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부활 제6주간 화요일(5/19)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신다. 제자들은 근심이 가득하다.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기에 스승님께서는 보호자께서 오실 것을 알려 준다. 그분은 진리의 성령이시다. 그분께서는 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복음).
    복음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5-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남기신 유언입니다. 죄에 대해 잘못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을 죄와 연관시켜서는 안 된다는 암시입니다. 믿음의 길은 언제나 ‘예수님의 가르침’과 연관되어야 합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만큼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이것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큰 죄’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파괴하고 있다면 ‘더욱 큰 죄’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을 ‘새로운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의롭다는 것은 은총이 감싸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랑을 베풀고 나누는 사람이기에 주님의 힘이 보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 역시 그런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보답일 것입니다. 보호자는 성령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은총과 함께 오십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도록 깨달음의 은총과 함께 오시는 분이십니다. 고집이 심하면 신앙생활은 쉽게 망가집니다.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말도 가끔은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고집을 신념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렇게 제자들의 변화를 주도하셨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은 ‘언제나’ 고집보다 바른 자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동행 / 김정식(로제리오)





이 글은 카테고리: 오늘의독서·묵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부활 제6주간 화요일(5/19)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신다. 제자들은 근심이 가득하다.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기에 스승님께서는 보호자께서 오실 것을 알려 준다. 그분은 진리의 성령이시다. 그분께서는 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복음).
      복음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5-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남기신 유언입니다. 죄에 대해 잘못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을 죄와 연관시켜서는 안 된다는 암시입니다. 믿음의 길은 언제나 ‘예수님의 가르침’과 연관되어야 합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만큼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이것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큰 죄’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파괴하고 있다면 ‘더욱 큰 죄’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을 ‘새로운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의롭다는 것은 은총이 감싸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랑을 베풀고 나누는 사람이기에 주님의 힘이 보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 역시 그런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보답일 것입니다. 보호자는 성령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은총과 함께 오십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도록 깨달음의 은총과 함께 오시는 분이십니다. 고집이 심하면 신앙생활은 쉽게 망가집니다.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말도 가끔은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고집을 신념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렇게 제자들의 변화를 주도하셨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은 ‘언제나’ 고집보다 바른 자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동행 / 김정식(로제리오)
    
    
    
    
    
     
    

  2. guest 님의 말:


    부활 제6주간 화요일(5/19)


      말씀의 초대
      바오로 일행은 군중의 고발로 잡혀간다. 관리들은 그들을 매질하고 감옥에 가두었다. 하지만 그날 밤 기적이 일어난다. 지진이 일어나 감옥 문이 열린 것이다. 놀란 간수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바오로의 말을 듣고 회개한다. 그와 그의 가족은 세례를 받았다(제1독서).
      제1독서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6,22-34 그 무렵 [필리피의] 군중이 합세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공격하자, 행정관들은 그 두 사람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지시하였다. 그렇게 매질을 많이 하게 한 뒤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이러한 명령을 받은 간수는 그들을 가장 깊은 감방에 가두고 그들의 발에 차꼬를 채웠다. 자정 무렵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감옥 문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다. 수인들이 달아났으려니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때에 바오로가 큰 소리로,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간수가 횃불을 달라고 하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그리고 간수와 그 집의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간수는 그날 밤 그 시간에 그들을 데리고 가서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이어서 그들을 자기 집 안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동행 / 김정식(로제리오)
    
    
    
    
    
     
    

  3. guest 님의 말:

    “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

    주님!
    삶이란...
    산다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는 오늘입니다
    참 어렵습니다
    당신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외롭고 공허한 까닭은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아서라는 자책이 듭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세속의 근심 걱정이 저의 머릿 속을
    짓누르는 것은 저에게 신앙심이 부족해서지요?
    참 어렵습니다
    이일이 해결되면 저 일이 생기고 저 일이 해결되면
    또 다른 일들이 끊임없이 생기고 해결하느라 지치고
    계속되는 복잡한 일들로 신앙생활마저 의미가 없게 되지요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저에게 믿음이 부족해서지요?
    일확천금을 꿈꾸며 로또복권에 미련을 두는 것처럼
    소박한 꿈같은 것은 애저녁에 저의 마음 속에는 없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하루하루의 삶을 도박처럼 일확천금에 목숨을 거는 듯하지요
    저의 마음이 소박하지 않고 욕심으로 가득하니 행복도 
    저의 마음 속에서는 느껴지지 않나 봅니다
    하루하루의 삶을 지치고 공허하다는 생각만이 저의 마음 속에 
    가득하니 당신을 믿는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생활을 한지가 얼마인데....
    그동안의 신앙생활도 봉사활동도 신심행위도 ...
    모두 다 물거품이 된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저의 부족한 신앙심 때문에....
    당신을 믿는 마음이 부족해서...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해서
    결국은 모든 책임이 저에게 있었네요
    저의 마음이 행복하지 않는 이유가
    저의 마음이 허전하고 공허한 까닭이
    저의 마음이 우울한 까닭이...
    모든 책임이 저에게 있었네요 주님!
    모두 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
    말씀을 깊이새기며
    당신의 자녀임을 깨달아 당신의 말씀으로 하루하루를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야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소박하고 검소하고 가진 것없어도 감수하고 당신만을 의지하며
    한 평생을 사신 성모님처럼
    저도 한 가정의 엄마임을 깨달아 우리가정에 “해”처럼 “달”처럼
    환하게 비추는 사랑스런 아내이지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당신과 남편과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당신의 자녀답게 씩씩하게
    성모님의 자애로운 모습과 인내심과 헌신적인 사랑을 본받으며
     소박하고 속 깊은 성모님을 닮아야한다고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의 영을 보내리니,
    그분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 알렐루야
    아멘

