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11/14)


    평신도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으로서,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를 가리킨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에 참여하여 그분의 백성으로서 사명을 완수하는 신자들을 말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 사도직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였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이러한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1968년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의 결성과 더불어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 사도직의 날’로 제정하여,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사도직의 사명을 거듭 깨닫게 하였다. 그 뒤 1970년부터는 연중 마지막 주일의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 오고 있다. ▦ 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이며, 평신도 주일입니다. 평신도 또한 성직자와 더불어,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할 사명을 가집니다. 오늘날 세상은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고, 그 요구들은 대부분 신앙과 동떨어진 삶을 재촉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세상 안에서 평신도로서 어떻게 살아야 주님의 자녀로 제대로 사는 것인지 묵상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말라키는 바빌론 귀양살이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이 공동체 재건을 위해 투쟁하던 시기에 하느님 말씀을 전하던 예언자다. 그는 종말론적인 현상들을 예언하면서, 하느님의 이름을 경외하고 그분께 충실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의로움이 깃들일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무질서하게 살거나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강하게 지시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진 성전이 다 허물어질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인간의 욕심으로 얼룩진 성전의 파괴는 곧 종말의 날을 의미한다 (복음).
    제1독서
    <너희에게 의로움의 태양이 떠오르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9-20ㄴ 19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니,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날은 그들에게 뿌리도, 가지도 남겨 두지 않으리라.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2서 말씀입니다.3,7-12 형제 여러분,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듣자 하니, 여러분 가운데에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5-19 그때에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평신도 사도직 수행의 중요성을 되돌아보는 오늘, 우리는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진 성전이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 성전이 허물어지더라도 겁내지 말라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많은 사람이 “내가 그리스도다.”,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하더라도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말고,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는 말씀도 하십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이지만, 동시에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사람으로 오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었고, 아드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을 통하여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제자, 자녀로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함으로써 아드님의 사명을 계속 수행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 주님이 걸어가신 길은 험난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처럼 우리도 박해와 투옥과 고문과 재판을 받고, 죽임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일이 바로 종말이라 하더라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하시며 오늘도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O christ Domine Je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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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11/14)


      평신도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으로서,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를 가리킨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에 참여하여 그분의 백성으로서 사명을 완수하는 신자들을 말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 사도직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였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이러한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1968년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의 결성과 더불어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 사도직의 날’로 제정하여,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사도직의 사명을 거듭 깨닫게 하였다. 그 뒤 1970년부터는 연중 마지막 주일의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 오고 있다. ▦ 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이며, 평신도 주일입니다. 평신도 또한 성직자와 더불어,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할 사명을 가집니다. 오늘날 세상은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고, 그 요구들은 대부분 신앙과 동떨어진 삶을 재촉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세상 안에서 평신도로서 어떻게 살아야 주님의 자녀로 제대로 사는 것인지 묵상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말라키는 바빌론 귀양살이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이 공동체 재건을 위해 투쟁하던 시기에 하느님 말씀을 전하던 예언자다. 그는 종말론적인 현상들을 예언하면서, 하느님의 이름을 경외하고 그분께 충실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의로움이 깃들일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무질서하게 살거나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강하게 지시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진 성전이 다 허물어질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인간의 욕심으로 얼룩진 성전의 파괴는 곧 종말의 날을 의미한다 (복음).
      제1독서
      <너희에게 의로움의 태양이 떠오르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9-20ㄴ 19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니,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날은 그들에게 뿌리도, 가지도 남겨 두지 않으리라.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2서 말씀입니다.3,7-12 형제 여러분,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듣자 하니, 여러분 가운데에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5-19 그때에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평신도 사도직 수행의 중요성을 되돌아보는 오늘, 우리는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진 성전이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 성전이 허물어지더라도 겁내지 말라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많은 사람이 “내가 그리스도다.”,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하더라도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말고,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는 말씀도 하십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이지만, 동시에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사람으로 오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었고, 아드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을 통하여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제자, 자녀로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함으로써 아드님의 사명을 계속 수행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 주님이 걸어가신 길은 험난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처럼 우리도 박해와 투옥과 고문과 재판을 받고, 죽임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일이 바로 종말이라 하더라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하시며 오늘도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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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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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1. 말씀읽기: 루카21,5-19

    2. 말씀연구

    전례적으로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대림 제 1주일이 한 해의 시작이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구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또한 세상적인 것에만 집착을 하고, 세상적인 것만을 바라본다면 하느님 나라에서는 점점 멀어지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참된 가치가 아닌 것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고, 다른 이들을 현혹시켜서도 안 됩니다.

