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부활 제4주일(5/3)


    오늘은 ‘착한 목자 주일’이라고도 하는 ‘성소 주일’이다. ‘성소’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부르심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특별히 사제성소의 증진을 위한 주일이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루카 10,2)라는 말씀에 따라, 교회는 사제성소의 증진을 위한 더 많은 기도와 노력을 당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이시며, 우리는 그분을 따르는 양들입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주님의 이끄심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주님의 은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오늘 필요한 은총을 청해야겠습니다. 사랑과 자비로 이끌어 주시길 기도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착한 목자”라고 하신다. 실제로 그분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간다. 착한 목자께서는 모든 이의 구원을 원하신다. 믿음과 신뢰로 다가가면 누구라도 그분을 만날 수 있다(복음).
    복음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18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누구에게나 ‘운명적인 만남’이 있습니다. 부부의 만남, 부모와 자식과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입니다. 모두가 주님께서 연출하신 것이지요. 그러기에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건강한 목숨이 될 수 없습니다. 목숨을 운전한다는 것이 ‘운명’(運命)이라는 말의 ‘숨은 뜻’입니다. 어떻게 이 만남을 가꾸며 살아갈 수 있을는지요? 복음 말씀에 열쇠가 있습니다. ‘착한 마음’입니다. 착한 마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착하면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할 말도 못하고 남에게 당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는지요? 그러나 착한 마음 뒤에는 주님께서 계십니다. 그분께서 작심하시고 지켜 주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착한 마음은 ‘참을 줄 아는’ 마음입니다. 하느님 때문에 알면서도 ‘모르는 듯’ 덮어 주는 마음입니다. 성질대로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칙대로 하는 것이 늘 옳은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린이의 모습일 뿐입니다. 우리 곁에는, 몸은 어른이지만 생각과 행동은 여전히 어린이인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만남은 꽃입니다. 꽃이 싱싱하고 아름다우려면 보이지 않는 뿌리가 튼튼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는 이렇듯 ‘상대를 참아 주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선행을 베푸는 일입니다. 만남의 연출자는 주님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지금의 만남을 주선하셨다면 앞으로의 만남에도 개입하실 것은 분명합니다. 미래를 그분께 맡기며 살아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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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부활 제4주일(5/3)


      오늘은 ‘착한 목자 주일’이라고도 하는 ‘성소 주일’이다. ‘성소’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부르심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특별히 사제성소의 증진을 위한 주일이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루카 10,2)라는 말씀에 따라, 교회는 사제성소의 증진을 위한 더 많은 기도와 노력을 당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이시며, 우리는 그분을 따르는 양들입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주님의 이끄심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주님의 은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오늘 필요한 은총을 청해야겠습니다. 사랑과 자비로 이끌어 주시길 기도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착한 목자”라고 하신다. 실제로 그분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간다. 착한 목자께서는 모든 이의 구원을 원하신다. 믿음과 신뢰로 다가가면 누구라도 그분을 만날 수 있다(복음).
      복음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18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누구에게나 ‘운명적인 만남’이 있습니다. 부부의 만남, 부모와 자식과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입니다. 모두가 주님께서 연출하신 것이지요. 그러기에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건강한 목숨이 될 수 없습니다. 목숨을 운전한다는 것이 ‘운명’(運命)이라는 말의 ‘숨은 뜻’입니다. 어떻게 이 만남을 가꾸며 살아갈 수 있을는지요? 복음 말씀에 열쇠가 있습니다. ‘착한 마음’입니다. 착한 마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착하면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할 말도 못하고 남에게 당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는지요? 그러나 착한 마음 뒤에는 주님께서 계십니다. 그분께서 작심하시고 지켜 주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착한 마음은 ‘참을 줄 아는’ 마음입니다. 하느님 때문에 알면서도 ‘모르는 듯’ 덮어 주는 마음입니다. 성질대로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칙대로 하는 것이 늘 옳은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린이의 모습일 뿐입니다. 우리 곁에는, 몸은 어른이지만 생각과 행동은 여전히 어린이인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만남은 꽃입니다. 꽃이 싱싱하고 아름다우려면 보이지 않는 뿌리가 튼튼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는 이렇듯 ‘상대를 참아 주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선행을 베푸는 일입니다. 만남의 연출자는 주님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지금의 만남을 주선하셨다면 앞으로의 만남에도 개입하실 것은 분명합니다. 미래를 그분께 맡기며 살아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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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부활 제4주일(5/3)


