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부활 제4주간 목요일(5/7)


    말씀의 초대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그러므로 사도들을 받아들이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하느님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 그 사람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복음).
    복음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6-20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당신을 대하듯 제자들을 대하라는 당부입니다. 제자들에 대한 처신을 당신에 대한 예우로 받아들이시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분의 애정입니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자들을 섬겼습니다. 사도들 안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성령께서 함께하셨습니다. 초대 교회가 영적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분위기 때문입니다. 박해 시대에도 지도자를 중심으로 일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전통을 지켜 나갔기 때문입니다. 누구라도 사람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려 하면 은총이 도와줍니다. 가족들에게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낸다면 어느 틈에 화목한 가정이 됩니다. 이웃을 예수님처럼 대하는 데 악한 기운이 함께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싫어지고 미워진다면 그 안에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러면 평화를 만나게 됩니다. 사랑과 애정이 ‘주님의 모습’으로 안내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은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입니다. 따뜻함과 ‘긍정적 시각’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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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부활 제4주간 목요일(5/7)


      말씀의 초대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그러므로 사도들을 받아들이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하느님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 그 사람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복음).
      복음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6-20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당신을 대하듯 제자들을 대하라는 당부입니다. 제자들에 대한 처신을 당신에 대한 예우로 받아들이시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분의 애정입니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자들을 섬겼습니다. 사도들 안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성령께서 함께하셨습니다. 초대 교회가 영적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분위기 때문입니다. 박해 시대에도 지도자를 중심으로 일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전통을 지켜 나갔기 때문입니다. 누구라도 사람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려 하면 은총이 도와줍니다. 가족들에게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낸다면 어느 틈에 화목한 가정이 됩니다. 이웃을 예수님처럼 대하는 데 악한 기운이 함께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싫어지고 미워진다면 그 안에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러면 평화를 만나게 됩니다. 사랑과 애정이 ‘주님의 모습’으로 안내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은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입니다. 따뜻함과 ‘긍정적 시각’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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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부활 제4주간 목요일(5/7)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가 안티오키아 교우들에게 설교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는지 알리고 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신 분도 그분이시며, 사울과 다윗을 임금으로 선택하신 분도 주님이시다. 그리고 다윗 가문에서 구세주를 태어나게 하신 분도 그분이라고 전하고 있다(제1독서).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13-25 바오로 일행은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가고,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율법과 예언서 봉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백성을 격려할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바오로가 일어나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살이할 때에 그들을 큰 백성으로 키워 주셨으며,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약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의 소행을 참아 주시고,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시어 그 땅을 그들의 상속 재산으로 주셨는데,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뒤에 사무엘 예언자 때까지 판관들을 세워 주시고, 그다음에 그들이 임금을 요구하자, 하느님께서는 벤야민 지파 사람으로서 키스의 아들인 사울을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임금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를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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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고즈녁한 밤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오월의 밤입니다.

    무덥기까지 했던 낮과는 달리 지금은 볼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에 저를 맡겨봅니다.

    환히 비친 달빛이 저의 빈마음을 달래주듯 그렇게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밤입니다.

    마당을 돌면서 말씀을 가슴에 꼭꼭 눌러 담아 보았습니다. ㅎㅎ

    하지만 아직은 갈라지고 작은 그릇인지라

    담는 듯 하지만 새기도 하고 넘치기도 함을 알고 있답니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데 맘이 무거웠습니다.

    아버지!

    늘 저희곁에 함께 하심에 감사하면서 아버지의 체온을 느끼고 있는데

    어떻게 보여줘야 하나요? 정말 기쁘고 행복한 모습이 제 생활의 일과인데

    다른 이들은 가식이라 하기도 합니다.

    나와~ 아니 그 무리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ㅎㅎ 이리 말씀드리는 것조차 잘못이지요?

    자식이 아버지를 사랑함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두 얼굴의 가식은 들통나기 마련임을 모를까요?

    다른 뭔가를 바라는 자식은 부모에게 두 모습을 보일 수 있겠지만,

    가슴으로 사랑하는 자식은 속으로 눈물짖더라도 부모의 입장을 어렵게 만들진 않거든요.

    설사 잘못된 일이 눈에 보일지라도 그냥 참지요.

    많은 말을 하기보다는 침묵을 사랑하면서~~

    차라리 그 힘을 아껴 아버지께 드리려고 애써 참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모습 그대로를 닮으려 합니다.

    그리고 삶에서 그 기쁨이 나오고 사랑이 나옵니다.

    가식이 없고 넘치는 기쁨과 당당함과 자신감으로 하루하루가 소중할 뿐이지요.

