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4/13)


    부활 시기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이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예수 부활 대축일은 가장 큰 축일이며,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3세기까지 교회의 축일은 부활 축일뿐이었다. 부활 시기는 ‘예수 부활 대축일’부터 부활의 신비를 완성하는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50일간이다. 교회는 예전부터 이 시기를 은총을 가장 많이 받는 시기로 받아들여 왔다. 교회 초창기의 부활 축제는 부활 성야에서 그다음 날 ‘해가 질 때’까지였다. 그러다 부활 대축일 다음 날인 월요일부터 시작하는 ‘팔일 축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여기에 또다시 부활을 기념하는 6주 동안의 전례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부활 시기가 등장하게 되었다. 예수 부활 대축일 날짜는 해마다 달라진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구약의 파스카 축제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나눈 마지막 만찬 역시 파스카 식사였다. 그리고 그분은 파스카 축제일 전날 돌아가셨고, 축제일 다음 날 부활하셨다. 유다인들은 그들의 달력으로 ‘니산 달’ 14일에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그들은 ‘니산 달’을 한 해의 첫 달(1월)로 생각했고, 비로소 밭에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동방 교회는 이를 받아들여 파스카 축제일을 부활 대축일로 지냈다. 그러나 서방 교회는 주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파스카 축제일 ‘다음 주일’을 부활 대축일로 지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춘분(3월 20일)을 지내고 보름날이 지난 다음에 오는 ‘첫 주일’을 부활 대축일로 결정하였다. 오늘날은 이 계산법에 따라 부활 대축일을 지내고 있다.
    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행적을 전한다. 하느님께서 기적의 능력을 주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분을 죽게 했지만 주님께서 다시 살리셨음을 알리고 있다. 베드로의 설교에는 힘이 실려 있다. 확실한 믿음을 전하기 때문이다(제1독서).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이 제일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들의 정성을 주님께서 받아 주신 것이다. 하지만 부활을 목격했던 경비병들은 이용당한다. 지도자들은 그들에게 거짓말을 주문하고 있다. 어디에나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있다(복음).
    복음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8-15 그때에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여자들이 돌아가는 동안에 경비병 몇 사람이 도성 안으로 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줄이 짧은 두레박으로는 깊은 우물의 물을 길을 수 없습니다. 억지를 부린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잘못하면 다칠 수 있습니다. 줄이 짧으면 당연히 줄을 늘이거나 다른 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무지와 게으름 때문입니다. 복음의 경비병들은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천사들이 무덤의 돌을 치우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상부에 보고합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은 조작을 시도합니다. 경비병들을 매수하여 거짓 정보를 흘리도록 합니다. 짧은 줄로 우물의 물을 길으려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찌하여 비겁한 행동을 지시하고 있는지요?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귀찮았던 것입니다. 현실의 삶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신 업적이 이렇듯 엉뚱한 사건으로 오해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활은 이론이 아닙니다. 지나가 버린 ‘사건’도 아닙니다. 부활은 믿음이며 은총입니다. 주님께서 깨달음을 주셔야 가까이 갈 수 있는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단순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이끄심을 만날 수 있습니다. 노력 없이 은총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짧은 줄로 ‘우물의 물’을 길으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모차르트 / 엑술따떼, 유빌라떼 중 \"알렐루야\"
   (Exsultate, jubilate, K.165 - Allelu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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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4/13)