      말씀의 초대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베풀었음을 선언하고 있다. 그분의 힘으로 병자들을 낫게 하고 마귀를 몰아낸 사실을 고백한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놀란다. 베드로는 예수님 외에는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음을 외치고 있다(제1독서). 주님께서 큰 사랑을 주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자녀라고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 먼 훗날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될 것이다(제2독서).
      제1독서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4,8-12 그 무렵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 차 그들에게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우리가 병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라면, 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우리는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3,1-2 사랑하는 여러분,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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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이리저리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바리사이들에게

    목자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그 속에서 저의 모습은 어떤지도 다시금 돌이켜 봅니다.

    바리사이의 모습이 제 모습은 아닌지~~

    양들을 사랑함에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목자!

    형식의 틀에 양들을 가두는 목자!

    내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벌레가 들어있다 생각하고 벌레로 대하는 목자!

    내 욕심만을 채우려하는 목자!

    전 과연 어떤 모습의 목자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보고싶은 것만을 보고,

    하고자 하는 것만을 하면서 사랑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살아온건 아닌지요.

    정작 도둑의 옷을 입고 사랑이 넘치는 목자의 행세를 하진 않았는지를 돌이켜 봅니다.

    예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맘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하루를 이틀이상으로 보내며 정작 저는 잊은채

    정말 바쁘게 생활했던 적이 있었지요.

    새벽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스케줄표에 따라 움직였지만

    힘든 줄도 모르고 기쁘게 움직였답니다.

    부족한 아이들은 저의 개인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그 아이의 성적을 올렸지요.

    지금 생각하면 힘없는 웃음이 나올 뿐입니다.

    무엇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라 저도 아이가 있었기에 그 아이가 제 아이 같았지요.

    다 그렇게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ㅎㅎ

    제가 둔한 것인지 바보인지 모르겠습니다.

    남들은 어리석다고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해 정작 아이는 뒷전인 사람도 있었고~

    특별한 애착없이 직장이라는 자리에만 연연하여 무책임하게 앉아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정작 사랑없는 목자의 모습으로 앉아서 양들의 노동을 갈취하는 그런 모습의 목자로 ~~~

    그것도 모자라 그들은 성적이 오르지 않거나 못하는 아이들은 맡지 않으려

    온갖 구실을 다 붙였답니다.

    그러니 잘하는 저의 학생들을 연결해 주고 그 아이들은 다 제몫이었습니다.

    재밌죠?

    학생도 학생이지만 그 학생들을 가르키는 그들역시 제 아래 있었던 사람들인지라

    제가 안아야 했기에 그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사랑은 사랑을 낳고 더 많은 것을 줌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 아이들의 성적이 오르자 연결연결이 되어서 더 이상 맡을수가 없을 만큼 많은 학생들이 소개되었지요.

    그땐 아버지를 만나기 전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때 아버지를 만났더라면 더 큰 기쁨과 감사로 살았을 것인데~~

    하지만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더 기쁘게 감사하며

    사랑의 꽃을 피우려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양들을 위하여 저를 내어 놓을 수 있는 그런 목자로 새로날 때,

    비로소 아버지께서 가신 길을 거닐며 웃음지을 수 있음을 새삼 가슴에 담아 봅니다.

    목자든 양이든 참으로 중요한 것은 사랑이 담겨있는 본질에서 탈색되지 않아야 함을 가슴깊이 새기면서

    아버지의 사랑에 저를 묻어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 놓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의 빛바랜 모습을 돌이켜 보라는 깨우침이 되어 가슴에 깊이 와 닿습니다.