    또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시련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그 시련은 그저 시련일 뿐이고, 그 너머에 큰 영광이 있기에 인내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슬기롭고, 얼마나 인내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왔는지를 돌아봅시다.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예수님 시대에 아직 건축 중에 있던 예루살렘 성전은(기원전20/19년-기원후 63년) 고대 세계의 일곱 가지 경이(驚異 놀랍고 신기하게 여김)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하얀 대리석 건물은 화려하게 빛났고, 그 예물, 특히 성소의 문을 덮고 있는 황금 포도덩굴은 장관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헤로데 왕이 바친 황금 포도나무는 가장 유명한 것인데, 황금 포도송이는 한 사람의 부피와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영광 가득한 예루살렘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일생에 아무런 기쁨을 보지 못한 사람이다. 한껏 장식된 성소를 보지 못한 사람은 즐거움을 주는 도시를 도대체 보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데 성전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지만,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야 하지만 사람들은 성전의 아름다움에만 취해 있습니다. 성전이 아름다운 것은 지존하신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표현한 것이고, 성전이 거룩한 것은 성전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거룩함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전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을 찬양하지 못한다면 그는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이고,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눈에는 그저 건물만 보이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 아름다워라! 찬란한 세상, 주님이 지었네~”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며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화려한 것들을 보고서 그것에만 관심을 돌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좋은 것들, 새로운 것들, 편안한 것들, 맛있는 것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사람들이 성전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은 기원 후 70년에 로마군의 공격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루살렘은 기원 후 70년에 로마군의 공격으로 파괴되고 맙니다.

    지금은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을 찬양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선물의 내용이 중요하지 포장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느님을 등지고 성전의 아름다움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선물의 내용보다는 포장지에 관심을 더 기울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할지라도 100일을 넘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상 것들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꽃도 지고, 풀은 시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하느님만은 변함없으십니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성전의 파괴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①성전이 언제 파괴될 것인지를. ② 그 큰 재난을 앞두고 어떤 징조가 있을 것인지를.”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도 중요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내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언젠가는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주님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숨이 멈추면 육체의 모든 움직임은 정지하게 되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숨이 멈추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해 놓아야 합니다. 그 날이 언제일지 모르기에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 하고,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다른 것들에 마음을 쓰고 있고, 신앙생활은 그것보다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없어서, 기회가 되지 않아서,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하면서 뒤로 미룹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이어지면 그날과 그 시간에 당황해야 하고, 절망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그 때와 상황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 시간을 말씀해 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속는다는 모르기 때문에 속는 것이고, 자신의 욕심이 있기 때문에 속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와서 자신이 그리스도다.”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기꾼들이 그렇게 사람들을 현혹시켰습니다. 종말을 예고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아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고,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자처하며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펠릭스 총독 시대에도 이집트에서 온 한 열광가가 자기의 음성으로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린다고 자랑하며 약 3만의 백성을 모았다고 합니다. 튜다는 자기를 위대한 인물로 선전하여 추종자를 얻었고, 갈릴래아 사람 유다도 상당한 추종자를 얻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죽자 그들을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흩어지게 됩니다. 자칭 구원자라고 말하는 사기꾼들은 예나 지금이나 신앙인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슬기롭게 그런 유혹들을 이겨내야 합니다.


