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삼위일체 대축일(6/7)


    삼위일체 대축일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께서 같은 본성의 한 하느님이시라는 신비를 기리는 날이다. 이 대축일의 기원은 4세기 초다. 교회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아리우스 이단을 물리친 뒤 이 축일을 지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1334년 요한 22세 교황은 이 삼위일체 대축일을 교회의 공식 축일로 지정하면서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에 지내게 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한 분 하느님 안에 계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위격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세 위격은 높고 낮음도 없는 일치의 신비 속에 계십니다. 오늘날 일치는 우리 모두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일치에 대한 깨달음과 도우심을 청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확신을 심어 주셨다. 그들은 이제 예전의 제자들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며 당신의 가르침을 전하라고 하신다(복음).
    복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16-20 그때에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께서 한 분 하느님이심을 뜻하는 말입니다. 위격은 인격이란 말과 비슷합니다. 인격이 산 사람에게 적용된다면 위격은 영혼에 응용하는 한자 말입니다. 이렇듯 삼위일체 교리는 단순합니다. 막연함만으로 다가가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하느님에 대해 온전히 알 수는 없지만 무작정 덮어 두는 것도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부모님을 완벽하게 아는 자녀는 없습니다. 나이 들면서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다 혼인해서 자식을 낳게 되면 비로소 부모의 심정을 깨치게 됩니다. 하느님을 알게 되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처음부터 알 수는 없습니다. 세례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깨달아지는 것이 순서입니다. 잘못이 많은데도 끊임없이 베풀어 주시는 은총을 통해 그분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깨달음에는 지식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는 데 이론이 필요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분들이 어떻게 사셨고 ‘어떻게 대해 주셨는지’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삼위일체는 이론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존재 모습’을 표현한 용어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삼위일체 안에서 묵상해야 할 메시지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완벽한 일치로 계신다는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을 우리도 가정 안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삼위일체 대축일의 교훈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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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삼위일체 대축일(6/7)


      삼위일체 대축일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께서 같은 본성의 한 하느님이시라는 신비를 기리는 날이다. 이 대축일의 기원은 4세기 초다. 교회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아리우스 이단을 물리친 뒤 이 축일을 지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1334년 요한 22세 교황은 이 삼위일체 대축일을 교회의 공식 축일로 지정하면서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에 지내게 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한 분 하느님 안에 계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위격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세 위격은 높고 낮음도 없는 일치의 신비 속에 계십니다. 오늘날 일치는 우리 모두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일치에 대한 깨달음과 도우심을 청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확신을 심어 주셨다. 그들은 이제 예전의 제자들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며 당신의 가르침을 전하라고 하신다(복음).
      복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16-20 그때에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께서 한 분 하느님이심을 뜻하는 말입니다. 위격은 인격이란 말과 비슷합니다. 인격이 산 사람에게 적용된다면 위격은 영혼에 응용하는 한자 말입니다. 이렇듯 삼위일체 교리는 단순합니다. 막연함만으로 다가가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하느님에 대해 온전히 알 수는 없지만 무작정 덮어 두는 것도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부모님을 완벽하게 아는 자녀는 없습니다. 나이 들면서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다 혼인해서 자식을 낳게 되면 비로소 부모의 심정을 깨치게 됩니다. 하느님을 알게 되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처음부터 알 수는 없습니다. 세례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깨달아지는 것이 순서입니다. 잘못이 많은데도 끊임없이 베풀어 주시는 은총을 통해 그분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깨달음에는 지식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는 데 이론이 필요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분들이 어떻게 사셨고 ‘어떻게 대해 주셨는지’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삼위일체는 이론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존재 모습’을 표현한 용어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삼위일체 안에서 묵상해야 할 메시지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완벽한 일치로 계신다는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을 우리도 가정 안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삼위일체 대축일의 교훈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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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삼위일체 대축일(6/7)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 우주를 만드시고 사람을 창조하셨다. 이처럼 큰일을 하신 분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합당하게 주님을 섬겨야 한다. 그분께서 가르쳐 주신 것을 은혜로이 받들어야 한다. 자손들에게 규정과 계명들을 알리고 잘 지키도록 가르쳐야 한다(제1독서). 하느님의 인도를 받는 이는 모두 그분의 자녀들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보내시어 바른길로 인도하신다. 두려움의 주님이 아니라 아버지이신 주님을 깨닫고 섬기도록 이끌어 주신다. 이제 믿는 이들은 하느님의 상속자가 되었다(제2독서).
      제1독서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다. 다른 하느님은 없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4,32-34.39-4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제, 하느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너희가 태어나기 전의 날들에게 물어보아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물어보아라. 과연 이처럼 큰일이 일어난 적이 있느냐? 이와 같은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도 너희처럼 살아남은 백성이 있느냐? 아니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너희가 보는 가운데 너희를 위하여 하신 것처럼, 온갖 시험과 표징과 기적, 전쟁과 강한 손과 뻗은 팔과 큰 공포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 가운데에서 데려오려고 애쓴 신이 있느냐?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은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14-17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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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있는 그대로 가슴으로 받아들이면 단순하게 자리잡을 수도 있을것 같은데

