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다.


사순 제4주간 수요일(3/25)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예전에는 ‘성모 영보 대축일’이라 했다. ‘영보’(領報)란 교회의 특수 용어로, 천사가 예수님의 잉태를 성모님께 알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대축일은 예수님의 탄생일(12월 25일)에서 ‘아홉 달을 역산하여’ 3월 25일에 지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여느 인간처럼 어머니 태중에서 아홉 달을 계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대축일이 널리 확산된 것은 8세기 이후다. [오늘의 전례]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잉태를 알립니다. 인류가 기다리던 메시아의 출현을 알리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주님의 뜻에 온전히 따를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느님의 섭리와 성모님의 순명을 묵상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은총이 가득하신 이여, 기뻐하여라.” 가브리엘 천사는 이렇게 인사한다. 기쁨의 이유가 은총이라는 말씀이다. 아무것도 모르셨던 마리아께서는 순명을 약속하신다. 주님의 이끄심을 믿으신 것이다(복음).
    복음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6-38 그때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어떤 십자가도 받아들이려 합니다. 오히려 그런 희생을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어머니는 은총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자식의 십자가를 안고 가면서도 그의 앞날을 위해 기도하는 분이 어머니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자녀는 힘들고 괴로울 때 어머니를 먼저 떠올립니다. 자신을 대신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러한 ‘어머니의 길’을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장황한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고만 답합니다. 그러고는 노년에 아기를 가진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합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이끄심과 깨달음이 답일 뿐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분의 이끄심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께서도 선뜻 답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 뜻’과 다르게 움직이는 것들 앞에서 그렇게 받아들이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머니의 평화를 만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어머니 당신 이름은/ 마리아의 노래/ 성 바오로 딸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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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사순 제4주간 수요일(3/25)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예전에는 ‘성모 영보 대축일’이라 했다. ‘영보’(領報)란 교회의 특수 용어로, 천사가 예수님의 잉태를 성모님께 알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대축일은 예수님의 탄생일(12월 25일)에서 ‘아홉 달을 역산하여’ 3월 25일에 지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여느 인간처럼 어머니 태중에서 아홉 달을 계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대축일이 널리 확산된 것은 8세기 이후다. [오늘의 전례]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잉태를 알립니다. 인류가 기다리던 메시아의 출현을 알리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주님의 뜻에 온전히 따를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느님의 섭리와 성모님의 순명을 묵상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은총이 가득하신 이여, 기뻐하여라.” 가브리엘 천사는 이렇게 인사한다. 기쁨의 이유가 은총이라는 말씀이다. 아무것도 모르셨던 마리아께서는 순명을 약속하신다. 주님의 이끄심을 믿으신 것이다(복음).
      복음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6-38 그때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어떤 십자가도 받아들이려 합니다. 오히려 그런 희생을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어머니는 은총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자식의 십자가를 안고 가면서도 그의 앞날을 위해 기도하는 분이 어머니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자녀는 힘들고 괴로울 때 어머니를 먼저 떠올립니다. 자신을 대신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러한 ‘어머니의 길’을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장황한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고만 답합니다. 그러고는 노년에 아기를 가진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합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이끄심과 깨달음이 답일 뿐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분의 이끄심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께서도 선뜻 답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 뜻’과 다르게 움직이는 것들 앞에서 그렇게 받아들이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머니의 평화를 만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어머니 당신 이름은/ 마리아의 노래/ 성 바오로 딸 수녀회
    
    
    
    
    
    

  2. guest 님의 말:


    사순 제4주간 수요일(3/25)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예전에는 ‘성모 영보 대축일’이라 했다. ‘영보’(領報)란 교회의 특수 용어로, 천사가 예수님의 잉태를 성모님께 알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대축일은 예수님의 탄생일(12월 25일)에서 ‘아홉 달을 역산하여’ 3월 25일에 지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여느 인간처럼 어머니 태중에서 아홉 달을 계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대축일이 널리 확산된 것은 8세기 이후다. [오늘의 전례]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잉태를 알립니다. 인류가 기다리던 메시아의 출현을 알리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주님의 뜻에 온전히 따를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느님의 섭리와 성모님의 순명을 묵상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다윗 왕실을 향해 말한다. “주님께서 몸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이후 이 예언은 다윗 왕조를 지켜 주는 굳건한 울타리가 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세상에 오셨다고 하신다. 그러기에 율법보다 아버지의 뜻을 먼저 찾으셨다. 자신을 속죄제의 제물로 바치신 것도 아버지의 뜻이라고 하신다. 신앙인은 율법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제2독서).
      제1독서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7,10-14; 8,10ㄷ 그 무렵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합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4-10 형제 여러분,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어머니 당신 이름은/ 마리아의 노래/ 성 바오로 딸 수녀회
    