    또한 남을 속이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금전의 이익으로 유혹하면서 신앙인들을 유혹하여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사기꾼들이 있습니다. 자세히 모르고, 그가 교묘히 속이며, 또 재물에 대한 욕심이 있기 때문에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면 안 속습니다. 속는 사람의 마음 안에 잘못된 것이 있기에 그가 속는 것입니다. 속아서도 안 된지만, 남을 속여서도 안 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남을 속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열심한 체, 잘하는 체, 이것이 옳은 체…, 예수님의 말씀으로 위장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남을 위한 척 하면서 말해주면서도 실지로는 자기 욕심을 챙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를 과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이끌어 준다고 하면서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따라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 너무도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느님은 속일 수 없음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고하시면서 세상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상징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저런 소문들, 표징들을 보더라도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일어날 것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즉, 회개하고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는 무서운 재앙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닥쳐올 일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관심을 갖지 않겠습니까?


    12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회당과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당했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사도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서른아홉 대 매를 다섯 차례나 맞았고, 죽을 뻔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2코린 11,24-25)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들이 당해야 할 것을 알고 계셨으며 그것을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 두셨습니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박해의 순간이 증언할 기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사도들을 박해자들 앞에서 예수님에 관하여 증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셨다가 부활하셨다는 것.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하게 된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기뻐했습니다(사도행전5,41 참조).


    우리의 순교자들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순교자들은 체포되어 관장의 심문대나 고문대 앞에서도 포교활동을 하였습니다. 관장 앞에서 신앙을 변론하거나 교리 해설을 통하여 오히려 천주교의 옳음을 전하였고, 많은 비유들을 곁들인 교리 해설은 관장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관장들은 천주교 신자들에게 말 잘 하는 귀신이 붙었다고 했다고 합니다.


    또한 부녀자들의 교리변론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어린 아이에서부터 시작하여 80세 노인들조차도 논리정연하고 알맞은 비유로 그들의 심문대 위에서 포교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신자들이 거의 스스로 공부하고 익힌 내용들이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전문적인 교리신학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서양 신부님들의 서툰 우리말로 놀라운 신앙적 지식을 간직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이들은 서적이나 신앙인들의 입전을 통해 해박한 지식을 익혔던 것입니다. 공동체가 공동체에게 교리를 전해주고, 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입에서 입을 통해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제자들은 박해 때에 마음에 깊이 새기게 될 한 가지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법정에서 어떻게 항변할까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법정에 섰을 대에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도록 미리 항변의 말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그들에게 언변과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그가 말할 때에 함께 계시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탈출4,12).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원수들 앞에서 제자들이 믿음을 고백하고 당신을 증언하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순전히 인간적인 말솜씨와 인간적인 지혜에만 의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을해박해(1815년)때의 김시우(알렉스)라는 순교자는 반신불구로 매우 가난하여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면서 교우들의 애긍시사를 받아 생명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는 글을 좀 알았으므로 서책을 왼손으로 베껴 교우들을 가르쳤고 외교인들까지도 입교시켰습니다. 그러던 중 포졸들이 부활 축일에 노래산(老萊山) 교우들을 체포할 때, 알렉스는 자신이 제외되는 것을 보고 울면서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기를 애원하였으며, 마침내는 체포되었습니다. 알렉스는 관장 앞에서 옛 중국 고사들을 들어 교리를 대단히 유창하게 변론했기 때문에, 창피를 당한 감사는 그의 턱을 부수어 말을 못하게 하였으며, 더욱 심한 고문을 가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 이벽의 아버지나 이승훈의 아버지가 얼마나 아들의 배교를 위해 노력했습니까?

    “네 이놈! 네놈이 창조주를 믿어서 부모와 일가친척이 몰살을 당해도 좋다는 말이냐? 천주학쟁이들은 애미․아비도 몰라본다고 하는데 네가 나라에서 금하는 천주학을 해서 애미․아비가 죽음을 당한다면 그것이 곧 그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너로 인해 이 애비가 벼슬을 잃는다면 그것이 이 아비를 위하는 일이겠느냐? 네 어미가 종으로 끌려가는 것이 네 어미를 위한 행동이겠느냐? 너를 낳아서 길러준 은공은 보답하지 못할망정 적어도 해는 끼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냐? 이놈아! 어떻게 하겠느냐?”<소설 신유박해중 이승훈의 갈등에서...,>