    그냥 막연함으로~~

    즉 이웃의 일이 되어 제게 다가오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늘 새기고 새기지만 아버지의 그 사랑을 아마도 가슴 가득 담기엔 아직 부족한가 봅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자주 하셨던 말이 생각납니다.

    꼭 너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보면 내맘 알거라고~~ ㅎㅎ

    그땐 제가 그랬답니다.

    “난 나같은 딸이면 좋겠다. 뭐” 라고 했지요.

    이렇듯 부모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자랐는데

    제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이젠 알 것 같습니다.

    부모의 그 깊은 사랑을~~

    아마도 삼위일체 교리도 그런 것 같습니다.

    때가 되어 성숙해지면 가슴으로 밀려오는 그런 뜨거움을 깨달을 수 있음을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흐르는 세월에 저를 맡긴다면 언제까지고 깨닫지를 못하겠지요.

    제가 자라 아이를 낳고 부모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듯이

    늘 말씀속에서 저를 비추고 흐트러진 모습을 가다듬으며

    아버지의 자취를 알아가려 노력할 때

    한몸의 일치처럼 삼위일체 교리도 사랑이 되어 안기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늘 안개속을 걸으며 헤매는 저가 되겠지요.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는 그 모습이 사랑임을 이젠 알 것 같습니다.

    힘을 싫어주심도 알 것 같습니다.

    가심이 가심이 아니라 늘 제곁에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압니다.

    아버지 곁으로 가신 고 김수환 추기경님은 “밥이 되고 싶다.” 라고 하셨답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밥이 되고 싶다.

    참 와 닿는 말입니다.

    삼위일체를 가슴으로 고백하면서 그 모습이 삶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사랑을 실천하면서 배고픈이의 밥으로 살아가는 삶이

    삼위일체를 고백하는 사랑넘치는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삶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증언하면서 남이 뭐라하든

    그를 위해 저를 내어주는 그런 모습으로 나아가야 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아버지의 딸은 아직 그리 하질 못하고 있음도 고백합니다.

    사랑의 유권자가 자기의 의무를 실행할 권한이 있듯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제게도 그러한 사랑의 의무가 있음인데

    제가 움직이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면서 ‘남이 하겠지~’ 라는 태도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요.

    그냥 있어도 채워주는 줄로 착각하면서 사랑의 함선에 구멍이 나 물이 들어와도

    모르고 그저 먼 망망대해만 바라보면서

    아버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를 반성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삼위일체 대축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이 제 뇌리를 스칩니다.

    그러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면서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

    가슴 한구석에 깊이 자리잡았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고백하면서 정말 깨달음으로 하였는지를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늘 깨어있었는지요.

    그저 앉아서 머리만 까딱거리면서 이해되지 않는다고 답답해 하진 않았는지요.

    제가 노력하면 안될 것이 없음을 알면서 진정 그리하였는지를 반성합니다.

    제 사랑의 수치가 얼마였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한번에 이해하지 못하듯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신비도 그러함을 깨닫지 못한것은 아닌지요.

    아버지!

    아직은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저에게 눈을 뜨게 하시어

    더 열심히 말씀속에 머무르면서 저를 돌아보게 하소서.

    삶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게 하소서.

    누가 뭐라든 사랑의 조각배에 선장이 되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노에서 손을 떼지 않는 저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남이 변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제가 변함으로 삼위일체 교리속에서 더 큰 사랑을 머금는 저가 되어

    세상속에서 신앙의 꽃을 피우게 하소서.

    삼위일체의 봉오리에서 살며시 올라오는 꽃수술이 되게 하소서.

    아멘.

  4. user#0 님의 말: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있는 그대로 가슴으로 받아들이면 단순하게 자리잡을 수도 있을것 같은데

    그냥 막연함으로~~

    즉 이웃의 일이 되어 제게 다가오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늘 새기고 새기지만 아버지의 그 사랑을 아마도 가슴 가득 담기엔 아직 부족한가 봅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자주 하셨던 말이 생각납니다.

    꼭 너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보면 내맘 알거라고~~ ㅎㅎ

    그땐 제가 그랬답니다.

