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6/16)


    말씀의 초대
    참사랑은 용서다. 원수까지도 용서하는 행위다. 미운 마음을 움켜쥐고 있다면 용서가 되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다 같이 햇볕을 주시고 비를 내려 주신다. 하늘의 아버지를 기억하며 용서를 실천해야 한다(복음).
    복음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무심코 읽지만 놀라운 말씀입니다.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을는지요?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세상에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면 어찌 하늘과 땅이 돕지 않겠습니까? 원수는 원한이 맺힌 사람입니다. 언젠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날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한쪽은 원수라 생각해도 상대방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쌍방이 모두 ‘원수로 여기는 관계’는 많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말만 원수였지 실은 미운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미움을 털고 나면 또 이웃이 될 사람들입니다. 미움의 출발도 하찮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상대를 잘 몰랐기에 생겨났습니다. ‘알았다’ 하더라도 잘못 알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지난날을 지우고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사랑하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서운하고 섭섭해도 마음을 닫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행동’이 쌓여 미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용서의 출발은 닫힌 마음을 ‘여는 행위’입니다. 여는 순간 은총의 햇볕이 들어갑니다. 누구에게나 ‘사랑의 능력’이 있습니다. 마음을 열면 이 잠재 능력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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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11주간 화요일(6/16)


      말씀의 초대
      참사랑은 용서다. 원수까지도 용서하는 행위다. 미운 마음을 움켜쥐고 있다면 용서가 되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다 같이 햇볕을 주시고 비를 내려 주신다. 하늘의 아버지를 기억하며 용서를 실천해야 한다(복음).
      복음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무심코 읽지만 놀라운 말씀입니다.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을는지요?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세상에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면 어찌 하늘과 땅이 돕지 않겠습니까? 원수는 원한이 맺힌 사람입니다. 언젠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날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한쪽은 원수라 생각해도 상대방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쌍방이 모두 ‘원수로 여기는 관계’는 많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말만 원수였지 실은 미운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미움을 털고 나면 또 이웃이 될 사람들입니다. 미움의 출발도 하찮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상대를 잘 몰랐기에 생겨났습니다. ‘알았다’ 하더라도 잘못 알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지난날을 지우고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사랑하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서운하고 섭섭해도 마음을 닫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행동’이 쌓여 미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용서의 출발은 닫힌 마음을 ‘여는 행위’입니다. 여는 순간 은총의 햇볕이 들어갑니다. 누구에게나 ‘사랑의 능력’이 있습니다. 마음을 열면 이 잠재 능력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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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11주간 화요일(6/16)


      말씀의 초대
      초대 교회 신자들은 환난과 시련 속에서도 서로 나누었다. 교우들을 위한 구제 활동에 참여하려 모두 애썼다. 자신들의 삶을 주님께 바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부유한 분이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 자선은 그분을 닮는 일이다(제1독서).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8,1-9 형제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께서 마케도니아의 여러 교회에 베푸신 은총을 여러분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환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그들은 기쁨이 충만하여, 극심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아주 후한 인심을 베풀었습니다. 나는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을 위한 구제 활동에 참여하는 특전을 달라고 우리에게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렇게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는데도, 먼저 주님께 자신을 바치고, 또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도 자신을 바쳤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티토에게, 여러분에게서 이미 시작한 이 은혜로운 일을 마저 끝내라고 권하였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곧 믿음과 말과 지식과 온갖 열성에서, 또 우리의 사랑을 받는 일에서도 뛰어나므로, 이 은혜로운 일에서도 뛰어나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 말을 명령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의 열성에 견주어 여러분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지 확인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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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정말 어려운 사랑의 실천임을 새삼 느낍니다.

    참사랑의 첫 번째가 용서임을 알지만

    제가 용서하는 자가 되기에는 아직도 너무나 부족함을 실감합니다.

    살아가면서 원수가 되는 그 과정까지가 더 힘들고 어렵겠지요.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면서 ‘너만 아니면 내가 이러지 않았어.’ 라는 말로 날을 세우며

    미움의 벼랑으로 다가가진 않았는지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서로가 서로에게 주면서 마음을 닫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저도 진정 용서의 꽃을 피우며 살았는지요.

    혹여 제가 원수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도 제가 원수로 남아있음을 기억해야 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기도가 되지 않음을 압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을 때

    미워하는 사람도 용서하지 못할 사람도 없음을 이젠 압니다.

    제가 제 마음을 아버지께 드린다면 참사랑의 기본인 용서로 나아가는 저가 되어야 겠지요.

    그저 제가 좋아하는 사람만을 사랑하고 그에게만 마음을 연다면 그것은 큰 사랑이 아니겠지요.

    근데 아버지!

    때론 이런 사람도 있답니다.

    “당신은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야.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만을 따른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지.

    당신이 문제야.” 라고 하면서

    본인을 따라주는 사람만이 기도하는 사람이고 나머진 형식적인 고백이라 하지요.

    한대 퍽! ㅎㅎ

    아버지! 죄송합니다.

    정말 그런 사람을 봤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에 닫힌 마음을 되려 열어달라 아버지께 기도했지요.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제가 마음을 열고 귀를 열어 아버지께 청한다면

    지혜를 주심을 알기에 그저 아버지를 바라볼 뿐이지요.

    그가 그렇다고 제가 똑같이 한다면 저 또한 용서의 참의미를 모름을 이젠 깨닫게 되었거든요.

    참사랑의 실천인 용서가 세상 무엇보다 아름다움을 알기에

    용서하는 삶으로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이 꽃을 피운다면 늘 의로운 모습으로 흔들림없이

    주어진 삶에 더 빛을 더하는 것임을 이젠 압니다.

    사랑의 용서!

    완전한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해 마음의 문을 열어 한아름 빛을 안으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가슴깊이 새겨보지만 정말 어려운 실천으로 다가와 머뭅니다.

    사랑한다 인사하면서 진정 가슴으로 용서를 하고 사랑으로 안았는지를 꾸짖는 듯하여

    가슴깊이 와 닿았습니다.

    말로는 쉽지만 가슴으로 상대를 용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삶이었는지요.

    말로만 하는 용서로 모든 것을 용서하는 듯 사랑을 노래하진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아직도 어설픈 몽우리로 꽃을 피우지 못한 저에게 사랑의 빛을 주시어

    용서의 꽃봉오리를 활짝 피울 수 있도록 지혜의 빛과 물을 주소서.

    언제 어디서든 먼저 마음을 열어 사랑으로 나아가게 하시어

    용서하는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저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삶에 참사랑인 용서의 옷을 입히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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