    친척과 친지들이 제자들을 적에게 넘기는 일이 일어났고, 지금도 신앙 때문에 가정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에 와서는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경우는 신앙적인 교육을 안 시키는 데서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자녀가 학교 공부를 한다고 하면 성당에 가지 않더라도 부모는 자녀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권하지도 않습니다. 성당에 가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아이들이 성장하면 성당에 다닐까요? 자녀들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하느님께로 가지 못한다면 그들이 영원한 생명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자녀를 박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 때문에 미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열정적으로 봉사를 하면 열정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싫어합니다.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성당에 못 나오겠다고…,”자신은 따라 할 생각은 안 하고, 그를 못하게 합니다.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 안에서 그들의 잘못된 행동이 들어나기에 사람들은 신앙인들을 미워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미움을 당했고, 박해를 당했고, 목숨까지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영원한 것을 얻었습니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우리 인간들의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그들이 목숨을 잃고 멸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게 하느님 나라를 향에 달려오는 사람들로 보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박해받는 교회를 지켜보시며 당신의 손을 그 위에 뻗으십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는 얼마만큼 예수님께서 우리를 생각해 주시는지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이가 살아 있습니다. 영혼이 죽지 않기에 죽음은 죽음이 아닙니다. 인생은 기껏해야 70년 근력이 좋아야 80년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 겪는 어려움을 아주 작은 순간으로 보시고, 그 작은 순간에도 당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 놓는 신앙인들 때문에 행복해 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축복을 준비하십니다. 결국 나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는 신앙 때문에 겪는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좋은 결과를 이루게 해 주실 것입니다. 믿고 그분께 의지합시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참고 견딘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먼 미래보다 지금 앞에 당면한 문제들이 나를 힘들게 만듭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참으로 많은 어려움이 밀려옵니다. 신자들과의 갈등, 그리고 가족들과의 갈등…그런 갈등 속에서 가끔은 이런 분심도 듭니다. “내가 이러면서까지 신앙생활을 해야 하나…좀 쉬었다가 성당 다니면 안 될까?”

    이런 마음이 들었던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을 굳게 믿고 참고 견디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유혹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또 내가 남을 유혹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③ 내가 신앙을 권면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은 어떤 것이며, 그들과의 대화에서 말문이 막혀 버릴 때는 언제입니까?


  3. user#0 님의 말: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1. 말씀읽기: 루카21,5-19

    2. 말씀연구

    전례적으로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대림 제 1주일이 한 해의 시작이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구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또한 세상적인 것에만 집착을 하고, 세상적인 것만을 바라본다면 하느님 나라에서는 점점 멀어지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참된 가치가 아닌 것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고, 다른 이들을 현혹시켜서도 안 됩니다.

    또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시련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그 시련은 그저 시련일 뿐이고, 그 너머에 큰 영광이 있기에 인내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슬기롭고, 얼마나 인내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왔는지를 돌아봅시다.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예수님 시대에 아직 건축 중에 있던 예루살렘 성전은(기원전20/19년-기원후 63년) 고대 세계의 일곱 가지 경이(驚異 놀랍고 신기하게 여김)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하얀 대리석 건물은 화려하게 빛났고, 그 예물, 특히 성소의 문을 덮고 있는 황금 포도덩굴은 장관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헤로데 왕이 바친 황금 포도나무는 가장 유명한 것인데, 황금 포도송이는 한 사람의 부피와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영광 가득한 예루살렘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일생에 아무런 기쁨을 보지 못한 사람이다. 한껏 장식된 성소를 보지 못한 사람은 즐거움을 주는 도시를 도대체 보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데 성전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지만,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야 하지만 사람들은 성전의 아름다움에만 취해 있습니다. 성전이 아름다운 것은 지존하신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표현한 것이고, 성전이 거룩한 것은 성전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거룩함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전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을 찬양하지 못한다면 그는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이고,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눈에는 그저 건물만 보이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 아름다워라! 찬란한 세상, 주님이 지었네~”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며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화려한 것들을 보고서 그것에만 관심을 돌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좋은 것들, 새로운 것들, 편안한 것들, 맛있는 것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사람들이 성전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은 기원 후 70년에 로마군의 공격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루살렘은 기원 후 70년에 로마군의 공격으로 파괴되고 맙니다.