    “난 나같은 딸이면 좋겠다. 뭐” 라고 했지요.

    이렇듯 부모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자랐는데

    제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이젠 알 것 같습니다.

    부모의 그 깊은 사랑을~~

    아마도 삼위일체 교리도 그런 것 같습니다.

    때가 되어 성숙해지면 가슴으로 밀려오는 그런 뜨거움을 깨달을 수 있음을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흐르는 세월에 저를 맡긴다면 언제까지고 깨닫지를 못하겠지요.

    제가 자라 아이를 낳고 부모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듯이

    늘 말씀속에서 저를 비추고 흐트러진 모습을 가다듬으며

    아버지의 자취를 알아가려 노력할 때

    한몸의 일치처럼 삼위일체 교리도 사랑이 되어 안기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늘 안개속을 걸으며 헤매는 저가 되겠지요.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는 그 모습이 사랑임을 이젠 알 것 같습니다.

    힘을 싫어주심도 알 것 같습니다.

    가심이 가심이 아니라 늘 제곁에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압니다.

    아버지 곁으로 가신 고 김수환 추기경님은 “밥이 되고 싶다.” 라고 하셨답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밥이 되고 싶다.

    참 와 닿는 말입니다.

    삼위일체를 가슴으로 고백하면서 그 모습이 삶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사랑을 실천하면서 배고픈이의 밥으로 살아가는 삶이

    삼위일체를 고백하는 사랑넘치는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삶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증언하면서 남이 뭐라하든

    그를 위해 저를 내어주는 그런 모습으로 나아가야 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아버지의 딸은 아직 그리 하질 못하고 있음도 고백합니다.

    사랑의 유권자가 자기의 의무를 실행할 권한이 있듯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제게도 그러한 사랑의 의무가 있음인데

    제가 움직이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면서 ‘남이 하겠지~’ 라는 태도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요.

    그냥 있어도 채워주는 줄로 착각하면서 사랑의 함선에 구멍이 나 물이 들어와도

    모르고 그저 먼 망망대해만 바라보면서

    아버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를 반성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삼위일체 대축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이 제 뇌리를 스칩니다.

    그러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면서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

    가슴 한구석에 깊이 자리잡았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고백하면서 정말 깨달음으로 하였는지를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늘 깨어있었는지요.

    그저 앉아서 머리만 까딱거리면서 이해되지 않는다고 답답해 하진 않았는지요.

    제가 노력하면 안될 것이 없음을 알면서 진정 그리하였는지를 반성합니다.

    제 사랑의 수치가 얼마였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한번에 이해하지 못하듯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신비도 그러함을 깨닫지 못한것은 아닌지요.

    아버지!

    아직은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저에게 눈을 뜨게 하시어

    더 열심히 말씀속에 머무르면서 저를 돌아보게 하소서.

    삶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게 하소서.

    누가 뭐라든 사랑의 조각배에 선장이 되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노에서 손을 떼지 않는 저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남이 변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제가 변함으로 삼위일체 교리속에서 더 큰 사랑을 머금는 저가 되어

    세상속에서 신앙의 꽃을 피우게 하소서.

    삼위일체의 봉오리에서 살며시 올라오는 꽃수술이 되게 하소서.

    아멘.

  5. user#0 님의 말: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주님!

    삼위일체 대축일 복음을 묵상하면서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말씀에 위로를 받습니다
    용기도 생기고 날아갈 것같은 마음 ….
    오랫만에…
    정말 오랫만에 복음묵상을 합니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지요
    슬프고 우울하고….
    시어머니께서 중환자실에서 한달동안 계시다 돌아가셨거든요
    오늘도 보름상망 제사를 지내러 시댁에 갑니다
    아직도 어머니께서 살아 계신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친정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시어머니를 많이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막내며느리라 사랑도 많이 받고 특별히 시집살이라는 것도 하지 않고…..
    복음을 묵상하면서 생각해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아주 많이
    시어머님의 빈자리가 느껴집니다
    십 여년동안 했던 복음묵상을 하지 못할만큼….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슬펐는데 그때는 복음묵상을 했는데…..
    요즈음….
    우울하고 인생무상을 새삼 느낍니다
    그만큼 시어머님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제….
    다시 훌훌 털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보약도 먹으며 해야겠다고 하면서도 벼르던 아쿠아로빅도 시작했지요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말씀에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려고 생각합니다
    용기를 갖고 슬퍼하는 것만이 시어머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는 …
    당신의 사랑을 생각하며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행복하게 기쁘게 살고 싶습니다 주님!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묵상하며
    시어머님께서 당신의 자비로 지옥벌을 면하고 천국의 문에 들어
    가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하느님의 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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