      부활 시기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이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예수 부활 대축일은 가장 큰 축일이며,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3세기까지 교회의 축일은 부활 축일뿐이었다. 부활 시기는 ‘예수 부활 대축일’부터 부활의 신비를 완성하는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50일간이다. 교회는 예전부터 이 시기를 은총을 가장 많이 받는 시기로 받아들여 왔다. 교회 초창기의 부활 축제는 부활 성야에서 그다음 날 ‘해가 질 때’까지였다. 그러다 부활 대축일 다음 날인 월요일부터 시작하는 ‘팔일 축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여기에 또다시 부활을 기념하는 6주 동안의 전례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부활 시기가 등장하게 되었다. 예수 부활 대축일 날짜는 해마다 달라진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구약의 파스카 축제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나눈 마지막 만찬 역시 파스카 식사였다. 그리고 그분은 파스카 축제일 전날 돌아가셨고, 축제일 다음 날 부활하셨다. 유다인들은 그들의 달력으로 ‘니산 달’ 14일에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그들은 ‘니산 달’을 한 해의 첫 달(1월)로 생각했고, 비로소 밭에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동방 교회는 이를 받아들여 파스카 축제일을 부활 대축일로 지냈다. 그러나 서방 교회는 주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파스카 축제일 ‘다음 주일’을 부활 대축일로 지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춘분(3월 20일)을 지내고 보름날이 지난 다음에 오는 ‘첫 주일’을 부활 대축일로 결정하였다. 오늘날은 이 계산법에 따라 부활 대축일을 지내고 있다.
      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행적을 전한다. 하느님께서 기적의 능력을 주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분을 죽게 했지만 주님께서 다시 살리셨음을 알리고 있다. 베드로의 설교에는 힘이 실려 있다. 확실한 믿음을 전하기 때문이다(제1독서).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이 제일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들의 정성을 주님께서 받아 주신 것이다. 하지만 부활을 목격했던 경비병들은 이용당한다. 지도자들은 그들에게 거짓말을 주문하고 있다. 어디에나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있다(복음).
      복음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8-15 그때에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여자들이 돌아가는 동안에 경비병 몇 사람이 도성 안으로 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줄이 짧은 두레박으로는 깊은 우물의 물을 길을 수 없습니다. 억지를 부린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잘못하면 다칠 수 있습니다. 줄이 짧으면 당연히 줄을 늘이거나 다른 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무지와 게으름 때문입니다. 복음의 경비병들은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천사들이 무덤의 돌을 치우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상부에 보고합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은 조작을 시도합니다. 경비병들을 매수하여 거짓 정보를 흘리도록 합니다. 짧은 줄로 우물의 물을 길으려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찌하여 비겁한 행동을 지시하고 있는지요?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귀찮았던 것입니다. 현실의 삶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신 업적이 이렇듯 엉뚱한 사건으로 오해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활은 이론이 아닙니다. 지나가 버린 ‘사건’도 아닙니다. 부활은 믿음이며 은총입니다. 주님께서 깨달음을 주셔야 가까이 갈 수 있는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단순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이끄심을 만날 수 있습니다. 노력 없이 은총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짧은 줄로 ‘우물의 물’을 길으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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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4/13)


      부활 시기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이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예수 부활 대축일은 가장 큰 축일이며,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3세기까지 교회의 축일은 부활 축일뿐이었다. 부활 시기는 ‘예수 부활 대축일’부터 부활의 신비를 완성하는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50일간이다. 교회는 예전부터 이 시기를 은총을 가장 많이 받는 시기로 받아들여 왔다. 교회 초창기의 부활 축제는 부활 성야에서 그다음 날 ‘해가 질 때’까지였다. 그러다 부활 대축일 다음 날인 월요일부터 시작하는 ‘팔일 축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여기에 또다시 부활을 기념하는 6주 동안의 전례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부활 시기가 등장하게 되었다. 예수 부활 대축일 날짜는 해마다 달라진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구약의 파스카 축제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나눈 마지막 만찬 역시 파스카 식사였다. 그리고 그분은 파스카 축제일 전날 돌아가셨고, 축제일 다음 날 부활하셨다. 유다인들은 그들의 달력으로 ‘니산 달’ 14일에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그들은 ‘니산 달’을 한 해의 첫 달(1월)로 생각했고, 비로소 밭에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동방 교회는 이를 받아들여 파스카 축제일을 부활 대축일로 지냈다. 그러나 서방 교회는 주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파스카 축제일 ‘다음 주일’을 부활 대축일로 지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춘분(3월 20일)을 지내고 보름날이 지난 다음에 오는 ‘첫 주일’을 부활 대축일로 결정하였다. 오늘날은 이 계산법에 따라 부활 대축일을 지내고 있다.
      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행적을 전한다. 하느님께서 기적의 능력을 주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분을 죽게 했지만 주님께서 다시 살리셨음을 알리고 있다. 베드로의 설교에는 힘이 실려 있다. 확실한 믿음을 전하기 때문이다(제1독서).
      제1독서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14.22-33 [오순절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들으십시오. 이스라엘인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분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다윗 조상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죽어 묻혔고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예언자였고, 또 자기 몸의 소생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 주시겠다고 하느님께서 맹세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모차르트 / 엑술따떼, 유빌라떼 중 "알렐루야"
       (Exsultate, jubilate, K.165 - Alleluja) 
    
