산을 활용하여 좋은 일을 한다면 틀림없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문제는 “실천하느냐? 실천하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실천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부자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회개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자신의 방탕한 생활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부자는 후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하나가 가야만 들을까 말까 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내가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하나씩 더 했으면 좋겠습니다. 매 금요일 금육한 것을 통해 주일 헌금 천 원 씩 더 올려 내고, 평일미사 한번이라도 더 나오고,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런 것은 헛수고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기적도 그 목격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목격자에게 선량한 마음가짐과 의지력이 필요합니다. 부자의 형제들이 모세나 예언자들의 신적 사명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그들 마음이 완고하였기 때문입니다. 죽었던 사람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들의 삶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 마음 안에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3. 나눔 및 묵상

    ① 부자와 라자로의 삶과 죽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 해 봅시다.



    ② 세상에는 보이는 것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보아야 할 것이 있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봐야 할 것을 보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내가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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