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성주간 화요일(4/7)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배반을 예언하신다. 제자들은 어리둥절해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가 누구입니까?” 놀라서 묻는 제자들에게 암시만 하신다. 그러시고는 유다 이스카리옷에게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하고 명하신다. 십자가의 길을 받아들이신 것이다(복음).
    복음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21-33.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셔서]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유다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의 배반을 알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유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무리 동기가 옳아도 배신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유다 역시 스승님을 따라나섰던 사람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았던 사람입니다. 무엇이 그에게 ‘차가운 마음’이 들게 했을까요? 그를 움직였던 분명한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만이 배신을 합니다. 동물의 세계에는 배반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을 합니다. 계산하고 따지기에 등을 돌립니다. 이해타산에 얽히기에 배신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모두 ‘판단의 잘못’입니다. 영악하게 생각하는 것이 원인입니다. 복음의 베드로 역시 스승님의 예언을 듣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수를 바로잡았기에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뉘우침이 빨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순간의 잘못을 계속 붙잡고 있었습니다. 결과는 파멸입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겁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돌아서야 했습니다. 우리 역시 살다 보면 우리를 붙잡는 말들을 만납니다. 사건들을 만납니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느낌이 앞섭니다. 그때 멈춰야 합니다. 그 순간 멈출 수 있는 힘을 지니라고 작은 시련들이 끊임없이 주어집니다. 진정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통회 - 김태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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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성주간 화요일(4/7)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배반을 예언하신다. 제자들은 어리둥절해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가 누구입니까?” 놀라서 묻는 제자들에게 암시만 하신다. 그러시고는 유다 이스카리옷에게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하고 명하신다. 십자가의 길을 받아들이신 것이다(복음).
      복음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21-33.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셔서]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유다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의 배반을 알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유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무리 동기가 옳아도 배신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유다 역시 스승님을 따라나섰던 사람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았던 사람입니다. 무엇이 그에게 ‘차가운 마음’이 들게 했을까요? 그를 움직였던 분명한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만이 배신을 합니다. 동물의 세계에는 배반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을 합니다. 계산하고 따지기에 등을 돌립니다. 이해타산에 얽히기에 배신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모두 ‘판단의 잘못’입니다. 영악하게 생각하는 것이 원인입니다. 복음의 베드로 역시 스승님의 예언을 듣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수를 바로잡았기에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뉘우침이 빨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순간의 잘못을 계속 붙잡고 있었습니다. 결과는 파멸입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겁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돌아서야 했습니다. 우리 역시 살다 보면 우리를 붙잡는 말들을 만납니다. 사건들을 만납니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느낌이 앞섭니다. 그때 멈춰야 합니다. 그 순간 멈출 수 있는 힘을 지니라고 작은 시련들이 끊임없이 주어집니다. 진정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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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성주간 화요일(4/7)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셨다.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이름을 지어 주셨다. 그러니 그분의 손길을 벗어날 수 없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스라엘이 주님께 돌아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분께서는 분명 힘이 되어 주실 것이다(제1독서).
      제1독서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주님의 종 의 둘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9,1-6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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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완연한 봄기운에 활짝 핀 벗꽃!

    바라만 보아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아주 짧은 시간에 드러낸 뒤,

    눈꽃이 되어 사라져 버리는 그 모습도 참 멋있지요?

    참 철없다. 그쵸? ㅎㅎㅎ

    성주간으로 접어들었지만 참 많이 부족한 모습으로 보내고 있음에 죄송할 뿐입니다.

    말씀에서 마리아와 유다인들의 두 모습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예수님의 발에 비싼 나르드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드리는 마리아!

    살아있는 이가 아니라 죽은 이에게 행하는 행위에 사용하는 향유라는데~~

    모르고 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우연의 일치치곤 너무나 가슴 찡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깨달음의 존경에서 나오는 사랑!

    그 사랑에서 믿음이 샘솟는 것일까요?