    지금은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을 찬양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선물의 내용이 중요하지 포장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느님을 등지고 성전의 아름다움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선물의 내용보다는 포장지에 관심을 더 기울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할지라도 100일을 넘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상 것들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꽃도 지고, 풀은 시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하느님만은 변함없으십니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성전의 파괴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①성전이 언제 파괴될 것인지를. ② 그 큰 재난을 앞두고 어떤 징조가 있을 것인지를.”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도 중요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내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언젠가는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주님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숨이 멈추면 육체의 모든 움직임은 정지하게 되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숨이 멈추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해 놓아야 합니다. 그 날이 언제일지 모르기에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 하고,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다른 것들에 마음을 쓰고 있고, 신앙생활은 그것보다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없어서, 기회가 되지 않아서,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하면서 뒤로 미룹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이어지면 그날과 그 시간에 당황해야 하고, 절망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그 때와 상황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 시간을 말씀해 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속는다는 모르기 때문에 속는 것이고, 자신의 욕심이 있기 때문에 속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와서 자신이 그리스도다.”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기꾼들이 그렇게 사람들을 현혹시켰습니다. 종말을 예고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아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고,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자처하며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펠릭스 총독 시대에도 이집트에서 온 한 열광가가 자기의 음성으로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린다고 자랑하며 약 3만의 백성을 모았다고 합니다. 튜다는 자기를 위대한 인물로 선전하여 추종자를 얻었고, 갈릴래아 사람 유다도 상당한 추종자를 얻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죽자 그들을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흩어지게 됩니다. 자칭 구원자라고 말하는 사기꾼들은 예나 지금이나 신앙인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슬기롭게 그런 유혹들을 이겨내야 합니다.


    또한 남을 속이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금전의 이익으로 유혹하면서 신앙인들을 유혹하여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사기꾼들이 있습니다. 자세히 모르고, 그가 교묘히 속이며, 또 재물에 대한 욕심이 있기 때문에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면 안 속습니다. 속는 사람의 마음 안에 잘못된 것이 있기에 그가 속는 것입니다. 속아서도 안 된지만, 남을 속여서도 안 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남을 속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열심한 체, 잘하는 체, 이것이 옳은 체…, 예수님의 말씀으로 위장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남을 위한 척 하면서 말해주면서도 실지로는 자기 욕심을 챙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를 과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이끌어 준다고 하면서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따라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 너무도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느님은 속일 수 없음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고하시면서 세상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상징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저런 소문들, 표징들을 보더라도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일어날 것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즉, 회개하고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는 무서운 재앙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닥쳐올 일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관심을 갖지 않겠습니까?


    12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회당과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당했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사도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서른아홉 대 매를 다섯 차례나 맞았고, 죽을 뻔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2코린 11,24-25)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들이 당해야 할 것을 알고 계셨으며 그것을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 두셨습니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박해의 순간이 증언할 기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사도들을 박해자들 앞에서 예수님에 관하여 증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셨다가 부활하셨다는 것.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하게 된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기뻐했습니다(사도행전5,41 참조).


    우리의 순교자들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순교자들은 체포되어 관장의 심문대나 고문대 앞에서도 포교활동을 하였습니다. 관장 앞에서 신앙을 변론하거나 교리 해설을 통하여 오히려 천주교의 옳음을 전하였고, 많은 비유들을 곁들인 교리 해설은 관장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관장들은 천주교 신자들에게 말 잘 하는 귀신이 붙었다고 했다고 합니다.