    아버지를 사랑함에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말씀을 가슴에 담고

    깨달음속에서 저를 성숙시키며 회후의 눈물도 흘리면서

    제게 주어진 오늘에 충실합니다.

    삶속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실천하려는 작은 의지로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려 노력한답니다.

    물론 제가 눈을 열고 맘을 열어야만 아버지의 모습을 뵙고

    그 모습을 닮아가는 저가 됨을 알지요.

    아버지는 삶의 기준이자 제가 가는 길을 밝혀 주시는 등대랍니다.

    어렸을 때 그리 넉넉한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집에서 키우던 닭을 잡을 때, 늘 빠지지 않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닭을 잡아 가마솥에서 푹 익힌다음, 친정 아버지께서 꼭 먼저 한일이 있었지요.

    통통한 다리를 제게 먼저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ㅎㅎ

    다리 두 개를 떼서 뒤란으로 저를 데리고 가서 몰래 먹이셨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살에 소금을 찍어 입에 넣었을 때의 그 맛!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그때처럼 맛있었던 닭은 없었던 것 같기도~~

    고사리 손으로 찢어서 아버지의 입에 넣으려면 속이 안좋다고 하신 그 말이

    가슴아리게 와 닿을 정도로 어른이 되었습니다.

    배고프던 시절에 얼마나 드시고 싶으셨을까요.

    그렇게 다 먹고 나면 제 입을 닦아 주시고 심부름을 시켰지요.

    ㅎㅎ 잠깐 놀다가 부르면 오라는 말을 당부하면서~~

    그리곤 미리 살을 다 발라서 큰 쟁반에 담아 내셨지요.

    눈치 채지 못하게~~

    엄마가 늘 이상하다고 뭐라 해도 아버진 저와 눈을 맞추며 서로 웃고 말지요.

    그때도 제게 가장 많이 먹이셨습니다.

    그런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자란 저가

    지금은 아들에게 그리하고 있습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그저 우러나오는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배운데로 합니다. 사랑을 배운데로 한다니까 이상하지만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의 모습을 닮게 되지요.

    그런 사랑을 누가 감히 함부로 얘기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형식적인 자기 교만에서 나오는 것이라 하면서

    자기 기준에서 쉬이 던지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그럴때면 가슴이 아파오지요.

    내가 그렇다고 남도 그런 것은 아닌데~~

    그쵸?

    사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버지께로 향한 사랑처럼 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그리는 맘으로 해야 함인데

    부족한 저이기에 아직도 미숙한 점이 많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토록 아버지를 사랑하면서 그리 하지 않는다고 제게 뭐라 하는 이들을

    더 이상 감당하고 싶지 않기에 지금은 침묵속에 그저 바라보고 있음을 반성합니다.

    그 또한 제가 인내하고 감수해야 할 몫임을~~

    또한 그런 작은 일에 상처를 받고 아파하면

    결국은 제가 아버지의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못함이겠지요.

    그냥 신앙인을 신앙인으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면서 미소의 침묵으로 더 깊은 저가 되어야 함을 압니다.

    그들 또한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이니까요.

    저의 사소한 감정이 우선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그 사랑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이고

    나아가서는 좋고 미움의 선을 없애 버리는 것이겠지요.

    그저 가슴에 담고 겸손과 사랑으로~~

    섬김의 자세로 침묵을 사랑하며 저를 죽이고 감사한 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려 다짐합니다.

    지나간 오늘은 두 번다시 없음을 깊이 깨달아

    신앙인으로서 가장 빛나는 돌이되어 모두를 아버지의 사랑속에 담으렵니다.

    그 어떤것도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해 감수하신 그 고통에 견줄순 없으니까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겸손과 섬김의 자세를 몸소 보여주신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라고~~

    여러 가지 생각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지 말아야 함도 다시금 새겨 봅니다.

    저 자신을 보지 못하고 상대에게만 모든 고리를 묶으면서

    아버지를 들먹이는 그런 부족한 저는 되지 말아야 함도 가슴깊이 새겨봅니다.

    하루하루 신앙을 고백하면서 과연 모든 이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대했는지요.

    저의 이기적인 교만으로 그들을 배제하진 않았는지요.

    아버지께서 몸소 보여주신 사랑속에서 제가 과연 그리 행하고 깨우침대로 살아왔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믿음을 고백하는 저가 바른 모습으로 서게 하소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게 하시어

    솔직한 저의 고백의 힘으로 늘 깨달음 속에서 새로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삶속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실천하는 저가 되게 하시어

    더 우거진 사랑의 느티나무가 되게 하소서.

    또한 모든 사람을 받아들임에 제 사소한 감정이 우선이 되지 않게 하시어

    작은 가슴이나마 많은 이들을 안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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