    
    
    

  3. guest 님의 말:

     

    부활을 맞이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고

    저의 새로남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아들이 물었답니다.

    “엄마, 엄마는 부활을 믿어요?” “당연하지” 라고 했더니

    아들이 그랬습니다. 완전 부인은 아니지만 때론 아닐때도 있다고~~

    그리고 아들은 가족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또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잘못된거 아니냐고 묻더군요.

    참 얼마나 기쁘던지요.

    가족이 먼저여야 되는데 그건 잘 안된다고 하면서 미안해 하는 그 모습도 이뻤답니다.

    믿지 못할때가 있다고 고백하는 아들이 걸음마 단계가 아니라

    어찌보면 저보다 몇 개단 더 올라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주일이었습니다.

    전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여인의 모습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그리고 수석사제들의 무지와 거짓으로 더 큰 죄를 짓는 모습에도 저를 비추어 보았습니다.

    과연 어느쪽일까요?

    여인들은 아버지를 사랑함에 그 이른 새벽 아버지의 무덤을 찾았겠지요.

    마귀들린 막달레나를 아버지께서 구해주셔서

    그후 아버지를 따르며 모든 것을 바쳤을까요?

    어쨌던 정말 멋있는 모습입니다.

    과거엔 어땠던 현재의 삶의 모습에서 아버지께 사랑드리며

    잘못은 돌이켜 죄를 사해받고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면

    그리될 수 있겠지요?

    또한 아버지께서도 아무에게나 나타나시진 않을거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였지요.

    오롯한 사랑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이에게 아버지의 뜻을 알리시고 싶은 것이겠지요.

    즉각 움직일 사람들에게~~

    그러기에 여인들은 주님의 천사가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면서 곧바로 달려가지요.

    아무런 이유를 달지 않고 기뻐하면서 부활을 전하러 갑니다.

    갈릴래아에 있는 제자들에게~~

    제게도 그런 깊은 사랑이 있기를 청해 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힘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행하는 저가 되어야 하는데

    너무나 부족한 것 같아서 고개가 숙여집니다.

    제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으면서

    아버지께서 무언가를 주시기만을 기다리며 늘 불평에 저를 묻은 것은 아닌지요.

    그러면서 제게 어떤 이익이 없으면 귀조차 열지 않았던 적은 없었는지도 반성해 봅니다.

    저를 알지 못하면서 나타나 주시기만을 바랐던 것은 아닌지요.

    저의 무능을 모른 채~~~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수석사제들처럼~~

    경비병들에게 그 사실을 들은 수석사제들은 돈으로 그들을 매수합니다.

    본인들의 무능을 덮으려 더 큰 죄를 짓습니다.

    혹여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저의 무능을 감추려 다른 봉사자를 이용한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무능을 감춘다고 올라감이 아닌데~~~ 그치요?

    인정하고 받아들일때 제 무능에 지혜가 보태지고

    그 지혜로움 속에 더 큰 저가 되는 것임을 새삼 상기시켜 봅니다.

    제 가슴에 시기와 질투와 교만과 오만으로 가득차 있다면

    수석사제들처럼 저의 무능을 덮기 위해 거짓증언을 해야 할 것이고

    나아가서는 그것을 덮기 위해 더 큰 죄를 짓게 됨을 새삼 깨달아 봅니다.

