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부활 제2주간 수요일(4/22)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다. 그만큼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심판받지 않는다. 오히려 진리를 실천하며 빛의 생활을 하게 된다(복음).
    복음
    <하느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21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심판 쪽을 더 많이 생각합니다. 구원의 주님보다는 심판의 하느님을 먼저 떠올립니다. 왜 그럴까요? 평소 칭찬의 삶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꾸중은 많고 격려는 부족한 삶을 살고 있는 탓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의 왕입니다. 어느 날 그는 상아로 여인상을 조각합니다. 그런데 ‘작품의 여인’을 너무 좋아하게 됩니다. 이를 지켜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아내로 삼게 합니다. 이 신화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교육 용어가 만들어졌습니다. 교사의 칭찬과 격려를 받은 학생은 학업 성취도가 오른다는 이론입니다. 당연한 이론입니다. 학생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자신을 믿고 인정해 주면 두 배 세 배의 힘을 발휘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세상의 좋은 점을 더 많이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사람의 선한 모습을 더 많이 보셨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그런 주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분의 애정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람을 칭찬하고 좋게 보는 일입니다. 그것은 또한 예수님을 닮는 일이기도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살아계신 주 / The National Chorus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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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부활 제2주간 수요일(4/22)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다. 그만큼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심판받지 않는다. 오히려 진리를 실천하며 빛의 생활을 하게 된다(복음).
      복음
      <하느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21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심판 쪽을 더 많이 생각합니다. 구원의 주님보다는 심판의 하느님을 먼저 떠올립니다. 왜 그럴까요? 평소 칭찬의 삶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꾸중은 많고 격려는 부족한 삶을 살고 있는 탓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의 왕입니다. 어느 날 그는 상아로 여인상을 조각합니다. 그런데 ‘작품의 여인’을 너무 좋아하게 됩니다. 이를 지켜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아내로 삼게 합니다. 이 신화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교육 용어가 만들어졌습니다. 교사의 칭찬과 격려를 받은 학생은 학업 성취도가 오른다는 이론입니다. 당연한 이론입니다. 학생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자신을 믿고 인정해 주면 두 배 세 배의 힘을 발휘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세상의 좋은 점을 더 많이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사람의 선한 모습을 더 많이 보셨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그런 주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분의 애정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람을 칭찬하고 좋게 보는 일입니다. 그것은 또한 예수님을 닮는 일이기도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살아계신 주 / The National Chorus of Korea
    
    
    
    
    

  2. guest 님의 말:


    부활 제2주간 수요일(4/22)


      말씀의 초대
      대사제와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사도들을 붙잡아 감옥에 가두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베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밤 천사가 그들을 풀어 준다. 경비대장과 수석 사제들은 몹시 당황해한다. 그들이 사도들을 데려왔지만 백성이 두려워 폭력을 쓰지는 못한다(제1독서).
      제1독서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5,17-26 그 무렵 대사제가 자기의 모든 동조자 곧 사두가이파와 함께 나섰다. 그들은 시기심에 가득 차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그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가르쳤다. 한편 대사제와 그의 동조자들은 모여 와서 최고 의회 곧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원로단을 소집하고, 감옥으로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경비병들이 감옥에 이르러 보니 사도들이 없으므로 되돌아가 보고하였다. “저희가 보니 감옥 문은 굳게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어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성전 경비대장과 수석 사제들은 이 말을 듣고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사도들 때문에 몹시 당황해하였다. 그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보고하였다.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자 성전 경비대장이 경비병들과 함께 가서 사도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백성에게 돌을 맞을까 두려워 폭력을 쓰지는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살아계신 주 / The National Chorus of Korea
    
    
    
    
    

  3. guest 님의 말:

     

    참 요란하게도 바람이 불었던 하루였는데

    이제야 잠이 들고 고요가 흐르고 있는 아주 편안한 밤이랍니다.

    간만에 단비도 왔고~~~

    아버지께서 마련해 주신 오묘한 신비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하루하루 이슬을 머금고 빛을 받는 풀잎처럼 그렇게 영글어 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먹고 살아가고 있음에 늘 감사할 뿐이랍니다.