    “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

    묵상하며

  4. guest 님의 말: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다.

    1.말씀읽기: 요한16,5-11 성령께서 하시는 일

    2. 말씀연구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 바로 하느님의 일이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사도들이 옳은 것을 위해서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성령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5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께로 돌아가고자 하시지만 제자들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슬퍼하고 있습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부활하신 후 당신께서 계셨던 곳으로 가실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묻기가 두려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고자 하시는 길과 자신들이 가고자 하는 길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활을 체험하고 성령께서 내려오시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당당히 걸어 예수님께로 가게 될 것입니다.


    6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제자들은 세상적인 영광을 추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자기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로, 자신들에게 꿈과 영광을 주실 분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가고자 하시는 길은 자신들의 꿈을 이루고, 영광스럽게 해 줄 길이 아니라 수난과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고통의 길이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 “절망으로” 잘 드러나게 됩니다.


    7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희생제사로 구원된 세상을 성령으로 보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의 당신의 사명을 마치시고 다시 하느님께로 올라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악을 이기셨습니다. 이제 진리를 행하는 사람들은 악이 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선을 행하다가 악에 부딪쳐도 힘을 내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진리로 향하는 이들에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그냥 놔두시지 않습니다. 늘 함께 계십니다. 보호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성령께서는 세상의 잘못을 인정하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이 세상에 관하여 하시는 증언은 세상의 죄와 심판에 대한 선고입니다. 세상의 죄는 예수님을 거부함으로써 계시를 통해 다가오는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등을 돌린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죄는 십자가를 통해 제거되었고,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거부한다면 그 죄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됩니다.


     공동체 안에서도 진리를 행하기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동체를 돌보지 않고,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일방적으로 매도합니다. 하지만 진리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파합니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의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자신도 타협할 것 같기에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령 안에서 살아가기에 옳은 것을 향해서, 진리를 향해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무딘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교만한 바리사이의 기도처럼 그렇게 오만한 생각으로 주님께로 향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니 예수님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분이고, 백성을 선동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단죄했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자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합리화를 시킵니다. 하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할 수 있는 그런 내가 되어야 합니다.


    10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유다인들은 단식과 기도와 자선을 베푸는 사람들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에게 보이기 위한 단식과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자선은 결코 의로운 행동은 아닙니다. 의로운 행동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고, 남에게 보이는 기도보다는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가 의로운 이의 기도이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자선보다는 하느님께 대한 열정 때문에 자신의 것을 봉헌하는 것이 의로운 이의 자선입니다.


     비록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죄인으로 단정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의로운 분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기에 하느님께로 가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 하느님께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기에 그것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예수님을 죄인으로, 죄인으로서 돌아가신 분으로 생각하고, 그들이 보기에 불경스러운 분을 처형했기에 그들 은 결코 의롭다고 판명 받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할지라도 말입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와 함께 하시고 돌보아 주시기에 교회의 활동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참된 하느님이심을,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힘 있는 이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서 정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결코 정의가 아닙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힘이니 지위가 있어서 이것이 옳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듣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말하는 나 자신도 알고 있습니다. 손바닥으로 어떻게 하늘을 가릴 수 있겠습니까?


    11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한 후, 유다인들은 이것으로 예수님의 문제를 다 처리하였다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심으로써 승리를 거두시고, 사탄을 멸망시키셨습니다. 사탄은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저항하며 사람들을 멸망으로 유혹을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승리가 드러납니다. 어떤 박해를 겪을지라도, 또 세상이 어떤 것을 정의라고 우길지라도, 승리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정말 심판받을 사람은 바로 이 세상의 권력자입니다. 하느님 편에 서지 않은 사람, 십자가의 길을 걷지 않는 사람은 결국 예수님을 잘못 생각하는 사람이고, 하느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참된 의로움이란 어떤 모습입니까?


    ② 내 자신이 합리화시키면서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guest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