    큰 무엇을 드리는 저가 아니라 작은 일상에서 오롯한 사랑을 드리려 다짐해 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처럼~~~

    사랑의 힘으로 아버지를 찾고 움직이는 저가 되려 손을 걸어봅니다.

    사랑하는 울아버지의 부활을 기뻐하면서 저 또한 새로이 나려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주님의 천사가 여인들에게 나타나 아버지의 부활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갈릴래아에 있는 제자들에게 알리라 합니다.

    두렵기도 했지만 크게 기뻐하며 여인들은 달려갑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나타나시어 “평안하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가슴 뜨겁게 와 닿습니다.

    넘어졌을 때 손을 내 밀어 일으켜 주시고

    피나는 무릎을 입으로 빨아내는 그런 부모님의 가슴 아린 사랑이 전해지는 듯

    그렇게 와 자리잡았습니다.

    제게 정말 아버지에 대한 그런 깊은 사랑이 있었던가를

    부활을 맞이하면서 새삼 돌이켜 보았습니다.

    입으로는 늘 고백하지만 되려 수석사제의 모습이 제 모습은 아니었는지요.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제가 마리아 막달레나인 것처럼 착각하지는 않았는지요.

    아버지!

    마리아 막달레나의 사랑이 제게도 자리잡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 사랑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게 하소서.

    깊은 물이 되어 어떠한 돌의 던짐에도 흔들림이 없게 하소서.

    아멘.

  4. user#0 님의 말:

     

    부활을 맞이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고

    저의 새로남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아들이 물었답니다.

    “엄마, 엄마는 부활을 믿어요?” “당연하지” 라고 했더니

    아들이 그랬습니다. 완전 부인은 아니지만 때론 아닐때도 있다고~~

    그리고 아들은 가족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또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잘못된거 아니냐고 묻더군요.

    참 얼마나 기쁘던지요.

    가족이 먼저여야 되는데 그건 잘 안된다고 하면서 미안해 하는 그 모습도 이뻤답니다.

    믿지 못할때가 있다고 고백하는 아들이 걸음마 단계가 아니라

    어찌보면 저보다 몇 개단 더 올라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주일이었습니다.

    전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여인의 모습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그리고 수석사제들의 무지와 거짓으로 더 큰 죄를 짓는 모습에도 저를 비추어 보았습니다.

    과연 어느쪽일까요?

    여인들은 아버지를 사랑함에 그 이른 새벽 아버지의 무덤을 찾았겠지요.

    마귀들린 막달레나를 아버지께서 구해주셔서

    그후 아버지를 따르며 모든 것을 바쳤을까요?

    어쨌던 정말 멋있는 모습입니다.

    과거엔 어땠던 현재의 삶의 모습에서 아버지께 사랑드리며

    잘못은 돌이켜 죄를 사해받고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면

    그리될 수 있겠지요?

    또한 아버지께서도 아무에게나 나타나시진 않을거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였지요.

    오롯한 사랑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이에게 아버지의 뜻을 알리시고 싶은 것이겠지요.

    즉각 움직일 사람들에게~~

    그러기에 여인들은 주님의 천사가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면서 곧바로 달려가지요.

    아무런 이유를 달지 않고 기뻐하면서 부활을 전하러 갑니다.

    갈릴래아에 있는 제자들에게~~

    제게도 그런 깊은 사랑이 있기를 청해 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힘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행하는 저가 되어야 하는데

    너무나 부족한 것 같아서 고개가 숙여집니다.

    제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으면서

    아버지께서 무언가를 주시기만을 기다리며 늘 불평에 저를 묻은 것은 아닌지요.

    그러면서 제게 어떤 이익이 없으면 귀조차 열지 않았던 적은 없었는지도 반성해 봅니다.

    저를 알지 못하면서 나타나 주시기만을 바랐던 것은 아닌지요.

    저의 무능을 모른 채~~~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수석사제들처럼~~

    경비병들에게 그 사실을 들은 수석사제들은 돈으로 그들을 매수합니다.