    언제나 격려해 주시고 안아주시며 토닥여 주시는 울아버지!

    감히 아버지의 사랑을 무엇에 비추어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섭고 두려운 아버지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상에서 가장 다정다감하신 아버지신데~~

    요몇일간은 니코데모와의 대화에서 많은 것을 돌이켜 보는 시간입니다.

    저의 믿음과 구원과 삶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는 그런 시간이랍니다.

    늘 드리는 인사이지만 형식에 젖은 것은 아니었는지요.

    형식에 젖다 보니 아무런 감정도 사랑도 흐르지 않는 그런 강은 아니었는지요.

    사랑이신 아버지라 고백하면서 한 구석엔 믿음의 진리를 향하기 보다는

    욕심의 보따리를 채우기 위해서 어둠으로 달려가면서 저의 그림자를 감추려

    안간힘을 쓰진 않았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그러기에 아버지가 두려운 분으로 다가오고

    그러기에 아버지의 심판이 두려워 더더욱 어둠으로 달려가지 않았는지 뒤돌아 봅니다.

    아버지께선 심판하러 오신게 아니라 구원하러 오심이라 하셨는데,

    부족한 저는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저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하였기에

    빛보단 어둠을 더 좋아한 것은 아닌지요.

    삶을 살아가면서 저의 허물을 덮으려 아버지의 사람들을 밀어내려 애써진 않았는지~~

    저의 과오를 반성하기 보단 그것을 아는 이들을 쫓아내려 어둠을 드리우진 않았는지~~

    그러고 보니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

    놀라셨지요?

    사실 제가 지금껏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랬을 것입니다.

    아니 그전까지 그랬겠지요.

    그러면서도 어둠에 가리워 빛이 없음을 몰랐겠지요.

    하지만 이젠 아니라는 것을 알고

    또 지금은 저가 그 길을 걷지 않고 있음을 당당히 말씀드립니다.

    그러기에 전 사랑을 안드릴수가 없답니다.

    아니 저를 드릴 수 밖에 없음이 더 맞지요.

    울아버지의 사랑에 저가 이렇게 빛으로 가는 길을 알았고

    삶의 이치를 깨달았고, 가야할 길을 알았으니까요.

    이렇듯 행복지수는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제게 있음을 깨달았기에

    정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니코데모에게 영원한 생명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는 저를 꾸짓는 듯, 마음속깊이 내려 앉았습니다.

    단죄와 처벌이 아닌 사랑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기 위함인데

    저가 그것을 깨닫기 보다는 저의 허물을 덮기위해 어둠으로만 나아갔던 것은 아닌지요.

    사랑에서 나오는 믿음의 진리보다는 저만을 위해서~~

    그 때문에 늘 두려워하면서 뒷걸음치고

    오로지 어둠으로만 나아가면서 빛을 가리려

    맘의 거텐을 드리운 채, 저를 숨기진 않았는지요.

    아버지!

    아버지를 바로 알게 하소서.

    회개하는 자식이 구원의 길로 들게 하기 위하여

    때론 꾸중도 마다않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으로 깨닫게 하시어

    어둠에서 나오게 하소서.

    저 자신이 빛을 가리는 벽이 되지 않게 하시어

    진리를 실천하는 저가 되어 빛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삼위일체이신 사랑의 가르침을 깨달아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빛의 길을 걷게 하소서.

    아멘.

  4. user#0 님의 말:

     

    참 요란하게도 바람이 불었던 하루였는데

    이제야 잠이 들고 고요가 흐르고 있는 아주 편안한 밤이랍니다.

    간만에 단비도 왔고~~~

    아버지께서 마련해 주신 오묘한 신비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하루하루 이슬을 머금고 빛을 받는 풀잎처럼 그렇게 영글어 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먹고 살아가고 있음에 늘 감사할 뿐이랍니다.

    언제나 격려해 주시고 안아주시며 토닥여 주시는 울아버지!

    감히 아버지의 사랑을 무엇에 비추어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섭고 두려운 아버지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상에서 가장 다정다감하신 아버지신데~~

    요몇일간은 니코데모와의 대화에서 많은 것을 돌이켜 보는 시간입니다.