    존경,사랑,믿음,존경,사랑,믿음~~~

    이렇게 돌고 돌아 원을 이루어야 하는데~~

    진정 맹목적인 사랑은 자신을 눈 멀게 하지요.

    콩깍지가 씌어서~~ ㅎㅎ

    무엇이든 다 해드리고 싶고~

    아까운 것이 없고~~

    오로지 그 분에게만 드리고 싶은 마음~~

    그래서 그분의 모든 것을 닮아가려 노력하지요.

    어렸을 때 엄마와 아버지를 보고 그대로 하려 하듯이~~

    철없는 어린 시절에는 세상에서 아버지와 엄마가 있으면 겁날게 없듯이~~

    온 마음을 비우고 아주 순진한 철없는 어린 아이로 아버지를 찾는다면

    바로 첫 번째가 아버지가 되실건데~~~

    그렇게 하고 있는지~~

    말로는 첫 번째라 하면서 다른 첫 번째가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영이 아니라 육의 삶에서 오는 것이 첫 번째가 되어

    가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기도 합니다.

    마리아처럼 제 마음을 다해 드릴 수 있는지~~

    그렇게 할 때 저도 마리아처럼 저를 고백할 수 있음인데~~ 그치요?

    그 모습에 유다인들의 어리석음도 그려봅니다.

    아버지도 모자라 그들은 다시 살아난 라자로까지 죽이려 하지요.

    무엇이 그리 무서웠던 것일까요?

    하나를 덮으면 또 다른 하나를 덮어야 함인데~~

    그래서 라자로까지 죽이려 할까요?

    혹여 본인들이 아버지를 죽인뒤 라자로가 되갚을거 같아서?

    그렇게 하여 자신들의 자리를 유지하려 하는 유다인들!

    공동체에서 혹시 제 모습은 아닌지요.

    부질없는 권위와 싸우면서 그 어떤 누구도 제 자리에 앉기를 싫어함에 나오는

    거짓과 허상과 시기와 질투에 얽매여 후에 다가올 두려움도 모른 채,

    형제들을 죽이려 음모를 꾸미는~

    그러면서 겉으론 선량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ㅠㅠ

    속엔 유다인의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아버지!

    “전 아니예요.” 가 아니라

    “언제든 저가 그럴수 있지요?” 라고 여쭤보지요? ㅎㅎ^*^

    아시죠?

    그래야 늘 아버지께 여쭙고 행동하는 저가 되더라구요.

    또 많이 생각하고 늘 저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게 되고~~

    또 그렇게 해야 아버지께 더 많은 수다를 떨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철없는 딸이 됨을 알기에 그리하지요.

    아버지 앞에선 하나도 안챙피해요. 모르겠어요.

    화가 나신 아버지시여도 간지럼을 피워서 웃게 하려 하는 바보가 저네요.

    땀이나면 닦아주시고~

    울면 달래주시고~

    웃으면 함께 더 기뻐해 주시고~

    참 많은 사랑속에서 배부르게 살고 있는데

    전 과연 마리아처럼 그런 사랑을 드렸는지요.

    정말 고개를 들기 죄송하기도 한 시간입니다.

    그치만 다짐합니다.

    제게 만약 유다인의 모습이 있었다면 빼내 던지고

    입으로만이 아니라 가슴과 온 마음으로 존경과 사랑을 드릴 것을~~

    그리하여 가슴에서 나오는 진정한 믿음으로 아버지 품에 머물것을 다짐해 봅니다.

    마리아처럼 그런 사랑을 드릴 수 있도록~~~


     

    사랑이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오늘 라자로의 집으로 가십니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그 라자로의 집으로~

    그곳에서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를

    아버지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립니다.

    그 모습을 보고 유다가 뭐라 하자 아버지께서는 이리 말씀하십니다.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계심에도 보기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저를 꾸짖는 듯,

    가슴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마리아의 사랑!