    또한 부녀자들의 교리변론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어린 아이에서부터 시작하여 80세 노인들조차도 논리정연하고 알맞은 비유로 그들의 심문대 위에서 포교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신자들이 거의 스스로 공부하고 익힌 내용들이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전문적인 교리신학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서양 신부님들의 서툰 우리말로 놀라운 신앙적 지식을 간직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이들은 서적이나 신앙인들의 입전을 통해 해박한 지식을 익혔던 것입니다. 공동체가 공동체에게 교리를 전해주고, 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입에서 입을 통해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제자들은 박해 때에 마음에 깊이 새기게 될 한 가지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법정에서 어떻게 항변할까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법정에 섰을 대에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도록 미리 항변의 말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그들에게 언변과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그가 말할 때에 함께 계시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탈출4,12).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원수들 앞에서 제자들이 믿음을 고백하고 당신을 증언하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순전히 인간적인 말솜씨와 인간적인 지혜에만 의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을해박해(1815년)때의 김시우(알렉스)라는 순교자는 반신불구로 매우 가난하여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면서 교우들의 애긍시사를 받아 생명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는 글을 좀 알았으므로 서책을 왼손으로 베껴 교우들을 가르쳤고 외교인들까지도 입교시켰습니다. 그러던 중 포졸들이 부활 축일에 노래산(老萊山) 교우들을 체포할 때, 알렉스는 자신이 제외되는 것을 보고 울면서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기를 애원하였으며, 마침내는 체포되었습니다. 알렉스는 관장 앞에서 옛 중국 고사들을 들어 교리를 대단히 유창하게 변론했기 때문에, 창피를 당한 감사는 그의 턱을 부수어 말을 못하게 하였으며, 더욱 심한 고문을 가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 이벽의 아버지나 이승훈의 아버지가 얼마나 아들의 배교를 위해 노력했습니까?

    “네 이놈! 네놈이 창조주를 믿어서 부모와 일가친척이 몰살을 당해도 좋다는 말이냐? 천주학쟁이들은 애미․아비도 몰라본다고 하는데 네가 나라에서 금하는 천주학을 해서 애미․아비가 죽음을 당한다면 그것이 곧 그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너로 인해 이 애비가 벼슬을 잃는다면 그것이 이 아비를 위하는 일이겠느냐? 네 어미가 종으로 끌려가는 것이 네 어미를 위한 행동이겠느냐? 너를 낳아서 길러준 은공은 보답하지 못할망정 적어도 해는 끼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냐? 이놈아! 어떻게 하겠느냐?”<소설 신유박해중 이승훈의 갈등에서...,>


    친척과 친지들이 제자들을 적에게 넘기는 일이 일어났고, 지금도 신앙 때문에 가정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에 와서는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경우는 신앙적인 교육을 안 시키는 데서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자녀가 학교 공부를 한다고 하면 성당에 가지 않더라도 부모는 자녀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권하지도 않습니다. 성당에 가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아이들이 성장하면 성당에 다닐까요? 자녀들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하느님께로 가지 못한다면 그들이 영원한 생명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자녀를 박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 때문에 미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열정적으로 봉사를 하면 열정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싫어합니다.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성당에 못 나오겠다고…,”자신은 따라 할 생각은 안 하고, 그를 못하게 합니다.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 안에서 그들의 잘못된 행동이 들어나기에 사람들은 신앙인들을 미워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미움을 당했고, 박해를 당했고, 목숨까지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영원한 것을 얻었습니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우리 인간들의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그들이 목숨을 잃고 멸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게 하느님 나라를 향에 달려오는 사람들로 보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박해받는 교회를 지켜보시며 당신의 손을 그 위에 뻗으십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는 얼마만큼 예수님께서 우리를 생각해 주시는지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이가 살아 있습니다. 영혼이 죽지 않기에 죽음은 죽음이 아닙니다. 인생은 기껏해야 70년 근력이 좋아야 80년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 겪는 어려움을 아주 작은 순간으로 보시고, 그 작은 순간에도 당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 놓는 신앙인들 때문에 행복해 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축복을 준비하십니다. 결국 나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는 신앙 때문에 겪는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좋은 결과를 이루게 해 주실 것입니다. 믿고 그분께 의지합시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참고 견딘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먼 미래보다 지금 앞에 당면한 문제들이 나를 힘들게 만듭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참으로 많은 어려움이 밀려옵니다. 신자들과의 갈등, 그리고 가족들과의 갈등…그런 갈등 속에서 가끔은 이런 분심도 듭니다. “내가 이러면서까지 신앙생활을 해야 하나…좀 쉬었다가 성당 다니면 안 될까?”

    이런 마음이 들었던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을 굳게 믿고 참고 견디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유혹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또 내가 남을 유혹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③ 내가 신앙을 권면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은 어떤 것이며, 그들과의 대화에서 말문이 막혀 버릴 때는 언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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