    저의 믿음과 구원과 삶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는 그런 시간이랍니다.

    늘 드리는 인사이지만 형식에 젖은 것은 아니었는지요.

    형식에 젖다 보니 아무런 감정도 사랑도 흐르지 않는 그런 강은 아니었는지요.

    사랑이신 아버지라 고백하면서 한 구석엔 믿음의 진리를 향하기 보다는

    욕심의 보따리를 채우기 위해서 어둠으로 달려가면서 저의 그림자를 감추려

    안간힘을 쓰진 않았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그러기에 아버지가 두려운 분으로 다가오고

    그러기에 아버지의 심판이 두려워 더더욱 어둠으로 달려가지 않았는지 뒤돌아 봅니다.

    아버지께선 심판하러 오신게 아니라 구원하러 오심이라 하셨는데,

    부족한 저는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저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하였기에

    빛보단 어둠을 더 좋아한 것은 아닌지요.

    삶을 살아가면서 저의 허물을 덮으려 아버지의 사람들을 밀어내려 애써진 않았는지~~

    저의 과오를 반성하기 보단 그것을 아는 이들을 쫓아내려 어둠을 드리우진 않았는지~~

    그러고 보니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

    놀라셨지요?

    사실 제가 지금껏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랬을 것입니다.

    아니 그전까지 그랬겠지요.

    그러면서도 어둠에 가리워 빛이 없음을 몰랐겠지요.

    하지만 이젠 아니라는 것을 알고

    또 지금은 저가 그 길을 걷지 않고 있음을 당당히 말씀드립니다.

    그러기에 전 사랑을 안드릴수가 없답니다.

    아니 저를 드릴 수 밖에 없음이 더 맞지요.

    울아버지의 사랑에 저가 이렇게 빛으로 가는 길을 알았고

    삶의 이치를 깨달았고, 가야할 길을 알았으니까요.

    이렇듯 행복지수는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제게 있음을 깨달았기에

    정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니코데모에게 영원한 생명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는 저를 꾸짓는 듯, 마음속깊이 내려 앉았습니다.

    단죄와 처벌이 아닌 사랑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기 위함인데

    저가 그것을 깨닫기 보다는 저의 허물을 덮기위해 어둠으로만 나아갔던 것은 아닌지요.

    사랑에서 나오는 믿음의 진리보다는 저만을 위해서~~

    그 때문에 늘 두려워하면서 뒷걸음치고

    오로지 어둠으로만 나아가면서 빛을 가리려

    맘의 거텐을 드리운 채, 저를 숨기진 않았는지요.

    아버지!

    아버지를 바로 알게 하소서.

    회개하는 자식이 구원의 길로 들게 하기 위하여

    때론 꾸중도 마다않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으로 깨닫게 하시어

    어둠에서 나오게 하소서.

    저 자신이 빛을 가리는 벽이 되지 않게 하시어

    진리를 실천하는 저가 되어 빛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삼위일체이신 사랑의 가르침을 깨달아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빛의 길을 걷게 하소서.

    아멘.

  5. user#0 님의 말: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하지만 마음 뿐...
    빛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리를 실천하는 것임을
    생각으로는 느끼는데 ...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마음으로 깨달으면서 실천을 하지 못하니 더 어렵습니다
    복음묵상을 하는 것 또한 어제보다 더 발전된 모습이고
    내일을 기대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 좀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복음묵상을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깨달으며
    복음묵상을 하는 목적 또한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변해야 하는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론적으로 모두 알고 있지만 빛의 자녀로써 
    진리를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살지를 못하니 어렵습니다
    언제나 후회와 죄스러운 마음 뿐

    그래도 기쁩니다 주님!
    이렇게 하루하루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으며 빛의 자녀로써
    합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저의 힘만으로는 어려운데 그래도 이렇게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노력하는 모습이 언젠가는 빛의 자녀답게 살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저의 노력만으로는 힘들지만 사랑이신 당신께서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시니 절망을 하지 않겠습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노력하겠습니다
    빛의 자녀로 나아가기 위해...
    저의 마음 속에 보물처럼 움켜지고 있는 시기와 질투 게으름등을
    사랑과 진리와 봉사와 부지런함으로 바꾸려 노력해야 한다고
    복음을 묵상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빛과 소금에 되어 당신의 자랑스런 자녀가 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묵상하며


    ♬그 길-작사/작곡:임석수. 노래:손용환


  6. guest 님의 말:

    (no content)

  7. guest 님의 말:

    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세상을 심판하기 보다는 구원하시러 아드님을 보내셨다는
    말씀에 마음 한켠 안도감이 듭니다.