    정말 사랑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시지요.

    그런 마리아의 모습에 저를 묻어 봅니다.

    아버지에 대한 저의 사랑은 과연 어느정도 인지를 생각해 보지만

    고개만 숙여질 뿐이네요.

    말없이 묵묵히 그저 할 일을 하는 마리아!

    엄청난 존경과 사랑의 고백에서 나오는 그녀의 믿음이 제 믿음이 되게 하소서.

    부족하지만 늘 깨어 있는 저가 되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그저 당연히 해야 함으로 다가오는 그런 사랑을 드리게 하소서.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제 할 일만을 하면서 아버지만 바라보게 하소서.

    자신들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전전긍긍 하는 유다인들의 모습이

    혹여 제 모습이라면 하루빨리 빠져 나오게 하시어

    제 맘을 다해 아버지를 사랑하게 하소서.

    마리아의 사랑이 제 고백이 되게 하소서.

    아멘.

  4. user#0 님의 말:


     

    완연한 봄기운에 활짝 핀 벗꽃!

    바라만 보아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아주 짧은 시간에 드러낸 뒤,

    눈꽃이 되어 사라져 버리는 그 모습도 참 멋있지요?

    참 철없다. 그쵸? ㅎㅎㅎ

    성주간으로 접어들었지만 참 많이 부족한 모습으로 보내고 있음에 죄송할 뿐입니다.

    말씀에서 마리아와 유다인들의 두 모습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예수님의 발에 비싼 나르드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드리는 마리아!

    살아있는 이가 아니라 죽은 이에게 행하는 행위에 사용하는 향유라는데~~

    모르고 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우연의 일치치곤 너무나 가슴 찡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깨달음의 존경에서 나오는 사랑!

    그 사랑에서 믿음이 샘솟는 것일까요?

    존경,사랑,믿음,존경,사랑,믿음~~~

    이렇게 돌고 돌아 원을 이루어야 하는데~~

    진정 맹목적인 사랑은 자신을 눈 멀게 하지요.

    콩깍지가 씌어서~~ ㅎㅎ

    무엇이든 다 해드리고 싶고~

    아까운 것이 없고~~

    오로지 그 분에게만 드리고 싶은 마음~~

    그래서 그분의 모든 것을 닮아가려 노력하지요.

    어렸을 때 엄마와 아버지를 보고 그대로 하려 하듯이~~

    철없는 어린 시절에는 세상에서 아버지와 엄마가 있으면 겁날게 없듯이~~

    온 마음을 비우고 아주 순진한 철없는 어린 아이로 아버지를 찾는다면

    바로 첫 번째가 아버지가 되실건데~~~

    그렇게 하고 있는지~~

    말로는 첫 번째라 하면서 다른 첫 번째가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영이 아니라 육의 삶에서 오는 것이 첫 번째가 되어

    가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기도 합니다.

    마리아처럼 제 마음을 다해 드릴 수 있는지~~

    그렇게 할 때 저도 마리아처럼 저를 고백할 수 있음인데~~ 그치요?

    그 모습에 유다인들의 어리석음도 그려봅니다.

    아버지도 모자라 그들은 다시 살아난 라자로까지 죽이려 하지요.

    무엇이 그리 무서웠던 것일까요?

    하나를 덮으면 또 다른 하나를 덮어야 함인데~~

    그래서 라자로까지 죽이려 할까요?

    혹여 본인들이 아버지를 죽인뒤 라자로가 되갚을거 같아서?

    그렇게 하여 자신들의 자리를 유지하려 하는 유다인들!

    공동체에서 혹시 제 모습은 아닌지요.

    부질없는 권위와 싸우면서 그 어떤 누구도 제 자리에 앉기를 싫어함에 나오는

    거짓과 허상과 시기와 질투에 얽매여 후에 다가올 두려움도 모른 채,

    형제들을 죽이려 음모를 꾸미는~

    그러면서 겉으론 선량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ㅠㅠ

    속엔 유다인의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아버지!