    공동체에서든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전 어떤 모습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사랑이 없는 도둑의 모습으로 생활하진 않았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싸 안으며 저를 내어 놓았는지요.

    그리고 사랑으로 쌓아올린 성벽에 파아란 풀잎이 자라게 정성을 쏟았는지도 돌이켜 봅니다.

    아버지!

    부족한 저이지만 아버지 닮은 붕어빵이 되어

    늘 사랑이 넘치는 모습의 목자이자 또 사랑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양이되게 하소서.

    목자이든 양이든 늘 아버지의 닮은 붕어빵이 되어

    언제 어디서든 사랑에 저를 내어 놓으며 저를 묻게 하소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아버지의 길을 걷는 기쁨에 모든 것이 승화되게 하시어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 저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처럼 착한 목자의 모습으로 사랑이 넘치는 저가 되게 하시어

    기꺼이 저를 내어 놓는 사랑을 심어 주소서.
    아멘.

  4. user#0 님의 말:


     

    이리저리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바리사이들에게

    목자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그 속에서 저의 모습은 어떤지도 다시금 돌이켜 봅니다.

    바리사이의 모습이 제 모습은 아닌지~~

    양들을 사랑함에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목자!

    형식의 틀에 양들을 가두는 목자!

    내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벌레가 들어있다 생각하고 벌레로 대하는 목자!

    내 욕심만을 채우려하는 목자!

    전 과연 어떤 모습의 목자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보고싶은 것만을 보고,

    하고자 하는 것만을 하면서 사랑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살아온건 아닌지요.

    정작 도둑의 옷을 입고 사랑이 넘치는 목자의 행세를 하진 않았는지를 돌이켜 봅니다.

    예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맘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하루를 이틀이상으로 보내며 정작 저는 잊은채

    정말 바쁘게 생활했던 적이 있었지요.

    새벽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스케줄표에 따라 움직였지만

    힘든 줄도 모르고 기쁘게 움직였답니다.

    부족한 아이들은 저의 개인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그 아이의 성적을 올렸지요.

    지금 생각하면 힘없는 웃음이 나올 뿐입니다.

    무엇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라 저도 아이가 있었기에 그 아이가 제 아이 같았지요.

    다 그렇게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ㅎㅎ

    제가 둔한 것인지 바보인지 모르겠습니다.

    남들은 어리석다고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해 정작 아이는 뒷전인 사람도 있었고~

    특별한 애착없이 직장이라는 자리에만 연연하여 무책임하게 앉아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정작 사랑없는 목자의 모습으로 앉아서 양들의 노동을 갈취하는 그런 모습의 목자로 ~~~

    그것도 모자라 그들은 성적이 오르지 않거나 못하는 아이들은 맡지 않으려

    온갖 구실을 다 붙였답니다.

    그러니 잘하는 저의 학생들을 연결해 주고 그 아이들은 다 제몫이었습니다.

    재밌죠?

    학생도 학생이지만 그 학생들을 가르키는 그들역시 제 아래 있었던 사람들인지라

    제가 안아야 했기에 그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사랑은 사랑을 낳고 더 많은 것을 줌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 아이들의 성적이 오르자 연결연결이 되어서 더 이상 맡을수가 없을 만큼 많은 학생들이 소개되었지요.

    그땐 아버지를 만나기 전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때 아버지를 만났더라면 더 큰 기쁨과 감사로 살았을 것인데~~

    하지만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더 기쁘게 감사하며

    사랑의 꽃을 피우려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양들을 위하여 저를 내어 놓을 수 있는 그런 목자로 새로날 때,

    비로소 아버지께서 가신 길을 거닐며 웃음지을 수 있음을 새삼 가슴에 담아 봅니다.

    목자든 양이든 참으로 중요한 것은 사랑이 담겨있는 본질에서 탈색되지 않아야 함을 가슴깊이 새기면서

    아버지의 사랑에 저를 묻어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 놓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의 빛바랜 모습을 돌이켜 보라는 깨우침이 되어 가슴에 깊이 와 닿습니다.