    얼마전 아이와 이야기 할 기회가 되어 좀 긴시간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동안 엄마에게 불만족스러웠던 이야기를 죽~ 하더니
    어릴때 엄마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 상처를 씻고 행복하게 되려면 엄마가 먼저 아들의 벽을 뛰어넘어야 하고
    그 다음엔 아들인 자신이 엄마라는 벽을 뛰어 넘을 수 있어야 가능하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가지의 청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하나는 자신의 입장을 좀더 이해해주고
    또 다른 하나는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우선은 꼬옥~안아주고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어서 미안하고
    앞으로는 좀더 많이 이해해 주고 배려해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당장 미사참례를 마치고 가까운 공원에 가서 자전거를 태워주고
    왔더니 좋아라 했습니다
    앞으로 쉬는 날엔 가까운 고궁이나 유적지등을 찾아가 보여주고 대공원에 가서
    놀이기구도 태워주고 꽃구경도 시켜주어야 겠다고 생각을 하였지요.

    아직 어린 아이인줄로만 알았던 아이의 구체적이고 논리정연한
    말을 듣고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이를 통해서 이렇게 저를 깨닫게 하고 반성하게
    도와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남편을 통해서도 깨지지 않고 끄떡없이 교만이 자랑인듯 고개를 숙이지
    않으니 이제는 아이를 통해서 저에게 낮아지고 깍아질 것을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아이에게 꾸중하고 힐책하기보다는 예수님의 사랑을 담아
    칭찬과 사랑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신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하느님 말씀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묵상하고 가까이 하기보다는 그 깊은 의미를
    잘 이해하고 가장 가까운 가정안에서 부터 하나 둘 실천하려는 노력을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구나 하시도록 한 걸음씩 ……

  8.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세상을 심판하기 보다는 구원하시러 아드님을 보내셨다는
    말씀에 마음 한켠 안도감이 듭니다.

    얼마전 아이와 이야기 할 기회가 되어 좀 긴시간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동안 엄마에게 불만족스러웠던 이야기를 죽~ 하더니
    어릴때 엄마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 상처를 씻고 행복하게 되려면 엄마가 먼저 아들의 벽을 뛰어넘어야 하고
    그 다음엔 아들인 자신이 엄마라는 벽을 뛰어 넘을 수 있어야 가능하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가지의 청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하나는 자신의 입장을 좀더 이해해주고
    또 다른 하나는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우선은 꼬옥~안아주고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어서 미안하고
    앞으로는 좀더 많이 이해해 주고 배려해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당장 미사참례를 마치고 가까운 공원에 가서 자전거를 태워주고
    왔더니 좋아라 했습니다
    앞으로 쉬는 날엔 가까운 고궁이나 유적지등을 찾아가 보여주고 대공원에 가서
    놀이기구도 태워주고 꽃구경도 시켜주어야 겠다고 생각을 하였지요.

    아직 어린 아이인줄로만 알았던 아이의 구체적이고 논리정연한
    말을 듣고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이를 통해서 이렇게 저를 깨닫게 하고 반성하게
    도와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남편을 통해서도 깨지지 않고 끄떡없이 교만이 자랑인듯 고개를 숙이지
    않으니 이제는 아이를 통해서 저에게 낮아지고 깍아질 것을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아이에게 꾸중하고 힐책하기보다는 예수님의 사랑을 담아
    칭찬과 사랑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신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하느님 말씀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묵상하고 가까이 하기보다는 그 깊은 의미를
    잘 이해하고 가장 가까운 가정안에서 부터 하나 둘 실천하려는 노력을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구나 하시도록 한 걸음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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