    “전 아니예요.” 가 아니라

    “언제든 저가 그럴수 있지요?” 라고 여쭤보지요? ㅎㅎ^*^

    아시죠?

    그래야 늘 아버지께 여쭙고 행동하는 저가 되더라구요.

    또 많이 생각하고 늘 저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게 되고~~

    또 그렇게 해야 아버지께 더 많은 수다를 떨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철없는 딸이 됨을 알기에 그리하지요.

    아버지 앞에선 하나도 안챙피해요. 모르겠어요.

    화가 나신 아버지시여도 간지럼을 피워서 웃게 하려 하는 바보가 저네요.

    땀이나면 닦아주시고~

    울면 달래주시고~

    웃으면 함께 더 기뻐해 주시고~

    참 많은 사랑속에서 배부르게 살고 있는데

    전 과연 마리아처럼 그런 사랑을 드렸는지요.

    정말 고개를 들기 죄송하기도 한 시간입니다.

    그치만 다짐합니다.

    제게 만약 유다인의 모습이 있었다면 빼내 던지고

    입으로만이 아니라 가슴과 온 마음으로 존경과 사랑을 드릴 것을~~

    그리하여 가슴에서 나오는 진정한 믿음으로 아버지 품에 머물것을 다짐해 봅니다.

    마리아처럼 그런 사랑을 드릴 수 있도록~~~


     

    사랑이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오늘 라자로의 집으로 가십니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그 라자로의 집으로~

    그곳에서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를

    아버지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립니다.

    그 모습을 보고 유다가 뭐라 하자 아버지께서는 이리 말씀하십니다.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계심에도 보기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저를 꾸짖는 듯,

    가슴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마리아의 사랑!

    정말 사랑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시지요.

    그런 마리아의 모습에 저를 묻어 봅니다.

    아버지에 대한 저의 사랑은 과연 어느정도 인지를 생각해 보지만

    고개만 숙여질 뿐이네요.

    말없이 묵묵히 그저 할 일을 하는 마리아!

    엄청난 존경과 사랑의 고백에서 나오는 그녀의 믿음이 제 믿음이 되게 하소서.

    부족하지만 늘 깨어 있는 저가 되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그저 당연히 해야 함으로 다가오는 그런 사랑을 드리게 하소서.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제 할 일만을 하면서 아버지만 바라보게 하소서.

    자신들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전전긍긍 하는 유다인들의 모습이

    혹여 제 모습이라면 하루빨리 빠져 나오게 하시어

    제 맘을 다해 아버지를 사랑하게 하소서.

    마리아의 사랑이 제 고백이 되게 하소서.

    아멘.

  5. user#0 님의 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

    성지주일이 지나고 성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해마다 사순시기가 되면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일들을
    실천하지 못하고 부활을 맞이했습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입으로만 다짐하기를 수 십번...
    변한 것이 하나도 없네요
    언제쯤이면 변화 될수 있을지 마음으로만 기와집을 짓고 있지요
    짓고 또 짓고 허물고 그러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면서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말씀이 저에게 하신 말씀같았습니다

    아니!

    저는 유다보다 더 많이 당신을 배반했습니다
    언제나 제가 불리하면 새벽닭이 울기 전 세번 씩이나
    당신을 모른다고 하신말씀보다 더 많이 당신을 배반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제가  당신이 필요하면 언제 그랬냐듯이 당신을 많이 
    사랑하는 척하며 그렇게 살았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저를 볼 때마다 열심한 신앙인이라고 인정한 것처럼
    연기를 아주 잘하고 살았지요
    당신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저의 욕심을 채우고...
    하지만 저는 압니다
    언제나 제가 유리하게 당신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남들이 모르게 들키지 않으며 당신을 사랑하는 척하며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복음묵상을 할 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회개하는 것처럼
    몇 마디의 글로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 하면서...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말씀을 성찰하며

