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
그분의 평화에는 일치와 기쁨이 있다.
어떤 두려움도 사라지게 한다.
성령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산란케 해서는 안 된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그분의 평화를 만나게 된다(복음).
복음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7-31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평생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한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어떤 이가 그에게 질문했습니다.
“수사님은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데 어찌 그리 밝게 사시는지요?”
수사님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지나간 일은 슬퍼하지 않습니다.
닥치지 않은 걱정을 미리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지금 일’에만 전념한답니다.”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하면 누구나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과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날의 실수’이건만 아직도 붙잡고 있습니다.
‘지나간 고통’이건만 여전히 아픔을 버리지 못합니다.
평화와 기쁨을 방해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들입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당신의 평화’를 세상의 평화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불안이 없고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평화의 본질은 아닙니다.
고통과 아픔을 겪지 않는 것이 평화로운 인생도 아닙니다.
주님의 평화는 기쁨에 있습니다. 그분께서 주시는 ‘삶의 기쁨’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내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웬만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주님의 에너지가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사셨던 수사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출처 매일 미사-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
그분의 평화에는 일치와 기쁨이 있다.
어떤 두려움도 사라지게 한다.
성령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산란케 해서는 안 된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그분의 평화를 만나게 된다(복음).
복음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7-31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평생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한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어떤 이가 그에게 질문했습니다.
“수사님은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데 어찌 그리 밝게 사시는지요?”
수사님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지나간 일은 슬퍼하지 않습니다.
닥치지 않은 걱정을 미리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지금 일’에만 전념한답니다.”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하면 누구나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과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날의 실수’이건만 아직도 붙잡고 있습니다.
‘지나간 고통’이건만 여전히 아픔을 버리지 못합니다.
평화와 기쁨을 방해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들입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당신의 평화’를 세상의 평화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불안이 없고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평화의 본질은 아닙니다.
고통과 아픔을 겪지 않는 것이 평화로운 인생도 아닙니다.
주님의 평화는 기쁨에 있습니다. 그분께서 주시는 ‘삶의 기쁨’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내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웬만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주님의 에너지가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사셨던 수사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출처 매일 미사-
바오로는 이방인들에게 열정적으로 선교했다.
그의 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유다인들이
사람들을 설득하여 바오로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바오로는 그들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간다.
그에게는 환란이 계속된다.
하지만 바오로는 좌절하지 않는다(제1독서).
제1독서
<두 사도는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교회에 보고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4,19-28
그 무렵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에서 유다인들이 몰려와
군중을 설득하고 바오로에게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다 버렸다.
그러나 제자들이 둘러싸자 그는 일어나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르나바와 함께 데르베로 떠나갔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은 다음,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물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부활 제5주간 화요일(5/12)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 그분의 평화에는 일치와 기쁨이 있다. 어떤 두려움도 사라지게 한다. 성령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산란케 해서는 안 된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그분의 평화를 만나게 된다(복음).
복음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7-31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평생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한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어떤 이가 그에게 질문했습니다. “수사님은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데 어찌 그리 밝게 사시는지요?” 수사님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지나간 일은 슬퍼하지 않습니다. 닥치지 않은 걱정을 미리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지금 일’에만 전념한답니다.”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하면 누구나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과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날의 실수’이건만 아직도 붙잡고 있습니다. ‘지나간 고통’이건만 여전히 아픔을 버리지 못합니다. 평화와 기쁨을 방해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들입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당신의 평화’를 세상의 평화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불안이 없고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평화의 본질은 아닙니다. 고통과 아픔을 겪지 않는 것이 평화로운 인생도 아닙니다. 주님의 평화는 기쁨에 있습니다. 그분께서 주시는 ‘삶의 기쁨’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내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웬만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주님의 에너지가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사셨던 수사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출처 매일 미사-
부활 제5주간 화요일(5/12)
말씀의 초대
바오로는 이방인들에게 열정적으로 선교했다. 그의 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유다인들이 사람들을 설득하여 바오로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바오로는 그들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간다. 그에게는 환란이 계속된다. 하지만 바오로는 좌절하지 않는다(제1독서).
제1독서
<두 사도는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교회에 보고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4,19-28 그 무렵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에서 유다인들이 몰려와 군중을 설득하고 바오로에게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다 버렸다. 그러나 제자들이 둘러싸자 그는 일어나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르나바와 함께 데르베로 떠나갔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은 다음,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물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평화~~~
내 마음의 평화는 어떤 색을 띄고 있을지를 생각해 봅니다.
사랑과 용서에서 오는 그런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진한 색인지를 돌이켜 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화가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하시지요.
정말 맞습니다.
전엔 느끼지 못한 그런 잔잔한 물결이 제 몸에서 일고 있고
늘 기쁨의 천사가 머물고 있음을 몸으로 느낍니다.
그래서 일을 함에 있어 어떤 것이든 두렵거나 어렵거나 좌절하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스며들어서 그런가 봅니다. ㅎㅎ
손님들이 제게 많은 고민을 털어 놓습니다.
제가 무엇을 얼마나 알기에 제게 그러냐고 물으면
그냥 편안해 보이고 무언가 본인과는 다른 생각을 들을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이 어디서 나오냐고~~
저의 여유로움과 힘이 어디서 오냐고 묻습니다 아주 진지하게~~.
그럴때마다 전 너무나 작아지지요.
입으로는 아버지 때문이라 하지만 사실 잘하지 못함이 뇌리를 스치기에
아버지께 죄송하거든요.
얼마전 친정에 갔다가 저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신 산소를 찾았습니다.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아주 아늑한 밭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봄이 오면서부터 겨울이 되기 전까지는 꽃이 사라지지 않는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늘 손질하고 그곳에 사람의 손길이 머무니까 그런가 봅니다.
너무나 정겹고 이뻐서 좋아라 했더니 친정 아버지께서 그러더군요.
“니가 맘이 참 편한가보다. 누구든 맘이 평화로우면 모든게 다 이쁘게 보이지.” 라고 하시며
제가 신앙생활하는 것에 대해 참 흐뭇해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평화가 사그라지지 않게 잘 관리하라 하셨지요.
아무리 좋은 선물이라도 제가 그 가치를 담지 못하면
썩은 동앗줄에 불과하다고 하시면서 저더러 지금보다 더 열심히 잘 하라고~~
그리고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또한 그 사람 몫이라 했습니다.
마음에 평화가 머물면 사랑과 용서가 꽃피고 그러면 늘 기쁨과 행복이 샘솟나 봅니다.
스스로 난 평화롭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아님도 압니다.
평화가 있는 사람은 그의 삶에서 뭔가 다름을 느끼거든요.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화가 바로 그런 힘이 샘솟게 하지요.
아버지!
아직도 부족함이 많지만 아버지께서 주신 평화를 가슴에 담아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면서 기쁨이 넘치는 고백의 힘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늘 주어진 삶에 빛을 더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맞는 말씀임을 이젠 몸으로 느끼지만 사실 전에는 몰랐습니다.
제 맘을 다하지 않으면서 아니라 고개를 흔들기도 했었지요.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얻는 것이라 생각했던 저의 교만을 반성합니다.
아버지!
늘 부족한 모습으로 앉아있지만 아버지께서 주시는 평화에 몸을 담아
사랑과 용서의 꽃을 몸으로 피게 하시어
늘 기쁨속에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평화의 물이 되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잔잔한 물결처럼 그렇게 흐르는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no cont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