    본인들의 무능을 덮으려 더 큰 죄를 짓습니다.

    혹여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저의 무능을 감추려 다른 봉사자를 이용한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무능을 감춘다고 올라감이 아닌데~~~ 그치요?

    인정하고 받아들일때 제 무능에 지혜가 보태지고

    그 지혜로움 속에 더 큰 저가 되는 것임을 새삼 상기시켜 봅니다.

    제 가슴에 시기와 질투와 교만과 오만으로 가득차 있다면

    수석사제들처럼 저의 무능을 덮기 위해 거짓증언을 해야 할 것이고

    나아가서는 그것을 덮기 위해 더 큰 죄를 짓게 됨을 새삼 깨달아 봅니다.

    큰 무엇을 드리는 저가 아니라 작은 일상에서 오롯한 사랑을 드리려 다짐해 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처럼~~~

    사랑의 힘으로 아버지를 찾고 움직이는 저가 되려 손을 걸어봅니다.

    사랑하는 울아버지의 부활을 기뻐하면서 저 또한 새로이 나려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주님의 천사가 여인들에게 나타나 아버지의 부활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갈릴래아에 있는 제자들에게 알리라 합니다.

    두렵기도 했지만 크게 기뻐하며 여인들은 달려갑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나타나시어 “평안하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가슴 뜨겁게 와 닿습니다.

    넘어졌을 때 손을 내 밀어 일으켜 주시고

    피나는 무릎을 입으로 빨아내는 그런 부모님의 가슴 아린 사랑이 전해지는 듯

    그렇게 와 자리잡았습니다.

    제게 정말 아버지에 대한 그런 깊은 사랑이 있었던가를

    부활을 맞이하면서 새삼 돌이켜 보았습니다.

    입으로는 늘 고백하지만 되려 수석사제의 모습이 제 모습은 아니었는지요.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제가 마리아 막달레나인 것처럼 착각하지는 않았는지요.

    아버지!

    마리아 막달레나의 사랑이 제게도 자리잡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 사랑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게 하소서.

    깊은 물이 되어 어떠한 돌의 던짐에도 흔들림이 없게 하소서.

    아멘.

  5. user#0 님의 말:

    평안하냐?”

    주님!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알렐루야! 알렐루야!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평안하냐?”

    말씀이 어느 때보다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요즈음 저의 마음이 평안하지 않았거든요
    이런 저런 일들로 머릿 속이 복잡하고 며칠사이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놀랄 일이야 당연히 당신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당신께서 부활하셨다는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는떼
    세속의 이런 저런 일들로 부활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마음 아팠던 일들도 있었고...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고...
    사람이 산다는 것이 근심 걱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실감했지요
    그 중에서도 마음이 편해야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모든 근심 걱정도 마음에서 우러나온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당신께서는 부활을 통해 평안함을 깨닫게 해주셨는데
    세속의 이런 저런 일들로 당신께서 부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믿으면 마음이 평안하다는 진리를 머리로 이해하는데...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
    부족한 신앙심으로 당신께서 주시는 참 평화를 누르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마음만은 아니!
    마음 만이라도 부활의 증인답게 살고 싶은마음 간절합니다
    아니!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신께서 주시는 부활의 기쁨을 함께 누리며

    빈무덤
    “무덤이 비어있기에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부활하셨기에 무덤이 비었다네
    그분 부활하셔서 나와 함께 계시니
    이 기쁨 온 세상에 전해야하네
    부활의 기쁨을 온 세상에…..”

    아멘

    ♬ Alleluia

  6. guest 님의 말:

    (no content)

  7. 이헬레나 님의 말:

    주님!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어제부터 사이버성당싸이트가 엠마오를 갔는가 봅니다
    하루종일 열리지 않아 힘들었지요 고맙습니다^*^
    건강하시지요? 바쁘다보니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고 있네요 지송해요^*^
    부활의 기쁨이 자매님의 가정에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언제한번 만나야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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