    후회하면서도 반복되어 죄를  짓게되는 저의 못된 버릇과
    노력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다짐하는 저의 나쁜 습관등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면서 입으로만 고백하는 저의 못된 심성등
    당신께 습관적으로 짓게되는 저의 모든 죄까지 당신께서 
    사해주시기를 기도해봅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짐하며 당신께 고백하는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그리하여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헬레나가 되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한다고 늘 떠들어대지만 자신이 불리해지면
    당신을 모른다고 배반하는 저의 못된 심성을 고쳐주소서
    세례받았을때의 순수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않기를
    도와주소서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친 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셨도다.
    아멘


    ♬ 통회 – 김태진 신부

  6. guest 님의 말:

    (no content)

  7. user#0 님의 말: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
    오늘복음에서 당신께서는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말씀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세 번이나 아니! 수 십번도 더 당신을 배반했습니다
    제가 아쉽고 필요할 때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믿는다고
    온갖 감언이설을 하며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하지만…
    제가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당신을 모른다고 당신을 믿지 않는다고
    그리고 제가 아쉬을 때면 언제 그랬냐듯이 또 다시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랬습니다 주님!

    베드로사도처럼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모른척 한 것이 아니라
    수십 번도 더 당신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제가 아쉽고 필요 할 때만 당신을 이용했습니다
    저의 마음 속에는 어느 때는 유다가 되고 어느 때는 베드로가 되고
    어느 때는 당신의 발에 향유를 부어드린 마리아도 되었지요
    그리고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저는 당신을 배반하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저는요? 주님!
    당신만을 사랑하고 당신을 믿고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짓고백을 하고 살았습니다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당신을 모른다고 한 베드로처럼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당신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할지라도
    당신을 배반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며
    저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해봅니다
    아멘


  8. user#0 님의 말:

    ”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녜! 맞습니다 주님!
    아니!
    저는 세번이 아니라 수 없이 당신을 모른다고 당신이 누구신지
    모르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아쉬울때만 제가 팰요할 때나 ……
    그럴때만 당신을 믿는다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
    그렇게 했습니다 다른사람이 아닌 바로 저 헬레나가…..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도
    저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당신의 마음을 당신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묵상할 때만 당신께 고백하고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청하지만…..
    세속에서의 저의 삶은 외인과도 같습니다
    아니!1
    어느때는 외인만도 못할때도 있습니다
    제가 당신을 간절하게 필요할때는 제가 아쉽고 필요하고 힘들 때입니다
    그저 제가 아쉽고 필요할때만…..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믿는다고…..
    당신만 믿겠다고…..
    그렇게 입으로만 맹세를 합니다
    저 헬레나가 그런 사람입니다 주님!
    세번이 아니라 당신을 모른다고 할때가 얼마나 많은지………..
    겉으로는 안 그런 척했지만……….
    저의 신앙생활을 보면 저의 세속에서의 삶을 보면 ….
    제가 어떤 사람인지 금방 탄로가 납니다 주님!
    저의 그런 마음보를 이미 당신께서도 아시겠지만………..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주님!
    하루에도 수 없이 당신을 배반하고 또 버리고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말씀이 꼭 저에게 하신말씀 같아 마음이 괴로워습니다
    그렇다고 저의 타고난 못된 성격을 고칠 수도 없으니………..
    괴롭습니다
    당신을 팔아넘기는 사람이 다른사람도 아닌 바로 저 라는 사실이 괴롭습니다

    하지만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반성을 해봅니다
    고쳐야겠다고 저의 못된 심성을 ……….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도와주신다면….
    제 의지로는 자신이 없습니다
    힘이 듭니다 고쳐진다는 것이 저의 못된 심성이………..
    주님만을 믿으며 노력하겟습니다
    아멘

    ”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묵상하며


    ♬ Introitus / 사순절 그레고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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