    공동체에서든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전 어떤 모습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사랑이 없는 도둑의 모습으로 생활하진 않았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싸 안으며 저를 내어 놓았는지요.

    그리고 사랑으로 쌓아올린 성벽에 파아란 풀잎이 자라게 정성을 쏟았는지도 돌이켜 봅니다.

    아버지!

    부족한 저이지만 아버지 닮은 붕어빵이 되어

    늘 사랑이 넘치는 모습의 목자이자 또 사랑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양이되게 하소서.

    목자이든 양이든 늘 아버지의 닮은 붕어빵이 되어

    언제 어디서든 사랑에 저를 내어 놓으며 저를 묻게 하소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아버지의 길을 걷는 기쁨에 모든 것이 승화되게 하시어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 저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처럼 착한 목자의 모습으로 사랑이 넘치는 저가 되게 하시어

    기꺼이 저를 내어 놓는 사랑을 심어 주소서.
    아멘.

  5. user#0 님의 말: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주님!

    성소주일인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말씀에 가슴이 뭉쿨합니다
    생명의 빵으로 오신 당신께서 저를 위해 당신의 목숨까지...

    착한목자이신 주님!
    당신께서 저를 위해 목숨까지 모두 다 내어주셨는데도
    저는 당신께 드릴 것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아무 것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하지만...
    당신을 믿는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하지만...
    입으로만 입니다
    언제나...
    제가 아쉽고 힘들 때만 필요에 의해 당신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당신께 죄만스럽습니다  
    제가 당신께 해드리는 것이라고는 저를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당신을 위해 제가 희생을 하는 것처럼 생색내고 ...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빈 수레가 요란하듯이 제가 그랬습니다 주님!
    언제나 제 멋대로 제 마음대로 ...
    열심한 신앙인인 척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척
    척척박사였습니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 온갖 잘난 척에 보너스로 교만에 거만까지...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말씀을 깊이 새기며
    당신의 사랑에 위로를 받습니다
    힘이 생깁니다 에너지가 넘치네요
    넘치는 에너지로 당신의 말씀을 더 열심히 묵상하며 
    더 열심히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당신의 사랑을 먹고사는 신앙인답게
    꼴값을 하는 신앙인이 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니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아는도다.
    ◎ 알렐루야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묵상하며


    ♬ 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 – Patti Page

  6. guest 님의 말:

    (no content)

  7. user#0 님의 말: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주님!
    복음을 묵상하려 컴 앞에 앉아 있으려니 갑자기 목이 메입니다
    오늘복음말씀을 읽다보니 저의 가슴이 아팠습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말씀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까닭은 요즈음 저의 마음이 너무 아프기때문이지요
    마음만으로는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너무도 힘든 상황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당신을 생각하면 죄스러운 마음도 들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당신께서 원하시는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밉고…
    이런 저런 가정의 일로 머리가 지끈 지끈거립니다
    엉킨 실타레처럼 끝도 보이지 않는 것같은 생각에 우울하지요
    하지만 희망을 가져봅니다
    언제나처럼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는 굳은 믿음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합니다
    반성도 많이 했지요
    세속적인 욕심과 교만으로 당신의 뜻을 거슬린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
    한편으로는 왜 저만 끈임없이 시련을 겪어야 하냐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때도 있지만 잘살고 싶습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서 당신의 자녀답게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말씀에 위로를 받습니다
    양심이 찔리지만 그 양들 안에 저도 포함이 된다는 희망으로
    아니!
    사랑이신 당신께서는 저를 많이 사랑해주실 것이라고
    희망을 가져봅니다
    사랑이신 주님!
    당신께 많은 죄를 짓고 살았지만 용서해주시리라 믿고 싶습니다
    사랑스런 양은 아닐지라도 사랑이신 당신께서는 제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시라고 굳게 믿고 싶습니다
    사랑이신 당신께서는 저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묵상하며
    ♬ 시편 23편 – 글로리아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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