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1. 말씀읽기: 요한 6,30-35

2. 말씀연구

 알아듣지 못하는 군중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여 배불리 먹이신 기적 말고 다른 것을 보여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믿을만한 표징을 보여 달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표징을 보더라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이 닫혀 있으며, 그래서 어떤 틀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 외에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습니다.



30 그들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하고 말씀을 드립니다. 유다인들이 요구하는 표징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가장 위대한 기적, 즉 광야에서 만나를 생기게 한 모세의 기적과 같은 기적을 보여 줌으로써 스스로를 증명해 보인다면 예수님을 믿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탈출기 16장; 민수11장).



31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예언자로 보기 때문에 모세가 행한 기적과 비슷한 것을 예수님께 기대하였습니다. 그 군중들 중에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고 전해들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이 예수님께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들은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모세의 기적을 이야기 하면서 그런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말 중의 하나가 “전에는 이렇게 했는데…,”라는 것입니다. 10년 전에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지금도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10년 전에 사용하던 컴퓨터를 지금도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없습니다. 하기 싫어하는 사람 중에는,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 중에는 변화를 싫어하고, 자신의 노력이 들어가는 것을 싫어해서 “전에는 이렇게 했는데…,”하면서 불평을 하고, 조건을 내세웁니다. 공소예절을 하던 사람들은 성당으로 미사에 나오라면 “전에는…,”이렇게 말하면서 싫어합니다. 반모임을 하자고 해도 싫어하는 사람들은 “전에는…,”하면서 핑계를 댑니다.

 잘 하고 있는 것은 계속해야 합니다. 물론 “새 술은 새 부대에”하면서 전에 있는 것을 모두 없애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새로 시작해야 하기에 어수선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틀을 가지고 공동체를 바라보면 잘 못하고 있는 것들은 더욱 잘하려고 쇄신 시키고, 잘 하고 있는 것은 칭찬과 격려를 통하여 더욱 잘 하게 만듭니다. 물론 그것을 볼 눈이 없으면 불평과 핑계만 난무하게 됩니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다 준 장본인은 모세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이해를 바로잡아 주십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맞습니다. 모세가 빵을 내린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모세와 당신 백성들을 위하여 빵을 내려 주신 것입니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생명을 주는 빵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 빵은 바로 하느님의 빵이고,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입니다. 그 빵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 그렇게 세상 사람들을 살리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때문에…,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유다인들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느님의 빵을 늘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빵을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라고 유다인들은 청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고,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늘 저희에게 주십시오.”라는 말을 통해서 내가 기도할  때 혹시 이들처럼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것은 인색하면서 “청하고, 바라는 것”에만 늘 익숙하지는 않은지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신지를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즉 내 편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을 하느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거나 보여 주시는 것. 이것이 바로 계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십니다. 지금까지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영적 빵을 찾아야 한다고만 말씀하셨지만, 이제는 예수님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빵”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이라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그 양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로 나아와야 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은 바로 구원에 대한 열망이고, “배고픔과 목마름”을 채웠다는 것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로 오는 사람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바라면서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무슨 기적을 보여 우리를 믿게 하시렵니까?”라고 묻습니다. 혹시 이 질문은 나의 말이 아닙니까? 혹시 나는 예수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있지는 않은지요. 또한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 안에서도 “무슨 기적을 보여 나를 믿게 하겠는가?”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내가 너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네가 공동체를 사랑한다는 것을…혹시 나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② 유다인들은 증거를 요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들 관계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그에게 증거를 요구하고, 그는 나에게 믿어줄 것을 요구할 때 서로간의 간격은 커 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어떻게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③“오다”와 “믿다”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으라는 촉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로 나아와(오다)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믿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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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에 1개의 응답

  1. 엘리사벳 님의 말:

    맞습니다. 제 말일수도~~~ 아니 저의 솔직한 질문일수도 있겠지요.
    믿는다 고백하면서도 때론 이상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 때도 있지요.
    아마도 완전 사랑하지 않아서 그럴거라 생각합니다.
    고백하는 만큼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조건 믿고 따르니까요.

    늘 그러한 관계안에서 힘들어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그러한 관계를 정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생긴후~~ 말씀과 침묵! ㅎㅎ
    우습지만 침묵과 미소로 그리고 말씀으로 저를 다잡으니 미련도 아쉬움도 밀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구하지도 바라지도 않습니다.
    서로의 몫이겠지요.

    참 어렵네요.
    믿음을 내세우면서 잠자는 사람보단 믿음은 없지만 그래도 아버지께로 나아오는 사람이 더 낫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믿음이 있어서 나아오는 사람이라면 더 말할나위가 없겠지만요.
    이론적이고 형식적인 믿음이라면 나를 바꾸기 어려울 것이고
    오롯한 마음으로 아버지께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반면 믿음은 없을 지라도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믿음을 받아들일 공간이 있을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구경을 하기위해 나아감이 아니라
    나아감 자체가 어떠한 계기가 있어서 나아가는 것이니까요.
    딱 꼬집어 이렇다 하기엔 어렵군요.
    뒤집어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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