    
    
    
    
    

  3. guest 님의 말: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알리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이

    참 깊이 와 닿는 밤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제가 만약 이런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는 늘 순명하는 성모님의 모습이

    제 가슴에 자리잡았는데

    오늘은 가브리엘 천사가 한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답니다.

    은총!

    사랑을 받는 이!

    제가 어떻게 해야 아버지께 은총을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살짝 욕심을 부린 것 같아 겸연쩍은 웃음이 나옵니다.

    제게 주신 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아버지께 받은 덤!

    바로 은총이 제게 왔음에도 불구하고 잊고 살진 않았는지요.

    아버지의 사랑이 특정한 이에게 정해진 것이 아님을

    제가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요.

    순명의 자세로 두손 모으는 이를 아버지께선 이미 알고 계시듯

    저의 부족한 모습을 돌아보기 전에

    받을 욕심만 부리것은 아닌지요.

    늘 아버지와 함께 호흡하면서 아버지의 안색을 살피고

    늘 아버지와 함께 머물면서 아버지의 맘을 헤아리고

    늘 아버지와 함께 마주 앉아서 아버지의 응답을 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저는 그리하질 못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늘 저와 함께 계시기에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때의 그 기쁨!

    바로 은총인데~~

    메아리가 아니라 아버지의 음성에 귀가 움직이는 것~~

    그럴때 비로소 은총이 소낙비처럼 들이 붓는 것이라고~~

    단, 제가 맞으려 하는 맘이 있어야 맞는 것이라고~~

    우산으로 가리우면 못받는 것이라고~~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예전에 강론때 말씀해 주신 것인데 딱 맞지요?

    늘 고백을 하지만 제게 그토록 간절한 사랑이 있었을까요?

    제가 아버지 앞에서 머물지 않으면서

    뭔가를 바라며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는 어리석음이

    저를 더 무디게 만든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 봅니다.

    신앙인의 은총은 바로 기도의 응답임을 알면서도

    제가 부족하여 기다리지 못한것은 아닌지요.

    그러면서 아무런 답이 없다고 성급히 등을 돌린 적은 없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저역시 성모님이 순명하는 그런 모습으로 신앙을 고백하면서

    늘 의로운 모습으로 아버지의 종으로 살아가는 저일 때

    비로소 은총이 들이 붓겠지요.

    그리고 그 깊은 은총의 샘에서 나오는 시원한 물을 정성스레 담아

    더위와 갈증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내어줄 수 있음을 되새겨 봅니다.

    종의 종으로 살아갈 때 더 큰 기쁨이 저를 감싸 안겠지요.

    그치요?

    아프고 또 아플지라도 성모님처럼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라고 고백한다면 못할 것이 없음을 새삼 되새겨 봅니다.

    진정으로 저를 봉헌하면서 고개숙일때

    비로소 저도 은총의 기쁨속에 새로 날 수 있겠지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제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일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저가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인 덤을 제가 안을 수 있을지~

    신앙을 고백하면서 늘 깨어있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그리고 순명하는 모습으로 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으며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요.

    은총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남이 받음에 부러워만 하면서

    되려 제게 오지 않느다 하여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저를 멍들게 하진 않았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아버지 앞에서는 늘 철없는 저가 되게 하소서.

    멀리서 놀다가도 아버지의 소리가 나면

    모든 것을 버리고 달려가는 저가 되게 하시어

    늘 아버지 곁에서 맴돌게 하소서.

    그리하여 늘 웃으며 순명하는 자식되어

    보시기에 흐뭇한 미소 드릴 수 있게 하소서.

    종의 종으로 살아가면서 오로지 아버지 때문에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아버지의 넘치는 은총에 늘 새로나는 저가 되게 하시어

    순종이 아니라 사랑의 순명에 고개숙이는 저가 되게 하소서.

    언제 어느때이든 아버지의 부르심에 “예” 하는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4. guest 님의 말:

    (no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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